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도올 선생의 글을 읽다 보면,

짧은 지식으로 역사의 "팩트"를 운운하거나

역사적 사실의 평가에 대해 의견이 다를 때

내심 상대방의 "무지"로 속단한 과오를 반성하게 된다.

 

 

 

 

역사라는 것은 많은 것을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게 되는 수도 있다. 과도한 정보의 홍류에 휩싸이면 역사가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그 대강의 줄거리를 잡을 길이 없는 것이다. 그 홍류를 조감할 수 있는 어떤 초탈한 고지로 차원을 바꾸지 않으면 역사를 바라보는 눈 그 자체가 역사와 더불어 인멸되고 말 수도 있다.

 

 

한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도, 한 눈에 반했을 그 순간의 잔상이 가장 진실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여인에 대해 깊게 연구하고 체험하고 같이 뒹굴고 같이 웃고 같이 울고 하다가는 그 여인의 총체적 이미지 그 자체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첫인상의 매혹적인 모습이 그 여인의 진실인가, 구질구질하게 루틴화 된 정보의 진흙 속에 흐려진 모습이 실상인가?

이것은 정말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이미지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고 있는가, 그 의미가 중요한 과제일 뿐이다. (...)

 

역사는 사가들의 도박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츄어가 아닌 전문가들의 도박이란 결국 누가 더 사기를 잘 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사가들이 역사를 다루는 방식은, 때로는 엄밀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자기들이 사기치는 세련된 기교 속에 갇혀 역사 그 자체를 왜곡할 때가 많다.

 

사가들의 논문은 역사의 무덤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 속에서 너무도 많은 정보를 캐낼 수 있지만, "논문"이라는 제한된 형식의 정보유통은 역사 그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학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역사기술방식의 가장 현저한 오류는 사건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그 사건을 만들어내고 있는 "살아있는 인간의 숨결"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 129~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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