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온통 과학이야 - 의심스러운 사회를 읽는 과학자의 정밀 확대경, 2023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선정 세상은 온통 시리즈
마이 티 응우옌 킴 지음, 배명자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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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잘 쓰지도 못하면서 고집이 있다. 존X 잘 쓰고 싶다.

과학을 모르면서 고집이 있다. X나 잘 알고 싶다.

그런데 둘 다 글렀다.

그래서 친구를 붙잡고 의견을 구했다. 네가 리뷰를 보고 책을 골라서 읽으려고 해. 그러면 리뷰에 뭐라 쓰여 있어야 읽을 거야? 친구는 세 가지 항목을 알려 주었고 나는 그 답에 수긍했다. 독자인 나의 요구와도 일치했다. 읽기 쉬웠나? 예. 책이 재미있었나? 네. 참신한 지식이 있었나? 넵.

콘텐츠의 생산자와 소비자는 유튜브,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으로 매개자 없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알고 싶은 내용은 누군가 이미 먹기 좋게 가시까지 발라놨을 확률이 높다. 그런 시대에도 과학은 여전히 위기에 처했다. 어렵기 때문이다. 혹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던가. 그러나 타고 난 시대가 좋으니 대중과 과학으로 소통하려는 과학자, 과학 전공자, 둘 다 아니지만,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 등이 대중을 향해 이거 진짜 ‘짱’이고 ‘유잼’이라고 손짓한다.

마이 티 응우옌 킴도 어렴풋이 이해되는 이유로 유튜브 MaiLab(마이랩)을 시작했을 테다. 유쾌한 말투, 사회 이슈와 연관된 주제를 고르는 센스 등은 그의 유튜브 경력에서 나왔겠다고 어렴풋이 짐작한다. 근 이 년 간 뉴스를 봤더라면 마약, 게임, 남녀임금 격차, 백신, 동물실험, 가짜 뉴스 등의 주제는 낯설지 않다.

COVID-19 백신은 빨리 나왔다. 왜냐하면 사스, 메르스 바이러스와 유사했고, COVID-19가 워낙 화끈하다 보니 여러모로 밀어주었다. 많고 확실한 고객도 확보했다. 그러니 개발, 임상 연구, 승인 절차가 빨리 끝났다. 백신 개발 및 연구 기간은 펜데믹 상태라 감염자가 많아서 효능을 시험할 기회도 많았다. COVID-19 백신이 믿을 만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 181페이지 참고)

그러면 여기서 백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낼 텐데, 킴은 이것도 빼놓지 않았다. 역시 독일에서 안티백서 친구들과 뜬 사람답다. 예방접종 후 두세 달 이내에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한참 뒤에 나타날 확률이 매우 낮아진다. 그래서 혹시 모를 부작용을 우려하며 백신 접종을 보류하는 건 정당화될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 191페이지 참고.) 좋은 내용이다.

그러나 과학 지식을 시의적절한 주제에 맞춰 잘 전달하는 건 반쪽짜리 과학책이다. 정말 멋진 과학책이라면 사람의 삶에 대한 성찰 정도는 있어야 한다. 학문적으로 성과를 이룬 과학자들은 인문학적 성찰을 과학에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이념 토론 없이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조사하고 거론할 수 있어야 한다. 여자와 남자는 ‘평등’해야 한다. 그러나 평등하기 위해 남녀가 반드시 ‘똑같아야’ 하는 건 아니다. 남녀는 원래 똑같지 않다. 왜 똑같지 않은지는 열려 있는 과학 질문이다. 그러나 이 차이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사회적 질문이며, 과학 연구와 별개로 토론될 수 있고 과학 연구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 (본문 276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포자. 과포자. 문과. 인문학도. 나를 수식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사회학이나 문학에서 마냥 쉽진 않은 텍스트를 그럭저럭 잘 읽어낼 수 있으나 과학은 대중을 위한 교양 입문서 수준이 아니면 어려워한다.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혹은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들 이미 알다시피 과학은 매우 가깝다.

지난 2022년 11월 8일엔 개기월식이 있었다. 나는 과학관에 가서 망원경으로 밤하늘에 뜬 달을 관측했다. 동그랗고 은은하게 빛나고 무엇보다 크레이터가 선명히 보였다. 달의 표면에 난 운석 충돌 흔적을 생생하게 본 순간 이 달이 진실로 가깝게 다가왔다. 나와 동시간대에 존재한다. 나와 같은 세상에 있다. 그게 진짜 실존했다……. 내 세계관을 바꾸는 경험이었다.

과포자에 그나마 화학이나 생물학에나 좀 관심이 있던 내게 오히려 싫어하던 천문학이 삶에 들어왔다. 내 눈으로 달을 직접 보는 경험과 방구석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경험이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그러면 내 세계관은 몇 번을 바뀌어야 했나―다들 이미 알지 않던가? 한 번으로는 바뀔 확률이 극히 낮다는 것을. 여러 번 부딪히다 보면 불쑥 놀라운 일이 생긴다. 사실 사소한 경험 여러 번을 통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안목을 쌓지 않으면 놀라운 일이 생겨도 알아보지 못한다.

언젠가 내 삶에 눈부시게 난입할 무언가를 맞이하기 위한 사소한 경험. 그러다가 담대하게 큰 거 하나 다가왔을 때 알아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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