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신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정신은 전달하지는다. 만일 전달한다면, 그것은 이제 소크라테스의 죽음, 플라톤에 의한 부친살해(에크리튀르)를 매개로 삼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때 정신은 유령이고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것의 반록가능성=복수성에 의해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인용 부분은 그것을 ‘재래하며, ‘회귀ort, ‘반복repetition" 이라는 re-계열의 단를 많이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헤겔이 세계정신의 맹아를 발견한 것과 같은 장소에서 데리다는 자동인형‘을, 즉 어딘지 알수 없는, 누군지 알 수 없는‘, 무명의 복화술이라는 효과들을발견한다. 우리는 이미 아우슈비츠의 예에서 고유명의 사후성에대해 고찰했다. 소크라테스 또한 사후적으로만 고유명이, 정신의기원이 된다. 그러므로 데리다는 고유명적 단독성을 뒷받침하는그런 사후성반복가능성, 소크라테스의 배후에 있는 플라톤을 결코잊을 수 없다. 인용 부분의 마지막에서 데리다는 우편ate에 대해다루고 있다. 우리는 다음 2장에서 이 단어가 ‘일지도 모른다‘를나는 대표적 은유라는 것을 상세히 검토하게 될 것이다. 소크루키스는 발각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무지는 지에, 아이러니는정하게 회수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우연성의 기억이 탈구목을 구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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