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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브이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23
박서련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3월
평점 :
최근 안전가옥에서 출간되는 장르문학 여러 권 읽었습니다. 안전가옥의 장르소설은 일단 재미있습니다. 흡입력 강한 스토리 속 힘있는 캐릭터가, 시대의 불편한 이슈에 정면 도전하는 모습의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물론 인물은 그저 자신의 길을 걸어갈 뿐이지만.^^; 때때로 처연하게 슬프기도, 아름답기도 합니다. 불편한 주제가 많이 담기는데도 크게 눈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작가의 담대한 관점과 필력덕인 거 같습니다.

안전가옥 오리지널 시리즈로 박서련 작가를 처음 만났습니다. 박서련 작가의 책을 살펴보니, 역사물, 일상을 다룬 소설과 에세이 등 여러가지 소재를 넘나들며 집필하시네요.
출간된 장편 SF로는 처음이 아닐까 한데, 워낙 필력이 좋아서 읽는 내내 책 내용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요즘 SF들은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과학 발전으로 인한 인간의 심리, 사회 환경의 변화를 다룬 내용이 많은 듯 합니다. 이 책처럼, 거대로봇이라는 과학기술 그 자체를 다룬 책은 희소해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책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저자의 말을 빌면 '남장을 한 여자 파일럿이 탑승하는 거대로봇' 이야기.
로봇공학을 전공하고 로봇 파일럿이기도 한 우람은 꿈에 그리던 거대로봇의 파일럿이 될 기회를 얻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설계 총책임자인 우람의 지도교수가 우람을 파일럿으로 추천할 거라 말했거든요. 그러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파일럿을 전국민 공개 선발하게 되고, 지원 자격이 '태권도 1품인 남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람은 이란성 쌍둥이인 오빠 보람의 이름으로 공개 선발에 나갑니다. 우람은 이미 준비된 파일럿이었으로...
책은 방송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선발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다룹니다. 그리고 자아를 갖게 되는 거대로봇과의 훈련과 탑승...
읽는 내내 담담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우람을 응원했습니다. 우람의 좌절에 안타까웠고요. 어느 순간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할 것을 판단하는 우람의 단호함에 후련했습니다. 로봇과 방송의 속성에 대해서도 많이 다루지만, 결국 독자의 공감 요소는 인물이네요.
작품의 배경이 2037년이고, 책 속에서 해외의 로봇 파일럿 대회에서는 성별 기입란도 없는데 국내 오디션에서는 참가 자격이 '남자'로 규정되는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시민단체나 여성단체 어디에서도 목소리를 내지 않아요.^^; 작가는 아직은 우리나라의 현실이 이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이야기의 가장 큰 갈등 요소를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요만.
진화하는 AI는 인간을 배제하는 '고유의 자아'를 갖게 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거 같습니다. 영화나 책 속의 '자아를 가진 AI'는 불완전하고 불합리적인 인간의 지배를 거부하곤 합니다. 책에서도 자아를 갖게 된 거대로봇은 인간 파일럿을 거부합니다.
성별 문제로 탈락한 우람이 거대로봇과 대치할 수 있었던 것은 우람이 전문지식을 가진, 훈련된 파일럿이기 때문이었지요.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서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를 따지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의 소재는 '전쟁나면 국회의사당의 돔이 열리고 로보트 태권브이가 출동한다'라는 만화적 상상이지만, 다루는 내용은 과학기술의 미래,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의 타파, SNS와 방송의 자극적 기사와 마녀사냥 등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장르소설은 언제나 매니아층이 있었습니다만, 최근에는 SF가 선풍적인 인기입니다. 일상에 기반한 판타지도 많이 출간되었지요. 즐겁게 읽으면서도, 인간과 환경, 미래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글이 많아지는 것이 개인과 사회의 건강한 가치 형성에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