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미의 반딧불이 - 우리가 함께한 여름날의 추억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이덴슬리벨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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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는 인생은 어디에도 없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드라마를 만들면서 살아간다니까요!"

 

여름엔 추억이지. 우리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우리 삶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는 것이 여름날 추억일지도 모른다. 수박 하나를 먹어도 수박씨와 얽힌 추억이 있고, 평상에 두런두런 모여 가족끼리 먹던 삼계탕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삼계탕 맛이 되어 버렸고 덥다고 마당에 나가 있으면 옆집도 그 옆집도 다 마당에 나와 있는지 사람 소리가 끊이지 않던 여름밤 풍경은 영화 속 한 장면같이 정겹다. 초롱초롱 아이들의 눈빛만큼이나 반짝여주던 하늘의 별빛은 일부러 찾아갔던 천문대 부럽지 않았다. 더우면 더운 대로 짜증 나던 순간순간들이 고스란히 추억이 되고 떠올리면 행복해지곤 한다.

 

모리사와 아키오는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려내는 작가이다. 지극히 소소한 이야기들을 꺼내게 만들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곤 하여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나쓰미의 반딧불이>는 다케야라는 시골 자그마한 가게를 통해 맺은 인연들의 여름 날 추억을 담은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 속에도 마법과도 같은 삶의 비밀이 있다고 말해준다. 추억으로 사람들이 하나가 되고 현재를 살고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의 소박하지만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사진작가가 꿈인 대학생 아이바 싱고와 그의 연인 가와이 나쓰미는 졸업 작품 주제를 찾아 투어링을 하다 한적한 시골마을 다케야라는 가게에 들르게 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깊은 산속 모두에게 잊힌 듯 외따로 남은, 쓸쓸하고 자그마한 마을의 작고 허름한 가게다. 1900년대의 향기가 느껴지는 예스러운 가게. 그곳에는 인정 많아 보이는 80대 할머니와 60대로 보이는 아들이 산다. 화장실을 빌려 쓰게 되고, 인정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대접하는 차 한 잔이 인연이 되어 여름 한 달간 그곳에서 지내게 된다. 저자도 즐겨 한다는 강놀이 반딧불이 체험 낚시 등 싱고와 나쓰미는 생각지도 못한 멋진 여름을 경험한다.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의 죽음과 아들을 먼저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 산속에 혼자 살며 외부인과 접촉이 없는 불사 운게쓰가 세상과 만나 숨은 감정들을 표출하고, 오해가 낳은 할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해소되고 외따로 남은 듯 쓸쓸하기만 했던 사람들이 여름날의 추억만큼이나 평화롭고 아름답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작고 허름했던 가게 다케야도 이제 쓸쓸하지 않고 찾아와주고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여름날의 추억이 만들어준 기적이다.

 

"시간이라든지, 마음이라든지, 추억이라든지........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 있다. 그런 건 아무리 튼튼한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내 안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만 접할 수 있고 조절할 수 있다. 내 안의 '생각'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여 이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야겠지." (본문 252쪽)

 

잔잔한 감동이 술술 읽히는 소설이다. 읽다 보면 신기하게도 우리 마음속에 숨겨놓고 꺼내보지 않았던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 나서 행복해지는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저자 또한 이 책을 쓸 때가 여름이라 원고를 앞에 두고 생각만으로 몸이 근질근질했다고. 그 행복한 기억들이 우리 삶을 더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여름이니까 가능한 것들을 많이 경험하고 체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잊지못할 추억들을 많이 선물해 주어야지. 어쩌면 <나쓰미의 반딧불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삶의 비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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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김대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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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을 볼 줄 알아야만 한다. 그것이 설사 불편한 진실이더라도 말이다."

드레스 색깔 논란, 생각 수술, 존재, IT 시대, 무인 자동차, 시뮬라크라 코리아, 불통과 소통, 확률적 착시, 갑과 을 등은 최근 우리 사회에 큰 이슈가 되었던 사회현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뇌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카이스트 교수이자 뇌과학자로 저명한 김대식 교수의 책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에서 다루고 있는 화두이기도 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우리 인간사이기도 하다. 세상은 얼마나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 비상식적인 세상에서 상식적으로 살기 위한 뇌에 얽힌 세상 이야기를 만난다. 인간사가 과학기술 방법론을 만나 어떻게 해석되고 우리 삶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다.

