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는 데도 없고 인기도 없습니다만
이수용 지음 / 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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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살 이수용작가님이 무소속의 기간을 묵묵히 보내며 진지하게 들여다 본 자신의 내면과 사람들,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적었다.
책을 열어보기 전에 멋대로 예상한 장면들이 있다. 나의 길었던 무소속 또는 임시 소속의 날들을 떠올리며 내가 이미 다 아는 이야기들이 적혀 있을거라 생각했나보다.
예상은 빗나갔다. 당연한 일이다. 나의 20대는 그저 암울했다. 연애도 했고 딴에는 공부도 했지만 고작 장학금이나 받으려는 벼락치기 시험공부였다. 막연하게 어떻게든 나는 잘될거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가까운 사람에게 짜증을 냈고 나보다 먼저 좋은 곳에 취업한 사람들을 시기했다. '내가 공부도 더 잘했는데, 내가 자격증도 더 많은데 저 애는 참 운도 좋아.'하며 그사람의 매력을 폄하했다.
작가님처럼 나는 왜 그때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을까? 내가 하는 행동들이 어이없고 꼴불견인지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세상은 원래 뜻하는 대로만 되는 게 아니라고, 남을 탓할 필요는 없다고. 너는 네 앞에 놓인 길을 최대한 꾹꾹 밟으며 걸어가면 된다고 말이다.
'관계'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는 기억의 다락방에 숨겨두었던 사람들 몇이 불현듯 떠올랐다. 관계에서 상처를 입을 때마다 '내 사람들'의 뒤로 숨어들었지만 정작 내가 상처입히고서 잊고 있던 사람들 말이다. 그간 나는 생각이 많아서 탈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을 확장시켜온 건 아니었을까?
내가 바로 오라는 데도 없고 인기도 없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자책 섞인 깨달음이 든다.

우리는 어딘가에 기댈 때 등을 사용한다.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할 때는 등을 쓰다듬어준다. 뒤를 지켜주는 등의 모양을 보고 그들의 기분을 어림짐작한다. 등에는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뒤로 넘겨버린 감정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 굳은 딱지를 떼어내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p.29)

관계는 꼭 젠가와 닮아 있다. 한 층씩 빈틈없이 신중하게 쌓아올리다, 몇 개의 조각을 빼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실제와 게임의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안전한 조각을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몸통 전체를 흔드는 중요한 조각을 제거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조각은 다른 조각을 건드려 연쇄적으로 빠져나간다. 설명서가 없는 이 잔인하고 불친절한 게임은 계속 우리를 괴롭힌다.(pp.78~79)

#이수용작가 #이수용 #달출판사 #에세이 #무소속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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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시대 - 생존 이상의 가치를 꿈꾸다 아르테 S 6
홍기빈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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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시대

기본소득이 뭘까?
사회복지학에서 말하는 공공부조 비슷한 게 아닐까?
생활유지 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자에게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비용을 부담하여 필요한 보호를 행하는 것.
아니란다.
기본소득은 선별적인 구호가 아니라 재산이나 소득에 상관 없이 누구에게나 무조건 지급되는 것이란다. 그러니 가난과 결핍을 입증하지 않아도 되고 지급받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지난 5월에 전국민에게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었다. 급여생활자인 나로서는 뜻밖의 공돈이 반가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받아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머뭇거렸지만 이내 자유롭게 탕진했다.
그런데 긴급재난지원금이 가구별로 지급되었다는 점에서 완벽한 의미의 기본소득은 아니라고 한다.
기본소득을 특징 짓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금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둘째, 개인에게 지급되어야 한다.
셋째, 아무 조건 없이 지급되어야 한다.
넷째, 수혜자의 재산이나 소득 상태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지급된다.

