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산책자의 시간 - 김명인의 런던 일기
김명인 지음 / 돌베개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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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산책자의 시간 (부제: 김명인의 런던 일기)

- 지은이: 김 명인

- 출판사: 돌베개 / 2012-12-10 / 352 / \16,000

 

저보다 2살 많은 저자는 부러운 점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늦게 가진 직업이라지만 대학교수로 1년간 연구년을 얻어 휴가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음악을 즐기고 음향기계 구입과 연주회 관람, 연주자의 솜씨와 지휘자의 능력까지 가려 보고/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모짜르트 음악이 좋다는 말을 듣고 클래식을 생활화하겠다며, 오디오기기 구입에 CD도 꽤나 구입하고선 듣는 귀가 없어 금방 시들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40세가 되었을 때, 이만하면 되었다며 자유를 부르짖으며 회사를 사직하고서는 계획부족과 얇은 귀로 인한 몇 차례의 실수 끝에 자유는커녕 빈곤의 문턱까지 가서는 겨우겨우 연명하다 11년 만에 다니던 회사에 복직해서 그나마 주어진 자유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책은 안식년 중 2011 9월부터 2012 2월까지 영국 런던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기준 산본쯤에 위치한 서비튼에서의 6개월 자취 생활을 보여주는 저자의 일기로 기행문으로도 명상록으로도 볼 수 있는 글 모음입니다. 아마 후자에 가까운 글이라고 해야겠는데, 기회만 된다면 저자가 다닌 곳을 휘둘러 보고픈 마음이 들게 하였으니 기행문에 가깝기도 한 것 같고^^

 

대학 때 학생운동으로 짧게 그리고 길게 수형 생활을 경험한 저자가 글 곳곳에서 드러내는 정의감과 실행력은 비슷한 연배로써 그의 용기가 마냥 부러울 수만은 없지만 저를 기 죽이기에 충분합니다. 한편 일단의 사건에 대해 정제된 표현으로 규정지을 때는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런 거 말씀입니다.

 

10 25일 일기: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이나 글로써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의 경우다.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을 나는 싫어한다. 그리고 슬그머니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아니면 무슨 말이든 해야 하는데 기어이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도 싫어한다. 그리고 내가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될까 봐 두렵다.

 

2011 9월 한국의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일기에서는 과거 제국시대의 영광을 안고 살아가는 영국인의 여유와 그에 반해 식민지시대를 경험한 한국인의 분주한 현실을 나열하면서 영국병한국병을 생각합니다. 한편 MB 정권하의 한국을 벗어나 있는 자의 여유를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정권 때문에 책 읽는 시간을 많이 가진데 대해, 이를 악물고서, 고마움을 표시하곤 합니다. 허무맹랑한 소설 같은 기사들로 인해 제 인내력의 한계를 테스트하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화병으로 누구보다 먼저 세상을 하직할 것 같아서 집에서 보던 신문 4(경제지 2종 포함)을 끊었고 TV 뉴스도 멀리하게 되었거든요.

 

런던에서 만나기를 원했던, S과 결국 만날 수 없게 된 9 29일의 일기는 한 때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의 돌변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인정해야겠지만 쓸쓸한 일입니다.

 

한때 같은 생각을 하던 사람들일수록, 살아가면서 인생의 오차 범위가 점점 커지면 만나서 말 나누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한편으로는 변화를 인정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서로의 변화에 당황하면서 서로가 일종의 거울처럼 자기 모습을, 그것도 아픈 부분만을 비쳐 주게 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수처럼 남아 있는 정서적 친화감 때문에 더욱 그 어색함이랄까 낯섦이 증폭되게 된다.

