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와 까마귀
김란희 지음 / 비공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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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와 직녀 이야기의 다른 버전, <까치와 까마귀>

다가오는 설날에 읽으면 좋을 동화 한 편을 소개해 드릴게요. 바로 김란희 작가님의 <까치와 까마귀>랍니다. 제목을 보고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제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노래가 떠올랐아요. 또다른 생각은 우리나라에서 길조인 까치와 흉조인 까마귀가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궁금한 마음으로 읽었지요. 읽고 나니, 이 책은 오히려 우리가 알고 있던 설화인 "견우와 직녀"의 새 버전 동화라고 소개하고 싶어졌어요.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은하수를 사이에 둔 두 별이 칠석에 까마귀와 까치가 놓은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이야기잖아요.



이 책은 그 견우와 직녀를 새들이 어떻게 오작교를 만들어 주었을까? 에 대한 상상력을 보태줍답니다. 제가 보는 까치는 다 까치요. 까마귀는 다 까만 까마귀인데요. 저자는 까치와 까마귀의 특징을 재치있게 설정했어요. 이 중 큰부리까마귀가 주인공이랍니다.

도대체 해마다 이날만 되면 왜 비가 오는 거야?

김란희, <까치와 까마귀> 중에서

하늘에서 비가 굉장히 많이 내리고, 천둥도 우릉쾅쾅 치는 바람에 마을의 많은 세간살이가 떠내려가요. 덩달아 새들이 먹을 먹이도 거의 없게 되지요. 원인이 궁금한 큰부리까마귀가 하늘에 올라가보니, 그 비는 바로 견우와 직녀의 눈물이었어요. 두 눈물이 만나면 천둥이 치는 것이였고요. 고민 끝에 새들은 견우와 직녀를 돕기로 한답니다. 과연 견우와 직녀는 무사히 만났을까요?

캐릭터가 살아있는 까치와 까마귀의 이야기

우리가 알고 있듯이 까치와 까마귀는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아요. 특히 풀빛까치는 큰부리까마귀와 투덜투덜하지요. 물론 풀빛까치의 일방적인 미움이지만 나중에는 큰부리까마귀를 도와주게 된답니다.

풀빛까치는 몸을 움추립니다.

여러 번 큰부리까마귀에게 싫다고 말한 것이 떠오릅니다.

큰부리까마귀는 풀빛까치에게 나쁘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오히려 큰부리까마귀는 은하수까지 다녀왔잖아요.

풀빛까치는 큰부리까마귀의 너른 어깨가 생각납니다.

마음이 든든합니다.

'서로 힘을 모은다고?

나도 힘일 될까?

사실,

나도 조금은 힘이 되고 싶어.'

저는 풀빛까치의 저 문장이 굉장히 좋았아요. "사실, 나도 조금은 힘이 되고 싶어" 이런 이야기는 새들의 이야기로 읽는 것이 아닌, 인간들의 이야기로 읽어야 더 제 맛이겠죠? 저의 인생관은 큰부리까마귀처럼 용기있는 삶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용기 있는 사람들은 우러러보는 쪽에 가깝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 옆에서 조금의 힘은 보태고 싶은 제 마음을 풀빛까치가 대변해 준 것 같았어요. 대견하고 고마운 장면이였답니다.

웃긴 장면도 있었어요. 김대감님의 마을의 배부른까마귀는 언제나 먹을 것이 풍족하지요. 이렇게 많은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요. 하지만 다른 까마귀나 까치는 그렇지 못하답니다. 큰부리까마귀가 힘겹게 먹은 애벌레를 비행하다 보니 "똥"이 마려운거예요. 그 때, 입을 벌리고 있는 배부른까마귀 입 속에 빗물과 함게 똥이 떡! 떨이질 때, 통쾌하게 웃으면 읽었답니다. 우리 주변에도 내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때로는 그들에게 이런 똥같은 벌이 살포시 내려지기를 바라봅니다.



말을 예쁘게 지어내시는 김란희 작가님

김란희 작가님의 <까치와 까마귀>을 읽다보면, 말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작가님이 시도 쓰지지 않을까 유추해 보았는데, 다른 동화만 더 책날개에 소개가 되었어요. 몇가지 재미난 문장을 만나 볼까요?

  • 큰부리를 내밀려 발딱발딱 제자리 뛰기를 합니다.

  • 물기를 머금고 있는 지붕을 배로 시르르르르 타고 내려옵니다.

