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자기의 병리적 문제들에 대해 분석적으로 정통한 인물이 자신의 고통에 대해 그렇게 자세하게 묘사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보기 드문, 아니 거의유례가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칸은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내부 고발자로서의 시선을 선사해준다. 칸은 또한 거짓자기에 대해 알고 있는, 잘 발달되고 활동적인 참자기를 가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직 이 참자기로만그를 알아왔다. 거짓자기는 그저 가끔씩 왔다갈 뿐이었다. 그것이 사라지고나면 부수적인 신체증상들도 함께 사라졌다. 이 말은, 참자기가 항상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참자기가 존재한다고 해서 항상 접근이가능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은 위니캇조차 기술한 적이 없다. 또하나 위니캇이 놓친 것이 있는데, 칸의 경우는 복잡한 중간 공간이 존재하여 거짓자기로 기능할 때조차 상징의 능력이 그대로 남아, 문화적인 분야에서 활동하고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위니캇의 주장에 따르면,
거짓자기는 이 영역에서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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