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과학 덕후들에게 보내는 선물

미래가 보이는 수학 상점 - 간단한 수학으로 이해하는 미래과학 세상
김용관 지음 / 다른 / 2023년 6월

이상합니다.

우리나라는 초등 고학년 이후 수포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나라인데, 하루가 멀다하고  수학책이 출간됩니다. 새로운 수학 문제집이 끊임없이 연구되고요. 재미 하나 없을 것 같은 수학과는 자연과학대에서도 가장 공부를 잘 해야 가는 곳인데도, 단과대 중 재수강과 자퇴율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라고 합니다. 

수학이 워낙 중요하기도 하지만, 조용히 있는 수학 덕후가 많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학창 시절을 회상해 보면, 반에 수학만 미친 듯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씩은 있었잖아요.^^

저는 학창 시절, 수학문제만 풀고 수학의 본질에 가까이 못 간 게 아쉬워서 가끔 수학에 관한 교양서를 읽어봅니다. 이 책, <미래가 보이는 수학 상점>은 수학과 미래과학의 콜라보라는 부제에 이끌려 읽어보게 되었어요.

책은 얇고 가벼운 느낌입니다. 최근 읽었던 수학에 관한 교양서적은 400여 쪽이 넘었어서, 이 책의 첫 느낌은 청소년 대상의 입문 서적같았어요. 물론 읽어가며 첫인상과는 전혀 다른 책임을 알게 됩니다. 중학교 때 다루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숫자와 공간 등 수학이 다루는 분야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에게는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할 책입니다.

저자 김용관님은 산업공학을 전공하며 수학을 깊이 연구하게 된, 수학자이자 작가라고 하십니다. 처음에 수학자라는 소개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았는데, 글을 읽고 다시 저자 소개를 보며 저자가 생각하는 '수학자'는 어느 정도로 수학에 관해 사유를 이어나가는 사람일까 궁금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읽어본 몇 권의 교양서적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이전에 읽어본 책들은 수학과 과학 원리나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저자의 생각을 붙여 수과학을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입문서였습니다. 저자의 깊이 있는 사색을 들여다 보며, 철학으로서의 수학을 만나기도 하고요.

반면, 이 책에서 다루는 소재는 들어만 봐도 흥미롭습니다. 음수 질량, 음수 길이, 또 시간이 갈수록 복잡도가 줄어드는 반엔트로피, 소수 차원의 도형과 좌표계, 생각해 보지도 않은 +0, -0, 안 된다기에 외우고 만 0으로 나누기, 1:1이 아닌 함수 등 생각해 보지도 못한 개념들이 줄줄 나와요.

이 책은 수학자가 대체 무엇을 하는 지를 잘 보여주어서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자면, 아마 학부모시면 아이에게 왜 0으로 나누면 안 되는 지를 설명하시느라 고생하셨을 겁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칙연산에서 0으로 나누기의 위상을 '특이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0으로 나누기에 대해 여러 가지 접근을 보여 줍니다. 다른 사칙연산과 관계를 버리고 독자적으로 나눗셈만 정의해 본다거나, 수를 극한으로 보거나 일정 영역을 점유하는 숫자라는 개념을 생각해 본다거나. 수학에는 아직 연구되지 않은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어떤 수학자의 글이 생각납니다.ㅎㅎ

또한 인류가 알고 있는 세계를 벗어나는 개념을 필요로 할 때, 수학과 과학이 어떻게 길을 열어 왔는 지를 알게 된 것도 즐거웠습니다.

p.23 

과거에 음수라는 개념을 처음 맞닥뜨린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처음에 음수를 수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했다. 17세기의 천재 수학자 파스칼도 0에서 4를 빼면 0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p. 95

놀랍게도 +0과 -0은 이미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인 수학은 아니지만, 수학을 응용하는 곳에서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그곳에서는 +0과 -0을 필요로 한다. 그곳은 바로 반도체를 사용하는 컴퓨터다. 

인류의 지식과 과학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의 수학 세계는 점점 확장되고 있군요.

책의 구성은 이렇습니다.

