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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소녀를 만나다
이영환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평점 :
참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책이다.
표지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따스해지면서 어린 날의 추억 속으로 타임 슬립을 하게 만든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학창 시절 마음에 담아본 사람이 있지 않을까? 반대로 누군가의 마음에 담겨 본 경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소중한 추억은 삶에 있어서 엄청난 에너지가 되곤 한다. 누군가와 사귀었다가 중요하다기보다는 누군가를 좋아해 본 경험. 누군가의 마음에 담겨 본 경험 자체가 소중한 거니까.
작가는 우연히 길에서 주운 만화책을 보면서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과연 그 만화책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함이 밀려온다. 만화책에 빠져 본 경험이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그림이 아닌 그리스로마 신화로 관심이 이어졌기에 내가 만약 작가처럼 그림에 관심이 생겼다면 나도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하는 가능성없는 상상도 해본다. ^^
"쟤는 왜 나를 모르는 척할까?
.... 근데 나는 또 왜 모르는 척하는 거지?"
16p.
초등학교 동창을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은 모습으로 오래만에 마주할 때, 서로를 속으로는 알지만 아는 척 하기에는 멈칫 할 때가 있다. 이미 지나간 뒤에야 서로 엇갈리게 뒤를 돌아보게 되는 그런 사이. 그건 그저 기억일까, 아쉬움일까.. 아니면 추억일까..?
그렇게 마주친 다음부터 문득 문득 그녀가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고, 중간 과정을 모두 건너뛴 채, 데이트하는 상상까지 했다는 작가의 솔직함이 무척이나 귀여우면서도 공감이 되는 이야기다.
"자전거가 아무리 많아도 내 자전거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 난 운명의 상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한눈에 딱 알아보지. 넌 어떻게 생각해?"
34p.
운명의 상대는 한눈에 알아본다는 말 자체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극히 희박하고 '운명'이란 단어처럼 '운명'처럼 그런 기회가 올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명의 상대를 만나보지 못하고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문학소녀시절이던 어린 날에는 그 말을 분명 믿었지만... 현실주의가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건 그저 어린 날의 행복한 공상일 뿐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 어느 날 정말 내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면? ^^ 이런 생각만 해도 그 순간이 행복해질 것 같긴 하다. ^^ 작가님은 과연 운명의 상대를 한눈에 알아봤을까?? ^^
"이 굴다리를 지날 때 숨을 참으면 소원이 이뤄진대.
거짓말! 세상에 그런 게 어딨니?
아니야, 정말 소원이 이뤄졌어. 지금도 그럴 걸?"
133p.
이 말을 한 소년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함께하고 싶은 소녀와 함께하는 그 순간이 이뤄졌다는 의미일까? 누군가를 좋아하면 이런 말들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냥 흘려들었더라도 문득 떠오르며 다시 그 자리에 가보거나 다시 그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 그게 순수한 사랑이고 첫사랑이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보낼까, 말까."
167p.
휴대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망설이는 남학생의 그림과 함께 있는 말이다. 저런 고민을 하는 순간이 너무 순수하다. 좋아하는 마음을,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할까, 말까. 널 좋아한다고 고백할까, 말까. 1분 1초가 십년처럼 소중한 고민의 순간이다. 아마도 그 순간의 모든 신경과 에너지는 그녀를 향해 있겠지?
분홍빛 벚꽃이 날리며 살랑살랑 봄바람이 부는 봄의 어느 날,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아이스티를 마시는 여름의 어느 날,
푸르른 하늘 아래 낙엽을 밟으며 시원한 바람을 쐬며 걷는 가을의 어느 날,
그리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코코아 한 잔 마시며 몸을 녹이는 겨울의 어느 날...
그 언제라도 이 책과 함께한다면 행복한 유년의 추억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며 기억 속의 그 사람을 만나볼 수 있게 하는 귀한 책이다.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