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평범한 집이라고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
바깥에서 보면 평온한 가족으로 보여도 다들 이래저래 사연을 안고 있는 법이야." (본문 137쪽)

 


 

​살인 사건을 다룬 사회 뉴스를 보다가 종종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가해자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범인이 평소에는 평범했다던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라던가 하는 말들을 하곤 한다. 우리 인간은 의외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이외성을 가진 개인이 모여 가족을 이루다 보니 평범해 보이는 집이지만 이래저래 각각의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붉은 손가락>을 읽으며 굉장히 공감했던 구절이었다.
​이 책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본 작품이다. 최근 읽었던 <가족이라는 병>에서 시모주 아키코는 가족이란 함께 살고 있는 타인들일 뿐이라고 말한다. 혈연 문제가 없는 가족도 없고, 병을 앓고 있지 않은 가족은 없다. 모두가 안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라고. <붉은 손가락>에서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가족이 그렇다. 중학생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사건을 두고 가족들이 은폐를 계획하면서 드러나는 가족의 슬픈 사연과 진정한 의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철없는 아들의 범행을 지켜주기 위해 어머니에게 패륜을 저지르는 가장 아키오, 중학생 아들의 철없는 행동을 뒤늦게 탓해보지만 아들만 탓할 것도 아니다. 스스로도 늙은 노모에게는 똑같은 철없는 아들이었던 것이다. 막다른 상황에 몰린 인간이 내릴 수 있는 어리석은 선택과 삐뚤어진 욕망과 이기심. 과연 그 선택이 누구를 위한 선택이고, 진정 누구에게 이해받기 위함인지 생각하게 보게 된다.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자식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나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도 더불어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의 잘못을 보고 그 결과 아이에게 빚어질 불안한 미래 앞에 아이를 감쌌던 적은 없는지, 그래서는 안되는 건데, 눈을 감아주었던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본다. 그것이 살인이라고 했을 때 부모로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솔직히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아주 사소한 일에도 올바른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지나쳐 잘못된 것조차도 다 감싸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식에게 올바르게 가르쳤을 때 자식으로부터 올바른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진다. 그래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아이에게 대할 수 있을 것이기에.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의 눈에는 여전히 아기로 보인다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붉은 손가락을 하면서까지 자식을 걱정했던 노모 마에하라 마사에는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아채도록 돕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만의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일찍 깨우쳐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47세의 중년 아키오는 그녀에게 여전히 어린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손주가 살인을 저지를 때 집에 있었던 노모 마사에는 손주의 범행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치매증에 걸린척 했다고 해서 손주가 살인을 할 때 막을 수는 없었을까.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한 가족의 참극을 을 맞기 전에 무언가를 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을 토로해 보지만 우리 인생이 어디 생각대로 흘러갔던가.

끝까지 자식을 사랑했던 어머니 마사에의 모성애가 철없는 자식을 위해서 뭐든 할 것 같은 삐뚤어진 모성애를 가진 야에코와 대비되어 진한 감동을 준다. 말년에 혼자서 외롭지 않기 위해 자식과 함께 살기로 했지만 어쩐지 멀게만 느껴지는 아들 부부를 위해 인지증이 걸린 척 연기 아닌 연기를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랐을 텐데, 안타까운 결말을 지켜봐야 했던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노모의 사연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노인에게도, 아니 노인이기 때문에 더더욱,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는 거야.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 달라. 주위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법도 있는 거고. 하지만 중요한 건 아무리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의사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본문 283-284쪽)

작품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은 그리워하는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닮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마지막 자신이 소홀했을지 모르는 마음을 느껴보며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우리 인간의 마음은 너무도 나약하여 옳은 판단을 내려야 할 땐 한없이 약해지고 쓸데없는 일에는 잘도 강한 척하려 들 때가 있다. 문제가 자식과 부모 간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가 되었을 때 더욱 그런 것 같다. 약할 때 약하더라도 정신까지 흐려지면 안 되겠지. 그래서 이 작품은 나약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주는 씁쓸한 경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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