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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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평범한 집이라고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
바깥에서 보면 평온한 가족으로 보여도 다들 이래저래 사연을 안고 있는 법이야." (본문 137쪽)

 


 

​살인 사건을 다룬 사회 뉴스를 보다가 종종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가해자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범인이 평소에는 평범했다던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라던가 하는 말들을 하곤 한다. 우리 인간은 의외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이외성을 가진 개인이 모여 가족을 이루다 보니 평범해 보이는 집이지만 이래저래 각각의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붉은 손가락>을 읽으며 굉장히 공감했던 구절이었다.
​이 책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본 작품이다. 최근 읽었던 <가족이라는 병>에서 시모주 아키코는 가족이란 함께 살고 있는 타인들일 뿐이라고 말한다. 혈연 문제가 없는 가족도 없고, 병을 앓고 있지 않은 가족은 없다. 모두가 안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라고. <붉은 손가락>에서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가족이 그렇다. 중학생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사건을 두고 가족들이 은폐를 계획하면서 드러나는 가족의 슬픈 사연과 진정한 의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철없는 아들의 범행을 지켜주기 위해 어머니에게 패륜을 저지르는 가장 아키오, 중학생 아들의 철없는 행동을 뒤늦게 탓해보지만 아들만 탓할 것도 아니다. 스스로도 늙은 노모에게는 똑같은 철없는 아들이었던 것이다. 막다른 상황에 몰린 인간이 내릴 수 있는 어리석은 선택과 삐뚤어진 욕망과 이기심. 과연 그 선택이 누구를 위한 선택이고, 진정 누구에게 이해받기 위함인지 생각하게 보게 된다.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자식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나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도 더불어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의 잘못을 보고 그 결과 아이에게 빚어질 불안한 미래 앞에 아이를 감쌌던 적은 없는지, 그래서는 안되는 건데, 눈을 감아주었던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본다. 그것이 살인이라고 했을 때 부모로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솔직히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아주 사소한 일에도 올바른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지나쳐 잘못된 것조차도 다 감싸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식에게 올바르게 가르쳤을 때 자식으로부터 올바른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진다. 그래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아이에게 대할 수 있을 것이기에.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의 눈에는 여전히 아기로 보인다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붉은 손가락을 하면서까지 자식을 걱정했던 노모 마에하라 마사에는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아채도록 돕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만의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일찍 깨우쳐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47세의 중년 아키오는 그녀에게 여전히 어린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손주가 살인을 저지를 때 집에 있었던 노모 마사에는 손주의 범행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치매증에 걸린척 했다고 해서 손주가 살인을 할 때 막을 수는 없었을까.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한 가족의 참극을 을 맞기 전에 무언가를 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을 토로해 보지만 우리 인생이 어디 생각대로 흘러갔던가.

끝까지 자식을 사랑했던 어머니 마사에의 모성애가 철없는 자식을 위해서 뭐든 할 것 같은 삐뚤어진 모성애를 가진 야에코와 대비되어 진한 감동을 준다. 말년에 혼자서 외롭지 않기 위해 자식과 함께 살기로 했지만 어쩐지 멀게만 느껴지는 아들 부부를 위해 인지증이 걸린 척 연기 아닌 연기를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랐을 텐데, 안타까운 결말을 지켜봐야 했던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노모의 사연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노인에게도, 아니 노인이기 때문에 더더욱,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는 거야.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 달라. 주위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법도 있는 거고. 하지만 중요한 건 아무리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의사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본문 283-284쪽)

작품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은 그리워하는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닮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마지막 자신이 소홀했을지 모르는 마음을 느껴보며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우리 인간의 마음은 너무도 나약하여 옳은 판단을 내려야 할 땐 한없이 약해지고 쓸데없는 일에는 잘도 강한 척하려 들 때가 있다. 문제가 자식과 부모 간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가 되었을 때 더욱 그런 것 같다. 약할 때 약하더라도 정신까지 흐려지면 안 되겠지. 그래서 이 작품은 나약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주는 씁쓸한 경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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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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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스타작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작가 중 한 분인 걸로 알고 있다. 독자들이 그의 작품을 찾아 읽고, 신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을 읽는 줄거움을 추리소설이 줄 수 있는 다양한 전개 방식에서 찾는다. 흔히 추리소설하면 사건이 일어나고 증거들을 찾아가며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라고 한다면 그의 작품들에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형사와 피의자 간의 긴밀한 전개가 돋보이기도 하고 가해자의 시선으로 사건이 재구성되기도 하고, 이 작품 <악의>처럼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는 식의 다양한 추리방법들이 동원된다. 그래서 이야기는 새롭고 지루할 틈이 없는 것 같다.

