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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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위화/ 푸른숲


운명인연, 원청을 읽으면서 각인된 두 단어이다. 삶에서 인연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순하고 우직하며 성실한 린샹푸의 삶에 운명처럼 다가온 인연 샤오메이, 애초에 그들은 어떤 인연도 맺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운명처럼 정해진 인연은 이들에게 어떤 계기를 만들고 계기는 또 둘의 관계를 엮어 또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우리의 삶처럼 ...


인생에서 화복을 예측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모옌, 옌렌커와 함께 위화 작가의 글은 독자들을 빠른 전개로 몰아붙이며 강한 흡입력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8년 만에 신작으로 다가온 위화의 『원청』은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도시의 이름이다. 책은 두 개의 서사로 나누어진다. 전반은 린샹푸가 사건을 바라보는 시점이고 이후는 동일한 서사에 대해 샤오메이의 시점에서 읽히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풀어두지 않았으면 독자들이 제멋대로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는데 위화 작가는 작품 속 샤오메이를 무척 아끼고 있음이 읽혔다. 위화의 기존 소설이 중국 100년사의 시대별로 쓰여 있어 원청은 중국사 중 20세기를 궤적을 드러내는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의 배경은 청나라가 저물어가던 시기였고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던 때라 잔인한 토비라는 산적들이 날뛰며 서민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조실부모한 린샹푸는 집사 텐다의 보호 아래 성실하게 성장해 나간다. 살아생전 부모가 하던대로 벌어들인 것은 금괴로 바꾸어 자신만이 아는 장소에 숨겨두고 어머니가 하던대로 매파를 통해 자신의 혼처도 알아보고 있다. 평범하게 잘 살아가던 린샹푸에게 한 인연이 다가온다. 아창과 샤오메이는 오누이 사이라는데 전혀 닮지 않았다. 아픈 동생을 두고 잠시 다녀 오겠다던 아창은 돌아오지 않고 샤오메이는 오빠 아창을 기다리다 린샹푸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혼례를 치르고 린샹푸는 샤오메이를 믿고 자신이 모은 금괴를 보여주는데 며칠 후 금괴 중 몇개를 들고 샤오메이가 사라진다. 이후 샤오메이는 린샹푸의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이만 낳고 한 달만에 다시 사라진다. 젖먹이 딸아이를 두고 두번이나 자신을 배신한 아내 샤오메이를 찾으러 나섰다가 딸과 함께 정착하게 된 원청을 닮은 도시 시진에서 린샹푸는 갑부 구이민을 만난다. 이후 구이민의 도움으로 시진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천융량을 만나게 되어 그의 아내 리메이렌 덕분에 딸 린바이자를 키워내는데 큰 도움을 받는다. 이들의 인연은 마치 형제와도 같아 서로가 문제가 생기면 기꺼이 상대의 자녀를 자식처럼 맡아 키울 신의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천융량의 가족과 고향의 집사 텐다와 그 가족, 린샹푸와의 관계에서 정(情) 신의(信義)가 보여 인연의 좋은 면모를 보게되었다. 린샹푸는 천만금의 재산을 가진 것보다 얄팍하더라도 기술을 가진게 낫다는 어머니 살아생전 말씀처럼 자신이 잘하는 목공기술로 시진이라는 도시에서 조금씩 정착해 딸 린바이자를 키우며 샤오메이를 무작정 기다린다.


또 다른 인연은 구이민의 아들과 린샹푸의 딸의 혼인식에서 토비에 납치된 신부 린바이자 대신 토비에게 잡혀가는 천융량의 아들 천야오우의 이야기였다. 토비들에 의해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귀까지 잘리며 린바이자를 대신해 곤욕을 치르는 천야오우는 그나마 착한 '스님'이라 불리는 토비와의 인연으로 살아남게 된다. 린바이자는 자기 대신 잡혀갔다 온 천야오우가 너무도 안스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둘은 한 어머니의 젓을 먹고 자라 인연으로는 연결될 수 없다! 는 철칙같은게 있었다. 스님의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먹으며 고향 시진으로 돌아온 천야오우는 이후 또 다른 운명처럼 토비인 '스님'을 다시 만나게 되어 은혜를 갚는다.



원청은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으며 무작정 어린 딸을 안고 아내인 샤오메이를 찾으러 린샹푸가 떠나는 한 가닥 희망과 미지의 도시이다. 서두에 그려둔 작가 위화의 말처럼 누구나 사람의 마음속에는 유토피아 같은 도시 원청 하나쯤은 품고 살아간다. 책을 읽다 보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참으로 날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좀 한시름 살만하니 운명은 또 봄날의 햇살 가득한 정원을 밀어버리고 먹구름 가득 낀 태풍을 몰고 온다.


다 운명이지.


샤오메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린샹푸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고 시진이라는 도시에서 천융량을 만나지 못했다면 린샹푸의 삶은 얼마나 고달팠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난세의 시대, 약탈, 부정부패,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신뢰와 믿음으로 주변인들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인생은 참 살만한 것이라는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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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여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4
이서수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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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여자들

이서수/현대문학(PIN044)


83년생의 딸과 59년생의 엄마, 둘은 각자 나름의 사연들을 안고 살아왔다. 이땅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며 받은 불평등과 부당한 처우, 항상 평가받고 지적당하며 살아온 외모, 감추고 치부되어야 할 성적욕망 등에 대해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풀어 둔다.


