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 빛을 조각한 예술가, 이사무 노구치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84
에밀리 휴즈 지음, 윤지원 옮김 / 지양어린이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큰 등불 아래 편한 자세로 생각에 잠긴 노인의 미소가 평화로워 보인다. 그는 빛을 조각한 예술가 이사무 노구치이다.

“예술가는 혼돈이라는 재료에서 질서를, 세상이라는 재료에서 신화를, 외로움이라는 재료에서 연대감을 창조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의 전쟁으로 적이 된 두 나라 사이에서 방황했던 예술가 이사무 노구치는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찾아 작품의 재료로 삼기에 전쟁 따위는 문제가 안 되었을 것 같다. 어린이를 위해 멋진 놀이터를,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는 평화의 전당을 짓고 싶었지만,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거절당해 스스로를 달팽이라 칭하며 자신의 껍질 속에서 놀라운 작품들을 창조한다. 쪼개고, 깎고, 다듬어 섬세한 작품이 매끈하게 완성되면 햇빛을 반사하여 빛을 품은 작품이 완성된다.

미국 남서부의 메마른 땅을 담은 작품에서는 숨이 턱 막히는 탁함이 전해졌고, 히로시마의 폐허를 표현한 작품에서는 생명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허함이 느껴졌다. 일본인과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의 혼돈이 주는 부정성은 작품에서도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택한 이사무 노구치는 어릴 때 기억 속 자신만의 정원을 떠올리며 자신의 유일한 세계를 이어간다. 달팽이 껍질 깊숙한 곳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미로 속처럼 어지러운 달팽이 껍질 중심의 이사무 노구치가 빛나고 있는 그림은 그의 행복이 담은듯했다. 정성껏 종이를 붙여나가며 부드러운 낡은 책장처럼,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이사무를 달래주었다. 종이에 빛을 담아 사랑을 표현한 그의 작품들은 예전의 이사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