<악의>는 가가 형사 시리즈 중 하나로 인간 내면에 감춰진 감정이 어떻게 범죄의 동기가 되고 그 이면에 감춰진 인간 본성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인간이 어디까지 욕망할 수 있고 파멸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악의>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 인간이 욕망에 이끌려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도 모자라 없었던 사실을 그럴듯하게 각색해내는 놀라운 모습에 그렇게까지 하면서 지키고자 했던 인간의 이기심이 공허한 울림처럼 내면의 깊은 곳을 파고든다. 더불어 범인인 노노구치의 수기와 가가 형사의 기록을 번갈아 보여주는 독특한 형식이 이야기의 흥미를 잃지 않으며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이야기는 노노구치의 수기로 시작하는데, 가가 형사의 추리가 있기 전까지 독자들이 사실이라고 믿게 되는 첫 번째 사건의 구성이다. 유명한 소설가의 의문의 죽음. 그 죽음의 배후에 석연찮은 일련의 사건들이 있다. 하지만 가해자인 노노구치에 의한 의도적인 진실 각색에 의해 피해자 히다카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웃집 고양이를 덫을 놓아 죽였다는 히다카의 잔인성이 그렇고 친구를 협박하여 친구의 소설을 자신의 것인 양 출판하였다는 파렴치한으로 몰고가는 것도 그렇다. 노노구치의 치명적 실수를 가가 형사가 풀어냄으로써 살인의 동기를 파헤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끝을 알 수 없는 사건의 전개와 반전으로 이야기의 흥미를 잃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들을 롤러코스터에 태워 어지럽게 끌고 다니고, 다 읽고 난 독자들은 '뭐지?' 하고 혼란스러운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허를 찌르는 반전과 느슨하지 않은 이야기 전개가 많은 이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고 꾸준히 읽히는 이유이지 싶기도 하다.
"이번 사건을 맡으면서 문학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접해보게 되었습니다만, 작품을 평하는 말 중에 독특한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인간을 묘사한다'라는 말입니다. 한 인물이 어떤 인간인지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글을 써서 독자에게 전달한다는 뜻일 텐데, 그건 단순한 설명문으로는 어렵다고 하더군요. 아주 작은 몸짓이나 몇 마디 말 같은 것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그 인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도록 쓰는 것이 '인간을 묘사한다'라는 것이라던데요? 당신은 거짓으로 점철된 수기를 통해 히다카 구니히코라는 인물의 잔혹성을 묘사하여 일찌감치 독자, 즉 우리에게 나쁜 이미지를 심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준비한 에피소드가 그 '고양이 죽이기'였던 것이지요." (본문 342-343​쪽)
​안타까운 것은 마음속에 어떤 악의를 품고 있다가 자신의 잘못된 이기심에 그 악의를 드러내는 점이다. 평소에는 괜찮다고 여기다가도 한번 틀어질 기회가 생기거나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여 그 사람을 모함하기도 하고 비방하기도 하며, 사실도 아닌 것으로 포장하여 그 사람을 한순간에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때가 있다. 분명 잘못된 일인 것을 알고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게 모르게 그런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어디까지나 자신만은 다치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 노노구치 또한 친구를 처음 찾아갔을 땐 순수한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소설가로서 유명해진 친구의 재능을 알게 되고 어쩐지 싫었던 친구의 잘 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신은 쓸쓸히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노노구치의 마음속 악의가 표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도 사건을 치밀하게 구성할 줄 아는 재능이 있었음이 그 자신이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드러냈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표면적으로는 어릴 적 상처에 기인한 시기와 질투가 동기가 되어 악의를 드러낸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가슴속에 맴도는 가슴 아픈 메시지도 있다. 왕따 문제가 그것인데, ​왕따 문제를 다룬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마음이 교차한다. 왕따의 피해자가 어느새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제2, 제3의 왕따를 확산시키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기 때문이다. 어릴 적 경험이 어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반목하는 상황 속에서 이유 없이 싫다던가, 그냥 그랬다던가,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던가, 그래도 될 것 같았다는 식의 무책임한 말들이 돌아올 때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가가 형사가 애써 찾은 과거 노노구치와 히다카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과거 친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소름이 돋는다. 