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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안 죽었다 - 낀낀세대 헌정 에세이
김재완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4월
평점 :

세상이 X세대라고 규정해 왔고 386에 비위 맞춰 직장생활하며 버텨왔는데 이제는 90년대생들에게 꼰대소리를 듣고 있는 신인류세대인 74년생 작가.
사람 사는게 크게 다르지 않아 먼저 살아온 부모님과 선배님들 말씀따라 착실히 살아 좋은 직장 다니면서 예쁜 가정 꾸려 도란도란 살고 있었으나, 직장에 부속품 역할 충실히 하다 뒤통수 맞고 정신 차린 후 마흔 넘어 스스로 집중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추억(Memory)
그 첫번째 장은 오롯이 가족과의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엄마에 대한 기억과 여행에 얽힌 추억. 아빠와 유일한 대화꺼리였던 삼성 라이온즈의 추억 .아빠 돌아가신 후 모두가 걱정했던 엄마가 슬픔을 툴툴 털어내고 의외의 기쁨으로 살아가고 계신 이야기. 인생 내비게이터를 찾게 된 결혼에 대한 이야기 등이 세대를 달리하지 않아 내 기억과 더불어 공감이 갔다.
이 책 읽을수록 정이 갔던 이유는 작가의 나이가 나보다 조금 뒷서기는 하지만 나와 같은 동시대에 유명했던 가수들의 기억을 불러내 왔기 때문이다.
이 맘 때 면 라일락 꽃향기를 맡아 대던 이문세를 필두로 뭔가 도시적이고 세련됨의 선두였던 015B 기본 코드밖에 못 짚으면서도 겉멋에 가득찼던 남학생 동기들이 김광석의 노래를 소환했었고 뒤따라 윤종신이 마치 에세이집을 읊듯 노래했던 '오래전 그날'을 비롯해 신해철이 버릴 것 조차 없는데 자존심만 남았다고 '날아라 병아리'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평정했던이는 '난 안다'고 외치며 음도 없는 노랫말을 염불 외우듯 중얼거리며 나타난 서태지 아니겠는가...
두번 째 추억은 누구에게나 한번은 있었을 법한 첫사랑♡
작가 역시 옛 추억을 소환하며 어릴적 첫사랑을 끄집어 내 놓는다.
그 방식이 왠지 누구나 경험했던 것 같고 또 그 상황들을 드라마나 영화의 한켠에서 지켜봤던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웃음짓게 된다.
어느 한 시기 문명의 발달로 우리들은 잊고 지내며 절대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았던 초등학교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해 준 아이러브스쿨에 미친듯이 빠져들 때가 있었다.
작가의 어린시절 절친이었던 중재와 철수 그리고 서울에서 전학온 곱디고운 소녀 지현이와의 아름다운 추억 사이 작가의 재치로 추억이 버무려져 웃음짓게 했고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 시끌벅적하고 요란하게 노는 장면들이 낯설지 않고 마치 내가 그 자리에 함께 했던 것처럼 정겹기도 했다. 이후 각자 도생으로 바삐 지내다 연결고리가 끊어질때 쯤 다시 소환되는 싸이월드에 맞다!하며 웃게 되는걸 보니 이 모든 과정이 그시대에 무언의 메뉴얼로 제작되어 젊은이들에게 배포되었나 싶다.
업(Walk)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마음을 다잡고 사표대신 로또를 부여잡고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는 고달픈 독자들에게 주는 위안이 담겨있다. 직장생활을 하며 누구나 한번쯤 아더매치유(?)한 일을 경험한다. 아니꼽고...더럽고...매스껍고...치사하고...유치한..
높은 실적을 올리며 나 자신이 빠지면 이 프로젝트는 절대 성공할수 없을 것이라는 굳은 신념 따위는 일찌감치 버렸어야 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짜여진 시스템으로 열일하고 있고 어쩌면 더 나은 창의성 양념이 깃들어져 오히려 새롭고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걸 눈치꼽을 때 쯤이면 이미 늦었다.
나의 책상은 아마 복도 한 모퉁이 끝 쯤에서 쓸쓸히 아니 빨리 뭔가 주인이 정리를 해서 자신을 이 쪽팔림의 구덩이 속에서 구해지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그 아더매치유했던 경험을 글에 녹여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나도 그랬다! 그러나 지금 잘 견디고 오히려 내가 잘하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며 불가능은 없고 죽으라는 법은 없음을 알려준다.
현명하고 지혜롭고 신뢰를 주는 내편을 갖는다는 것은 로또당첨보다 더 큰 행운임을 작가를 보고 느낀다. 작가는 그런 내편을 가졌기에 죽을만치 힘든 공황장애도 이겨내고 굳건히 자신만의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었나보다.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것도 , 상처를 잘 아물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오직 나 자신 뿐이다.
그러니 너무 연연해 하지 말고 지나간 일은 빨리 보내버리자.
당장은 뜬구름 잡는 소리 같기도 하고 , 막막하기도 할 것 이야.
당최 꿈이란 놈을 정말 찾을 수 있는 건지 ,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인지,
하루하루 살아남기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꿈같은 소리인지.
다양한 종류의 책도 읽어보고, 여러 방법으로 세상과 부딪혀 보면서
나를 들여다 보고 뭔가 새롭게 시도해 봐라.
무슨 일이 됐든,
아직 100세를 안 넘겼다면 늦지 않았다.
page 169
현생(Present)
회사 밖에서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무슨 큰 일이 날 것처럼 연연해 했지만 막상 그만두고나니 인생이 행복과 즐거움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건강을 위해서 명상도 하고 템플스테이도 다녀왔으며 걷기 예찬가도 되었다.
욕심을 내려두고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감사해 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작가는 우리의 녹슨 추억을 되새기고 짚어주었다.
이제는 잔뜩 늘어져버린 테이프같은 내 추억을...책을 읽으며 자꾸만 웃음짓고 박장대소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작가의 고급진 스킬로 추억은 선물처럼 내 곁에 돌아와있다.
인생이 이렇다. 포기만 안하면 된다.
왜 야구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인생도 야구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지지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