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신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정신은 전달하지는다. 만일 전달한다면, 그것은 이제 소크라테스의 죽음, 플라톤에 의한 부친살해(에크리튀르)를 매개로 삼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때 정신은 유령이고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것의 반록가능성=복수성에 의해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인용 부분은 그것을 ‘재래하며, ‘회귀ort, ‘반복repetition" 이라는 re-계열의 단를 많이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헤겔이 세계정신의 맹아를 발견한 것과 같은 장소에서 데리다는 자동인형‘을, 즉 어딘지 알수 없는, 누군지 알 수 없는‘, 무명의 복화술이라는 효과들을발견한다. 우리는 이미 아우슈비츠의 예에서 고유명의 사후성에대해 고찰했다. 소크라테스 또한 사후적으로만 고유명이, 정신의기원이 된다. 그러므로 데리다는 고유명적 단독성을 뒷받침하는그런 사후성반복가능성, 소크라테스의 배후에 있는 플라톤을 결코잊을 수 없다. 인용 부분의 마지막에서 데리다는 우편ate에 대해다루고 있다. 우리는 다음 2장에서 이 단어가 ‘일지도 모른다‘를나는 대표적 은유라는 것을 상세히 검토하게 될 것이다. 소크루키스는 발각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무지는 지에, 아이러니는정하게 회수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우연성의 기억이 탈구목을 구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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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로스토는 근대화가 인간의 선택지를 넓히는 방법이라고 제시함으로써, 오늘날 인정받는 가치만을 고수하는 대신 근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망각해버릴 위험을 늘 안게 된다. 23) 분명근대적 기술은 상품과 시장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오래된 지식들을 멀어지게 만든다. 이와 유사하게, 축적의 결과로 국가의 부는 증가하지만 불평등도 증가하고, 산업화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지만 창조적으로 일하며 사회적 인정을 받기는 더 어려워진다. 극단적으로 보자면 소비자는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차를 선택할 ‘자유‘를 누리는 반면 매연 때문에 길을 걷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이상화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진보의 획득‘ 역시 많은 손실을 요구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라진 것들은 너무 쉽게 쓸모없는 존재로 치부돼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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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오늘날 정치에서 이성이 하는 역할이 무엇인가를 놓고 여성들사이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스피박은 자본주의 회사의 착취 때문에고통 받고 있는 인도 부족 여성들을 정치화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종교를 통해 다가오는 어떤 신성한 느낌과 일군의 가치라고 주장한다. 아드리아나 카바레로(Adriana Cavarero)는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있음은 우리가 이성적 존재여서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노출되어있고 인정받는 자를 인정하는 자로 대체하지 않는 인정을 필요로 하기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주체"란 다중적이거나 분열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주체들"로서의 위상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정치적 행위주체성의 전제조건으로 주체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를 결속시키는 의존성의 보다 근본적인 양식, 즉 우리의 사유와 연합 및 우리의 취약성, 연합, 집단적 저항의 토대가 출현할 수 있는 양식을 삭제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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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전체상이 밀려나고 개개의 현상에 대한 경험적인 반응이 중요시되면서 감각의 역할 또한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18세기의 영국에서 무엇인가를 인식한다는 것은 먼저 그 무엇인가를 감각한다는 뜻이었다. 이 감각의 선행을 주창한 사람은 영국 경험론 철학의 시조인 로크(John Locke,
1852~1704)였다. 그는 《인간성론>에서 인간의 감각적 인상이 쾌감이나 불쾌감을 동반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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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이고 미신적인 풍습과, 과학적 지식에 기반을 둔 행위 간의차이도 그다지 설득력 있게 설명되지 않는 듯하다. 인간의 몸에서 추출한 물질의 잦은 사용이 과거의 의학에 비하면 과학적으로 보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미신이고 맹신이다. 수년 전까지도 효과적이라고 여겨졌던 처치법이 유해하지는 않더라도 효과가 없는 것으로밝혀지면 현대 의학은 그런 처치법을 금지한다. 달리 말하면, 미신적과학적 지식에 기반을 둔 행위 간의 경계는 생각만큼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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