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해방정국의 이해(112쪽~179쪽)


여운형을 알아야 ˝인민위원회˝가 이해된다.
나의 친구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추구하면서 결론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
˝한국전쟁의 기원은 결국 미군정의 인민위원회의 탄압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은 6.25전쟁의 발발원인을 정치적 역학관계나 무력충돌의 사례들이나 국제무역관계등등에서 찾는 전통적 전쟁사의 사유체계와는 영 다른 것이다. - 126쪽



오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상당부분의 보캐블러리(vocabulary :어휘, 용어)가 이미 국가권력에 의하여 왜곡된 형태로 의미부여가 된 그 인식체계 속에서 활용되고 있고, 그것이 마치 보편주의적 정론인 것처럼 과거사의 인식을 도배질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개념의 오염, 그리고 그 오염의 확산, 그것은 진정코 우리가 역사인식에 있어서 매우 조심해야 할 과제상황이다. - 128쪽



상해에서 이승만의 여러가지 행태를 분석하고 분개한 단재 신채호의 일갈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다! 이완용이는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 이놈은 아직 우리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은 놈이다! - 135쪽



미국이라는 새로운 지배세력이 정부의 형태로 군림한다는 사실을 당연히 모든 토착세력들, 주체적 세력들은 반대했지만, 이 사실을 반기는 세력이 있었다. 그 동안 숨죽이고 끽소리 못하며 ˝좆됐다˝고 생각한 세력들, 원래 세력 있었고, 많이 배웠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서, 기독교를 신봉하고, 반공사상에 투철했던 사람들, 그리고 열렬히 황국신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살았던 그 사람들에게는 ˝미군의 입성˝은 암흑속에 빛이었고 부활의 희망이었다.
이들은 9월8일, 오늘날 우리나라 정당들의 궁극적 뿌리인 ˝한민당(한국민주당의 약칭)을 창당하고, 인천 앞바다에 하지의 배가 떠있을때부터 이미 모든 접촉을 시도했다. 이들이 하지와 그의 부하들에게 철저히 주입시킨 것은 ˝인민위원회˝는 빨갱이들의 조직이며, 이미 이들에 의하여 조선 전체가 장악되었으며, 이들의 분쇄가 없이는 미군정의 통치는 불가능하다는 적대논리였다. - 140쪽



동아시아역사에 대하여 맥아더가 저지른 가장 큰 오류, 인류사의 근원적 진보에 공헌할 수 있는 결정적 찬스를 놓친 죄악에 가까운 오류는 전후에 일본의 천황제를 존속시킨 것이다. 천황제를 존속시키는 것이 미국의 일본지배를 쉽게 만들고, 동아시아에 있어서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히로히토는 1945년 9월 27일 맥아더의 SCAP 헤드쿼터를 두 발로 찾아가 목숨을 구걸했다. 그리고 미국의 이해관계에 전적으로 복속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것은 미국이 나치정권의 독일국가를 근원적으로 해체시킨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의 전후처리였다. 일본국가가 근원적 변화없이 존속하도록 하면서 몇 명의 전범만 코스메틱한 효과로 처형한 것이다. - 141쪽



우리가 현대사를 논하게 될 때, ˝인공˝,˝인공˝하게 되는데, 이 ˝인공˝은 김일성이 나중에 만든 사회주의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9년 9월9일 수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통 여운형이 건준조직을 확대한 ˝조선인민공화국˝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서 ˝인민˝의 용례를 빌어 설명했듯이, 조선인민공화국은 빨갱이공화국이 아니라, 그냥 ˝조선사람공화국˝의 한문표기일 뿐이다. - 155쪽



이 남한의 인민위원회 중에서 가장 조직력이 강했고, 가장 사상적으로 잘 무장되어 있었고, 가장 단결력이 강했으며 행정능력이 뛰어났던 인민위원회가 바로 ˝제주도인민위원회˝였다. 그것은 섬이라는 격절된 환경속에서 형성된 매우 뚜렷한 저항전통과 특별한 아이덴티티를 지니는 특수문화와도 관련이 있었다. 제주도인민위원회는 1945년 9월 10일, 정식으로 건준의 지부로서 결성되었고, 미군정청 시찰단 법무부의 우달(Emory Woodall)에게 3개항의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미군정은 제주인민위원회의 제주 치안유지 및 다른 업무수행에 일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미군은 즉시 일본군인과 일본경찰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철거시켜야 한다. 셋째, 미군은 제주섬의 모든 단계의 행정권을 우리 인민위원회에 위임해야 한다. - 159쪽



백범은 실제로 요즈음 말로 하면 ˝우익꼴통˝에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우리가 그를 국부로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평생을 조선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하자 없이 헌신했기 때문이고, 연세대 총장 안세희의 사촌형인 안두희에 의하여 암살될 때까지 오로지 남한과 북한의 분열, 즉 단독정부수립의 저지를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맹목적인 ˝우파성향˝은 ˝신탁통치˝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가짜뉴스쇼˝를 국민들이 받아들이게 만들고, 우리역사의 진로를 혼탁하게 만든 죄업을 낳았다. - 164쪽



* 경교장은 일제시대 금광업자 최창학의 별장이다. 김구는 이곳을 사저이자 공관으로 썼다. 김구 사후 최창학에게 반환되었고 1967년에 삼성재단에서 매입, 그곳에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을 지었다 - 177쪽











1945년 8월 15일 이후 진정한 해방을 누린 날짜는
˝인민위원회˝가 전국에서 활동한 딱 25일 밖에 없었고,
단지 일본제국주의에서 미국제국주의로 주인이 바뀌었을 뿐이다.
여운형과 김구에 대한 그간의 평가에 대한 새로운 시선, 신탁통치에 대한 이면의 진실을 독자에게 알기쉽게 정리해주는 도올의 힘이 느껴진다.


미군정이 해방이후 남한의 지방자치조직인 145개의 인민위원회를 빨갱이로 탄압하면서 제주4.3과 여순민중항쟁의 비극을 낳았고 결국 한국전쟁의 단초를 제공한다.


여운형을 알고 ˝인민위원회˝를 알아야 해방정국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학교에서, 아님 책에서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진짜 우린 너무 모르고 살았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너무 모르게 살아가게끔 만들었다.
여하튼, 아무튼 ˝우린 너무 몰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