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받고 착취당하는 다수는 여전히 거기에 그대로 있지만 그들의 새로운 이름은 피고용인이었다. 노예제와 봉건제에서 그랬듯이 자본주의의 지배적인 소수는 지배적인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고 수행한다. 고용주는 정치인과 사회발전의 방향을 통제한다. 그들은 일터에서 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그들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인민대중은 종속된다. - P32

맑스는 자본주의가 자유•평등•박애•민주주의 실현(~32p)에 실패한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가 자본주의 기업의 내부 조직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거기에서는 최고위층의 소수의 사람들(주요 소유주들과 최고 경영진들)이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서 생산할지와 피고용들의 잉여노동의 결과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피고용인들은 그러한 결정에서 일정하게 배제되지만 그들은 그러한 결정의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반대이다. - P33

그러나 모든 사람이 노동하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자연을 변형하기 위해 그들의 두뇌와 근육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각 인간 사회에는 크고 작은 노동하지 않는 부류가 항상 있다. 그러한 부류는 노동하는 사회구성원들이 그들 자신이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할때 그리고 그럴 때에만 생존한다. 노동자들 자신이 소 - P38

비하는 것을 초과하여 생산한 산출물을 맑스는 잉여라고 말한 것이다. 만일 잉여가 그것을 생산한 노동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분배된다면 그 잉여 덕분에그런 다른 사람들이 사회에서 생존하고 기능을 할 수있다. 아기들은 아직 일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을 변형하기 위해 그들의 두뇌와 근육을 사용할 수 없는 그런 다른 사람들의 한 예이다. 만일 아기들이 저 잉여에 의지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다면 사회의 일부 구성원이 잉여를 생산해야 한다. - P39

두 가지 압력을 가하는 이유는 자본주의적 착취의 단순 셈법에 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에 의해 부가가치가 커질수록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돌아가는 부분이 작아질수록 자본가가 얻게 되는 잉여가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 P54

하지만 자본가들이 더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것에 그리고/또는 더 적은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에 성공하자마자 그들은 또 다른 모순에 직면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임금 하락이나 자동화 충격 때문에 전보다 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자본가들이 팔아야 할 것을 덜 사게 될 것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지출을 줄임으로써 이익을 얻고자 했으나 그 결과 무심코 그들의 제품에 대한 수요를 약화시킨 것이다. 노동 비용을 절약하려는 사실상 보편적인 욕구는 생산된 모든 것을 팔려는 그와 유사한 욕구와 모순되게 작동한다. - P72

사무실, 공장, 상점 혹은 가정에서, 즉 노동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에서 생산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맑스에게 있어서 그러한 변화의 목표는 일터의 맨 꼭대기에 있는 소수의 잉여 전유자, 즉 생산과 관련해 주요 결정을 내리는 사람과 그 일터에서 일하는 그 밖의 모든 사람이라는 이분법을 끝내는 것이다. 다수가 생산하거나 가능하게 한 잉여를 그것을 전유하는 소수의 수중으로 흘러 들어가게해서는 더 이상 안 된다. 목표는 다른 경제 시스템, 즉일터가 근본적으로 평등하고 민주적이 되는 시스템이다. 잉여의 생산자가 그 잉여의 전유자와 분배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착취는 끝난다.  - P81

맑스를 연구하는 요점은 그의 분석에서 생산적 노동자와 비생산적 노동자와 관련해 사적 자본주의 착취자를 국가 관료로 대체하는 것이 그가 자본주의 비판에서 염두에 두었던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는 점들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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