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행복사회 시리즈
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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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학교, 자유로운 일터

신뢰의 공동체가 숨 쉬는

행복사회의 비밀"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 일찍이 엄마가 되었던 친구들이 하나같이 엄마가 되면 아이들 이야기만 하게 되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공부와 학원이야기밖에 안 한다고 이야기할 때도 설마 했다. 설마 우리 인생이 아이가 전부고 아이의 성공이 전부일까, 했었다. 설마가 아니었다. 전업주부, 직장맘을 떠나 아이가 생기면 그 이후의 인생은 아이에게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아이의 인생만 중요할까. 아이가 공부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여성들의 인생은 어디에 있는 걸까. 아이를 뚝 떼어 놓았을 때 우리 삶은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할까. 상상하기도 싫지만 우리의 지금 어른들의 모습이 아이들의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을 챙기지 않던 부모의 모습을 너무나도 꼭 닮은 모습을 우리가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가끔은 자장면도 먹고 싶고 스테이크도 먹고 싶은데, 아이가 좋아하는 거니까 내가 좋다고 먹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세월이 변해도 자식 인생만 돌보는 것은 여전한 우리, 무엇이 문제일까.

 

오연호 님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는 저마다 소중한 우리 각자에게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하고 묻는다. 그 해답을 찾고자 복지국가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멀리 덴마크로 가 일터, 사회, 학교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이 정의하는 행복을 전한다. 그네들의 행복한 이유를 따라가 보다 보면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 어쩌면 행복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들을 찾게 된다. 저자가 애초에 품었던 생각들, 이 책을 내게 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우리도 각자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각자는 너무 열심히 산다. 새벽 지하철 첫 차는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로 늘 만원일 정도로 부지런하다. 식사는 편의점에서 대충 떼우면서도 일은 또 밤늦도록 한다. 먹을 것 못 먹고 아끼고 아껴서 삶이 좀 나아졌을까. 여전히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아이 가진 부모들은 아이들 학원비 대느라 삶의 여유 없이 일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열심이다. 밤늦도록 공부하는 것은 예사고 여섯 살도 안된 아이들도 학원 갔다 오면 7시가 넘는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출산율 최하위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다. 행복지수 또한 높지않다. 저자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집단 무기력증, 집단 불안감에 의문을 품고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에서 찾는다.

 

저자는 오랜 관찰을 통해 덴마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6개의 키워드를 추출했다.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 이 6개의 가치들이 덴마크 학교와 일터,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고 한다. 각계에서 듣는 목소리는 그야말로 부럽기 그지없다. 우리나라는 밤낮없이 일하고, 그렇게 일만 한 결과 말년엔 병을 얻어 병원비 대느라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생을 마감하곤 하는데, 덴마크에서는 병원비와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휴가가 10주가 넘고,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하루 근무 시간이 7시간 30분을 넘지 않는다. 대학까지 무료로 공부했으니 후배와 후손을 위해 수입의 50%를 세금으로 내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웃이 어려우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줄 줄 아는 나라가 덴마크이다. 남이 잘 되면 배 아픈 게 아니라 축하할 일이라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나라다. 물론 지리적, 물리적, 환경적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사회와 말도 배우지 않은 어린아이 때부터 경쟁을 시키는 우리나라가 같을 수 없다. 그러니 아이들이 자라 살아갈 미래도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세상은 자꾸만 변한다는데, 우리는 여전히 예전과 똑같은 가치들을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있다. 공부 잘하기를 바라고, 좋은 대학 가기를 바라고, 남을 이기고 성공하라고 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인생 최고의 가치인 양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삶이 행복할까. 좋은 대학 좋은 직장만을 최대 가치로 여기며 자란 아이들은 좋은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여전히 부모 밑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고, 성공하라니까 성공은 했어도 부모도 몰라보고 친구도 몰라보고 오로지 자신이 잘나서 성공한 줄 안다.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작은 지구 상에 우리 각자는 너무나 소중하고 평등한데 직업에 귀천이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소중하고 나의 삶이 행복한데 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나의 삶이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나라가 응원을 해주는데 그런 믿음을 주는 사회에 기여하고 공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가족들과 이웃의 사랑을 받는데, 사랑을 나눠주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학교는 대학으로 가기 위한 중간 다리가 아니라 인생을 배우고 자신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배우는 교육의 장이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사회에서 그대로 통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것이 통하는 나라가 덴마크이다.

