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그레이엄 - 월가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 회고록
벤저민 그레이엄 지음, 김상우 옮김 / 굿모닝북스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벤저민 그레이엄

Benjamin Graham: The Memoirs of the Dean of Wall Street in 1996

- 지은이: 벤저민 그레이엄 Benjamin Graham

- 옮긴이: 김상우

- 출판사: 굿모닝북스 / 2004-09-10 / \14,800

 

1894 5 9일 벤저민 그레이엄은 삼형제 중 막내로 영국에서 태어나지만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한 살 때 일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던 그레이엄의 가족은 그레이엄이 9세 때, 35세이던 아버지가 갑자기 췌장암으로 죽은 다음 어머니의 유산관리 실패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합니다. 이런 형편은 그레이엄이 대학을 졸업하는 20세까지 갖은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조달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은 계속됩니다.

 

1914 20세에 대학을 졸업하는 그레이엄은 3개 학과의 교수직을 제의 받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월 가에 진출합니다. 명석한 두뇌와 성실함은 처음부터 두각을 드러내면서 스카우트 제의와 그레이엄을 지키려는 소속 증권사의 연봉 인상이 계속되면서 금방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해 3년 정도 약간 어려움을 느꼈던 기간을 제외하면, 풍족한 생활을 누리다 1976 9 21, 그의 마지막 연인, 말로의 고향인 프랑스 액상프로방스에서 82세의 나이로 평안한 죽음을 맞습니다.

 

이 책은 [증권분석] [현명한 투자자]의 저자로써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이 60세가 넘어 자신의 지나 온 삶을 돌아보는 회고록입니다. 60대 후반부터 70대 초반(아마 1957~1965) 사이에 쓰고 있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학교, 취미, 친구, 결혼과 가족, 여자, 정말 좋아했던 것으로 보이는 희곡을 쓰면서 직접 연극 제작에 관여하였던 자신이 중요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독자가 가장 듣고 싶은 투자에 입문하는 과정, 성공 스토리, 어려웠던 상황도 일부 보여주고 있지만, 투자에 대한 지식이나 교훈을 주려고 하기 보다는 당시 상황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회고록에 충실할 뿐입니다.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이 책은 그레이엄 사후 20년 만인 1996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세이모어 차트만이 쓴 서문에는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잘 요약하였고 그 이상의 에피소드를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서문을 읽을 때는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지만, 책을 한 번 읽고서 돌아와 다시 한 번 더 서문을 읽으면 책 내용을 복습/정리하는 효과를 확실히 얻을 수 있었습니다. 차트만의 글을 통해 [현명한 투자자]의 부제가 <현실적인 조언을 주는 책: A Book of Practical Counsel>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레이엄은 그 만큼 실용적인 글을 쓴다는 것입니다.

 

자신과 이름이 같은 벤저민 프랭클린을 닮고 싶었던, 그레이엄은 이 책을 통해 그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정직한 삶을 추구하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인인 그레이엄은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이 종교에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음을 밝힙니다. 또한 워렌 버핏조차 그레이엄이 유대인을 편애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였지만, 그는 유대인으로서의 맹목적인 유대감은 없다고 합니다.

- 종교에 대한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 평생을 숙고했지만 나는 신앙에 이르는 어떤 것에도 도달할 수 없었다. 정신적인 완전함을 믿는 사람들은 단지 신앙이 그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믿을 수는 없다.

- 나는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해 준 유대인들에게 정서적으로 충성심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충성심 그 자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커다란 정서적 미덕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지적인 오류가 될 수 있다. 충성심은 방패의 빛나는 앞면이지만 뒷면에는 편견과 불관용, 그리고 광신이 새겨져 있을 수 있다. 나는 단순히 내가 그들의 일부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이나 제도를 위해 내 자신을 열정적으로 갖다 바칠 수는 없다.

 

1914 20세의 나이에 졸업한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 수학, 영문학 교수의 자리를 제의 받지만, 뿌리치고 증권회사에 취직합니다. 개인 펀드를 만들어 독립할 때까지 9년 동안 근무한 증권사의 사장 알프레드 뉴버거는 그레이엄을 면접하고서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며, 돌아서 나가는 그레이엄을 다시 불러 세우고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 젊은이, 한가지 말해 두고 싶은 게 있네. 자네가 투기를 한다면 돈을 모두 잃을 걸세. 그것을 항상 명심하게.

