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두 마디만 잘하면 그럭저럭 살아갈수 있다고,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규칙은 있다. 한 번에 하나씩. 설탕과 소금은 같이 넣지 않는 법. 사내는 늘 궁금했다. 고맙습니다‘는설탕일까, 소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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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늘어선 시트 중 간호사는 팔 번 앞에 선다. 간호사가 시트한쪽 끝을 걷자 발 한 쌍이 얼굴을 내민다. 크고 늙고 못생긴 발이다.
넙적하고 울퉁불퉁하고 딱딱하다. 일생 쟁기를 끈 소의 발 같다. 어머니의 발이다. 이상한 확신이다. 사내는 어머니의 발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머니에게 발이 있다는 사실도 방금 알았다. 이 자명한 사실이 사내를 놀라게 한다.
발의 야만스러운 물질성이 사내의 울대뼈 아래 단단하게 꾸려진 슬픔의 보따리를 툭 건드린다. 차가운 슬픔이 폭풍처럼 사내를 후려친다. 사내의 울대뼈가 흐느낀다. 그제야 어머니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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