 

솔직히 읽다 보면 부러운 감정이 앞선다. 태어나는 순간 빈부가 확실하게 갈리는 사회에서 살다 보니 태어나는 순간이 축복이고 누구나 평등한 대접을 받는 사회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당장이라도 덴마크로 떠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그게 아닌 것 같다. 덴마크도 처음부터 복지국가였던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구룬트비라는 시민 각성에 열정을 바친 지도자가 있었고, 국민 각자가 각성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깨달았고 그런 합의가 있었기에 지금의 복지국가가 된 것이다. 국가의 이익에 따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국민 각자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기에 그네들의 행복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아니리라. 우리도 그런 세상을 얼마든지 꿈꿀 수 있지 않을까. 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되지 않을 수 없지만 개개인이 아주 기본적인 것만 실천해도 그런 사회를 조금은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 신뢰를 회복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는 작은 노력들을 지금 실천한다면. 무심코 화장실에 누군가 붙여 둔 문구가 떠오른다. "문화시민이 별거겠습니까?? 사소한 것부터 지켜야죠!!" 그 사소한 것 하나 실천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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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미의 반딧불이 - 우리가 함께한 여름날의 추억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이덴슬리벨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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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는 인생은 어디에도 없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드라마를 만들면서 살아간다니까요!"

 

여름엔 추억이지. 우리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우리 삶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는 것이 여름날 추억일지도 모른다. 수박 하나를 먹어도 수박씨와 얽힌 추억이 있고, 평상에 두런두런 모여 가족끼리 먹던 삼계탕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삼계탕 맛이 되어 버렸고 덥다고 마당에 나가 있으면 옆집도 그 옆집도 다 마당에 나와 있는지 사람 소리가 끊이지 않던 여름밤 풍경은 영화 속 한 장면같이 정겹다. 초롱초롱 아이들의 눈빛만큼이나 반짝여주던 하늘의 별빛은 일부러 찾아갔던 천문대 부럽지 않았다. 더우면 더운 대로 짜증 나던 순간순간들이 고스란히 추억이 되고 떠올리면 행복해지곤 한다.

 

모리사와 아키오는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려내는 작가이다. 지극히 소소한 이야기들을 꺼내게 만들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곤 하여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나쓰미의 반딧불이>는 다케야라는 시골 자그마한 가게를 통해 맺은 인연들의 여름 날 추억을 담은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 속에도 마법과도 같은 삶의 비밀이 있다고 말해준다. 추억으로 사람들이 하나가 되고 현재를 살고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의 소박하지만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사진작가가 꿈인 대학생 아이바 싱고와 그의 연인 가와이 나쓰미는 졸업 작품 주제를 찾아 투어링을 하다 한적한 시골마을 다케야라는 가게에 들르게 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깊은 산속 모두에게 잊힌 듯 외따로 남은, 쓸쓸하고 자그마한 마을의 작고 허름한 가게다. 1900년대의 향기가 느껴지는 예스러운 가게. 그곳에는 인정 많아 보이는 80대 할머니와 60대로 보이는 아들이 산다. 화장실을 빌려 쓰게 되고, 인정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대접하는 차 한 잔이 인연이 되어 여름 한 달간 그곳에서 지내게 된다. 저자도 즐겨 한다는 강놀이 반딧불이 체험 낚시 등 싱고와 나쓰미는 생각지도 못한 멋진 여름을 경험한다.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의 죽음과 아들을 먼저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 산속에 혼자 살며 외부인과 접촉이 없는 불사 운게쓰가 세상과 만나 숨은 감정들을 표출하고, 오해가 낳은 할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해소되고 외따로 남은 듯 쓸쓸하기만 했던 사람들이 여름날의 추억만큼이나 평화롭고 아름답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작고 허름했던 가게 다케야도 이제 쓸쓸하지 않고 찾아와주고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여름날의 추억이 만들어준 기적이다.