 

10 6일 일기에서는 스티브 잡스의 부고를 대하며 저자는 아이폰,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그를 창조자라고 극찬합니다. 저는 당시 3 4일의 중국 계림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공항 출국장에 비치된 무가 지에서 잡스의 죽음을 만났습니다. 사세(辭世)라고 표현한 특이한 단어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아직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있어 비난을 받고 있는 저로선 그의 죽음이 대수롭지 않았습니다. 이런 때는 제가 저자보다 20세쯤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10 26일 일기에서는 서울에서 들려온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생각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을 기뻐하면서 상대가 45% 득표한 것에 대해 우려합니다. 굳건한 조중동의 위협이 오히려 소외 받는 사람들의 막무가내식 지지에 갑갑증을 느낍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해 저자는 어떤 상념에 빠져있을지 문득 걱정이 되었습니다. 파리에서 딸과 연말을 보내던 중 김근태님의 부음을 듣고서 과거를 회상하고서, 2012년을 점령하라는 김근태님의 마지막 남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복귀를 준비한다고 했는데요. 만성적인 고질병의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하던데, 부디 약사 아내 분의 조언을 잘 받아들여 무난히 지나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아마 충분히 이겨내시고 미래를 준비하고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딸과 함께 차로 아일랜드 여행을 마치고 오는 길에 리버풀에 들러 산 비틀스 CD에서 흘러나오는 Let it Be를 들으며 아빠를 위로하는 딸의 위로가 부러웠습니다. 아빠 그 짐 좀 내려 놓으세요. 언젠가 대답이 있을 거에요. 너무 힘들게 살지 마세요. 저 노래처럼 다 잘될 거에요. 저자를 잘 이해해주는 가족의 마음이 너무 좋았고 그것만으로도 저자는 행복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지식인에 대한 말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해 애국심 같은 건 잊은 지 오래란 말씀은 물론 지나친 과장이겠지요. 하지만 이 나라가 지식인답게 살고자 했던 저자를 얼마나 힘들게 했으면.. 입으로만 애국을 외치는 철면피들과 비교할 수 없는 진실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인을 사랑하는 저자의 속마음을 엿본 것 같아서..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병으로 인해 밤에 잠자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처음엔 7시간 반 정도 자면 좋다고 하더니, 희망하는 숙면 시간을 6시간이라고 하네요. 저자를 부러워만 하던 독자가 드디어 저자에게 자랑할 거리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평일엔 5시간 반 혹은 6시간 정도 자고 주말엔 1 ~ 2시간 정도 더 자고 있습니다. 거의 잠을 설치지도 않고요. 그렇더라도 집중력에선 저자와 비교가 될 수 없겠죠.

 

영국 체류 6개월 동안, 저자의 음악회 관람은 10여 회를 넘기면서 횟수 세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저자의 직업 중 비평가가 있던데, 설마 그 비평가가 음악비평가는 아니겠지요^^ 책 읽는 내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저자의 사랑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당장 실천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제 귀에는 조수미의 노래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뚜렷한 주관이 부러웠고 그의 행동력에 감탄했습니다.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독후감을 쓰면 어떨까 싶었는데, 한편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책을 훑어본다는 것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행여 현실에 동화되려는 제 약한 마음을 다잡자는 마음으로 괴발개발 느낌을 주절거렸습니다. 행여 저자께 무례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자유로운 여행을 꿈꾸다 이제 은퇴를 기다리는 독자로써 저자의 여행에 대한 말씀이 좋아 말미에 붙여 옮깁니다.

 

여행이란 것이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흉내로라도 연습 만으로라도 멀리 떠나 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적어도 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에는 그때까지의 일상과는 다른 시간을 살게 된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겪는다. 노동도 과제도 없는, 어떤 의무도 없는 순수한 놀이의 순간을 산다. 가엾고 짧지만 해방의 순간이다.

 

여행에서는 몸만 돌아온다고 돌아오는 게 아니다. 깊고 혼곤한 잠에서 깨어날 때처럼, 몸은 돌아와도 정신은 그보다 늦게 돌아오는 것이다. 금방 돌아오기 아쉬운 여행일수록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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