작고 왜소한 몸을 가진 작가는 자신의 몸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았다. 학창시절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도 수치심에 공론화할 수 없었고 결혼 후에도 남편과 좁혀지지 않는 성적 이상은 결국 헤어짐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엄마의 삶은 유달리 발육이 빨라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성적수치심을 일으키는 행동을 하셨다니 보호해 주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가해를 하는 힘든 삶이 드러나 있다. 엄마의 시대는 그랬다. 가해를 한사람보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더 주눅들고 쉬쉬하며 문제를 감당했었던 시기였다.


이땅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삶은 어떤 것인가? 여자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라는 뒤떨어진 기준의 잣대로 판단하고 편협한 시선을 던지는 것. 안타까운 것은 남성만이 여성을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 다수 역시 별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부당함에 대해 정확하게 성찰하고 분명하게 언어로 드러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도 알았다. 왜 우리는 그런 용기를 어려워 하는지 수치스러운 일은 자꾸 감추려고만 하고 드러내는 것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교육이 그 용기를 사라지게 만든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


너무나 솔직한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심 책을 읽은 후 리뷰를 어떤식으로 정리해야할지 살짝 염려도 되었다. 이또한 작가가 말하는대로 여자라는 이유로 억압된 삶을 살아온지라 이런 내용들을 언어화하는데 나는 별로 자신이 없다. 나 또한 이런 부분에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한 여성일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언어로 고백하는 자기의 삶,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신의 삶을 기꺼이 드러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출판사 지원 서평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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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 도쿄 독립 서점 Title 이야기
쓰지야마 요시오 지음, 정수윤 옮김 / 돌베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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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작은서점, 자기만의 철학과 속도로 운영하는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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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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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소설은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묘사에서 감탄을 경험했다. 글쓰기 이외의 발자크의 삶은 어땠을까? 그 재미있다는 발자크의 평전에 거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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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인간혐오자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5
몰리에르 지음,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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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혐오자

몰리에르 / 미래와 사람


17세기 활동했던 몰리에르는 프랑스 고전 희극의 거장이다. 당시에는 희극이 단순한 오락거리로 취급되었지만 몰리에르의 노력으로 희극이 비극과 동등한 위치가 되도록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작품속에서 인간군상의 삶과 희노애락을 보여주며 본성을 예리하게 파고들어 시대적 문제를 직시하기도 했고 당시에 만연했던 권위주의를 지적하며 희극 인간혐오자를 내세워 비판하기도 했다.


몰리에르는 이 작품의 부제를 『사랑에 빠진 우울한 사람』이라 칭했다. 주인공 알세스트는 사교계 인사들이 위선과 아첨을 일삼고 있음을 극혐오한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 신사처럼 위선적 행동을 하고 그에 따른 아첨 섞인 언어를 보태는 사람들은 그를 분노하게 한다. 알세스트가 사랑하는 셀리멘은 뭇남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앞에서는 상대를 칭송하나 그 자리에 당사자가 없으면 뒷담의 일인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위선과 가식의 최고봉인 셀리멘을 사랑하는 알세스트의 이중성이다.


알세스트를 분석해 보면 부정적이며 우울감에 사로잡혀 고통받고 자신의 감정을 잘 추스러지 못하며 늘 분노하고 그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출하고 있다. 스스로도 자신이 지나치게 솔직함을 인정하고 있지만 잘 제어되지가 않는다. 생각해 보건대 내 주위에 알세스트 같은 부류의 사람이 있다면 나 자신은 기꺼이 손절할 것이다. 이유라 할 것도 없이 타인에 대한 생각을 정제와 절제되지 않은 언어로 거침없이 쏟아내는 사람, 상대가 받을 수치심이나 감정 따위는 알 바 아니라 생각하며 오로지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고 생각하며 지나치게 솔직함을 표현한다면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말이다. 아무튼 알세스트라는 인물은 사교계에 만연해 있는 관행에 맞서 끊임없이 자신을 역행시키는 불안함을 도출시킨다.

책을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설득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필랭트는 엘리앙트를 사모하고 설득하고자 한다. 그런 엘리앙트는 알세스트를 설득하고 알세스트는 자신이 사랑하는 셀리멘을 설득한다. 끊임없이 썩어빠진 사교계를 버리고 함께 떠나자며 구애하지만 셀리멘은 20대의 나이에 사교계를 떠난다는 것을 상상조차도 하고 싶지 않아 알세스트를 거부한다. 그 거부의 표징은 셀리멘이 여러 사교계 인사들에게 편지를 써 알세스트의 진심을 모욕하는 데 있다. 알세스트의 분노는 사교계를 탈퇴하고 사회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알세스트는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보여주어야 하는 인물이고 친구 필랭트는 상대의 분위기를 보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예의를 아는 사람이다. 자신에 대한 도덕적 잣대는 지극히 바람직하고 타인은 그릇되었다는 알세스트의 신념은 그의 오만에서 나온 어리석은 착각일 뿐이다. 이 책에서 결국 사회에 걸맞는 사람은 적절하게 타협할 줄 아는 필랭트와 엘리앙트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책을 통해 만나본다. 문명이 바뀌어도 알세스트와 동일한 사람은 당연히 존재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직시하고 위선과 권위주의에 냉담했던 몰리에르의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시대의 군상을 읽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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