 

"시간이라든지, 마음이라든지, 추억이라든지........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 있다. 그런 건 아무리 튼튼한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내 안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만 접할 수 있고 조절할 수 있다. 내 안의 '생각'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여 이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야겠지." (본문 252쪽)

 

잔잔한 감동이 술술 읽히는 소설이다. 읽다 보면 신기하게도 우리 마음속에 숨겨놓고 꺼내보지 않았던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 나서 행복해지는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저자 또한 이 책을 쓸 때가 여름이라 원고를 앞에 두고 생각만으로 몸이 근질근질했다고. 그 행복한 기억들이 우리 삶을 더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여름이니까 가능한 것들을 많이 경험하고 체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잊지못할 추억들을 많이 선물해 주어야지. 어쩌면 <나쓰미의 반딧불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삶의 비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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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김대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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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을 볼 줄 알아야만 한다. 그것이 설사 불편한 진실이더라도 말이다."

드레스 색깔 논란, 생각 수술, 존재, IT 시대, 무인 자동차, 시뮬라크라 코리아, 불통과 소통, 확률적 착시, 갑과 을 등은 최근 우리 사회에 큰 이슈가 되었던 사회현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뇌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카이스트 교수이자 뇌과학자로 저명한 김대식 교수의 책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에서 다루고 있는 화두이기도 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우리 인간사이기도 하다. 세상은 얼마나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 비상식적인 세상에서 상식적으로 살기 위한 뇌에 얽힌 세상 이야기를 만난다. 인간사가 과학기술 방법론을 만나 어떻게 해석되고 우리 삶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다.

드레스 색깔논쟁에서 알 수 있듯 세상 존재하는 것이 우리가 해석해 낸 결과물이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 자체가 우리 뇌와 빛이 해석해내는 결과물이라는 것, ​우리 뇌는 우리 기억을 끊임없이 재해석한다. 우리 뇌는 매 순간의 경험과 느낌으로 기억을 업데이트하고 편집하고 있다. 단순한 색깔논쟁에서부터 진화의 핵심에 다가가고 우리 인간의 본능적인 것들에 질문을 던진다. 두 눈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는 진실에 눈을 뜨게 되고, 고향에서도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적 외로움에서는 그의 깊은 철학을 엿본다. 새로운 IT 시대를 맞아 우리가 취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해 보게 한다.

"세상은 재벌, 혁신가, 천재, 창업자 같은 IT 시대의 1퍼센트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나머지 99퍼센트의 권리를 지켜주고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미래 사회의 진정한 의무다." (본문 244쪽)