  • 쭈르르 매끄러지고 또 떼굴떼굴 구르고 놉니다.

  • 도코리골로 포롱포롱 날아갑니다.

  • 까치와 까마귀들은 날개가 근질근질합니다.

  • 그때 떡더글 떡더글 엄청난 소리르 내며 천둥이 울렸어요.

  • 큰부리까마귀를 시새우며 생긴 슬미움이 없어져 버린 거예요.

무엇보다 까치와 까마귀들의 이름이 예뻐서 애정을 갖고 읽게 되더라고요.




약 20년 뒤에 출판했지만 여전히 따듯한 동화 <까치와 까마귀> , 이런 분들에게 추천해요.

김란희 작가님은 1991년 청년통일문학상공모전에서 <까치와 까마귀>로 통일상을 수상했어요. 까치와 까마귀를 남과 북의 상징성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겠지요. 저는 그렇지 않더라도 이 책은 아이와 어른에게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책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76쪽의 분량으로 저자가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를 독자가 받았다면, 참 좋은 동화겠지요?

작은 날개짓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까치와 까마귀> 책 표지

저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인생에서도, 사회에서도, 나라에서도, 지구촌 차원에서도 말이죠. 우리의 선한 날개짓이 주변에 많은 좋은 영향력을 끼쳤으면 좋겠어요. 그럼 의미에서 이 책은 누구나 읽어도 참 좋다고 결론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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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에 멈춘 풀꽃시계
윤삼현 지음, 김천정 그림 / 아침마중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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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역사를 서사 동시로 풀어낸 동시집, <4시에 멈춘 풀꽃시계>

특별한 동시집 한 권을 소개할게요. 바로 윤삼현 시인의 서사 동시랍니다. 다양한 동시집을 읽어본 편인데, 서사 동시로만 시집 한 권을 꽉 채운 동시는 처음이었어요. 그것도 주제가 하나로 귀결된답니다. 시인은 머릿말에서 4.19 서사 동시를 쓰게 된 계기는 오롯이 형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어요. 네 발의 총탄을 맞고 죽게 된 형이 얼마나 사무치게 보고 싶었을까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사회 시간에 '한국사'를 배우고 있어요. 역사를 배우는 방법은 다양하지요. 학교 교과서로 접할 수 있지만 내용이 너무 축약되고, 정보도 한정적인 아쉬움이 있어요. 소설이나 영화로 접하게 되면, 오히려 그 시대의 역사를 더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강 소설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마음이 먹먹해지며 한동안 그 시간에 저도 다녀온 것 처럼 마음이 아팠어요. 이번에 이 시집, 윤삼현의 <4시에 멈춘 풀꽃시계>를 읽으며, 동시로도 역사를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꽃 피고 새 노래하는 사월이 오면

더욱 그리워지는 형.

그날 형을 데려간 사월의 꽃바람은

가슴을 긋는 아픔이다.

그날 물큰한 아픔은 붉은 노을처럼

강렬한 기억으로 머물고 있다.

그러나 형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고귀한 피를 흘려

자유민주주의의 새 하늘을

활짝 열어놓은 형.

형의 용기있는 삶과 생생한 기억이

시가 되었다.

- 시인의 말 중에서 -




서사 동시 몇 편을 소개해요.

풀꽃시계

빈 들판을 키 작은 들풀이 채우고

솔밭 새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를 깨웠다.

소년은 들로 나가 염소 풀을 뜯긴다

내년이면 아기 염소 같은 일학년 동생들이 생긴다

1960년을 떠올리면 희망이 물살친다

툭 터진 들판을 향해 손나팔을 하고 외친다

새 해야 어서 와라!

문득 서울에서 공부하는 형이 그립다

신문배달을 하면서 공부하는 형은 고교 2학년

진학반이 눈앞이라 공부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지난 방학 때 내려온 형이랑 봇둑에서

토끼풀 풀꽃시계 두 개를 만들어 손목에 동여맸다

-자유당이 떡 주무르듯 제 맘대로 정치를 하고 있지만

반드시 자유 정의가 꽃피는 봄날이 꼭 올 거야

이 풀꽃시계는 그 날을 불러내는 민주의 시계란다

마음 속 째깍째깍 돌아가는 풀꽃시계

풀꽃시계가 꿈틀 살아 반짝거렸다.

