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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소름 끼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우리나라 청소년 문제. 일본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이지메(이지메르 いじめる)는 우리나라에서 왕따로 표현하고 있다. 학교 폭력, 성(sex)문제, 진로에 대한 고민거리, 학생들의 자살까지 어쩜 이리 닮았을까? 청소년기 성장통이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 잔인한 닮음이다. 얼마 전에도 경산에서 학생이 투신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유서에는 자신을 괴롭힌 학생들 이름이 적혀있었고, 교실에서는 성적 희롱도 당했다고 한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다. ....... 일본소설인 시게마츠 기요시의 십자가 역시 이렇게 시작을 한다. 1989년 2학기 초... 왕따와 괴롭힘을 당하던 후지슌이 자기 집 감나무에 목을 메 자살을 한다.

이후 후지슌의 유서에 적혀있는 사람들과 후지슌의 가족들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후지슌의 절친이라 적혀있던 유짱(사나다)과, 후지슌이 좋아했던 여학생 사유리, 아들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가는 후지슌의 부모님, 그리고 후지슌의 동생 겐스케가 주요 인물들이다. 십자가라는 제목 때문에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생각 했었다. 생각 외로 십자가는 철저히 후지슌에 얽힌 인물들의 관계 회복과 화해, 그 과정 속에서 얻는 깨달음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의 삶은 이 책 제목처럼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는 삶이 된다.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아무도 대신 지어줄 수 없고, 평생 자신들을 떠나지 않는 안타까운 삶 말이다.

"너희는 평생 눈을 빤히 뜨고 사람을 죽게 내버려둔 죄를 등에 지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 후지슌의 자살소식을 취재하던 기자가 유짱에게 던진 말이다. 안 그래도 유서에 절친이라고 적혀 있어서 곤란했던 유짱에게 촌철살인 같은 말이었다. 뼈 있는 기자의 말은 유짱에게 후지슌의 십자가를 얹어준다. 후지슌이 좋아했던 사유리도 마찬가지다. 생일 선물을 건네주러 온다는 후지슌의 청을 거절한게 끝내 마음에 걸리는 사유리... 자신의 생일과 후지슌이 기일이 겹치는 바람에 평생을 기쁘게 생일을 맞이하지 못하게 된다. 소설을 읽을 때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하는 나에게는 후지슌도 후지슌이지만, 유짱과 사유리, 후지슌의 부모님 때문에 끝까지 먹먹한 기분 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겁다. 웃음소리 한번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유짱과 사유리가 후지슌과 후지슌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회복하는 순간까지 독자들은 먹먹함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이처럼 소설 십자가 에서는 후지슌 한 사람의 자살로 인해 수 많은 사람이 가슴에 풀지 못할 응어리를 품고 살아간다. 한 사람의 영향은 생각보다 강했다. 작가도 십자가를 통해 분명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첫째는 관심이다. 주위를 둘러보고, 자녀를 돌아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 소개를 보니, 작가 역시 학창시절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겪어본 사람이 가장 잘 안다고 한다. 당신이 부모라면, 자녀의 절친은 누구인지? 자녀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더 친근하게 다가가 주길 원하는 것 같았다. 친구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TV에서 우스개소리로 '복불복'을 외치고, 나만 아니면 된다고 어른들이 이야기해도, 그것은 진짜 웃자고 하는 이야기다. 소외받는 친구들에게 그러면 안된다. 그들에게는 더욱 관심을 갖자고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친구들을 괴롭히지 말자. 책에도 나오지만, 왕따를 가한 가해자들의 최후는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두번째로 작가는 새로운 시각으로 왕따 문제를 다루자고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왕따 문제를 교육의 황폐화나 마음속의 어둠처럼 거창한 문제로 다룰 필요는 없다고 책에도 나온다. 물론 왕따 문제를 어린아이 같은 짓이라고 가볍게 여기지도 말자고 한다. 대신 이제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아이들의 언어로 해결해야 된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왕따 따위에 지지 말고 강하게 살아야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른들의 시선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지,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작가는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시게마츠 기요시는 왕따로 고통받다가 자살한 학생의 아버지 인터뷰를 보고 2주만에 십자가라는 작품을 썼다고 한다. 십자가는 2010년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고,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세지가 정확하다. 역자인 이선희씨도 십자가를 번역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한다. 나 역시 읽는 내내 먹먹함을 가슴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 가슴 먹먹한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러니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 교단에 계신 선생님들은 꼭 읽었으면 좋겠다. 내 딸도 곧 학생이 되고, 친구가 생기겠지... 그때 아버지로써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또 주위에 세상을 떠날 만큼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짱처럼 모른척 해야할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난 그 답을 십자가에서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