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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지 - 반구대 암각화 이야기
구광렬 지음, 이종봉 그림 / 새움 / 2021년 12월
평점 :
전세계에서 가장 오랜 포경의 역사가 기록된 반구대 암각화.
인류사적인 가치가 엄청나지만, 현재 심각한 훼손 단계에 있지요.
1971년 처음 발견 당시에는 300여 가지의 그림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지금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은 2~30여 가지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이 반구대 암각화를 소재로 한 소설이라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게 되었어요.
저는 책을 읽을 때 저자의 경력을 살펴보는 편인데, 이 책을 쓰신 구광렬 님이 중남미 문학을 강의하시는 분이라 책 내용이 어떨까 의심도 좀 했었어요. 중남미 특유의 발랄한 허풍(?)이 담긴 소설이라면 좀 실망스러울텐데 하고.
그런데, 두세 장 읽어가며 놀라운 흡입력에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답니다.
막연히 시인의 감수성과 소설가의 필력은 좀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서사를 쓰시는 분이라니! 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아 읽어보고자 한답니다.ㅎㅎ

이 소설은 7000년 전 태화강 유역에 자리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넘어가는 때네요. 이 마을 사람들은 바다에 자주 출몰하는 고래를 신성시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마을의 으뜸(족장)은 절대권력을 가졌으며, 으뜸의 첫부인은 마을의 큰어미로서 또다른 권위와 지혜를 지녔습니다. 당골레(제사장)가 있었지만, 으뜸의 하수인이었고요. 으뜸은 마을의 여인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고, 다들 굶주릴 때 사냥하지 않고도 가장 좋은 고기를 먹었습니다.
마을의 으뜸(족장)이 늙어가자 버금(부족장)이 계략을 써서 으뜸 자리를 빼앗습니다. 한 번 계략에 의해 빼앗은 자리는 또 그렇게 빼앗길 수 있는 법, 조금이라도 힘있는 사람들 간에 권력을 향한 치열한 다툼이 이어집니다.
소설의 중심인물인 그리매는 으뜸의 아들이었지만, 그런 권력 다툼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벽화를 그리고 화살촉을 만드는 이로 살아갑니다. 그리매의 이복 형인 큰주먹은 근육만 큰 고대의 전사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을 받는 꽃다지는 미모가 뛰어나 제 의지대로 살기가 힘든 소녀였습니다.
벼농사를 짓기 전 고대의 삶은 언제나 힘들었을 거 같습니다. 먹을 것이 풍부할 때는 모두 잘 먹다가, 겨울이 되면 약하고 힘없는 이부터 굶어죽고 맞아죽고 했겠지요. 먹을 입이 늘어나면, 이웃 부족의 사냥터를 빼앗고 곡식을 훔쳐와야 했을테고요. 가뭄으로 이웃 부족을 받아들이게 된 부족은 부족한 식량을 구하려고 고래를 사냥하게 됩니다.

이 소설은 독자가 어느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책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인간의 보호 본능, 권력욕, 희생 정신에 집중할 수도, 여러 사랑의 모습에 집중할 수도, 선사 시대 삶의 모습에 집중해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선사 시대의 삶에 관심이 많아 간간히 인터넷 검색해 보며 읽곤 했습니다.
7000년 전이 인류의 삶에서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라고 합니다. 청동기가 쓰인 것 외에도 곡식을 키우고, 가축을 기르게 되지요. 책에서는 이러한 생산의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들이 하나둘 등장합니다. 소설에 묘사되는 고대인의 삶의 양식, 가락바퀴와 동물뼈 바늘을 이용한 바느질, 조개무지 무덤, 조각배 만드는 법 등이 얼마나 생생한지요!
소설에서 그리매는 삶의 순간 순간 만났던 호랑이, 고래, 고래를 잡기 위해 만든 조각배, 그리고 꽃다지와 자신을 벽에 새깁니다. 그 그림들은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져 있는 것들의 멋진 설명이 됩니다. 암각화에 그려진 소재를 이야기 속에 정말 잘 녹여 내어서 놀라울 따름입니다. 작가는 암각화의 판화 기법이 변화한 것까지 이야기 속에 담았습니다.
꼼꼼한 자료 조사와 역사 연구를 토대로, 촘촘하게 짜여진 이야기에 감탄하며 폭 빠져 읽었어요.
7000년 전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사용한 예스러운 단어들, 그 당시 사람들이 가졌으리라 생각되는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지혜, 믿음에 대한 생각들.. 읽고 나서도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성적인 표현, 폭력적인 표현이 불편할 수도 있어서 중등 이상의 학생과, 역사에 관심 있는 성인에게 권합니다. 역사 소설 좋아하는 독자라면 매우 즐겁게 읽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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