윤삼현, <4시에 멈춘 풀꽃시계>, pp.20~21

서사시 속 주인공과 형은 나이차가 꽤 납니다. 큰 형이 얼마나 위대하게 보였을까요? 작은 동생이 얼마나 귀여웠을까요? 자주 못 보는 형이라 형과 함께한 추억 하나하나가 시에서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형과의 시간을 그리워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시 곳곳에 뭍어나요.



붉게 물든 풀꽃시계

서대문 국회의장 자택 앞

오후 3시를 넘기자 대학생 천 여명이 달려와 합세했다

선두에 선 형과 흥분한 학생들이 저지선을 밀어붙였다

- 바리게이트가 무너졌다!

-와!

시위대가 황소처럼 들이닥쳤다

의장 자택에 5미터까지 다가섰다

시위대는 의장 집을 겹겹이 에워쌌다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를 휘둘렀다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경찰이 오후 4시 경

일제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 탕! 탕탕탕!

시위대 맨 앞의 형이 쿡 쓰러졌다

네 발의 총탄이 박힌 형,

아까운 꽃잎이 고개를 떨구었다

붉은 피가 아스팔트를 물들였다

붉은 피는 가슴에 품은 형의 풀꽃시계를 물들였다

형의 민주의 시계바늘이 뚝 멈추었다.

윤삼현, <4시에 멈춘 풀꽃시계>, pp.104~105

시를 읽으며, 마음이 계속 아팠다. 시인은 괜찮았을까? 1960년대, 시인은 초등학생이었다. 책에 수록된 44편의 서사시를 통해 형에 대한 애잔한 마음이 조금은 녹아졌기를 바라본다.

윤삼형의 서사 동시,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해요!

  • 아침 마중에서 나온 청소년 시집으로, 역사를 배우는 중고등학생이 읽으면 좋아요.

  • 초등학생이 이 책을 읽고, 역사에서 관심을 갖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민주주의 정신을 잊지 않을 어른이 읽어보아도 좋겠어요.

보통 동시집은 짧은 시간에 금새 읽게 되지요. 하지만 이 동시집은 읽다가 자꾸 멈추게 되더라고요. 마음이 아팠거든요. 이런 특별한 시집을 내준 저자와 시의 주인공이자, 우리나라를 위해 애써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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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매실 2025-11-21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픈 현대사를 배경으로 안타까운 가족사가 맞물려 더욱 찡한 감동을 낳는 서사동시집, 인상 깊은 책입니다.
 
장석주 따라쓰기 - 큰 고니가 우는 밤 처음책방 필사책 5
장석주 지음 / 처음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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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한 알'의 시인은 누구일까요?

시인의 이름을 잘 몰라도 시를 보거나 듣다 보면, "아!"할 때가 있지요. 저도 이번에 장석주 시인의 이름을 보고는 내가 모르는 시인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시집을 읽다보니, 유명한 '대추 한 알'을 쓴 시인이더라고요. 한동안 저의 화장대 앞에 놓아두고 필사한 책을 소개합니다. 바로 <장석주 따라쓰기> 지요. 50년이 되는 세월동안 시를 썼다고 해요. 그 중 이번 <장석주 따라쓰기> 필사시집에서는 76편이 수록되어 있답니다. 필사할 때, 좋았던 점은 책이 예쁘게 펴져서 편했답니다. 편집을 신경써서 한 게 느껴졌어요.



<장석주 따라쓰기> 필사한 시 몇 편을 소개해요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장석주 따라쓰기>, p.186

대추 한 알의 시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이었어요. 어떻게 저 작은 대추 한 알을 보며, 시인은 저리 깊은 생각을 했을까? 하는 마음이었지요. 저는 지금 제 아들을 키우는 마음이 대추 한 알과 비슷해요. "내가 알아서 할게!"를 달고 사는 아들에게 이 시를 헌사하고 싶은 마음이랍니다. 육아의 보답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때론, 엄마의 말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거든요.