어린시절에 새겨진 어린 마음의 상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각자의 삶에 어떻게 파고드는지를 마지막까지 작가는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당신이 히다카 씨를 그토록 미워했던 이유 중의 하나에 어쩌면 당신 어머님이 가졌던 그런 식의, 경멸 받아야 마땅할 잘못된 선입견이 관계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확인차 말씀드리는 겁니다." (본문 348쪽) ​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의 잠재된 악의는 살인의 동기가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괜히 기분 나빠서, 이유 같지 않은 이유 때문에 죽어야 하고 상처받아야 하는 하찮은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내가 존중받고 싶고 내가 우뚝 서고 싶을 때일수록 상대방의 호의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어쩐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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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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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면 한 두 권의 추리소설은 읽는 것 같다. 추리소설하면 단연 히가시노 게이고 님을 빼놓을 수 없는데, 다작을 하시는 작가라 그런지 기호에 맞게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재미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 속엔 사회적 이슈나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마냥 편하게만 읽히지 않는다. 읽고 난 후에도 많은 여운을 남기곤 한다. 최근에 읽은 <방과 후>는 히가시노 게이고 님의 데뷔 작품으로 에도가와 란포 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했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그의 인기를 반영한 듯 어렵지 않게 그의 초기 작품들까지 읽을 수 있는데 그의 처녀작은 어땠을지 궁금해서 더욱 읽고 싶었던 책이다. 이 책에서는 밀실 암살의 수수께끼가 추리소설의 재미를 더했던 것 같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여고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얼핏 여고괴담이 떠올라 그런 비슷한 류의 공포를 떠올리기 쉽지만 의문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여고에 부임해 그럭저럭 자기 임무를 수행하며 잘 지내고 있는 수학교사 마에시마. 대학 시절 경험을 살려 교내 양궁부 고문을 맡고 있다. 평범한 수학교사로 살아오던 그는 자신의 목숨을 노린 여러 번의 살해 위협을 받고 공포에 휩싸이고, 그러던 중 학생지도부 교사가 청산가리로 살해된다. 몇 번의 살해 위협을 받았던 터라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이 신경이 쓰인다. 수사 담당을 맡은 오타니 형사와 이 사건을 풀어가지만 사건이 해결되기도 전에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하며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고 만다. 학교 축제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체육교사 다케이가 쓰러진 것이다. 그의 사인 역시 청산가리 중독. 다케이의 죽음이 어쩌면 자신을 향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에시마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밀실 암살의 수수께끼가 풀리며 얽히고설킨 사건의 수수께끼도 함께 풀린다. 그리고 살해 동기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추리소설하면 사건이 주는 공포보다는 이야기 속에 들어가 탐정이 된 듯 가설을 세우고 사건에 개입하는 즐거움이 더 커서 자꾸만 읽게 되는 것 같다. 원래 마인드 자체는 추리하고는 전혀 상관없는데도 책을 읽을 때는 마치 탐정인 양 살해 동기를 찾아보는 재미가 추리소설이 주는 묘미일 테고 내가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이다. 어떤 기사에서 이 작품이 나올 당시에 책 속의 살해 동기와 관련 일본에서 논쟁이 일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과연 여고생들이 자신의 수치심 때문에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달리 생각해 보면 여고생들에게 있어 자신만이 간직한 비밀이 누군가에게 들켰을 때의 기분이나 감정이 어떻고, 어떤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충분히 살해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당당히 보여줌으로써 여고생들의 심리를 제대로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애들한테 제일 중요한 건 아름다운 것, 순수한 것, 거짓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우정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죠. 자기 몸이나 얼굴일 수도 있고.... 좀 더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추억이나 꿈을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런 것들을 부수려고 하는 사람,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을 가장 증오한다는 뜻도 되겠지요." (본문 359쪽)

