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
발리 카우르 자스월 지음, 작은미미 외 옮김 / 들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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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 나라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이웃들이 편을 들어줄 거예요. 돈이나 옷 등 우리가 필요한 건 무엇이든 가져다주고요. 그게 공동체의 장점이죠.” 아르빈더가 말했다. “하지만 남편과 문제가 생긴다면 누가 당신이 그를 떠날 수 있게 도와줄까요? 아무도 가족 문제는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불평을 늘어놔도 감사한 줄 알아야지, 라고만 말할 거예요. 이 나라가 널 망치고 있는 거야, 라고도.” 그녀는 프리탐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내가 단 한 번도 누려본 적 없는 행복을 너에게 줬어. 넌 네 남편과 네 결혼 생활을 사랑했어. 정말 잘된 일이지. 운이 좋은 거야. 나는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어.”

_8, 253/503p

 

 

책을 읽으며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역시 이 말을 먼저 해야겠습니다. 이 소설은 현대 영국에 사는 펀자브 여성들 이야기입니다. 펀자브Punjab?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 중북부에 걸친 광대한 지방으로 시크교도의 본거지입니다. 펀자브 지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및 독립할 때 인도령과 파키스탄령으로 분할됐습니다. 종교와 언어상의 복잡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도령이 된 펀자브주에서는 그 뒤로도 동요가 수습되지 않아 1966년에 힌디어와 펀자브어 사용 지역(후자에는 시크교도가 많습니다.)으로 분리되어 하리아나, 펀자브 두 개 주가 되었습니다. (출처는 두산백과입니다.)

 

그래요. 왜 그랬을까요?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로 삼고 피를 쫙쫙 빨아먹었던 죄가 있기 때문에(솔직히, 어느 나라든 식민지배를 한 죄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아직도 그 영향이 있기 때문이죠!) 당연히 영국에 인도계 영국인도 있겠죠! 없을 리가 없는데요! 그럼에도 인도계 영국인들이 낯선 것은 그만큼 가시화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요즘은 1세계 선진국에서 제작하는 콘텐츠에서도 유색인종이 조금씩 등장하니까요(많이라곤 안 했다.) 제가 최근 본 넷플릭스의 브리저튼 시즌 2도 인도인 자매가 나와서 영국의 인도인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니키는 영국의 문화와 펀자브 문화 둘 다에 몸을 담고 있지만, 부모님의 전통 문화가 아닌 영국의 문화에 더 많이 친숙한 펀자브 여성입니다. 사우스홀의 사원에 갔다가 쿨빈더가 낸 여성들을 위한 글쓰기 수업 강사 모집 공고에 지원합니다. 그런데 학생으로 온 과부들 태반이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겁니다. 알파벳을 읽는 것부터 가르치던 니키는 어느 날 민디를 놀리기 위해 산 야한 소설을 학생들에게 들켜버립니다. 그 소설을 한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읽어주고 있었고요. 니키의 학생들은 각자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야한 소설을 쓰고 싶어 했습니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니키와 학생들은 야한 소설을 쓰고 서로 돌려 읽으면서 영국 런던 내 펀자브 사회에 소문이 나게 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부는 많은 사회적 제약이 있었습니다. 사회와 관습이 제약을 두고 그런 모습을 과부들에게 기대한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남편을 잃은 즉시 사람들이 기대하는 과부로 다시 태어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펀자브 과부들은 그 모습을 그저 수행하기만 했고 실은 이런 야한 상상이나 잔뜩 하는 사람들이었던 거죠! 공동체의 기대와 달리 인간 개개인의 성격이 그대로인 반면,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기대를 충족시켜야 했습니다.

 

동시에 이 소설은 사회와 관습으로 인해 욕망이 없는 것처럼 사는 이들이 그 욕망을 긍정하고 구체화하여 자신의 언어로 드러낼 때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가에 대한 저자의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자와의 관계가 좋아지고 생활에 좀 더 활기가 돌게 되었다는 결과는, 실은 너무도 긍정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지만, 저라도 그런 변화가 생겼다고 하겠습니다. 현실에서는 소설처럼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어려우니까요.

 

공동체는 이로운 점이 많지만, 남자와 여자의 문제에 관해서는 답답할 정도로 억압하고 여자 쪽에 불리합니다. 아무리 전통이라 할지라도 부모가 정해준 대로 결혼해야 할까? 과부는 남편 장례식에서 과하게 슬퍼하는 모습을 꼭 보여야만 하는 건가? 이 공동체에 불명예가 드러나게 둘 것인가, 아니면 그의 입을 막아 명예를 지킬 것인가? 소설은 영화나 몇 편 연달아 방영하는 드라마와 같은 플롯입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고 다른 인물들의 결말도 깔끔하지는 않습니다. 과부 모녀인 아르빈더와 프리탐 중 딸 프리탐이 더 보수적이고 남편 즉 아버지에 대한 인상도 다릅니다. 이 두 사람의 뒷이야기가 궁금한데 소설이 끝나버렸습니다. 시간을 보내기도 좋고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소설이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은 쉽게 넘길 수 없습니다. 펀자브 여성들이 나왔다고 해서 펀자브 여성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펀자브 사회의 문제입니다. 또한 이것이 현대 펀자브 사회의 문제라면 영국 사회와 한국 사회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은 출판사의 지원을 통해 읽게 되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이 나라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이웃들이 편을 들어줄 거예요. 돈이나 옷 등 우리가 필요한 건 무엇이든 가져다주고요. 그게 공동체의 장점이죠." 아르빈더가 말했다. "하지만 남편과 문제가 생긴다면 누가 당신이 그를 떠날 수 있게 도와줄까요? 아무도 가족 문제는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불평을 늘어놔도 감사한 줄 알아야지, 라고만 말할 거예요. 이 나라가 널 망치고 있는 거야, 라고도." 그녀는 프리탐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내가 단 한 번도 누려본 적 없는 행복을 너에게 줬어. 넌 네 남편과 네 결혼 생활을 사랑했어. 정말 잘된 일이지. 운이 좋은 거야. 나는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어.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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