각 챕터에 첫 부분에 그 챕터에서 다룰 개념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수학적 고민을 가지고, 수학자의 가게인 수학 상점에 오는 손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의 고민이 수학자급입니다.^^;

p120

저희 카지노에서 감사 이벤트로 동전 던지기를 했어요. 맞추는 분들 모두에게 복권 10장씩을 나눠드리는 이벤트였어요. 그런데 동전이 옆면으로 서 버렸어요! 동전이 옆면으로 서 버리는 순간, 어떤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어떻게 될까요? 생각했던 경우의 수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건이 일어났으니, 확률이 1보다 커져 버린 걸까요? 궁금해 미치겠어요.

이어서 수학 상점의 주인이 이 주제에 대한 고민과 해설을 이어나갑니다. 마지막으로 소개된 개념이 발전하면 미래에는 어떤 과학 기술이 선보일까를 한 컷의 이미지로 보여줍니다. 허황되다고 웃어넘길 만한 내용도 있지만, 메타버스나 유전자 가위, 인공지능처럼 성숙한 기술도 많습니다.

읽는 내내 즐거움이 가득했던 책입니다.

덕후까지는 아니더라도, 수학을 좋아하는 저희 아이에게도 읽어보라 권할 책이고요. 수과학, 미래의 과학 기술에 관심 가지시는 분께 강추합니다!

[100자평] 미래가 보이는 수학 상점

미래가 보이는 수학 상점 - 간단한 수학으로 이해하는 미래과학 세상
김용관 지음 / 다른 / 2023년 6월

수과학 덕후들에게 보내는 선물, 꼭 읽어보세요~

김소월을 읽는 행복

진달래꽃 - 김소월×천경자 시그림집
김소월 지음, 천경자 그림, 정재찬 해제 / 문예출판사 / 2023년 5월

왜일까...

시집을 펼쳐드는 일은 거의 없다. 

책장만 들추면 시어의 아름다움에 푹 젖어들어, 충만해지는데 말이다. 

한국인은 유독 시를 잘 안 읽는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삶이 너무 치열하고 바빠서일까...

그럼에도 전국민이 김소월이나 윤동주 시인의 시 몇 구절은 자연스럽게 읊조린다. 

이것만은 확실히 공교육에 감사할 일이다.

오랫만에 김소월의 아름다운 싯구를 읊조리고, 천경자 화백의 그림도 볼 생각에 설레며 집어 들었다. 

예쁜 책이다. 

평생 아름다운 예술을 추구하던 두 예술가의 작품이라 그런 지, 편집에 대단한 공을 들인 듯 하다. 

하드커버의 표지부터 각 장의 제목, 시의 정서와 꼭 맞는 그림까지 책의 면면이 마음에 쏙 든다. 

또한 글 중간에 시인의 삶과 시대에 대한 해설을 채워넣기도 하는 다른 시집과는 달리, 오로지 시와 그림만 감상토록 안배한 점도 좋다. 

정재찬 선생님의 해제를 여는 글로 실어 시를 읽는데 도움이 되었다. 

아,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3음보를 세어보고, 김소월 시에 흐르는 정서를 분석해 보는 것도 즐거웠다. 시인의 마음이란 나이 어릴 때도 이렇게나 성숙한 것일까...

김소월하면 '진달래꽃'이지만, 그외에도 알려진 시가 많기도 하다.

빼곡히 담긴 시를 읽어 가며 잊고 있었던 많은 싯구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어디에선가 읽어 보기도 하고, 노랫말로도 들어본 싯구들이 많다. 

시를 많이 읽지 않는 나조차도 김소월의 시는 여러 편 외우고 있으니, 다른 분들은 오죽하랴. 

좋은 시는 시대를 초월해 감수성을 일깨우고 영혼을 울리는가 보다. 

중학생인 우리 아이는 또래 아이들의 재기발랄한 시도 좋아하지만, '진달래꽃'을 가사로 붙인 노래도 자주 흥얼거린다.

발표된 지 100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 김소월의 시어가 곳곳에 살아남은 것은 김소월이 인간 보편의 정서를 노래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과 그리움과 아픔과 연민과...

