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의 연구가 밝혀낸 것은 인간은 사회적이면서 동시에 반사회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소속 집단 구성원을 좋아하기에 사회적이고, 다른집단 구성원을 좋아하지 않기에 반사회적이다. 상반된 두 측면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 주제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이 주제는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최적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둘 이상의 요인이 모두 중요하지만 다른 것을 축소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최대화할 수 없을 때 최적화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협력과 경쟁을 생각해보자. 협력과 경쟁이 충돌할 때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협력과 경쟁은 모두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다. 협력은 안전과 안심, 단합을 위해 필요하고, 경쟁은 성장과 지위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

타이의 연구가 밝혀낸 것은 인간은 사회적이면서 동시에 반사회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소속 집단 구성원을 좋아하기에 사회적이고, 다른집단 구성원을 좋아하지 않기에 반사회적이다. 상반된 두 측면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 주제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이 주제는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최적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둘 이상의 요인이 모두 중요하지만 다른 것을 축소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최대화할 수 없을 때 최적화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협력과 경쟁을 생각해보자. 협력과 경쟁이 충돌할 때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협력과 경쟁은 모두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다. 협력은 안전과 안심, 단합을 위해 필요하고, 경쟁은 성장과 지위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집단의 규모가 너무 작으면 그 집단은 권력이나 영향력이 없어 다른 집단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그런 집단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그다지 유익하지 않다. 한편, 어떤 집단이 너무 크면 정상에 오를 가능성이 줄어들고 성공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집단에 소속되어 보호받기를 원하므로 성공할지 말지는 운에 맡기고 우선은 어떤 집단에는 소속되려 한다. 그래도 서열 구조에서 위로 올라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집단의 성장이 곧 자신의 성장과 이어지고 집단이 실패하면 유리할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닫고 점점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4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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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여성은 소년이 아닌 남자를 원한다. 건강한 여성은 다투고 씨름할 만한 상대를 원한다. 여성은 강해지면 더 강한 배우자를 원한다. 똑똑한 여성은 더 똑똑한 남성을 원한다. 여성은 식탁에 새로운 것을 올려 줄 남성을 원한다. 그래서 강하고 똑똑하고 매력적인 여성은 짝을 찾기가 어렵다.
어느 연구 논문의 표현을 빌리면, "소득과 교육, 자신감과 지능, 지배력과 사회적 지위에서 자신보다 더 높은 남자"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자신을 압도하는 남성이 주변에 많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년이 남성이 되려. 애쓸 때 방해하는 시대 풍조는 여성의 편도 아니고, 남성의 편도 아니다.
어린 여성이 자립하려고 할 때도 이런 시대 풍조가 안 돼! 너무 위험해!‘라며 독선적인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실패와 질투, 원한과 파괴를 조장하는 반인륜적 풍조가 아닐 수 없다. 진정으로 인간의 편에 선다면 누구도 그. 풍조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런 풍조에 맥없이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강한 남자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약한 남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곰곰이 지켜본 뒤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 바란다.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는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4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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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하고 유순한 사람들은 갈등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삭인다. 그들은 과도하게 희생하고, 그에 대한 보상이 없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또 유순하고 고분고분하며 독립적이지 못하다. 제안하고 타협하는 사람에게 쉽게 동조하며,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우유부단하며, 마음이 쉽게 바뀐다. 겁도 잘 먹고 상처도 잘 받는다. 위협과 위험에 대한 불안이 커서 독립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상냥한 성격은 의존성 성격 장애 (dependent personality disorder)로 발전하기도 한다. 의존성 성격 장애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의 대척점에 있는 장애다. 반사회적 행위의 반대가 도덕적이고 고결한 행위로 나타나면 좋겠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의존성 성격 장애는 자주 ‘오이디푸스적 어머니(Oedipal Mother)‘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 역시 범죄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4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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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서열 구조에나 승자와 패자가 있다. 승자는 서열 구조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패자는 서열 구조의 부당함을 비판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공동체 내에서 특정한 목표를 집단적으로 추구할 때는 서열 구조가 형성된다. 목표가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과못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추구하는 목표는 삶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우리는 가치 있는 목표를 성취했을 때 삶의 깊이와 흥미를 더해 주는 거의 모든 감정을 경험한다. 결과에 따라 서열화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절대적인 평등을 추구하려면 가치 체계를 희생해야 하고,
그러면 삶의 목표로 삼을 만한 것이 사라질 것이다. 복잡하고 정교한 문화가 이미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수많은 게임을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치밀하게 구조화한 문화 덕분에 우리에게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승리할 길이 열려 있다.
문화가 남성의 창조물이라는 생각도 왜곡된 것이다. 문화는 상징적 · 신화적 · 원형적 관점에서 남성적이다. 그래서 문화가 가부장적‘이라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문화는 남성의 창조물이 아니라 인류의 창조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4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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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는 남자아이와 경쟁해서 승리하면 칭찬을 받는다. 져도 별로 피해가 없다. 하지만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이겨서 칭찬받는 일은 거의 없다. 행여나 여자아이에게 지기라도 하면 망신을 다한다. 열 살짜리 동갑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치고받고 싸웠다고 해 보자. 남자아이가 싸움에서 이기면 여자와 싸우는 한심한 녀석이 된다. 먼저 싸움을 걸었다는 의심도 받는다. 만약에 싸움에서 지면 그야말로 인생의 위기가 찾아온다. 여자에게 두들겨 맞은 남자라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는 자체의 계급 구조에서 승리를 경험한다. 디시 말해, 여자아이들끼리의 경쟁에서 승리를 경험한다. 그리고 남자아이들과의 경쟁에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이때의 승리 경험은 덤이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남자아이들끼리 하는 경쟁에만 참여한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들이 주로 참여하는 경쟁 분야에 끼어들면 양쪽 모두에게 공격받는다. 남자아이들에게서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평판을 듣고, 여자아이들에게서는 남자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평판을 듣는다. 여자아이들이 이런 남자아이와 친구로 잘 지내는 경우는 있지만 이성으로서 매력을 느끼는 경우는 별로 없다.
여자아이는 일반적으로 지위 경쟁에서 승리한 남자아이에게 매력을 느낀다. 게다가 남자는 여자와 경쟁할 때는 남자끼리 경쟁할 때보다 힘을 많이 쓰지 않는다. 남자아이는 전력을 다해 경쟁할 수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남자아이가 경쟁에서 승리할 방법은 확실하지 않다. 그런 이유로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이 주로 참여하는 경쟁 분야를 피하다. 대학 특히 인문대가 여성들만의 무대로 변해 가는 것이 진정 바라직할까?
4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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