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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문장
윤동주 지음, 임채성 엮음 / 홍재 / 2020년 6월
평점 :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읊조리는 별 헤는 밤, 서시, 쉽게 쓰여진 시.
참회록
-1942년 1월 24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이하 생략.
이 시, 참회록은 윤동주 시인이 국내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라고 합니다.
흔히 시인을 일컬을 때 말하는 '부끄러움의 미학을 가장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설명되어 있네요.
윤동주 시인은 만세를 외치지도 독립 투쟁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윤동주의 진정성을 절대 의심하지 않습니다.
친일이 청산되지 않은 우리 나라의 업보라, 믿었던 그(그녀)의 친일 행적이 알려지며 우리를 분노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윤동주 시인께는 순도 100%의 신뢰가 가는 것은 왜일까요..
막연한 느낌만 있을 뿐, 분석할 수준이 못 되었던 저는 이 책 덕에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순수하고 맑기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데다가, 한 구절 한 구절에 쌓여 있는 고뇌와 부끄러움에 동화되었기 때문이었군요.시인은 항상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살았고, 행동하지 못함을 부끄러워 했으며 끊임없이 자책하며 깨어 있었습니다.
저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좋아하고 항상 책을 많이 샀는데도, 따로 시인의 시집을 구해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순도높은 이과생이었다고 변명해 봅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된 지금에야 시집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생기네요. 아이에게 시인의 감수성을, 칼끝같은 관찰과 조탁을 보여주고 싶어서이기도 하고요.

때마침 만난 '윤동주의 문장'.
124편의 시와 해설이 담겨 있습니다.
시, 동시, 산문과 주위 분들의 회고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이렇게 많은 시를 썼다는데 놀라고, 일본에서 썼을 많은 시가 사라졌다고 하네요. 시집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게 아팠습니다. 생전에 시집 한 권 내보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시와 함께 실린 해설은 고등학교 이후로 시를 접하지 못한 저에게 참 고마운 길잡이였습니다. 마음가는 대로 느끼면 된다고 해도, 잘 모르는 곳에 갈 때는 지도 있으면 든든하잖아요?
윤동주 시인의 시는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비유가 깊이 숨겨져 있지는 않지만, 제가 느끼는 대로 다른 이들도 느끼는구나 하는 안도감과, 그 시를 지을 당시 시인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되어 시가 더 깊이 읽히더군요.

또한 연대별로 구분지어 소개된 시 덕에 시인의 삶을 좀 더 가까이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시인은 중고생 때부터 습작을 하고, 아버지의 반대에 단식 투쟁을 하면서까지 문학을 공부하고, 일본 유학을 위해 피눈물 흘리며 창씨 개명을 했겠군요. 왠지 가녀리고 항상 지켜주어야 할 거 같은 느낌이지만 기실은 의지가 굳고 독립적이었던 분이었던 거죠.
이 시집은 편집도 마음에 듭니다.
좀 더 화려하고 보기 좋게 만들 수도 있었겠으나, 소박하고 순수한 시인의 이미지가 잘 드러나서 좋습니다. 시 한 편, 깔끔하고 정제된 문장의 해설 한 편 실린 것도 좋고요.
두고 두고 들여다 볼 시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