김소월의 시가 이렇게 함초롬이 편집되어 예쁜 책으로 출간되어 참 반갑다.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고 행복해지기를, 더 많은 시인의 시가 출간되기를 바래본다.  

[100자평] 진달래꽃

진달래꽃 - 김소월×천경자 시그림집
김소월 지음, 천경자 그림, 정재찬 해제 / 문예출판사 / 2023년 5월

김소월과 천경자,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 두 예술가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콜라보가 예술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 -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토비아스 휘터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과학사는 재미있습니다. 과학 이론은 어려워 이해 못하더라도, 과학자들의 삶과 연구에 대한 이야기는 감동과 인간미가 가득한 한 편의 영화같아요. 과학사나 수학사는 지적 유희로 딱 좋은 거 같습니다.

근현대에 들어 기념비적인 발명과 발견이 하루가 멀다하고 발표됩니다. 그 많은 내용을 넓게 훑어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류의 책도 있지만, 이 책은 한 분야를 좁고 깊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물리학의 빅뱅 시기에 해당하는 1900년 대 초반의 유럽을 배경으로, 원자의 개념을 정의하고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는 물리학자들이 주인공이네요.

이 책의 저자는 토비아스 휘터로 뭔헨과 버클리에서 철학과 수학을 공부한 프리랜서 기자이자 작가입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물리학의 역사에 대해 조사하고 쓴 책이로군요. 저는 이 책으로 처음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기자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정확한 서술은 번역을 해도 드러나는 듯 합니다. 번역도 잘 된 편인 듯, 문맥이 이상해서 이해 안 되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이 책은 1900년부터 1945년까지 물리학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제, 동료, 경쟁 관계에 있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하고, 토론을 하고, 몇 년 뒤 성숙된 이론을 내놓는 등 내용이 복잡하므로, 특정 시기, 특정 장소에 포커스를 맞추어 전체 줄거리 파악이 쉽도록 서술했습니다. 

이 책은 양자물리학의 아버지인 막스 플랑크의 일화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과학시간에 <원자를 발견한 보어>라고 한 줄로 배우는 내용에도 엄청난 시간의 사고 실험과 과학자들의 수많은 토론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네요. 과학자의 성장 배경과 성격, 함께하는 과학자들을 소개하여 독자의 흥미를 돋웁니다.

이 시기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양자역학의 발전에 관한 부분이 특히 재미있습니다.  5, 6차 솔베이 회의에서 빛을 파동으로 보는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 드브로이와 빛이 입자임을 주장하는 보어, 파울리, 하이전베르크의 치열한 공방을 벌인 것은 마치 흥미진진한 법정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또한 양자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태도를 보는 저자의 견해도 인상깊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지인에게 '상대성 이론보다 양자역학에 대한 숙고를 100배는 더 했다.'라고 말한 일화를 들며,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으며, 양자역학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논평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나치가 권력을 잡으며 발전하던 물리학이 주춤하는 모습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나치독일은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이 '유대인 물리학'이라며 '독일인 혹은 아리아인 물리학'을 부흥시키기 위해 위대한 물리학자들을 탄압했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외국으로 망명하거나, 나치에 부역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더군요.

 결국 오토 한의 실험으로 독일은 원자폭탄을 연구하게 되지요.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개인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정치 권력이 과학의 발전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케 되었어요.

이 책은 아인슈타인, 보어, 하이젠베르크가 큰 지면을 차지합니다. 워낙 물리학과 현대 과학에서 큰 역할을 차지한 학자들이긴 하지요. 알려진 바도 많고, 재미있는 일화도 많고. 반면 여성 물리학자는 마리 퀴리와 리제 마이트너 정도만 소개됩니다. 당시 활약한 여성 과학자가 없기도 했겠지만, 두 과학자도 업적에 비해서 할애된 분량이 적어서 아쉬웠어요.

과학, 특히 물리학에 관심을 갖는 청소년과 성인에게 지적 희열을 느끼게 할 책입니다. 과학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종류의 책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