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잃었다가 나중에 회복되었다. 이때도 관련되는 체다카가 존중되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고맙게여기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잃을 필요는 없다. 사실 체다카의진실한 본질은 우리가 잘살고 건강할 때 더욱 정확하게 체다카를 통하여 그 책임을 지는 것이다. 여러 상황에서 우리 자신을 시험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체다카를 수행하는 것을 학습과정의 한 부분으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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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의에서 기표를 뽑아내는 동안 항상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 유사성을 찾아내는 일은 탐구와 인지과정에서 필수적인수단이다. 내 아이는 두 살이었을 때 툭하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건 저거랑 같은데, 그거랑은 달라...."
이런 비교를 통해 아이는 제2영역에서 만난 형상들을 뚜렷이이해하게 된다. 두 사물이 서로 다르다는 전제하에서, 그 둘을 비교하는 일은 바로 세상을 배워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유사한 관계를 통해 만물은 스스로를 설명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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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모든 사고판단과 행동의 초석이 돼야 한다. 그래야복잡하게 뒤얽힌 난제들과 맞섰을 때 다수의 행복과 약자 보호의 자세에 필요한 탄력적 대응이 가능하다. 정치인은 또 철학에 의해 상반된 주장이나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실행 가능한 정책을 만들어 나가도록 한다.
또한 철학은 개별적인 요구의 차이를 식별하게 하며, 적절한 판단에 필요한 안목이자 행동에 필요한 손발이 되어 주기도 한다. 동시에 정치는 열정이자 감격이다. 열정과 감격이 없는 곳에서는 정치도 없다. 그 열정과 감격이 철학과 도덕적가치에 의해 뒷받침되고 한층 높은 이상을 지향할 때 결단력과 실행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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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에 다가가는 것은 전혀 우리가 아니다.
상님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리.
대화가 피어나는 알맞은 시간은 바로 이때다.
대화는 맑게 피어나 단란한 숙고가 된다.
숙고는 서로의 생각을 과시하지 않으며,
비굴한 동의에 굴하지도 않는다.
사유는 사태의 바람에 굳건히 머문다.
이런 단란함으로부터 아마도 몇 사람은사유의 친밀한 반려자가 된다. 하여그들 가운데 어떤 이는 뜻밖에 위대한 사상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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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자기의 병리적 문제들에 대해 분석적으로 정통한 인물이 자신의 고통에 대해 그렇게 자세하게 묘사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보기 드문, 아니 거의유례가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칸은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내부 고발자로서의 시선을 선사해준다. 칸은 또한 거짓자기에 대해 알고 있는, 잘 발달되고 활동적인 참자기를 가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직 이 참자기로만그를 알아왔다. 거짓자기는 그저 가끔씩 왔다갈 뿐이었다. 그것이 사라지고나면 부수적인 신체증상들도 함께 사라졌다. 이 말은, 참자기가 항상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참자기가 존재한다고 해서 항상 접근이가능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은 위니캇조차 기술한 적이 없다. 또하나 위니캇이 놓친 것이 있는데, 칸의 경우는 복잡한 중간 공간이 존재하여 거짓자기로 기능할 때조차 상징의 능력이 그대로 남아, 문화적인 분야에서 활동하고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위니캇의 주장에 따르면,
거짓자기는 이 영역에서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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