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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문 ㅣ 특서 청소년문학 19
지혜진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청소년 문학 책은 손 닿는 대로 읽고, 모으고 있습니다.
최근 '구미호 식당', '빡빡머리 앤', '6만 시간'을 출간한 출판사 특별한서재의 책도 눈 여겨 보고 있습니다.
특별한서재에서 '시구문'이란 제목의 신간이 나왔네요.
예쁜 두 소녀가 마주 본 사이, 밝게 빛나는 문 앞에 웃고 있는 청년에게 안긴 어린 아이가 그려진 책표지가 눈에 쏙 들어옵니다.

표지가 워낙 예뻐서 비록 제목이 '죽은 자를 내어가는 문'이더라도 밝은 내용일 거라 생각했는데,
읽으면서 마음이 좀 힘들어졌습니다.
등장 인물들의 삶이 너무도 힘들고 가여워서요.
초등학생 딸래미도 같이 읽었는데, 저만큼은 아니어도 마음이 아팠다고 하네요.
그만큼 감정 이입이 잘 되는 책이었어요.
이 책은 지혜진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라고 합니다.
젊은 작가의 첫 작품이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라 주인공들의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작가의 창작노트 중 이 부분이 마음에 닿았어요. (p. 183)
기쁜 마음으로 열 수 있는 문도 있겠지만, 도저히 열 수 없어 피하고 싶은 문 앞에 더 많이 서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벌벌 떨리는 손으로 두려움의 문을 열었을 때, 삶은 우리에게 더 반짝이는 것을 가져다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때도 당신이 또 하나의 문을 열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책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이 났던 즈음.
어린 소녀 기련은 무당인 어머니의 신내림을 받고 싶지 않아 도망갈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특별한 재주가 없는 기련은 시구문 어귀에서, 시구문으로 시신을 내보내러 오는 사람들에게 푼돈을 뜯어내곤 합니다.
기련에게는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동무 백주와 백주의 어린 동생 백희가 있습니다.
주막에 장작을 대는 백주는 착하기만 하고 모질지 못해 걸핏하면 장작값을 받지 못하고 굶기 일쑤입니다.
어느 날 기련은 시구문 앞에서, 일전에 도움을 받았던 양반 댁 아씨를 만나게 됩니다.
아씨의 아버지가 역모를 쓰고 참수를 당했고, 세상 물정 모르고 선량하기만 한 아씨는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운 집의 노비가 되었습니다.
아씨가 노비로 있는 집으로 곡을 팔러 가게 된 백희를 따라, 기련도 품을 팔러 갑니다.
아씨와 다시 만나 기쁜 것도 잠시, 아직 어리기만 한 백희가 주인 댁의 반지를 가져오는 바람에 백희와 기련은 그 집에 잡혀 매타작을 당하게 됩니다.
때마침, 그 집에 오게 된 백주는 기련과 백희를 살리기 위해 모두 자기가 시킨 일이라며 매를 맞고 결국 죽게 됩니다.
이 책은 기련과 백희, 노비의 삶을 버리기로 한 아씨가 시구문을 통해 성밖으로 도망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죽은 뒤 나가는 시구문을 통해, 세 소녀는 새로운 삶을 찾게 되는 것이지요.
세 소녀는 이전처럼 지워진 삶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스스로 원하는 대로 살 것을 다짐합니다.
읽는 내내 아이들의 고생이 안쓰럽고, 조선 말기의 혼란이 안타까워 눈물 지었습니다.
내용도 재미나지만, 그려지는 인물들이 참 가엽고 아름다웠어요.
관대하고 선량한 아씨의 몸종,
동생 백희를 죽음으로 지켜낸 백주,
딸 기련이 받을 신내림을 대신 받고 매 순간을 기도하며 사는 어머니.
아마 어른을 상대로 하는 소설이었다면, 이렇게 선량하고 아름다운 인물들이 그려지지도 않고 끝내 희망을 품지도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 청소년이 주인공이었기에 절망 속에서도 삶은 살 만하다는,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메시지가 설득력이 있지 않나 싶었어요.

초등 중고학년 친구들에게 강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