드레스 색깔논쟁에서 알 수 있듯 세상 존재하는 것이 우리가 해석해 낸 결과물이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 자체가 우리 뇌와 빛이 해석해내는 결과물이라는 것, ​우리 뇌는 우리 기억을 끊임없이 재해석한다. 우리 뇌는 매 순간의 경험과 느낌으로 기억을 업데이트하고 편집하고 있다. 단순한 색깔논쟁에서부터 진화의 핵심에 다가가고 우리 인간의 본능적인 것들에 질문을 던진다. 두 눈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는 진실에 눈을 뜨게 되고, 고향에서도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적 외로움에서는 그의 깊은 철학을 엿본다. 새로운 IT 시대를 맞아 우리가 취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해 보게 한다.

"세상은 재벌, 혁신가, 천재, 창업자 같은 IT 시대의 1퍼센트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나머지 99퍼센트의 권리를 지켜주고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미래 사회의 진정한 의무다." (본문 244쪽)

저자는 형식적 공감을 경계한다. 이것은 곧 우리 세상이 가야 할 방향은 형식적은 공감이 아니라 과학적 접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과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일까. 과학 하면 딱딱하다고만 생각하는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문학, 철학, 신학, 종교, 예술 작품으로 보여준다. 예술 작품과 고전을 넘나들고 역사적 기록들을 아우르며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과학으로 눈을 돌리든 예술로 눈을 돌리는 근본적인 삶과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뇌과학 인공지능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이 곧 과학과 예술이 따로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하여 책 하나를 읽더라도 사회 현상을 바라보더라도 근거 없이 믿는 것보다는 검증된 결과를 찾아보도록 하는 생각의 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사는 우주가 최고일 이유는 없다. 아니 최고의 우주란 개념 자체가 존재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라이프니츠가 상상하던 무한으로 가능한 우주들이야말로 현대 우주론이 가설하는 다중우주와 같은 의미이지 않을까? 139억 년 전 빅뱅 이후 급팽창한 우주는 다중우주를 만들어냈으며, 양자역학적으로 가능한 모든 결과는 결국 독립적인 다른 세상이나 우주에서 현실화된다는 가설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나, 우주의 왕인 나, 지구 최고의 거지인 나, 사이비 종교를 창시하는 나, 죽어가는 누군가의 손을 비트는 나, 이미 오래전에 죽은 나. 모든 게 가능하기에 그 어느 것도 의미 없는 다중우주가 우리 존재의 진정한 정체성이라면? 과연 선과 악의 차이는 무엇일까?" (본문 121쪽)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하게 된 것들이 있다. 살아온 세월만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 왔고 앞으로 얼마나 살지는 모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똑같은 생각이나 말투 버릇 습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고 비슷한 교육을 받으면서도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다. 게다가 의견이 맞지 않아 관계가 틀어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결국 우리는 인간이라는 것, 저마다 다른 인간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인생에 정말 중요한 문제들은 대부분 공짜로 해결되지 않으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피눈물 나는 준비를 되풀이해야만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고, 준비는 가능하지만 기적은 힘들다는 저자의 말은 깊이 새겨야 한다. 우리 인생 대부분 문제엔 여전히 '앱'이 없다.


