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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1~3 세트 - 전3권
현기영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평점 :
두 달 전, 제주 4·3 사태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제주도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한 번의 한숨으로 지나쳐버렸었다. 하지만 그 때의 순간에 이끌려 대하소설공략단에 신청하게 되었고 가제본 책을 받을 수 있었다.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다큐멘터리 감독과 제주가 고향인 아내가 제주 4 · 3 사건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아내의 할아버지인 안창세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 때의 끔찍했던 기억에 갇혀버린 창세는 입을 열지 않는다. 갖은 노력과 설득 끝에 입을 연 창세는 13살 그때로 돌아간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제주. 농사를 짓고, 말을 키우는 테우리들이 있고, 해녀의 숨비소리가 가득한 제주다. 하지만 일제 탄압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강제 공출과 강제 징병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사람이 모일 수도 없었으며 말소리 한 번 크게 내지 못했던 건 제주 역시 피할 수 없었다. 가지고 있는 것보다 뺏기는 것이 많았지만 젊은이들의 눈은 총명했고 사랑도 품었다.
일본이 미국에게 패배해 광복을 맞이했다. 일본어로 대화하고 일본 이름을 쓰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우리나라 말과 이름을 되찾았다. 어리둥절한 어린이들을 데리고 청년들과 어른들이 태극기를 만들고 기쁨에 차 중학원(중학교)도 만든다. 시도 때도 없이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고, 마주치는 사람의 얼굴마다 희망이 깃들었다.
그것도 잠시, 호열자(콜레라)가 창궐하고 가뭄이 극심해졌다. 집집마다 대문을 걸어 잠그고 밥을 굶기는 전과 같았다. 그러던 때, 물러난 일본 대신 미 군부대가 제주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우린 남도 북도 아니고 제주도우다!"를 외치는 도민들의 민족주의 정신은 한반도 분단을 결사 반대했으나, 미군정은 친일파를 포섭해 무단공출 부활 및 양과자 등을 강매한다..
이에 제주도 젊은이들은 어렵게 찾은 자유를 꽉 쥐고 놓치지 않기 위해 투쟁한다. 신문을 만들고 연설을 하고 시위를 한다. 그러나 미군정은 월남한 서북청년단과 경찰, 군인, 토벌대 등을 동원해 그들과 투쟁하는 민간인들을 대학살하기 시작했다. 똑똑해 보이는 청년들이 타겟이었다가 젊은이들, 그들의 가족까지 번졌고 급기야는 보이는 대로 죽이라는 지령을 받는다. 노인과 갓난아기, 말과 소 등 살아있는 것 모두 다...
푸른 바다와 높은 하늘, 흔들리는 유채꽃과 말. 그 아름다움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옛 제주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100년도 안 된 때에 이런 일이 있었다. 읽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뽀얗게 내려앉은 눈과 흙내 나는 길가에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와 피가 덮여있었다는 게.
소설 속에 등장 인물이 많았다. 창세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책 속에서 숨을 쉬고 말을 하고 눈을 반짝였다. 너무 많아 처음에는 헷갈리기도 했지만 2권, 3권 읽다보면 어느새 내가 이미 그들의 이웃이 되어 함께 뛰고, 싸우고, 숨고, 웃고, 운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에는 첫 장을 펼칠 때와 마찬가지로 나와 창세밖에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