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의 백범일지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이봉창은 그날 나에게 말했다...˝제 나이 31세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해도..과거 반생에서 맛본 방랑생활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그런까닭에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해에 왔습니다.˝-178쪽김구는 이봉창과 일왕 처단을 추진하면서 임시정부의 특무활동 기구로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1호 단원으로 이봉창을 천거했다.거사전 찍은 유명한 사진속 선언서의 내용은 이러하다.˝나는 적성으로부터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대한민국13년 12월 13일 한인애국단앞 이봉창˝오늘날 이봉창 의사의 자세한 이야기를 우리가 알 수 있었던 이유는 김구가 이봉창이 쓴 이력을 바탕으로 ˝동경작안의 진상˝이라는 글을 남겼기 때문이다.김구가 이봉창을 처음 만난 1931년 1월부터 1932년 10월 10일까지 약 20개월간의 기록이다.-193쪽김구는 해방후 박열을 불러 일본 사법대신을 상대로 이봉창의 유해를 요구하고 천신만고끝에 해방호 열차를 통해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세 의사의 유해를 고국으로 봉환한다.열차가 지나는 역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