가을의 시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연인들은 헤어지게 하시고

슬퍼하는 자들에겐 더 큰 슬픔을 얹어 주시고

부자들에겐 귀한 걸 빼앗아

재물이 하찮은 것임을 알게 하소서

학자들에게는 치매나 뇌경색을 내려서

평생을 닳도록 써먹은 뇌를 쉬게 하시고

운동선수들의 뼈는 분리해서

혹사당한 근육에 긴 휴식을 내리소서

스님과 사제들은

조금만 더 냉정하게 하소서

전쟁을 하거나 계획중인 자들은

더 호전적이 되게 하소서

폐허만이 평화의 가치를 알게 하니

더 많은 분쟁과 유혈혁명이 일어나게 하소서

이 참담한 지구에서 뻔뻔스럽게 시를 써온 자들은

상상력을 탕진하게 해서

더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하소서

휴지로도 쓰지 못하는 시집을 내느라

더는 나무를 베는 일이 없게 하소서

다만 사람들이 시들고 마르고 바스러지며

이루어지는 멸망과 죽음들이

왜 이 가을의 축복이고 아름다움인지를

부디 깨닫게 하소서

<장석주 따라쓰기>, pp.72-75

충격적이고 재밌는 시지요? 처음엔 지금 계절인 '가을'이 눈에 들어와서 읽게 됐는데, 내용을 읽다보니 흥미롭더라고요. 문장 하나하나가 저주가 아닌 소중한 것을, 당연한 것을, 이미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시 같아요. 저는 보통 아프고 나서야 건강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깨닫게 되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아이가 열이 38도가 넘자, "아이의 열이 떨어지게 해주세요"이 마음 하나뿐인 기도를 했었어요.

필사를 한다는 것은

시 필사는 단지 시를 베껴 쓰며 시를 감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고요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시와 감응하는 일이고,

시를 마음으로 품고 톺아보는 일,

시를 가장 온전한 방식으로 향유하는 행위이다.

시를 베껴 쓰는 일에 몰입할 때

단지 묵독으로 읽으며 놓쳤던 시의 숨은 의미를 수확학는

뜻밖의 행운을 거머쥘 수도 있다.

<장석주 따라쓰기> 중에서

이번에 장석주 시인의 시를 필사하며 잠시나마 마음이 평화로워서 좋았다. 오래만에 손가락이 아프다는 것도 느꼈다. 장석주 시인의 시들은 길이가 꽤 길다. 내 글씨가 예쁘지 않아서 다 쓰고 나서 자꾸만 내 글씨가 아닌, 원래 시집의 시를 읽게 되기도. 대추 한 알의 시로만 알고 있었던 게 미안할 정도로 좋은 시들이 많았다. 다른 분들도 이번 가을에 <장석주 따라쓰기>의 시집 한 편을 소장해서 필사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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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따라쓰기 처음책방 필사책 4
박인환 지음, 김기태 엮음 / 처음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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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한 권의 시를 읽고, 마음을 들여볼 수 있는 여유가 있기를

오랜만에 시집 한 권은 오랜 시간 동안 읽었다. 박인환 시인의 <박인환 따라쓰기> 책이다. 이 책은 필사책으로 박인환 시인의 시가 45편 수록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필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줄칸으로 되어있다. 동시는 틈틈히 읽는 편인데, 오랜만에 시를 읽으니 다소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여러 번 읽어본 시들이 꽤 되었다. 조금이라도 시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 말이다. 다 이해가 간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좋았던 시 두 편을 소개해 본다.



<박인환의 따라쓰기> 시집에서 인상 깊었던 시 두 편

행복

노인은 육지에서 살았다.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시들은 풀잎에 앉아

손금도 보았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정사한 여자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을 때

비둘기는 지붕 위에서 훨훨 날았다.

노인은 한숨도 쉬지 않고

더욱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성서를 외우고 불을 끈다.

그는 행복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거저 고요히 잠드는 것이다.

박인환, <박인환 따라쓰기>, p.96

박인환 시인은 1950년대에 활동한 시인이다. 여전히 우리나라가 혼란한 시기에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박인환 시인은 심장마비로 3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목마와 숙녀> 는 시인의 사후 20년이 지난 1976년에 시집으로 나오게 된다. 이번 <박인환 따라쓰기>에 수록된 45편의 시가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내가 좋았던 '행복'이라는 시를 다시 살펴보자. 일단 시인이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어떤 시를 썼을지 궁금했다. 최근에 독서모임에서 행복에 대한 각자의 개념을 나눠보았다. 행복에 대한 내가 내린 두 가지 생각이 있다. 첫 번째는 '행복을 달라 했는데 감사를 배우라했다.'는 표현이다. 이 문장은 내가 만든 것은 아니고, 어떤 행사에서 캘리그라피로 예쁜 문장을 써주었는데, 내가 고른 글귀다. 생각해보면, 행복은 감사를 인식하는 데서 부터 오는 듯하다.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우리는 애를 쓰지만, 사실은 그 옆에 수 많은 행복의 세 잎 클러버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두 번째 행복에 대한 생각은 '행복은 포착하는 것이다.'라는 점이다. 무엇 무엇을 하면(이루면), 행복이 오겠거니가 아닌, 하루하루의 행복한 순간을 내가 발견하고, 그 순간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박인환 시인의 행복에서도 노인은 거창한 행복을 바라지 않았다.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차 한잔을 마시고, 성서를 외우고, 고요히 잠드는 일상. 시인에게 행복이란 평온함이 아니였을까? 가장 좋았던 문장은 "시들은 풀잎에 앉아 손금을 보았다"는 표현이다. 풀잎을 고요히 바라보았을 시인의 눈이 떠오르고, 풀입을 바라보다보니 시인의 시상이 풀입에 내려앉아을 것만 같다. 참신하고도 예쁜 표현이다.