뇌과학이라고 해서 단순히 우리 뇌에 대한 해부쯤으로 생각해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그보다는 삶에 보다 큰 밑그림을 그리게 됐다. 세상에 존재하는 나는 아무런 노력 없이 때로는 생각 없이 누군가가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하고 개발하고 성취한 것들을 취하기만 했던 소극적인 인간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등바등 주어진 거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였다. 어릴 적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던 세계가 지금 현실의 모습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보던 상상의 세계가 그리 멀지 않다는 것도 새삼 자각하게 된다.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가치 있는 문제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는 넓고 깊은 생각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이 책은 새로운 창이 되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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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
캐서린 크로퍼드 지음, 하연희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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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모든 육아를 책으로 배웠다. 너무 많은 육아 서적이 쏟아지다 보니 혼란스러웠던 경험도 없지 않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진정한 육아란 책을 그대로 따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책에서 얻은 방법들을 통해서 실제 자신의 아이에게 가장 맞는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롭게 키우는 미국의 육아 방식이던 복종을 강요하는 유럽의 육아 방식이던 절대적일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육아는 어떨까. 뭐가 좋다라는 것이 소문이 나면 온전히 그것만 따라하지는 않았던가. 우리나라에도 좋은 육아방법들이 있을텐데도 우리 것은 무조건 나쁘고 서양의 방식들이 왠지 좋아보이곤 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에 살면서 서양의 육아방식만을 쫓아간다면 그것 또한 아이들에게는 혼란만 키울지도 모르기에 상황에 맞도록 적절하게 혼합하는 방식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런 관점에서 캐서린 크로퍼드의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는 깊은 공감을 하며 읽었던 책이다. 미국에 사는 저자가 프랑스 육아방식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아이들의 태도에 있었다. 하지말아야 할 행동과 해야할 행동을 아이들 스스로 컨트롤 하는 모습속에서 프랑스만의 특별한 육아방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프랑스 방식을 지지하며 따르는 것이 아니다. 모유수유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아이들과의 신체접촉 횟수, 예절 등 부딪히는 부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저자가 느꼈던 혼란스러움에 대해 솔직한 생각들을 풀어 놓았다. 저자의 잘못된 육아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배워야 할 점은 실전에 응용해 보며 적극적인 육아를 한다. 개인 블로그에 아이와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을 보는 관점은 다를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아이의 프라이버시 침해로 볼 수 있겠지만 미국의 엄마들은 아이와의 일상을 기록하며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개인의 취향일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스타일 육아법은 어떤 면에서 땅을 새로 갈고 잡초를 뽑고 씨앗을 뿌려 다른 정원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과정과 비슷하다. 즉, 목표하는 바가 뚜렷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를 확실히 안다는 뜻이다. 그 조치만 잘 취하면 씨앗의 성장을 방해할 만한 요소는 없다. 토질 정도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할까? 그런데 미국 스타일 육아법은 자라서 무엇이 될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씨앗을 무조건 땅에 뿌리는 행위에 가깝다. 그러면서 비료와 물, 공기, 공간, 빛을 완벽히 조절하고 공급함은 물론이요, 때로 지지대까지 세워 씨앗이 자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마련해주려 애쓴다." (본문 116쪽)

 

수많은 육아서 중에서도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선진국이라고 하는 서구에서도 육아에 대해 처절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과 그네들이 좋다는 육아법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유용한 부분을 추출하고 미국의 상황에 맞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프랑스식 육아법이 육아에 대한 해법이고 전적으로 옳다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미국인이라면 미국인으로서 실천할 수 있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통해 육아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응용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취하면 된다. 아이를 갖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이 세워져 있어야 하고 그 가치관에 맞는 육아 방법들을 찾아 응용해야 한다. 유행하는 육아법이나 선진국의 육아법이 100프로 우리 아이에게 맞을 수는 없다.

 

우리는 요즘 지나치게 자존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주변에서 하도 '자존감' 하길래 자존감을 키우는 육아법에 대해 마구잡이로 조언을 구하다보니 자칫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선별없이 따라해서 그런지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자칫 버릇없고 자기만 아는 아이로 자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자존감을 위해서 버릇없는 행동까지도 오냐 오냐하고 칭찬할 일도 아닌데 무조건 잘했다고 추켜세우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가 바라는 아이는 버릇없는 아이가 아니라 예의를 알면서도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아이일 것이다. 스스로 세상의 고난에 맞서 헤쳐 나가는 독립적인 존재로 키워야지 나의 미니미는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엄마가 행복해지자. 멋진 아빠들은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가 아니라 아내에게 잘 하는 아빠라고 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것을 아는 아빠들이 아닐까 싶다. 그 위에 아이와 올바른 관계를 설정하고 유지해 나간다면 아이들은 커가면서 삶의 환희를 누리고 소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줄 아는 능력을 아는 아이로 커가지 싶다. 공감한다면 프랑스 엄마들에게서 유용한 방법들을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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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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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만날 때마다 빨리 죽고 싶은데 마음처럼 죽어지지 않는다며 푸념 반 한탄 반 하시던 할머니를 알고 있다.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늘 짐이 된다는 것이 할머니가 빨리 죽고 싶은 이유였다. 할머니의 진심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러고도 할머니는 10년은 더 사셨고 아흔이 넘는 나이에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는 것이다. 인생은 생각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람과는 다르게 고달픈 삶이 펼쳐지는 것이 또 인생이다. 그럼에도 그 고달픈 삶 때문에 살아지기도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을 할머니는 일찌감치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를 읽다 보니 자꾸만 할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인생의 비밀을 꿰뚫고 계셨던 할머니처럼 오베라는 남자가 경험했던 인생의 숨겨진 비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집스러울 만큼 원칙을 따지는 남자, 선으로 따지자면 직선을 닮은 까칠하고 융통성 없는 한 남자가 살아가는 곧은 삶의 방식이 빌어먹을 간섭쟁이 이웃들과 만나 어떻게 변화하고 어울리며 살아가는지를 따뜻하고 감동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평생을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삶의 규칙 만큼은 까다롭게 굴었던 남자, 오베와 그런 오베를 끝까지 이해해주고 믿어주었던 아내, 소냐가 있다. 하지만 소냐는 이 세상에 없다. 소냐가 세상을 떠나던 날, 오베도 삶을 멈추었다. 오베였던 남자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오베였던 남자 이웃에 새로운 가족들이 이사오면서 개념 없고 간섭하기 좋아하는 이웃에 전쟁을 선포한 오베라는 남자가 있다. 소냐가 세상을 떠난 후 오베였던 남자는 매일 자살을 시도하지만 이웃들의 간섭과 방해 때문에 죽지도 못한다.