 

가치투자의 아버지, 개척자로서의 그레이엄을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 1914년에 재무정보들은 보통주 분석 분야에서 대부분 쓰레기 취급을 당했다. 통계숫자들은 무시되기 일쑤였고 기껏해야 피상적으로 연구되거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내부 정보였다. 그 중 일부는 경영 실적이나 신규 주문, 예상 수익 같은 것이었으나 대부분은 시장 조작자들의 현재 활동이나 계획이었다. 당시 월 스트리트 전문가들에게는 주식시장의 가격 결정은 전혀 다른 요인들-모두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여겨지던 상황에서 무미 건조한 통계숫자를 연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보였다.

 

통계숫자가 무시되던 이런 상황도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기업의 재무구조가 좋아지면서 내재가치를 따지는 비중이 높아지게 되면서, 그레이엄은 1915년 첫 차익거래를 성공합니다.

- 나는 분석결과에 따라 아주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보통주를 매수하고 너무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다른 보통주를 매도하는 식의 보수적인 투자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월 가의 증권사에서 근무하면서 7년 전 대학 다닐 때, 아르바이트 했던, 당시엔 잘 나갔지만 이제는 몰락한 회사의 거만했던 사장이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레이엄은 이런 말을 합니다.

- 나는 기업의 삶과 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삶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기업도, 사람도 늙고 상승세가 꺾인다. 그러나 쓰러지던 기업은 새로운 생명의 피를 수혈 받아 다시 양지로 나올 수 있는 반면, 기업가는 한번 늙어버리면 대개는 그것으로 끝이 난다.

 

1926년부터 1928년까지 노던 파이프라인과의 주총 싸움은 현재도 요원해 보이는 우리나라 소액주주들이 겪는 권리주장/행사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레이엄은 처음 5%의 지분을 매수하고서 회사의 불필요한 잉여자산 배분을 위해 경영진을 만나 설득에 실패하고서 정기 주총에 참석하여 권리를 주장하지만, 미숙함으로 인해 거듭 실패합니다. 지분을 추가로 더 매입하면서 동조세력을 모으고 최대주주인 록펠러를 만나는 등 1년을 더 준비한 끝에 다음 해 주총에서 원하는 것을 받아내고 맙니다. 나중 상황은 록펠러 재단의 필요에 의한 결정이었음을 느끼게 되는 씁쓸함이 있습니다.

 

이 상황과 관련해서 회사 경영진의 대응과 월 가의 일반적인 분위기, 투자자의 대응 행태에 대한 그레이엄의 회상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보게 됩니다.

- (회사 경영진): 그레이엄 씨,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당신 말을 들었고 예정보다 많은 시간을 내 드렸습니다. 송유관을 운영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고 전문적인 일입니다. 그것에 관해서 당신은 거의 모르지만 우리는 평생 그 일을 해왔습니다. 당신은 회사와 주주를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에 대해서 당신보다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믿어주셔야 합니다. 당신이 회사 정책에 찬성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환경에서 건전한 투자자들이 통상 하는 대로 보유 주식을 처분하는 것이 어떨지 말씀 드리고 싶군요.

- (그레이엄의 생각): 1926년 내가 순진하게도 기업의 경영진을 설득해 그 회사가 당시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어떤 일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주주로서의 노력을 처음으로 기울이던 시절, 월 스트리트의 전문가들은 나를 거대한 풍차를 향해 머리를 들이밀고 돌진하는 정신 나간 돈키호테쯤으로 여겼다.

- <당신이 경영진이나 그들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이 가진 주식을 팔아라.> 이 말이 월 스트리트에서는 오랫동안 격언의 시작이자 끝이었으며, 사실은 지금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뉴욕시 체육 클럽에 가입해서 스쿼시와 골프를 배우기도 합니다. 이때 그레이엄에게 스쿼시를 가르친 젊은 선생은 한 때 세계 챔피언이었다고 하는데, 그는 젊은 나이에 신경쇠약에 걸려 자살하고 맙니다.

- 나는 그의 자살과 관련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내 생각에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았다. 내가 알기로 그는 세상에 대해 무관심했으며 세상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타인들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

 

1929년 그레이엄보다 22세가 많은 버나드 바루크와의 만남에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주식시장의 과도한 상승과 투기꾼들의 광란하는 모습, 유명 투자은행들의 흥청망청거림과 같은 모든 상황이 갑작스런 폭락사태와 함께 끝날 것이라는데 두 사람은 의견을 같이합니다.

- 나는 바루크가 당시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꼬집으면서 연리 8%의 기한부 대출을 받아 겨우 2%의 배당금을 지급하는 주식을 사는 사태를 지적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말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맞습니다. 보상의 법칙에 따라 우리는 언젠가 그 반대되는 상황, 즉 연리 2%의 기한부 대출을 받아 8%를 배당해주는 우량주에 투자하는 것도 예상해야 합니다.