홍세화님은 발문에서 기본소득이 수많은 인간존재들에게 드리워진 불안의 무게를 덜어주리라 기대한다고 적었다.
사지 않은 게 아니라 못 산 날들을 겪어본 나는 기본소득에 대한 전망이 향기롭게 다가온다.
가난해서 국가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낙인을 피할 수 있는 점도 참으로 달콤하다.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생산성 하강과 대중의 궁핍화를 초래할거란다.
어렵다.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닐지라도 힘을 내게 해주는 링거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즉, 무조건적이고 충분하며 보편적인 기본소득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버티거나, 행동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예컨대 실업자에게는 일을 구하기 위한 학습의 기회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노동자에게는 일을 쉬기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가족내 생계부양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주부, 어린이, 노인들에게도 직접 지급함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리를 보장한다. (pp.188~189)

#아르테S #기본소득시대 #기본소득 #복지 #생존 #정책 #재난지원금 #경제 #경제경영서 #팬데믹 #신간 #자기계발 #베스트셀러 #라이프스타일
#스타트업 #직장인 #회사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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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메리카의 비극 상.하 세트 - 전2권 을유세계문학전집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김욱동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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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비극
영화 <젊은이의 양지> 원작소설

신분상승을 꿈꾸는 한 인간의 욕망과 타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클라이드 그리피스는 자식들을 데리고 길거리에서 전도활동을 하며 궁핍하게 살아가는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기를 꿈꾼다.
호텔 벨보이로 일하며 상류사회의 겉멋을 맛본 그는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도망자 신세로 고향을 떠난다.
낯선 도시에서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던 중 부유한 큰아버지 새뮤얼 그리피스를 만나 도움을 요청하고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그간 여자로부터 사랑을 얻지 못하던 그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시골 처녀 로버타와 비밀리에 사귀며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지만 가난한 그녀와 결혼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 그리피스 가문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상류층과 교류하게 된 그는 동경해마지 않던 부유하고 아름다운 손드라 핀칠리의 관심과 애정을 얻자 로버타와 헤어질 궁리를 하는데......

인간의 도덕성과 양심이 욕망 앞에 굴복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그려진다.
엄청나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각각의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개성있다.
100년전에 씌어진 소설이지만 부를 획득함으로써 신분상승이 이루어지는 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씁쓸한 진실이기도 하다.
<위대한 개츠비>와 같은 해인 1925년에 출간되었고 주인공인 클라이드 그리피스가 개츠비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는데 나는 프랑스영화 '태양은 가득히'를 떠올렸다.

#시어도어드라이저 #젊은이의양지 #위대한개츠비 #문학 #고전문학 #죄와벌
#을유문화사 #을유세계문학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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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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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사무소 '코드 아키텍츠'를 운영하는 건축사 혁범, 혁범을 오래 바라봤고 현재는 한 사무소에서 일하며 동료들 몰래 혁범과 사귀고 있는 건축사 수진, 빌딩 로비에 조경하러 왔다가 수진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조경사 한솔.

혁범, 수진, 한솔의 순으로 서서 앞사람의 등을 바라보는 모양새다.
일에 빈틈없고 자세마저 반듯한 혁범을 사랑하지만 혁범으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는 수진과, 해맑게도 폭주기관차처럼 수진에게 돌진하는 한솔.
'어른'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도 등장하지만 사랑 때문에 한없이 무력해지거나 무모해지는 게 젊은 사람만의 일일까?

설레고 싶었는데 쓸쓸해져 버렸다.
애인과 헤어진 뒤로 10년 가까이 다른 사람을 사귀지 않으면서도 프로필엔 '사랑하다 죽자'라고 적어놓은 누군가가 떠오른다. '프로필 뭐냐? 연애하냐?' 했더니 '아니. 지금은 아니지만 사랑해야지. 사랑은 좋은 거니까.'란다.

사랑에 아프고 힘들어도 실컷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쓸쓸하면서도 묘하게 위로가 되는
이 계절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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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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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내 취향대로라면 선택했을 것 같지 않은 제목과 표지인데 민음북클럽 활동도서 세 권 중 유일하게 읽지 않은 책이라 구입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소설에는 취향을 넘어서는 강렬한 아름다움이 있다. 

미국 남부 밀러 판사의 집에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왕으로 군림하며 평화롭게 살던 벅은 도박에 빠진 정원사 조수 마누엘에 의해 알래스카의 썰매개로 팔린다.
난생처음 당하는 매질과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리는 벅. 
끊임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고 맨몸으로 맞서 싸우며 벅은 강하게 단련되어 간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눈을 감고 싶을 만큼 끔찍한 장면들이 여러 번 생생하게 묘사되지만 어째서인지 그마저도 아름답다.
문명의 혜택이 한창 강조되기 시작하던 1900년대 초반에 문명을 뛰어넘는 야성의 가치를 주제로 한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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