 

​오베였던 남자는 세상에 둘도 없는 로맨티스트였다. 오베에게 사랑은 기다림이고 그리움이었다. 한 여자를 위해 평생 해보지 않았던 거짓말을 하는 거였고, 그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여자를 위해 부조리한 사회와 싸워야 하는 것이었다. 소냐는 세상에 홀로 남은 오베에게 미소를 보내고 손을 내밀어 준 유일한 여자였다. 흑백이었던 오베에게 색깔이 되어주었다. 소냐는 오베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그런 소냐를 위해서라면 평생을 부조리와 싸울 수도 있었고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소냐는 누구보다 그런 오베를 이해해 주던 여자였다. 오베의 원칙을 이해했고, 오베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고 묵묵히 뒤에서 지지해 주던 소냐. 소냐 없는 세상은 죽은 삶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색깔이 사라져버린 세상에 홀로 남겨진 오베에게 세상은 생기라고는 없는 잿빛 세상이었다.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인생을 사는 오베에게 소냐는 어둠을 쫓아버리는 한줄기 빛이었다. 사람들이 왜 그를 사랑하느냐고 소냐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대부분의 남자는 지옥 같은 불길에서 달아난다고, 하지만 오베 같은 남자는 그 안으로 뛰어든다고 대답했다.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을 알지 못한다.

 

"그녀는 종종 "모든 길은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일로 통하게 돼 있어요" 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그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것'은 아마도 '무엇'이었으리라. 하지만 오베에게 그건 '누군가'였다." (본문 114쪽)​

 

그리고 오베라는 남자는 세상에 자신이 심어놓은 원칙을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는 그저 모종의 질서가 존재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통념 따위 먹히지 않는 까칠한 남자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오베는 비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살도 그렇다. 자살은 절대 안된다라는 통념을 따르기보다는 의미없는 삶을 스스로 끝내려고 했다. 비록 방해꾼들에 의해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그는 스스로 깨닫는 것만이 자신의 삶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던 주체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만나면서 원칙이나 신념도 좋지만 함께 어울려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간섭하기 좋아하고 예의라고 없는 이웃들이 있어서 자전거 하나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두고 이제 마음놓고 죽을 수도 없다. 빌어먹을 간섭쟁이 이웃들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들이 생기고 그렇게도 삶은 계속된다.

 

우리 인생도 사실은 얄미운 사람들, 쓸데없는 일들 때문에 고통받는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무언가를 위해 열정적으로 싸울 때 그것이 살아가는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안하고 오로지 평화로운 상태만 유지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가끔은 평화로운 삶에 균열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오베는 안다. 더 이상 남아 있는 시간이 없을 때 다른 것을 위해 살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것이 추억이고, 그 추억들로 우리 삶도 의미있는 것이라고. 세상에는 다른 이의 미래를 위해 사는 것도 있다라는 것을 알 것이다.

 

