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 10만 명이 함께한 서울시교육청 인문학 강좌 ㅣ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1
백상경제연구원 지음 / 스마트북스 / 2020년 11월
평점 :
한 때 기초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깊이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해도 직업적으로나 사회생활에서 큰 어려움이 없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무엇을 전공하고 무엇을 업으로 삼든 필요한 최소한의 교양 수준도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우리 삶을 파고들며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이 제기되고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통섭의 시대가 된 지금, 나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인문학을 재조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문학은 우리에게 행복을 줍니다. 고요하게 나를 들여다 보고, 나와 사회를 생각해보는 일은 나를 풍요롭고 충만하게 하니까요. 요즘 일고 있는 인문학 공부의 열풍에는 필요성과 행복의 두 목적이 있는 거 같아요.
마침 오랫동안 진행된 인문학 강좌를 다룬 책이 출간되어 반갑게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백상경제연구원이 서울시 교육청과 진행하고 있는 인문학 아카데미 '고인돌2.0(고전 인문학으로 돌아오다)'을 바탕으로 기획되었습니다. 400여 강좌 중 가려 뽑은 10개의 강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인돌 유튜브를 보니, 철학하는 인간,글쓰는 인간, 과학하는 인간, 공감하는 인간,미학적 인간, 영화적 인간, 기억하는 인간 등 총 7개 항목으로 강좌를 구분해 놓았습니다.
책에서도 각 항목마다 대표적인 강좌 한 두 개를 선정해 풍부한 그림과 사진 자료를 포함하여 충실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지식의 깊이가 있는 인문학자들이 여러 문학 작품과 영화를 소재로 쓴 글이라 쉽게 읽히고 재미났습니다.그런데, 진도가 술술 나가지는 않더라구요. 곱씹어 읽어보아야 할 문장도 많고, 관심이 가서 다시 읽어보아야 할 책도 메모해야 했거든요.^^
몇 가지 특히 흥미로웠던 내용들을 적어 봅니다.
p. 24 (유럽 신화)
나치 지배 시절을 살았던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캇시러는 신화가 기원의 이야기나 진실한 이야기라는 이전 신화학자들의 설명을 다 뒤집으며, 신화는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잘못된 신념체계라고 설명한다. 그는 '국가 신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홀로코스트를 행할 만큼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기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로, 거대한 상상력의 보고라고 여겨지는 신화를 국가나 미디어가 악한 의도로 조작할 때 비판없이 받아들일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너무나 익숙하기에 내 신념과 생각이 반듯하지 않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요.
p. 85 (두 번째여도 행복하기)
마땅히 그래야 할 때, 또 마땅이 그래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들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에 대해서, 또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으로 감정을 갖는 것은 중간이자 최선이며, 바로 그런 것이 탁월성에 속하는 것이다.
책에서 재인용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입니다.
번역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이 문장을 아이스토텔레스는 행복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했답니다.
저자는 사람이 처한 때에 따라 마땅함의 정도가 다르며 굳이 따지자면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조건없는 배려나 양보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자신의 탁월함을 발휘하되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절제의 미덕이 함께하는 상태라고 설명하네요.
인간에 대해 깊이 사유한 동서양의 스승이 '중용中庸'을 행복에 이르는 길이자 최고의 미덕으로 삼은 것이군요.
p. 197 (영화 '엠마'읽기)
더 나아가 영화는 오스틴의 원작에서 급잔성을 돋보이는 부분을 잘 찾아냈다. 영화에서 엠마는 나이틀리의 청혼을 받았을 때 고민하고 근심한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 우드하우스를 혼자 남겨둘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이틀리는 당장 "내가 들어가서 살면 되지."라고 말한다. "우리 집으로 모셔오지."가 아니라, 자기가 하트필드에 와서 살겠다고 말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서 엠마는 깜짝 놀라며 이 결정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독립적인 생활과 자기 집을 포기하겠다고요?!"
오스틴의 원작은 책임감이 흔히 남성의 미덕이고, 가진 것과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매번 여성이었던 시절에 쓰인 작품이다, 반면 2020년의 영화 '엠마'는 원작에 전복적인 상상력을 더하면서 오스틴의 이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나름의 방식으로 강조했다.
저는 제인 오스틴의 글을 즐겨 읽지는 않습니다. 아름답고 재미나기는 하지만, 틀에 박힌 인물들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원작의 작은 반란을 현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영화가 참 매력적이네요. 또 그 영화를 읽어낼 수 있는 인문학자의 역량도 감탄스럽구요.
p. 233 (소로의 '월든' 읽기)
사람이 철로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다. 실은 철로가 사람 위를 달리는 것이다. 철로 밑에 깔린 저 침목(sleeper)들이 무엇인지를 당신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침목 하나하나가 사람이다...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철로 위를 달리는 즐거움을 맛본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밑에 깔리는 불운을 맛보는 것이다.
소로의 '월든'을 재인용하여 해설하는 이 글은, 월든을 책장에 꽂아놓고 집어 들지 않는 저에게 용기를 주네요.^^


이 책은 소설, 영화 등을 소재로 우리에게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나를 생각케 하는 인문학의 소용을 충분히 맛보게 합니다. 읽으며 다음 읽을 책과 글쓰기를 계획하게 할 정도로 이 책은 많은 길을 보여줍니다.
이 강의의 대상인 청소년은 물론이고 지금의 삶을 고양시키고픈 성인들께 모두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