저자는 형식적 공감을 경계한다. 이것은 곧 우리 세상이 가야 할 방향은 형식적은 공감이 아니라 과학적 접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과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일까. 과학 하면 딱딱하다고만 생각하는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문학, 철학, 신학, 종교, 예술 작품으로 보여준다. 예술 작품과 고전을 넘나들고 역사적 기록들을 아우르며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과학으로 눈을 돌리든 예술로 눈을 돌리는 근본적인 삶과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뇌과학 인공지능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이 곧 과학과 예술이 따로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하여 책 하나를 읽더라도 사회 현상을 바라보더라도 근거 없이 믿는 것보다는 검증된 결과를 찾아보도록 하는 생각의 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사는 우주가 최고일 이유는 없다. 아니 최고의 우주란 개념 자체가 존재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라이프니츠가 상상하던 무한으로 가능한 우주들이야말로 현대 우주론이 가설하는 다중우주와 같은 의미이지 않을까? 139억 년 전 빅뱅 이후 급팽창한 우주는 다중우주를 만들어냈으며, 양자역학적으로 가능한 모든 결과는 결국 독립적인 다른 세상이나 우주에서 현실화된다는 가설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나, 우주의 왕인 나, 지구 최고의 거지인 나, 사이비 종교를 창시하는 나, 죽어가는 누군가의 손을 비트는 나, 이미 오래전에 죽은 나. 모든 게 가능하기에 그 어느 것도 의미 없는 다중우주가 우리 존재의 진정한 정체성이라면? 과연 선과 악의 차이는 무엇일까?" (본문 121쪽)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하게 된 것들이 있다. 살아온 세월만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 왔고 앞으로 얼마나 살지는 모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똑같은 생각이나 말투 버릇 습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고 비슷한 교육을 받으면서도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다. 게다가 의견이 맞지 않아 관계가 틀어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결국 우리는 인간이라는 것, 저마다 다른 인간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인생에 정말 중요한 문제들은 대부분 공짜로 해결되지 않으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피눈물 나는 준비를 되풀이해야만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고, 준비는 가능하지만 기적은 힘들다는 저자의 말은 깊이 새겨야 한다. 우리 인생 대부분 문제엔 여전히 '앱'이 없다.


뇌과학이라고 해서 단순히 우리 뇌에 대한 해부쯤으로 생각해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그보다는 삶에 보다 큰 밑그림을 그리게 됐다. 세상에 존재하는 나는 아무런 노력 없이 때로는 생각 없이 누군가가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하고 개발하고 성취한 것들을 취하기만 했던 소극적인 인간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등바등 주어진 거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였다. 어릴 적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던 세계가 지금 현실의 모습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보던 상상의 세계가 그리 멀지 않다는 것도 새삼 자각하게 된다.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가치 있는 문제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는 넓고 깊은 생각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이 책은 새로운 창이 되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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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
캐서린 크로퍼드 지음, 하연희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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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모든 육아를 책으로 배웠다. 너무 많은 육아 서적이 쏟아지다 보니 혼란스러웠던 경험도 없지 않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진정한 육아란 책을 그대로 따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책에서 얻은 방법들을 통해서 실제 자신의 아이에게 가장 맞는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롭게 키우는 미국의 육아 방식이던 복종을 강요하는 유럽의 육아 방식이던 절대적일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육아는 어떨까. 뭐가 좋다라는 것이 소문이 나면 온전히 그것만 따라하지는 않았던가. 우리나라에도 좋은 육아방법들이 있을텐데도 우리 것은 무조건 나쁘고 서양의 방식들이 왠지 좋아보이곤 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에 살면서 서양의 육아방식만을 쫓아간다면 그것 또한 아이들에게는 혼란만 키울지도 모르기에 상황에 맞도록 적절하게 혼합하는 방식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런 관점에서 캐서린 크로퍼드의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는 깊은 공감을 하며 읽었던 책이다. 미국에 사는 저자가 프랑스 육아방식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아이들의 태도에 있었다. 하지말아야 할 행동과 해야할 행동을 아이들 스스로 컨트롤 하는 모습속에서 프랑스만의 특별한 육아방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프랑스 방식을 지지하며 따르는 것이 아니다. 모유수유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아이들과의 신체접촉 횟수, 예절 등 부딪히는 부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저자가 느꼈던 혼란스러움에 대해 솔직한 생각들을 풀어 놓았다. 저자의 잘못된 육아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배워야 할 점은 실전에 응용해 보며 적극적인 육아를 한다. 개인 블로그에 아이와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을 보는 관점은 다를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아이의 프라이버시 침해로 볼 수 있겠지만 미국의 엄마들은 아이와의 일상을 기록하며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개인의 취향일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스타일 육아법은 어떤 면에서 땅을 새로 갈고 잡초를 뽑고 씨앗을 뿌려 다른 정원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과정과 비슷하다. 즉, 목표하는 바가 뚜렷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를 확실히 안다는 뜻이다. 그 조치만 잘 취하면 씨앗의 성장을 방해할 만한 요소는 없다. 토질 정도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할까? 그런데 미국 스타일 육아법은 자라서 무엇이 될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씨앗을 무조건 땅에 뿌리는 행위에 가깝다. 그러면서 비료와 물, 공기, 공간, 빛을 완벽히 조절하고 공급함은 물론이요, 때로 지지대까지 세워 씨앗이 자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마련해주려 애쓴다." (본문 116쪽)

