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것들의 기록 - 유품정리사가 써내려간 떠난 이들의 뒷모습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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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넘기면서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오는 건 어둠이 채워진 두 페이지와 밝게 열린 출입문이었다. 죽음을 맞이한 자는 저 문이 열리길 얼마나 기다렸을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인데도 너무 늦어버린 탓에 슬프기만 하다. 죽음의 결말은 손만 닿으면 열리는 문을 두고 정해지는 참 쉽고도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문을 열기 전부터 방에 드리운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문틈 사이로 죽음의 냄새가 새어 나온다.”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고독사라고 하는데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냄새로 자기 죽음을 알린다. 고독사를 발견하는 데는 시체가 날리는 냄새가 큰 역할을 한다. 뒤이어 떠난 이가 남긴 흔적에서 외로운 시간을 읽어내기 위해 이 책의 저자 김새별, 전애원과 같은 유품 정리와 특수청소를 하는 자가 나서게 된다. 이 책은 쓸쓸히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남긴 차가운 방을 온기로 마무리하는 두 작가의 따뜻한 생의 정리가 담겨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사연들은 견디는 데 익숙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떠난 고인도 남겨진 사람도 후회와 고통 속에서 살았고 살게 될 것을 생각하니 삶의 방향을 재점검해 보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마음을 전하는 일이야말로 고독사로부터 안전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홀로 버티고, 화를 참지 못하며, 잡히지 않는 행복을 좇으면서 지옥의 계단을 오르는 사연들을 읽으며 떠난 자리가 남긴 말들은 한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유품정리사가 알려주는 자신을 지켜내는 7계명 중에 적어도 한 명 이상의 가까운 지인을 곁에 두라는 말이 있다. 1인 가구나 노령화로 곁에 사람을 두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한동네 주민들과 인사만 잘해도 고독사와 거리를 두는 일은 쉽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죽음이 무섭지만 이 책을 통해 잘 죽는 일 또한 삶의 숙제임을 알게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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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현재진행형 - 스튜디오부터 크라우드소싱까지 예술가와 그들이 사용하는 재료들
글렌 애덤슨.줄리아 브라이언-윌슨 지음, 이정연 옮김 / 시공아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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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서 사용된 표현 재료의 제한 없는 것 같다. 또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세계가 예술계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다양한 형식이 등장하면서 여러 갈래로 종류가 나뉜 덕분에 관람자가 감상하는 폭이 넓어져 좋아진 건지 아니면 더 복잡해진 건지 난해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혼란을 정리해 준 책이 출간되어 기쁘다. <예술, 현재진행형>은 스튜디오부터 크라우드소싱까지 예술가와 그들이 사용하는 재료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사진과 함께 아주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회화, 목조, 건축, 퍼포먼스 등과 도구 정비, 외주제작, 디지털화, 크라우드소싱 등의 과정까지 예술을 진행하는 그들만의 세계를 엿볼 수 있어 신기하기도 하다.

사실 공간의 활용이나 재료의 혼합, 더 나아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형태의 예술은 예상했지만, 이 책은 보다 섬세한 요소를 소개하면서 복잡하고 난해하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오는 부분도 많았다. 제작 과정이야말로 관람자의 시선을 제대로 안내하는 중요한 요소임은 틀림없다.

"관객은 이제 각양각색으로 등장하는 현대미술의 목격자로서, 자신의 역할이 어떻게 제작자의 역할로까지 확장되었는지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작품의 가치를 정하는 일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하는 조건을 갖추는 일은 참 어렵다. 특히나 예술 가격은 예측이 힘들어 이 책에서도 말하듯 자본 투기의 장으로 이끄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작품의 재료나 기능에 근간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은 끊임없이 부풀어 어떤 사치품보다 높은 수치에 도달할 수 있다."

예술의 의미와 해석에는 정답이 없다. 어쩜 이 책을 들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불투명한 예술을 붙잡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스치기도 한다. 그러나 제작 과정에서 드러난 그들의 열정은 이 책을 통해 아주 흥미롭게 다가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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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 빛을 조각한 예술가, 이사무 노구치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84
에밀리 휴즈 지음, 윤지원 옮김 / 지양어린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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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큰 등불 아래 편한 자세로 생각에 잠긴 노인의 미소가 평화로워 보인다. 그는 빛을 조각한 예술가 이사무 노구치이다.

“예술가는 혼돈이라는 재료에서 질서를, 세상이라는 재료에서 신화를, 외로움이라는 재료에서 연대감을 창조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의 전쟁으로 적이 된 두 나라 사이에서 방황했던 예술가 이사무 노구치는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찾아 작품의 재료로 삼기에 전쟁 따위는 문제가 안 되었을 것 같다. 어린이를 위해 멋진 놀이터를,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는 평화의 전당을 짓고 싶었지만,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거절당해 스스로를 달팽이라 칭하며 자신의 껍질 속에서 놀라운 작품들을 창조한다. 쪼개고, 깎고, 다듬어 섬세한 작품이 매끈하게 완성되면 햇빛을 반사하여 빛을 품은 작품이 완성된다.