목마와 수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라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이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 <박인환 따라쓰기>, pp.6~9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본 시였다. 이 시가 박인환 시인의 시라는 것을 몰랐을 뿐. 이런 시는 어떻게 음미해야 할까? 시의 의미를 알듯말듯 하다.

처음책방 필사책 시리즈의 네 번째. <박인환 따라쓰기>

좋은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의 가장 위대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며,

그것을 따라 쓰는 것은 그 위대한 사람의 마음에 내 마음을 보내는 일입니다.

<박인환 따라쓰기> 중에서

처음책방 필사책 시리즈에는 김소월, 김영랑, 윤동주 등이 있다. 이번에 내가 읽은 시리즈는 네 번째로 내가 잘 몰랐던 박인환 시인의 시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 뒷 부분에 있는 '김기태의 초판본이야기'도 흥미롭다. 시집을 읽다가, 멈춰보고, 필사해본다면, 이번 겨울 같은 가을의 어느 순간을 오랜 시간 동안 기억에 붙잡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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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찾겠다 꾀꼬리 -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시 동시문학
송영숙 지음, 양채은 그림 / 아동문예사(세계문예)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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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할머니로 본인을 소개하는 송영숙의 <못 찾겠다 꾀꼬리!> 동시집

요즘에 동시를 자주 읽고 있어요. 짧은 시간에 동심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못 찾겠다 꾀꼬리!>의 송영숙 동시작가님은 도동이 할머니로 불린다고 해요. 서관, 시, 야기 할머니의 줄임말이지요. 도서관 관장이었던 도서관 할머니에서 동시 할머니까 되기까지.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할머니지요? 저는 시인의 말에서 작가님이 쓴 말에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동시 한 편을 빚어내기 위해서

주위에 있는 사물을

특별한 눈과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

아무런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지나쳐 버리기 일쑤인

모든 것들을 어린이의 마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본다는 것,

그런 마음을 가져야만

동시를 빚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게 되었지만,

한 편의 동시를 어렵게

빚어 내었을 때의

평온해지는 마음을 숨길 수는 없지요.

송영숙, <못 찾겠다 꾀꼬리!>, p.6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살면 참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나 다르게 세상이 보일까요? 얼마나 예쁘게 세상이 보일까요? 특히 한 편의 동시를 어렵게 빚어 냈을 때, 평온해진다는 마음이 인상 깊었어요. 잘 써지는 동시도 있겠지만, 매달리고 매달려도 뭔가 못마땅한 동시도 있었을테니까요. 동시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편안하게 훌훌 읽은 게 미안해지기도 하네요.

같은 소재의 서로 다른 동시들, <못 찾겠다 꾀꼬리!>

다양한 동시집을 읽다보면, 시인은 챕터별로 동시를 묶어 놓긴 했지만 공통점을 못 느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송영숙의 <못 찾겠다 꾀꼬리!>의 동시집은 목차별로 그 차이점이 확 다르게 느껴졌어요. 무엇보다 소재는 같지만 다른 느낌의 동시들이 있어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답니다. 텃밭, 매미, 단풍잎, 눈, 나비, 한자 등 같은 단어도 시인의 생각이나 감정에 따라 다르게 표현한 점이 좋았어요. 그 중 요즘 날씨에 딱! 어울리는 가을 소재의 동시 두 편을 소개해 볼게요.


바빠진 가을

쪽빛 하늘이 아주 높다.

짓눌리던 무더위 사라지고

하늘을 날 듯 마음 가볍다.

머리 위로

바람도 선뜻 시원하다.

등짝에 내리꽂히는

햇볕은 따갑다.

따가운 햇볕 따끈따근

벼이삭 익는 소리 들린다.