 

수많은 육아서 중에서도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선진국이라고 하는 서구에서도 육아에 대해 처절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과 그네들이 좋다는 육아법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유용한 부분을 추출하고 미국의 상황에 맞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프랑스식 육아법이 육아에 대한 해법이고 전적으로 옳다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미국인이라면 미국인으로서 실천할 수 있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통해 육아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응용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취하면 된다. 아이를 갖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이 세워져 있어야 하고 그 가치관에 맞는 육아 방법들을 찾아 응용해야 한다. 유행하는 육아법이나 선진국의 육아법이 100프로 우리 아이에게 맞을 수는 없다.

 

우리는 요즘 지나치게 자존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주변에서 하도 '자존감' 하길래 자존감을 키우는 육아법에 대해 마구잡이로 조언을 구하다보니 자칫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선별없이 따라해서 그런지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자칫 버릇없고 자기만 아는 아이로 자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자존감을 위해서 버릇없는 행동까지도 오냐 오냐하고 칭찬할 일도 아닌데 무조건 잘했다고 추켜세우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가 바라는 아이는 버릇없는 아이가 아니라 예의를 알면서도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아이일 것이다. 스스로 세상의 고난에 맞서 헤쳐 나가는 독립적인 존재로 키워야지 나의 미니미는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엄마가 행복해지자. 멋진 아빠들은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가 아니라 아내에게 잘 하는 아빠라고 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것을 아는 아빠들이 아닐까 싶다. 그 위에 아이와 올바른 관계를 설정하고 유지해 나간다면 아이들은 커가면서 삶의 환희를 누리고 소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줄 아는 능력을 아는 아이로 커가지 싶다. 공감한다면 프랑스 엄마들에게서 유용한 방법들을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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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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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만날 때마다 빨리 죽고 싶은데 마음처럼 죽어지지 않는다며 푸념 반 한탄 반 하시던 할머니를 알고 있다.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늘 짐이 된다는 것이 할머니가 빨리 죽고 싶은 이유였다. 할머니의 진심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러고도 할머니는 10년은 더 사셨고 아흔이 넘는 나이에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는 것이다. 인생은 생각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람과는 다르게 고달픈 삶이 펼쳐지는 것이 또 인생이다. 그럼에도 그 고달픈 삶 때문에 살아지기도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을 할머니는 일찌감치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를 읽다 보니 자꾸만 할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인생의 비밀을 꿰뚫고 계셨던 할머니처럼 오베라는 남자가 경험했던 인생의 숨겨진 비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집스러울 만큼 원칙을 따지는 남자, 선으로 따지자면 직선을 닮은 까칠하고 융통성 없는 한 남자가 살아가는 곧은 삶의 방식이 빌어먹을 간섭쟁이 이웃들과 만나 어떻게 변화하고 어울리며 살아가는지를 따뜻하고 감동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평생을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삶의 규칙 만큼은 까다롭게 굴었던 남자, 오베와 그런 오베를 끝까지 이해해주고 믿어주었던 아내, 소냐가 있다. 하지만 소냐는 이 세상에 없다. 소냐가 세상을 떠나던 날, 오베도 삶을 멈추었다. 오베였던 남자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오베였던 남자 이웃에 새로운 가족들이 이사오면서 개념 없고 간섭하기 좋아하는 이웃에 전쟁을 선포한 오베라는 남자가 있다. 소냐가 세상을 떠난 후 오베였던 남자는 매일 자살을 시도하지만 이웃들의 간섭과 방해 때문에 죽지도 못한다.

