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놈의 지방색은 이제 넌덜머리가 나요. 박 통이 갔으니까 그놈의 차별이 싹 없어져야 하는데, 손바닥만한 놈의 나라에서 망할 징조지요. 근데 그 하와이라는 것 말이지요, 내가 알기로는 이래요. 해방이 되고 나서 남쪽의 제일 큰 정적 두 사람은 이승만과 김구였어요. 이승만은 미군정의 도움을 받으며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고 있었고, 김구는 민족을 분단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반대하며 서로 팽팽하게 맞섰어요. 그런데 김구는 미군정의 지지를 못 받는 입장이니까 그 대신 대중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전국 순회강연을 나섰어요. 김구는 가는 지방마다 환영을 받았는데 특히 전라도 지방에서는 그 환영이 아주 열렬했어요. 그게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강연은 큰 도시에서만 하게 되어 있었는데, 작은 군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와 겹겹이 기찻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김구는 예정에 없던 강연을 하고서야 기차가 움직일 지경이었어요. 그런 동태가 이승만에게 빠짐없이 보고된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런 보고를 다 받은 이승만이 기분이 나빠져 한마디 내뱉은 것이 ‘하와이놈들 같으니라구!’였어요.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일제시대에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한다고 미국 본토에 있다가 나중에 우리 동포들이 많은 하와이로 옮겼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이미 박용만이라는 사람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우리 동포들을 모아 독립투쟁을 할 군인들을 양성하고 있었어요. 이승만은 독립군보다는 외교 능력으로 독립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와이에 가자마자 박용만과 대립하기 시작했어요. 두 사람을 따라 동포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이승만 쪽에 몇 사람이 남지 않게 되어 이승만은 궁지에 몰리고 말았어요. 이승만은 박용만 쪽으로 쏠린 동포들에게 감정이 많았는데, 김구를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전라도사람들이 옛날 하와이의 동포들처럼 보인 겁니다. 그 다음부터 전라도사람들을 하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비상계엄이 다시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와 함께 계엄포고 10호가 발표되었다. 그 내용은 전현직 국가원수 비방금지, 모든 정치활동 및 시위 중지, 대학 휴교, 언론·출판·방송의 사전검열 등이었다. 대학생들의 데모가 뚝 그치면서 세상은 다시 살벌해졌다. 서울을 향해 군부대들이 이동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각 대학의 정문마다 장갑차를 앞세운 무장군인들이 포진했다.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수들까지도 정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형편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신문들은 나흘 만에야 18일에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도했다. 그것도 기자들이 자유롭게 취재해서 쓴 기사가 아니라 계엄사가 발표한 내용을 그저 옮겨 싣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이미 세간에는 계엄군인 공수부대가 광주에서 저지른 잔인한 짓들이 소문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민족 이야기의 인류 보편성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파란만장한 역사에 대해 오랜 세월 동안 가슴 아파해 왔고, 한국의 작가로서 그 역사의 비통함과 쓰라림을 작품으로 충실하게 쓰려고 노력해 왔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태백산맥』이다. 『태백산맥』에는 단순히 한국인의 굴절 많은 슬픈 역사만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속에는 세계열강들의 각축이 내포되어 있고, 인류가 지향하는 평화가 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가 하는 세계적 숙제까지 담고 있다." 이것은 일본에서 완역 출판된 『태백산맥』을 읽은 독자들에게 보낸 글의 한 대목이다. 민족의 문제를 거론하거나, 민족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 즉각적인 거부감을 드러내거나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는 지식인들이 뜻밖에도 많다. 특히 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그 정도가 심하다. 더구나 ‘세계화’라는 묘한 바람이 불면서 민족의 이야기는 마치 반인류적이고 비세계화인 것처럼 몰아버리는 경향이 더 커졌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불구적 인식이고, 단편적 사고이고, 사대주의적 의식이다. 그들이 공박으로 내세우는 것은 민족주의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이고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히틀러의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타당성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히틀러가 사라지고 일본이 패망하면서 20세기 후반의 지구를 지배한 것은 두 개의 신제국주의였다. 미국은 패권주의로, 소련은 팽창주의로 제국주의화한 것이다. 그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소국들이 힘을 모으는 데는 민족주의밖에 없었다. 그 민족주의는 강대국의 민족주의와는 반대로 방어적이고 공생적이고 개방적일 수밖에 없다. 힘이 약하니 누구를 공격할 수도 없고, 공격을 못하니 파괴할 것도 없고, 생존을 유지해야 하니 폐쇄적으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지식인 그리고 작가란 인간 세상이란 그 어느 시대, 어떤 체제에서든 모순과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지식인이란 계층도 계속 존재해 왔다. 그럼 지식인이란 무엇일까? 21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이고, 그리고 이 나라는 온갖 부패의 노출로 민심이 흉흉한 상황이라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지식인이란 온갖 모순과 갈등이 뒤엉킨 사회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그 진실을 옹호하고, 그 진실을 실천하고, 그 진실을 전파하는 존재여야 한다. 작가도 그 지식인에 속하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다른 분야의 지식인들보다 특히 작가는 만년의 생명력을 지닌 언어 작업을 하기 때문에 더욱 진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는 인류의 스승이며, 그 시대의 산소다.’ 세계적으로 왜 이런 과분하고도 황송한 칭호를 내린 것일까. 그건 모든 작가들이 그처럼 잘났기 때문이 아니다. ‘인류의 스승’이란 모범적인 작가들이 인간의 편에 서서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진실한 작품을 써낸 결과 부여된 이름이며, ‘그 시대의 산소’란 모든 작가들에게 어떠한 악조건에 처해 있더라도 진실만을 말하는 작품을 쓰라는 의무와 책임을 맡기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 의무와 책임을 기득권으로 착각하는 작가들이 없지 않다. 그래서 산소 역할을 거꾸로 해 탄산가스 노릇을 한다. 진정한 작가란 그 어느 시대, 그 어떤 정권하고든 불화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이란 오류를 저지르게 되어 있고, 진정한 작가는 그 오류들을 파헤치며 진실로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정치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진보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나 진보성을 띤 정치세력이 배태하는 오류까지도 직시하고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끝없는 불화 속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 불화의 외로움에 대한 보상이 ‘인류의 스승’인 것이다.
그 어떤 예술이 인간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을까마는 특히 소설은 말뜻 그대로 사람들의 세상살이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이므로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밀착되어 있고, 그 밀착 속에서 사회성과 역사성을 자연스럽게 조우하게 되는 예술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소설이라는 말과 역사라는 말이 동의어로 쓰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예술품을 만들어가면서 사회성과 역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예술품으로서의 소설을 황폐화시키는 것은 비극이다. 그렇다고 하여 사회성과 역사성을 완전히 배제해 버리고 사적인 내면으로만 몰입되는 것은 누에고치가 제 집에 갇혀 죽는 것과 같은 소설의 자멸이다. 그 극단의 어리석음을 벗어난 조화,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소설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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