 

1929 20%로 비교적 선방한 그레이엄은 1930년 플로리다에서 당시 93세의 사업가 존 딕스 씨로부터 조언을 듣게 됩니다.

- 그레이엄 씨, 나는 당신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 바랍니다. 내일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가세요. 그리고 사무실로 가서 당신이 보유한 유가증권을 전부 팔아 부채를 갚고 자본금을 파트너들에게 돌려주세요. 만약 내가 지금 당신의 입장이라면 밤에 한숨도 자지 못할 겁니다. 나는 당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경험도 더 많습니다. 나의 충고를 듣는 게 좋을 겁니다.

 

그는 노인의 말을 공손히 들었지만, 전혀 이행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50.5%의 손실을 입게 됩니다. 그는 노인의 말을 듣지 않아 큰 곤란을 겪었지만, 이 일로부터 얻은 경험 덕분에 자신의 성격과 경력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합니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그레이엄이 운용한 펀드는 70% 이상 손실을 보았고 1933 50% 수익을 얻으면서 돌아설 때까지의 4년 동안 힘든 시기를 보냅니다. 이때 상황을 회상합니다.

- 나의 괴로움은 재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루한 장기전과 함께 시장이 돌아섰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추락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실망, 대공황과 손실이 언제 끝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완전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의 가난했던 세월은 자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아주 조금 끼쳤다고 합니다.

- 가난은 돈에 대한 깊은 관심과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적극성, 그리고 극도로 보수적인 지출 습관을 내 성격 속에 자리잡게 했다.

 

1962년 출간한 [증권 분석] 4판에서 다뤘다는 두 가지 중요한 해결책을 자랑합니다.

1. 주식과 채권의 비율은 공히 25% 이하여서는 안 된다. 나머지 50%는 주식의 시장가치가 높은지, 보통인지, 낮은지에 대한 투자자 개인의 확신과 판단에 따라 할당해야 한다. 만약 투자자가 이 문제에 대해 강한 의견을 갖고 있지 않다면, 주식과 채권을 50:50으로 유지하는 것도 논리적일 것이다.

 

2. 개별 유가증권의 선택 문제와 관련해서 채권 구성은 반드시 우량 종목으로 제한해야 한다. 나는 애널리스트나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투자자들이 평균 이상의 실적을 가져다 주는 보통주를 고르는 능력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표준적인 포트폴리오 구성은 어느 정도 다우존스 산업평균을 모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그레이엄이 말년에 인덱스펀드를 권했다는 말이 여기서?

 

1974 80세 생일 연설문에서 그가 닮으려고 하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을 얘기하며, 그의 인생이 그의 성공과 비교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밝힙니다. 또한 자신이 추구했던 정신적인 즐거움에 대해 얘기하며 아이들이 배웠으면 합니다.

- 내가 일생 동안 누렸던 즐거움의 최소한 절반은 정신의 세계, 미와 문화, 특히 문학과 예술로부터 나왔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실상 무료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시작하기 위한 관심과 우리 앞에 펼쳐진 풍요를 감상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입니다. 손자 손녀 여러분, 가능하면 시작하기 위한 관심을 가지세요. 그리고 노력을 계속하세요. 일단 여러분이 그것-문화적인 삶-을 찾게 되면, 결코 놓치지 마십시오.

 

세이모어 차트만은 서문에서 그레이엄의 투자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자신의 논리적 사고능력에 대한 믿음은 그로 하여금 가치투자 이론을 만들고 시험하게 했으며, 시장의 방향과 타이밍을 예측하는 월 스트리트의 끊임없는 주장을 무시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예측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가졌던 예측에 대한 집요한 집착으로부터 이익을 냈다. 그는 스스로 깨우쳤고, 또 제자들에게 이해하도록 가르쳤던 기업실적이라는 실제 사실과 수치와 같은 보다 신뢰할 만한 근거를 더 선호했다.

 

또한 그레이엄의 회고록은 많은 교사들이 의심스러워 하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고 합니다.

- 가장 좋은, 그리고 오직 하나의 지속적인 교육은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배웠던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이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즐겁다는 사실이었다.

- 그리고 그가 책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 특히 실수로부터 배우려고 했던 일생 동안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벤저민 그레이엄이 쓴 자신의 묘비명을 옮깁니다.

 

이 사람은 모두가 잊어버린 것을 기억했고

모두가 기억한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다.

그는 오래도록 공부했고, 열심히 일했으며, 많이 웃었다.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살찌웠고, 사랑에 마음을 빼앗겼다.

 

사족: 멋진 서문을 쓴, 세이모어 차트만과 그레이엄이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마지막 연인 말로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마도 저의 검색 능력 부족으로, 전혀 얻은 것이 없었음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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