 

​오베였던 남자는 세상에 둘도 없는 로맨티스트였다. 오베에게 사랑은 기다림이고 그리움이었다. 한 여자를 위해 평생 해보지 않았던 거짓말을 하는 거였고, 그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여자를 위해 부조리한 사회와 싸워야 하는 것이었다. 소냐는 세상에 홀로 남은 오베에게 미소를 보내고 손을 내밀어 준 유일한 여자였다. 흑백이었던 오베에게 색깔이 되어주었다. 소냐는 오베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그런 소냐를 위해서라면 평생을 부조리와 싸울 수도 있었고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소냐는 누구보다 그런 오베를 이해해 주던 여자였다. 오베의 원칙을 이해했고, 오베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고 묵묵히 뒤에서 지지해 주던 소냐. 소냐 없는 세상은 죽은 삶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색깔이 사라져버린 세상에 홀로 남겨진 오베에게 세상은 생기라고는 없는 잿빛 세상이었다.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인생을 사는 오베에게 소냐는 어둠을 쫓아버리는 한줄기 빛이었다. 사람들이 왜 그를 사랑하느냐고 소냐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대부분의 남자는 지옥 같은 불길에서 달아난다고, 하지만 오베 같은 남자는 그 안으로 뛰어든다고 대답했다.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을 알지 못한다.

 

"그녀는 종종 "모든 길은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일로 통하게 돼 있어요" 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그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것'은 아마도 '무엇'이었으리라. 하지만 오베에게 그건 '누군가'였다." (본문 114쪽)​

 

그리고 오베라는 남자는 세상에 자신이 심어놓은 원칙을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는 그저 모종의 질서가 존재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통념 따위 먹히지 않는 까칠한 남자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오베는 비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살도 그렇다. 자살은 절대 안된다라는 통념을 따르기보다는 의미없는 삶을 스스로 끝내려고 했다. 비록 방해꾼들에 의해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그는 스스로 깨닫는 것만이 자신의 삶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던 주체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만나면서 원칙이나 신념도 좋지만 함께 어울려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간섭하기 좋아하고 예의라고 없는 이웃들이 있어서 자전거 하나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두고 이제 마음놓고 죽을 수도 없다. 빌어먹을 간섭쟁이 이웃들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들이 생기고 그렇게도 삶은 계속된다.

 

우리 인생도 사실은 얄미운 사람들, 쓸데없는 일들 때문에 고통받는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무언가를 위해 열정적으로 싸울 때 그것이 살아가는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안하고 오로지 평화로운 상태만 유지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가끔은 평화로운 삶에 균열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오베는 안다. 더 이상 남아 있는 시간이 없을 때 다른 것을 위해 살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것이 추억이고, 그 추억들로 우리 삶도 의미있는 것이라고. 세상에는 다른 이의 미래를 위해 사는 것도 있다라는 것을 알 것이다.

 

모든 삶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마치 아무 이유없이 세상에 뚝 떨어진 것 같지만 모든 삶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 그렇다. 오베라는 남자를 이해하려면 오베의 삶을 이해해야 된다. 모든 인생에는 이유가 있다. 이제 우리 삶에도 나답게 그답게 우리답게 그네들답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원리 원칙을 고수하며 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냉혈한과 원칙대로 살지만 가슴속에 사랑이 많아 정이 넘치는 사람. 오베는 까칠했지만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행복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라고 소냐는 말했다. 자기 생각처럼 세상은 돌아가지 않지만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 짧은 인생을 통해 얻게 되는 인생의 법칙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사랑은 기다림이고 그리움이라 말하며 인생은 예측불허라고 말하는 책이다. 왠지 영화 속 캐릭터와 잘 맞을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올해 영화로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오베라는 남자가 어떻게 영화 속에 녹아들어 관객들을 만날지 너무나 기대된다. 책이 아닌 영화로 만나도 너무나 매력적인 오베라는 이 남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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