 

첫 작품인데도 처녀작 같지 않은 탄탄한 스토리도 그렇고 등장인물에 대한 심리적인 묘사와 짐작도 못 했던 살해 동기가 흥미로웠던 이야기 <방과 후>. 반전의 반전이 있어서 끝까지 안심할 수 없게 만든다. 자질구레함을 걷어낸다면 거미줄처럼 탄탄하게 얽힌 복선과 밀실 암살이라는 참신한 트릭이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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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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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책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단지 제목이 끌려서 집어 들었던 책. 어떤 내용인지 조금만 읽어봐야지 했다가 재미있어서 간직하려고 주문했던 책이다. 이 책이 도서 구매자와 서점 주인이 무려 20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놓은 책이므로 나는 그들이 주고받은 20년의 긴 세월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왜 그토록 이 책이 끌렸던 것일까. 단순히 꼽아보자면 도서 구매자와 서점 주인이 주고받은 편지라는 자체가 흥미롭다. 손편지는 이제 구시대 유물이 되어버린 탓인지 편지하면 낭만이 먼저 떠오르기도 하고, 찾고자 한다면 뭐든지 구할 수 있는 요즘 시대에 구하기 어려운 책들을 찾아 바다 건너 멀리까지 편지를 보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궁핍한 시대에 대한 향수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가치 있고 소중해지는 무언가를 이 책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아닐지. 무엇을 애타게 갈구해 본 적이 언제였는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마음을 다해 수고해 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한다. 게다가 그곳이 어디인지 왠지 찾아보고 싶고, 가보고 싶게 만드는 런던의 채링크로스 84번지이다. 헬렌 한프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줘야 할 것만 같기도 하고.

 

"이 모든 책을 내게 팔았던 그 축복받은 사람이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서점 주인 마크스 씨도요. 하지만 마크스 서점은 아직 거기 있답니다. 혹 채링크로스 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나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

 

이 책이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사무적인 업무에서 시작해 편지로 우정을 쌓아가고 서로의 삶을 공유해 나가는 방식이다. 본적도 없고, 멀리 떨어져 있고, 단순히 책방과 구매자라는 순수한 관계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주위 사람들을 챙긴다는 것이 가능할까. 게다가 구매자는 까다롭고 쌀쌀맞기 그지없다. 서점 주인도 무뚝뚝하고 사무적이다. 그럼에도 자그마치 20년 동안 편지로 우정을 쌓아갈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서점 가는 것도 귀찮아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것이 보편화된 지금 그런 낭만이 가능했던 그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 늘 어딘가 부족했고,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살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풍족하지 않았지만 마음만큼은 순수했고, 따뜻했고 풍요로웠던 그때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보물 같은 시간들이 이 책 속에는 있다.

 

"친애하는 헬렌.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세요. 먼젓번 편지에서 요청한 세 권이 일제히 당신한테 가고 있습니다. 일주일이면 도착할 겁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묻지 말아요. 그저 마크스 서점의 서비스라고만 생각해줘요."

 

우체통 안에 들어있는 편지 봉투만 봐도 설렜던 기억이 있다. 사랑도 연애도 이별도 편지로 했었던 시대가 있었다. 중요한 연락도 편지가 대신하던 시대였다. 이 세상에 편지를 대신할 낭만이란 없다고 믿었던 때가 있어서인지 작은 메모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세월이 갈수록 나이를 먹듯 편지도 빛도 바래고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버릴 수도 없다. 그것을 버린다면 나의 젊은 날 추억도 함께 버리는 것일 테니까. 요즘 우체통을 보면 쓸데없이 광고지들만 넘쳐난다. 모든 것을 디지털 기기가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우체통도 사라질까. 소중했던 것들이 자꾸만 사라져가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그렇다고 어쩌지도 못할 거면서. 시대의 변화에 충실히 따라갈 거면서 아쉬워만 하고 있다. 소중한 시간의 보물을 꺼내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쩜 우리 세대는 행복한 세대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것은 행복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제는 사라지고 기념 동판만이 남은 런던 채링크로스 가 84번지에는 헬렌 한프의 마지막 부탁을 기억하는 독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서점 주인과 한프가 주고받은 편지가 주는 감동에 독자들도 큰 신세를 지고 있어서일까. 삶의 기적의 맨 처음은 소소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책방과의 소중한 추억, 서점 주인과의 특별한 인연 하나쯤 있었으면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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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캘빈의 마술쇼>가 기대되는 가운데, 제가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그림책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되었던 책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라는 작품을 소개해 주고 싶습니다. 치료비로 얻은 무화과 두개의 신비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상상력에 놀라고 이야기가 전해주는 힘에 또 한번 놀라게 됩니다. 우리가 꾼 꿈이 현실에서 진짜로 일어난다면 어떨까요? 꿈을 꾼대로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한데, 그 꿈은 우리만 꾸는 것은 아닌가봐요. 동물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꿈이 있을 거란 생각도 이 책을 읽으면서 해 보았구요. 상상 그 이상의 즐거움을 주었던 책입니다. 이 책도 꼭 함께 읽어봤으면 하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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