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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제작자들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평점 :
책장을 덮고 나서 이미지나 느낌이 선명한 책이 있는 반면, 바로는 파악할 수 없는 책이 있습니다. 제게 이 책은 무척 재미있고 심오한 느낌인데, 주제가 한 손에 잡히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스토리를 읽는 재미만으로도 훌륭하지만, 그만큼만 가져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이예요.

작가는 요아브 블룸이라는 이스라엘의 소프트웨어 개발자입니다. 이 책은 2011년 출간된 작가의 처녀작인데, 전세계적인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상상력도 플롯도 뛰어나다는 것지요. 곳곳에 촘촘히 짜여진 복선과 에피소드가 과연 코딩하는 사람의 작품이다 싶습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선형적인 세계관 속에 환생이 녹아있는 매혹적인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어린이가 상상 속 친구와 놀 때, 꿈을 꿀 때 생겨나는 '마음 속의' 존재는 잠깐 실존하게 됩니다. 마음 속의 존재는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의 상상 속 친구로, 꿈 제작자로 지내며 실존을 갈구하게 됩니다. 이들 중 몇몇은 특별히 우연제작자가 되는 행운을 얻게 되죠.
우연제작자는 사람들 사이에 어울려 사는 '비밀의' 존재가 됩니다. 우연 제작자들은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며 부지런히, 그리고 교묘하게 사람들 사이의 인연, 인류의 문화, 과학, 역사에 지대한 역할을 할 이벤트 등이 일어날 우연들을 준비합니다.
열심히 일하던 우연 제작자들이 은퇴하게 되면, 이들은 죽게 됩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아무도 없는 기차역이나 공항 등에서 홀로 떠나게 됩니다. 자기의 모든 기억이 담긴 가방을 남기고서. 그들은 '사람'이 됩니다. 우연 제작자로 살며 희구하던 '언제나 실존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죠.
이렇게 존재의 본질을 변화토록 하는 힘은 존재들의 '선택'입니다.


이 이야기는 상상 속 친구 시절에 만나 서로를 강력하게 상상하여 존재케 했던, 두 인물을 사람으로 만들어 맺어주기 위한 우연 제작자의 큰 밑그림 속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는 또한 많은 에피소드들이 엮여 있습니다. 에피소드 하나 하나도 좀 더 복잡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 씨앗'이고요.
게다가 에피소드마다 화자가 바뀌며 여러 상황이 동시에 전개되는 구조로, 끝까지 이야기의 긴장감을 놓치치 안고 진행됩니다. 마지막에는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죠.
이 정도로 안배되어 만들어진 우연이라면 이게 과연 우연이라 말할 수 있는가 싶습니다.
꽤 복잡하게 전개되어 내용 속의 이야기와 인물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은 책이나 재미와 따뜻한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연 제작자들의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이랄까?
너무 가볍지 않은, 힐링이 있는 판타지 읽고 싶은 분께 적극 추천합니다! 이해만 할 수 있다면 초등 고학년도 재미나할 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