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만날 때마다 빨리 죽고 싶은데 마음처럼 죽어지지
않는다며 푸념 반 한탄 반 하시던 할머니를 알고 있다.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늘 짐이 된다는 것이 할머니가 빨리 죽고 싶은 이유였다. 할머니의
진심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러고도 할머니는 10년은 더 사셨고 아흔이 넘는 나이에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는 것이다. 인생은
생각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람과는 다르게 고달픈 삶이 펼쳐지는 것이 또 인생이다. 그럼에도 그
고달픈 삶 때문에 살아지기도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을 할머니는 일찌감치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를 읽다 보니 자꾸만 할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인생의 비밀을 꿰뚫고 계셨던 할머니처럼 오베라는 남자가 경험했던 인생의 숨겨진 비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집스러울 만큼 원칙을 따지는 남자, 선으로
따지자면 직선을 닮은 까칠하고 융통성 없는 한 남자가 살아가는 곧은 삶의 방식이 빌어먹을 간섭쟁이 이웃들과 만나 어떻게 변화하고 어울리며
살아가는지를 따뜻하고 감동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평생을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삶의 규칙 만큼은 까다롭게 굴었던
남자, 오베와 그런 오베를 끝까지 이해해주고 믿어주었던 아내, 소냐가 있다. 하지만 소냐는 이 세상에 없다. 소냐가 세상을 떠나던 날, 오베도
삶을 멈추었다. 오베였던 남자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오베였던 남자 이웃에 새로운 가족들이 이사오면서 개념 없고 간섭하기 좋아하는 이웃에 전쟁을
선포한 오베라는 남자가 있다. 소냐가 세상을 떠난 후 오베였던 남자는 매일 자살을 시도하지만 이웃들의 간섭과 방해 때문에 죽지도 못한다.
오베였던 남자는 세상에 둘도 없는 로맨티스트였다. 오베에게 사랑은 기다림이고 그리움이었다. 한 여자를 위해 평생
해보지 않았던 거짓말을 하는 거였고, 그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여자를 위해 부조리한 사회와 싸워야
하는 것이었다. 소냐는 세상에 홀로 남은 오베에게 미소를 보내고 손을 내밀어 준 유일한 여자였다. 흑백이었던 오베에게 색깔이 되어주었다. 소냐는
오베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그런 소냐를 위해서라면 평생을 부조리와 싸울 수도 있었고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소냐는 누구보다
그런 오베를 이해해 주던 여자였다. 오베의 원칙을 이해했고, 오베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고 묵묵히 뒤에서 지지해 주던 소냐. 소냐
없는 세상은 죽은 삶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색깔이 사라져버린 세상에 홀로 남겨진 오베에게 세상은
생기라고는 없는 잿빛 세상이었다.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인생을 사는 오베에게 소냐는 어둠을 쫓아버리는 한줄기 빛이었다. 사람들이 왜 그를 사랑하느냐고 소냐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대부분의 남자는 지옥
같은 불길에서 달아난다고, 하지만 오베 같은 남자는 그 안으로 뛰어든다고 대답했다.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을 알지 못한다.
"그녀는 종종 "모든 길은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일로 통하게
돼 있어요" 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그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것'은 아마도 '무엇'이었으리라. 하지만 오베에게 그건 '누군가'였다."
(본문 114쪽)
그리고 오베라는 남자는 세상에 자신이 심어놓은 원칙을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는 그저 모종의 질서가 존재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통념 따위 먹히지 않는
까칠한 남자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오베는 비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살도 그렇다. 자살은 절대
안된다라는 통념을 따르기보다는 의미없는 삶을 스스로 끝내려고 했다. 비록 방해꾼들에 의해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그는 스스로 깨닫는 것만이
자신의 삶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던 주체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만나면서 원칙이나 신념도 좋지만
함께 어울려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간섭하기 좋아하고 예의라고 없는 이웃들이
있어서 자전거 하나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두고 이제 마음놓고 죽을 수도 없다. 빌어먹을 간섭쟁이 이웃들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들이 생기고 그렇게도 삶은 계속된다.
우리 인생도 사실은 얄미운 사람들, 쓸데없는 일들 때문에 고통받는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무언가를 위해 열정적으로 싸울 때 그것이 살아가는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안하고 오로지 평화로운 상태만 유지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가끔은 평화로운 삶에 균열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오베는 안다. 더 이상 남아 있는 시간이 없을 때 다른 것을 위해
살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것이 추억이고, 그 추억들로 우리 삶도 의미있는 것이라고. 세상에는 다른 이의 미래를 위해 사는 것도 있다라는
것을 알 것이다.
모든 삶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마치 아무
이유없이 세상에 뚝 떨어진 것 같지만 모든 삶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 그렇다. 오베라는 남자를 이해하려면 오베의 삶을 이해해야
된다. 모든 인생에는 이유가 있다. 이제 우리 삶에도 나답게 그답게 우리답게 그네들답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원리 원칙을 고수하며 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냉혈한과 원칙대로 살지만 가슴속에 사랑이 많아 정이 넘치는 사람. 오베는 까칠했지만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행복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라고 소냐는 말했다. 자기 생각처럼 세상은 돌아가지 않지만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 짧은 인생을 통해 얻게 되는 인생의 법칙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사랑은 기다림이고 그리움이라 말하며 인생은 예측불허라고
말하는 책이다. 왠지 영화 속 캐릭터와 잘 맞을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올해 영화로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오베라는 남자가 어떻게 영화
속에 녹아들어 관객들을 만날지 너무나 기대된다. 책이 아닌 영화로 만나도 너무나 매력적인 오베라는 이 남자,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