새콤달콤 맛 드는

과수원의 빨간 사관 보인다.

창밖 감나무 한 그루,

초록색 감에 부지런히

감색 칠을 한다.

너무 더워 게으름 피다가

갑자기 정신 차린,

몹시 바빠진 가을이다.

송영숙, <못 찾겠다 꾀꼬리!>, pp.34-35

여름이 점점 더워지고 길어지고 있는 듯 해요. 낮엔 여전히 덥지만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진 날씨가 반갑기만 하네요. "너무 더워 게으름 피다가 갑자기 정신 차린, 몹시 바빠진 가을이다."라는 표현이 공감되고 재밌었어요. 몸시 바빠진 가을아~기다리고 있단다.

곶감

나는 쭈글쭈글 주름이 많아.

그래서 이쁘진 않아.

그래도 모두 날 좋아하지.

왜냐구?

달고 쫀득쫀득,

부드럽고 맛이 좋거든.

앞니가 서너 개인 아가들이 좋아하고

앞니만 있는 할머니도 좋아해.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거든.

내가 처음부터 주름이 쭈글쭈글?

아니, 아니 너도 알 걸?

바알간 감이 얼마나 이쁜지...

가을 되어 발갛게 익은 감,

껍질 벗겨 가을볕에 말리면

나, 곶감 되지.

너희들 그거 알아?

우는 아기 뚝 그치게 하고

내가 호랑이도 쫓았다는 거.

송영숙, <못 찾겠다 꾀꼬리!>, pp.38-39


큰 아이가 병설유치원을 졸업했어요. 7살 반 담임 선생님이 전통을 중요시 여겼지요. 아이들이 봄에 벼를 심고, 가을에 수확해서 한움큼씩 집에 갖고 오기도 하고, 감을 유치원 입구에 주렁주렁 매달아 곶감으로 만들어서 집에 갖고 오기도 했지요. 추석엔 엄마인 저도 개량한복을 입고 전통놀이를 함께 하기도 했답니다. 겨울엔 아들이 목도리 뜨개질을 여러 개 해오기도 했고요. 곶감을 보면, 그때 아이가 갖고 온 소중한 곶감 2개를 온 식구가 나눠먹었던 추억이 생각나네요.

또 다른 추억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 중에 수정과에 곶감을 넣어서 주셨던 게 생각나요. 곶감 안에 호두를 넣고 돌돌 말아 예쁘게 썰어서 수정과를 먹으면, 최고의 후식이었지요. 송영숙의 <못 찾겠다 꾀꼬리!> 속의 곶감 시는 곶감의 입장에서 시를 써서 특별했던 것 같아요. 최근에 관점 디자이너가 패널로 나온 영상을 본 게 있어요. 관점을 바꿔야 삶을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요지였지요. 사람은 자신 위주로 생각하고 살아가기 마련이잖아요. 동시 중에 의인화된 동시를 만나게 되면, 관점을 바꿔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하루에 사물 한 개씩, 내가 그 사물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면 창의력도 쑥쑥 늘 것 같아요.

아이들과 따라서 써보고 싶은 동시, <못 찾겠다 꾀꼬리!>

마지막으로 한 편의 동시를 더 소개해 볼게요. 한자를 재치있게 표현한 동시가 꽤 있었는데, 그 중에 아이들과 해봐야 겠다고 찜~해둔 동시랍니다.


우리 가족 생일

한 일() 두 이() 석 삼()

넉 사() 다섯 오()

여섯 육() 일곱 칠()

여덟 팔() 아홉 구() 열 십()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아빠의 수수께끼

우리 가족 생일 한자로 쓰기

아빠의 생일, 九月十日

누워서 떡 먹기지.

엄마의 생일은 더 쉬워.

一月二十三日

내 생일도, 동생 생일도

한자로 쉽게 쓴다.

十月七日, 五月二十三日

송영숙, <못 찾겠다 꾀꼬리!>, p.97

한자를 어려워하는 아이들과 이 동시를 소리내서 읽고, 우리 가족의 생일도 함께 표현해 보려고 합니다. 이 동시집(송영숙, 못 찾겠다 꾀꼬리!)는 작가의 다섯 번째 동시집이라고 해요. 동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시집을 내고 계신 점이 존경스럽네요. 끊임 없는 창작 활동을 하고 계신 송영숙 동시 할머니의 <못 찾겠다 꾀꼬리!>, 많은 분들이 읽어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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