미국 남서부의 메마른 땅을 담은 작품에서는 숨이 턱 막히는 탁함이 전해졌고, 히로시마의 폐허를 표현한 작품에서는 생명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허함이 느껴졌다. 일본인과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의 혼돈이 주는 부정성은 작품에서도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택한 이사무 노구치는 어릴 때 기억 속 자신만의 정원을 떠올리며 자신의 유일한 세계를 이어간다. 달팽이 껍질 깊숙한 곳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미로 속처럼 어지러운 달팽이 껍질 중심의 이사무 노구치가 빛나고 있는 그림은 그의 행복이 담은듯했다. 정성껏 종이를 붙여나가며 부드러운 낡은 책장처럼,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이사무를 달래주었다. 종이에 빛을 담아 사랑을 표현한 그의 작품들은 예전의 이사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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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클래식 리이매진드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올림피아 자그놀리 그림, 윤영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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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과 블랙, 골드의 색 조합이 심플하면서도 추상적이었다. 이 책 오즈의 마법사는 어린 시절 동화 속 신비의 세계를 다시 그릴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책으로 다가왔고 책 표지 안경 OZ의 센스가 돋보이기도 했다.

농부인 헨리 삼촌과 함께 캔자스 대평원에서 살고 있는 도로시는 사방으로 드넓은 회색빛 대평원밖에 보이지 않는 넓은 평원에서 살고 있었다. 그곳에는 회오리바람이 불 것을 대비해 가족들이 숨을 곳을 마련한 회오리바람 대피소인 작은 구덩이가 있었다. 그린 색상의 큰 원이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어 궁금했는데 아마도 회오리바람 대피소인 것 같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둥근 원이 어지럽게 둥글둥글 그려진 그림에 집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집이 두세 번 빙글빙글 돌더니 위로 천천히 떠올랐고 깃털처럼 아무렇지 않게 멀리 옮겨졌다. 글씨의 나열도 회오리처럼 빨려 들어간다. 집이 흔들리고 바람이 세게 불고 있지만 도로시는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버리며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래 요정 바람도리가 잠시 스쳐 지나가면서 어렸을 때 추억을 소환하는 케릭터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반가웠다. 심플하면서도 독특하게 그려진 그림이 책의 내용을 담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허수아비, 겁쟁이 사자, 양철 나무꾼과 함께 위대한 오즈에 가는 여정이 펼쳐진다. 온통 초록 대리석으로 지어진 반짝이고 에메랄드가 잔뜩 박혀있는 오즈의 에메랄드빛 도시에 도착한다. 도시 위 하늘도 초록빛이 감돌았고, 태양 광선마저 초록색이라는 책의 내용에 이 책의 메인 컬러가 왜 그린 색상인지 알 수 있었다.

오즈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짐승의 형상으로 덩치가 코끼리만큼 커서 초록 왕좌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할 정도로 보였으며 짐승의 머리는 코뿔소와 닮았고 얼굴에는 눈이 다섯 개, 몸에는 기다란 팔이 다섯 개나 자라나 있고, 길고 마른 다리도 다섯 개, 굵고 무성한 털이 온몸을 뒤덮은 것이, 그보다 더 끔찍하게 생긴 괴물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는 대목에서 오즈의 디테일한 모습을 그려보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오즈는 마법사라서 자기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보는 재미와 상상하는 재미가 있는 이번 오즈의 마법사는 올림피아 자그놀리의 그림 때문에 두 배의 재미와 상상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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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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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자연과의 소통을 위한 메신저였는지도 모른다. 팬데믹으로 인간이 혼란스러울 때 제자리에서 묵묵히 평정을 유지하며 살아내는 건 대자연이었다. 이를 알아본 베리 로페즈는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 서정적인 글을 써 내려갔다. 땅과 인간의 관계, 인간의 정체성 등의 문제를 다룬 픽션 및 논픽션 작품들 발표하고 여러 장르의 작가들과 공동 작업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 책은 베리 로페즈 사후에 출간된 그의 마지막 에세이 모음집이라고 한다. 그가 다녀왔던 장소들과 스스로 실천해 온 사랑의 정신을 담고 있으며 이 시대에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명료한 실천 방법을 제시하고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이 담겨있다.

숲길과 도시의 거리를 걸은 사람을 비교해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지만 숲길을 걸은 사람이 집중력 향상은 물론 우울감도 줄어든다. 새소리, 벌레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등 자연이 내는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치유의 음악이다. 푸른 풀밭, 속이 훤히 보이는 바닷속은 편안함과 상쾌함을 동시에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생존에 이로운 탈을 쓴 온갖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베리 로페즈는 물에서 고요한 바다와 함께 연상되는 무한한 인내를 보인다며 강둑 뒤에서 밀려오고 밀려가는 다양한 인간들, 앞에 놓인 것이 비열한 위협이든 야생의 아름다움이든 피하지 않고 적응해 가는 그런 사람들이 보인다고 한다. 이 시대는 절망에 믿음을 걸라고 강하게 유혹하지만, 강력한 유혹을 물리칠 근거를 자연에서 발견하는 베리 로페즈의 시선과 생각이 넓은 인식을 직조한다는 리베카 솔닛의 말이 생각나게 했다. 미지의 것이 두렵지 않고 무시무시한 것이 도사린 가운데 살아가도 화목하고 자연이 주는 앎이 있기에 다른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는 각오를 얻는다고 한다. 목숨을 내놓는다는 표현보다는 목숨을 자연에 맡긴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대자연과 하나이기에 두려움이란 있을 수 없다고 느껴진다. 코로나19가 남긴 것 중 하나는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갔다는 점이었다. 이 책을 통해 자연과 가까워지는 법을 배운 것 같아 맘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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