모든 삶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마치 아무 이유없이 세상에 뚝 떨어진 것 같지만 모든 삶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 그렇다. 오베라는 남자를 이해하려면 오베의 삶을 이해해야 된다. 모든 인생에는 이유가 있다. 이제 우리 삶에도 나답게 그답게 우리답게 그네들답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원리 원칙을 고수하며 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냉혈한과 원칙대로 살지만 가슴속에 사랑이 많아 정이 넘치는 사람. 오베는 까칠했지만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행복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라고 소냐는 말했다. 자기 생각처럼 세상은 돌아가지 않지만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 짧은 인생을 통해 얻게 되는 인생의 법칙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사랑은 기다림이고 그리움이라 말하며 인생은 예측불허라고 말하는 책이다. 왠지 영화 속 캐릭터와 잘 맞을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올해 영화로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오베라는 남자가 어떻게 영화 속에 녹아들어 관객들을 만날지 너무나 기대된다. 책이 아닌 영화로 만나도 너무나 매력적인 오베라는 이 남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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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간들 - 이보영의 마이 힐링 북
이보영 지음 / 예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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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작가의 독서 에세이를 읽고 있노라면 으레 열패감이 들기 마련이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들을 잘도 캐치하고 뛰어난 필력으로 책을 포장해주기 때문이다. 공감이 먼저가 아니라 작가들의 안목과 세상을 다르게 보는 능력을 마냥 부러워하게 된다. 이보영 님의 신간 <사랑의 시간들>은 그런 부담을 내려놓고 읽게 되어 공감을 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읽은 책만 봐도 그렇다. 지적 척도를 가늠할 어려운 책들이 아니다. 누구나 읽고 공감했음직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녀 스스로 가식이나 허위로 자신을 포장하려고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독서가 취미인 배우가 책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어떤 사람들은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다르기도 하고,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백 퍼센트 일치하는 사람도 있다. 배우 이보영 님은 연기를 통해 쌓아온 곧은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실제 모습은 어떨까 궁금했다. 한 권의 책으로 그 사람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는 있다. 이보영 님은 연기를 통해서 보아온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일치하는 사람 같다. 인기에 연연하기보다는 진심을 담은 연기를 하고 시청자들과 교감하고자 노력하는 배우라고 알고 있는데, 책에서 느껴지듯 삶을 바라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자세가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솔직한 마음을 엿보는 게 이런 느낌일까. 마음속 응어리가 먼저 반응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솔직해져 본 적 없는 숨은 감정들이 꿈틀대는 것만 같았다. 어릴 적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 마음속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 결코 꺼낼 수 없었던 상처를 꺼내보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생각과 말이 다른 모습을 연출했던 스스로의 모습도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의 솔직한 울림이 독자들에게 꽁꽁 숨겨둔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녹여준다. 그녀가 책으로 받았던 위로를 책으로 위로를 한달까.
"시간이 흘러 나는 내 기준으로 아이를 판단하는 어른이 되고 말았다. 예전의 그 마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이의 눈을 가진 엄마가 되겠다던 결심은 사라지고 내 생각만 더 분명해진 어른이 됐다. 촬영장에서 아역 배우들을 만나면 마냥 예쁘고 귀여웠는데 이제는 일에 치여 아이들이 그저 연기만 잘해주기를 기대했다" (본문 53쪽)
세월을 따라 책과 함께 의미 있는 성장을 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나이 먹는 것을 한탄하기는 쉬워도 나이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어른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가 마주하고 성장해 왔던 시간을 만나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드러내지 못한 내 안의 감춰진 욕망도 들여다보며 나도 조금씩 성장을 해 나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로도 얻게 된다. 어제와 다른 내가 생각하고 숨 쉬고 있다는 기쁨은 책을 읽는 즐거움이자 독자들의 특혜가 아닐까 한다.

책을 대하는 이보영 님만의 고운 마음도 그냥 흘려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책의 가치는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한다. 한 번 스윽 읽고 마는 인스턴트식 책 읽기보다는 다른 환경, 다른 마음가짐으로 읽어보며 의미를 새롭게 하는 것도 책이 주는 가치겠고, 삶의 나침판이 되어주었다가 친구가 되었다가 위로가 되었다가 외로움을 달래주기도 하고 스스로를 깨우치게 도와주는 것이 책이다. 인생에 책이 그만큼 깊이 관여하고 있는데 책을 대하는 마음이 게으르고 거만할 리가 없다.

행복, 사랑, 나이 듦,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 성공, 후회, 욕망..................이 모든 것들은 인간이라면 살면서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지혜롭게 헤쳐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의미 있게 변화시키기도 하고 누군가는 무심한 듯 지나쳐 가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현재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자기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줄 줄 아는 사람일 것이기에 내가 너일 수 있고 너로 인해 네가 나일 수 있다는 삶의 위로를 보내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배우 이보영이 자신과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 아닌가 한다.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가 독서 에세이를 책으로 내자고 의뢰해왔다고 치자. 책을 내기로 하고 책에 들어갈 책들을 선택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울렸던 책들이 책 한 권 낼 정도의 독서량도 있어야 할 것일 테고 독서 에세이인 만큼 책을 통해 일관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고된 촬영 후에도 꾸준히 독서를 해 오고 있는 면도 그렇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해 가는 모습도 그렇고 배우 이보영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를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 배우가 하는 연기도 다르지 않았을까. 연기 잘하는 배우로 선한 이미지를 각인시킨 이보영만의 매력이 꾸준한 독서습관에서 온 것이라면 과장일까. 아마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가끔은 그녀의 멋진 연기를 보면서 그녀의 책을 읽으며 힐링했던 지금의 나도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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