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두 마디만 잘하면 그럭저럭 살아갈수 있다고,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규칙은 있다. 한 번에 하나씩. 설탕과 소금은 같이 넣지 않는 법. 사내는 늘 궁금했다. 고맙습니다‘는설탕일까, 소금일까.
- P22

하얗게 늘어선 시트 중 간호사는 팔 번 앞에 선다. 간호사가 시트한쪽 끝을 걷자 발 한 쌍이 얼굴을 내민다. 크고 늙고 못생긴 발이다.
넙적하고 울퉁불퉁하고 딱딱하다. 일생 쟁기를 끈 소의 발 같다. 어머니의 발이다. 이상한 확신이다. 사내는 어머니의 발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머니에게 발이 있다는 사실도 방금 알았다. 이 자명한 사실이 사내를 놀라게 한다.
발의 야만스러운 물질성이 사내의 울대뼈 아래 단단하게 꾸려진 슬픔의 보따리를 툭 건드린다. 차가운 슬픔이 폭풍처럼 사내를 후려친다. 사내의 울대뼈가 흐느낀다. 그제야 어머니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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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뒤에도 삶은 계속 되었다. - P375

마침내 모든 것은 확인되었다. 동화는 잠시 중단되었다가도 결국엔 다시 시작된다. 진실은 말해지기 마련이다. 
매번 다른 방식으로.
- P467

바다는 잔잔했다. 해안을 찰싹찰싹 때릴 뿐이었다. 마리아는 청바지를 입은 채 바닷물이 무릎까지 찰 때까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잠시 멈추어 서더니, 세 번에 걸쳐 카슈비아 말로 뭔가를 외치며, 양팔을 커다란 그릇처럼 만들어 내밀었다. 그러자 넙치가, 납작하게 생긴, 몇천 살은 먹었음직한, 시커멓고 거죽에 돌기가 돋은 예의 그 주름투성이 넙치가, 아니, 이제 더 이상 나의 넙치가 아닌 그녀의 넙치가 아주 새로운 넙치인 양 바다로부터 풀쩍 그녀의 품을 향해 뛰어들었다.
- P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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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무슨
소리라도 한번 들려라
살포시라도

외롭구나
무슨
벌레라도 
한 마리
나를 물어라
너무 외롭구나

생각하고 생각하다.
생각이 막힌 곳
문득 생각하니

내 삶이란 게 간단치 않아
온갖 소리 갖은 벌레 다 살아 뜀뛰는
무슨 허허한 우주

쓴웃음이
한번

뒤이어
미소가 한번

창밖의 마른 나무에
공손히 절 한번

가랑잎 하나
무슨 종교처럼 진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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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야, 톰 소여한테 한 대 얻어맞은 적이 있어."
하지만 영광을 노리고 내놓은 그 패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남자아이들 대부분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고, 
따라서 가치가 떨어져도 한참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외경심이 가득 어린 목소리로 없어진 영웅들을 기리며 어슬렁어슬렁 자리를 떴다.
- P177

늘 그렇듯이 변덕스럽고 부조리한 세상 인심은 머프 포터를 품에 받아들여 전에 멸시를 아끼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인정을 푸짐하게 베풀었다. 하지만 그런 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인지라 그리 흉볼 것까지는 없다.
- P232

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야, 허크, 부자라고 해서 산적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어."
"설마! 우씨, 그냥 해보는 소리 아니지, 그 말 진짜야, 톰?"
"내가 여기 앉아 있는 것처럼 진짜야. 하지만 허크, 잘 알겠지만 먼저 네가 당당하고 의젓해지지 않으면 우린 널 받아들일 수가 없어."
허크의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톰? 해적질하러 갈 때는 끼워줬잖아?"
"그래,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 산적은 해적보다 더 격조가높거든..… 대체로 말이야. 대부분의 나라에서 산적은 귀족보다도훨씬 높아…… 공작이니 그딴 것보다도."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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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누구냐?"
"카리브 해의 비열한 복수자 톰 소여다. 너희 이름을 밝혀라."
"피투성이 손 허크 핀과 바다의 공포 조 하퍼다." 톰이 자기가 좋아하는 책에서 따와 지어준 이름들이었다.
"좋다. 암호를 대라."
그러자 귀에 거슬리는 속삭임 소리로 무시무시한 단어를 음침한 밤을 향해 동시에 토해냈다.
"피"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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