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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성 父性 - EBS 다큐프라임 아빠가 된 남자를 탐구하다
EBS다큐프라임「아버지의 성」제작팀 지음 / 베가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2013년 1월 2일 새벽.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해만 넘기자고 태담을 나눴는데, 그게 다였나보다. 1월 2일. 오늘은 회사 시무식이 있는 날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장모님이 도착하셨다. 일단은 회사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가장은 어쩔수 없나보다. 2월이면 연봉 협상도 있고, 혹시라도 시무식에서 내 이름이 불린다면, 내가 자리에 없다는 것을 몰랐으면 하는 분들까지 나의 공석을 알게 될거다. 출근하는 내내 경우의 수를 따진다고 머리가 복잡해진다. 뭐지? 이 불편한 진실은...?
나에게 2012년은 특별했다. 3년만에 아기가 생겼다는 프리미엄(?)으로, 단, 2번을 제외하곤 아내를 따라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물론, 회사에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게 되도록이면 주말로 병원 예약을 잡았다. 하지만 정밀 초음파 등 선예약에 밀려 어쩔수 없이 평일 방문을 해야 할 때는 죄를 짓는 기분으로 팀장의 책상 앞에 가곤 했다. 흡사 고등학교 야자를 하기 싫어 말도 안되는 핑계거리를 떠올리며 교탁으로 걸어가던 그 기분이랄까? 난 가족이 중요하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데... 나의 의지를 방해하는 이 분위기는 무엇일까? 다행스러운 것은 사회가 조금씩 변화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남성의 육아 참여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지지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생각의 변화가 여전히 느리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가정에 충실하면 직장에 불성실할 것이라는 통념에 젖어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신분 변화임에도, 미리 겪은 같은 남자들이 이해를 못해주니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이런 속 터지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성'을 읽고 유레카를 외치고, 기립 박수를 쳤다.
먼저 아버지의 성은 나와 같은 초보 아빠에게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알려주었다. 사실,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저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열심히 일하는 것만 가르쳐줬을 뿐... 그래서 여성분들도 이해를 해주셔야 하는게 있는데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것이 어려운 만큼 남자에서 아버지가 되는 것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고 어려운 부분이다.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아버지의 역할을 아버지의 성에서 배울 수 있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비싼 장난감을 사주고, 함께 조립하고, 좋은 곳에 여행을 가는 것이 아빠의 역할의 전부가 아니었다. 물론 이런 부분도 필요하겠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아버지는 가슴이 따뜻한 아버지, 엄마 같이 잘 챙겨주는 아버지, 친구 처럼 친하게 서스럼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버지, 세상에 대해서 잘 알려주는 아버지가 필요했다. 이런 아버지의 역할이 아이들의 행복과 미래와 직결된다는 것은 어느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
두번째로는 배울점이 너무 많은 열혈 아빠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처럼 가정을 중시하고,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아버지들 말이다. 남들은 팔불출이네, 바보네 하며 놀려도 당당히 아기띠를 매고, 유모차를 끌고,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는 일을 쉽게 하는 멋진 아빠들이다. 아주 개방적이시다고 자부하시는 우리 어머니도 산후조리원에 오셔서 "무슨 산부인과에 남편이 이렇게 많니?" 하시는데, "요즘 아빠들은 거의가 이렇습니다" 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부모님께는 죄송스럽지만, 가정은 나의 인생에서 최우선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이의 인생을 위해 아빠의 역할을 고민하고, 또 학습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는 점점 일시적인 트렌드를 넘어 문화가 되고 있다. 나 역시 아빠가 되기 전에 100인의 아빠단과 마더탐사단 활동을 통해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아버지 수업을 받았다. 특별히 아버지의 성에는 직접 만든 장난감 놀이, 런닝맨 놀이 등 기발한 놀이로 자녀와 함께 놀아주기로 유명한 파워블로거 '항상 일만하는 아빠'님의 소개가 있다. 여기에 비행기 타고 날아가 악수를 나누고 싶을 정도로 멋진 스웨덴 아빠들, 일본 아빠들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성을 통해 내가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할 것인가를 심도있게 고민할 수 있었다. 단순한 양육 도우미, 조력자에서 벗어나 엄마와 함께 아이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로 했다. 여전히 바쁘고, 피곤하지만, 가족에게 겉돌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사회경험이 엄마보다 많으니 아이에게 스트레스와 실패를 견뎌내는 힘과 능력을 가르쳐주고 싶다. 엄마가 주로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면, 나는 세상에 나아가는 힘을 키우고 도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 이런 방법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 아마 여러번 읽게 될 것 같다.
참 좋은 책이다. 가히, 대한민국 모든 아버지들의 필독서라 할 수 있겠다.
힐러리 클린턴은 자신의 자립심과 성취욕은 아버지와의 대화 덕분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빌 게이츠 역시 아버지로부터 얻은 가장 훌륭한 조언 중 하나로 아버지께서 못하는 일을 잘하도록 격려하고, 밖에 나가 수영이나 풋볼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라고 볻돋워준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의 자녀도 나중에 누군가의 대화속에서 현재의 내가 있게 한 것은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버지 노릇이 녹록하지 않은 세상이고, 아버지 혼자만의 힘으로는 변하기도 사실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다. 그래도 한번 해봐야 되지 않을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일단은 스스로 배워보고 노력하자. 그리고 이런 아버지를 위해 가족들은 응원을 해보자. 그러면 자녀가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는 놀라운 일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