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차이? 그 친구는 아마 소설이 안 읽히는 것이 문화적 이질감 때문이지. 번역이 잘못되어서일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소설 <이방인>에서 무슨 문화적 차이를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소설은 기본적으로 사람 이야기이고, 실제 <이방인>의 등장인물들은 정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 이웃과 똑같이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나는 그제야 그 책을 좀 볼 수 있느냐고 했고, 책을 받아보고는 조금 놀랐다.

‘같은 문장을 두고도 이렇게 다르게 보고 있구나‘ 싶었던 것이다.

글은 기본적으로 감정을 담아내는 것으로, 원래의 의도가 살아 있지 못하면, 문자 그대로 건조한 글자일 뿐이기 때문에 아무리 미문이라 해도 잘 읽히지 않는다.
도무지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 역자노트 176~177쪽

60여개의 문장 오류를 지적하였는데요.
이 책에 관심있는 분들의 이해를 돕도록 2가지만 예시할께요.

<역자노트 16번>

˝나는 피리를 불고 있는 녀석의 발가락들이 사이가 몹시 벌어져 있다는 것을 눈여겨보았다.˝(김화영 역. p66)

˝J‘ai remarque que celui qui jouait de la flute avait les doigts des pieds tres ecartes.(원서pp.87)

어쩌다 이런 코미디 같은 문장이 만들어졌을까? 지금의 상황은 이런 것이다. 칼부림을 당한 뒤 울분을 참지 못한 레몽이 집을 나섰고, 뫼르소가 뒤따랐다.
우연히 해변 끄트머리까지 왔는데 그곳에 자기에게 칼질을 한 그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얼굴에 반창고를 붙이고나타난 레몽을 보고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여전히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상대를 무시하기까지 하는 모습이다. 레몽이 뒷주머니의 권총을 잡으며 위협했으나, 어째 된 일인지 그들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러나 실상 그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숨기고는 있지만). 그래서 뫼르소의 눈에 사실은 ‘긴장하여 쭈뼛 세워지는 상대의 발가락이 보였던 것이다.

정리하면, 지금 이 상황은 위기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역자는 저 문장을 터무니없이 ‘상대의 발가락 사이가 몹시 벌어져 있는 것을 눈여겨보았다‘라고 해 둔 것이다.
여기서 tres ecartes 는 ‘바싹 긴장하다‘라는 뜻이다.
앞의 remarque 도 ‘눈여겨보다‘가아니라 ‘알아보다‘다

˝나는피리를 불고 있는 자의 발가락이 바짝 긴장한 것을 알아보았다.˝(본문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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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서님의 지적에 공감합니다.
저도 실은 저 문장을 읽고는 어리둥절했으니까요.
아랍인들의 발가락들이 사이가 몹시 벌어져 있다는 것?
저 문장이 무슨 뜻인지조차 생각해볼려고도 안했으니
번역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습니다.
원고량을 늘리기 위해 의미없이 쓰는 문장은 한 문장도 없는 카뮈같은 작가의 책을 무심코 읽는다는 것은 그 시간에 그냥 잠이라도 한숨 더 자 두는 편이 훨씬 나을테니까요.

김화영 교수님이 원문의 구조와 문체와 어감을 존중하여
독자의 가독성을 위하여 일부러 매끄러운 문장으로 바꾸는 과잉친절은 경계했다는 의도는 알겠으나
적어도 저에겐 저 문장이 아랍인이 긴장해서 발가락에 힘이 들어갔다는 뜻인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


<역자노트 18번>

저항이 없는 몸뚱이에 쏘아 댄 네발의 총성. ‘ 그것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같은 것이었다‘는 마지막 문장. <이방인>을 읽고 여기서 전율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보다시피 지금 뫼르소가 총을 쏜 가장 큰 이유는 ‘눈을 찌르는‘칼날 때문인 것이다. 그 번쩍이는 칼을 든 사람은 앞에서 친구(레몽)을 잔인하게 찔렀던 바로 그 위험한 사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 바로 정당방위인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뫼르소가 아랍인을 왜 쏘았을까?‘라는 질문에 ‘태양 때문‘이라고 답하고 있다.
그러나 앞의 번역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건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대답이었던 것이다.
자그마치 25년 동안 우리는 저 엉터리 번역에 우리의 사고를 지배당해 온 것이다.
정당방위로서의 첫발, 그리고 ‘약간의 텀‘을 두고 발사되는 네발의 총알. 그 네 발을 계속해서 쏘아대는 뫼르소를 이해시키기 위해 카뮈는 저 앞, 엄마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를 받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뫼르소의 심경을 치밀하게 그려 보여 온 것이다. 정당한 이유로서의 한발과, 위장된 도덕, 종교, 권위,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향한 무의식적인 발사.
이 다섯발의 총성이 단지 태양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과연 프랑스인들이, 세계인들이, 노벨문학상위원회가 그렇듯 카뮈와 뫼르소에 공감하고 <이방인>에 열광했을 것인가.
지금까지의 번역은 이 모든 것을 거세시킨 불구였던 것이다.
우리가 읽은 <이방인>이 결코 카뮈의 <이방인>이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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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서님의 번역을 읽고 있노라니
이 책에 대한 김화영 교수님의 입장도 듣고 싶어집니다.
뭐든지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하니까요.
하지만, 이정서님의 고집스러움이 무척 와 닿는 이유는
‘번역‘이라는 분야에 이미 둥지를 틀고 있는 거대한 권위와 도그마에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용기와 노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한가지, 반박이 지나쳐 김화영 교수님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은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번역에도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풍토가 정착될 때,
불필요한 중복 번역본들이 생산되어 출판 문화를 후퇴시키고독자들의 혼돈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될 때라야만, 번역 그 자체에 대한 대가와 가치도 정당하게 인정받게 되리라 믿는다.˝
-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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