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의 시인은 누구일까요?
시인의 이름을 잘 몰라도 시를 보거나 듣다 보면, "아!"할 때가 있지요. 저도 이번에 장석주 시인의 이름을 보고는 내가 모르는 시인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시집을 읽다보니, 유명한 '대추 한 알'을 쓴 시인이더라고요. 한동안 저의 화장대 앞에 놓아두고 필사한 책을 소개합니다. 바로 <장석주 따라쓰기> 지요. 50년이 되는 세월동안 시를 썼다고 해요. 그 중 이번 <장석주 따라쓰기> 필사시집에서는 76편이 수록되어 있답니다. 필사할 때, 좋았던 점은 책이 예쁘게 펴져서 편했답니다. 편집을 신경써서 한 게 느껴졌어요.
<장석주 따라쓰기> 필사한 시 몇 편을 소개해요
대추 한 알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낱<장석주 따라쓰기>, p.186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장석주 따라쓰기>, p.186
대추 한 알의 시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이었어요. 어떻게 저 작은 대추 한 알을 보며, 시인은 저리 깊은 생각을 했을까? 하는 마음이었지요. 저는 지금 제 아들을 키우는 마음이 대추 한 알과 비슷해요. "내가 알아서 할게!"를 달고 사는 아들에게 이 시를 헌사하고 싶은 마음이랍니다. 육아의 보답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때론, 엄마의 말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거든요.
가을의 시주여 가을이 왔습니다연인들은 헤어지게 하시고슬퍼하는 자들에겐 더 큰 슬픔을 얹어 주시고부자들에겐 귀한 걸 빼앗아재물이 하찮은 것임을 알게 하소서학자들에게는 치매나 뇌경색을 내려서평생을 닳도록 써먹은 뇌를 쉬게 하시고운동선수들의 뼈는 분리해서혹사당한 근육에 긴 휴식을 내리소서스님과 사제들은조금만 더 냉정하게 하소서전쟁을 하거나 계획중인 자들은더 호전적이 되게 하소서폐허만이 평화의 가치를 알게 하니더 많은 분쟁과 유혈혁명이 일어나게 하소서이 참담한 지구에서 뻔뻔스럽게 시를 써온 자들은상상력을 탕진하게 해서더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하소서휴지로도 쓰지 못하는 시집을 내느라더는 나무를 베는 일이 없게 하소서다만 사람들이 시들고 마르고 바스러지며이루어지는 멸망과 죽음들이왜 이 가을의 축복이고 아름다움인지를부디 깨닫게 하소서<장석주 따라쓰기>, pp.72-75
가을의 시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연인들은 헤어지게 하시고
슬퍼하는 자들에겐 더 큰 슬픔을 얹어 주시고
부자들에겐 귀한 걸 빼앗아
재물이 하찮은 것임을 알게 하소서
학자들에게는 치매나 뇌경색을 내려서
평생을 닳도록 써먹은 뇌를 쉬게 하시고
운동선수들의 뼈는 분리해서
혹사당한 근육에 긴 휴식을 내리소서
스님과 사제들은
조금만 더 냉정하게 하소서
전쟁을 하거나 계획중인 자들은
더 호전적이 되게 하소서
폐허만이 평화의 가치를 알게 하니
더 많은 분쟁과 유혈혁명이 일어나게 하소서
이 참담한 지구에서 뻔뻔스럽게 시를 써온 자들은
상상력을 탕진하게 해서
더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하소서
휴지로도 쓰지 못하는 시집을 내느라
더는 나무를 베는 일이 없게 하소서
다만 사람들이 시들고 마르고 바스러지며
이루어지는 멸망과 죽음들이
왜 이 가을의 축복이고 아름다움인지를
부디 깨닫게 하소서
<장석주 따라쓰기>, pp.72-75
충격적이고 재밌는 시지요? 처음엔 지금 계절인 '가을'이 눈에 들어와서 읽게 됐는데, 내용을 읽다보니 흥미롭더라고요. 문장 하나하나가 저주가 아닌 소중한 것을, 당연한 것을, 이미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시 같아요. 저는 보통 아프고 나서야 건강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깨닫게 되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아이가 열이 38도가 넘자, "아이의 열이 떨어지게 해주세요"이 마음 하나뿐인 기도를 했었어요.
필사를 한다는 것은
시 필사는 단지 시를 베껴 쓰며 시를 감상하는 일이 아니다.그것은 고요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시와 감응하는 일이고,시를 마음으로 품고 톺아보는 일,시를 가장 온전한 방식으로 향유하는 행위이다.시를 베껴 쓰는 일에 몰입할 때 단지 묵독으로 읽으며 놓쳤던 시의 숨은 의미를 수확학는뜻밖의 행운을 거머쥘 수도 있다.<장석주 따라쓰기> 중에서
시 필사는 단지 시를 베껴 쓰며 시를 감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고요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시와 감응하는 일이고,
시를 마음으로 품고 톺아보는 일,
시를 가장 온전한 방식으로 향유하는 행위이다.
시를 베껴 쓰는 일에 몰입할 때
단지 묵독으로 읽으며 놓쳤던 시의 숨은 의미를 수확학는
뜻밖의 행운을 거머쥘 수도 있다.
<장석주 따라쓰기> 중에서
이번에 장석주 시인의 시를 필사하며 잠시나마 마음이 평화로워서 좋았다. 오래만에 손가락이 아프다는 것도 느꼈다. 장석주 시인의 시들은 길이가 꽤 길다. 내 글씨가 예쁘지 않아서 다 쓰고 나서 자꾸만 내 글씨가 아닌, 원래 시집의 시를 읽게 되기도. 대추 한 알의 시로만 알고 있었던 게 미안할 정도로 좋은 시들이 많았다. 다른 분들도 이번 가을에 <장석주 따라쓰기>의 시집 한 편을 소장해서 필사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