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조금은 이상한 것을 믿는다 - 누구나 한 번쯤은 믿어봤을 재밌거나 이상하거나 위험한 생각들, 스켑틱 특별 합본호
니콜라 고브리트 외 지음,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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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증편향이란 것이 무엇인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그것이 설사 사실 그 자체라 하더라도 구태여 눈을 감고 믿지 않으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이런 본성에서 탄생한 가치관은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 터진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바꾸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주요 독자층은 누구일까?

아쉽게도 유사과학 신봉자들이나 반과학적 종교론자들, 혹은 지적설계론자들이 이 책을 선뜻 골라 읽으면서 "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혁신적인 깨달음을 얻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실질적으로 이 책의 주요 독자는 이미 과학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 유사과학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나아갈 방향성은 유사과학 신봉자를 설득하려는 노력보다는 과학적 사실을 믿는 독자가 어떻게 유사과학 신봉자들의 논리에 대비할 수 있을 지 그 방식을 알려주는 편이 좋다.


사실 이미 사실로 판정된 과학적 진실을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반면, 그 지점을 파고들어 음모론 설파하는 자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비하는 것은 생각보다 난처하다.

예를 들어, 1+1=2라는 자명한 사실에 관하여 누군가 그것이 왜 '2'인가라고 설명을 요구한다면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사과학 신봉자들의 논리를 단순히 개소리취급하며 무시하는 것이 좋긴 하다.

하지만, 유사과학 신봉자들이 노리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즉, 우리가 그들의 개소리를 단순히 무시하고 유보할 수록, 이들의 믿음은 커지고 집단의 성장은 더더욱 빨라질 것이다.


실례로 철학자 오사 빅포르스는 《진실의 조건》에서 음모론자, 개소리꾼, 탈진실을 믿는 세력이 노리는 것은 '진실' 그 자체를 밝히는 것보다는 거기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서 확고한 사실 자체를 밑에서부터 흔들고 의심케 만드는 것에 있다고 봤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을 이 책 3부에서 꽤나 잘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1~2부은 솔직히 좀 지루하다.

주요 독자층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뻔한 설명과 논리라는 점에서 그러려니 하면서 읽히는 감이 있다.


애초에 이 책은 전문 과학잡지이기도 하지만, 마이클 셔머를 중심으로 회의주의적 시각과 유사과학 비판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스켑틱'의 기고글을 모아 만든 책이라서 

각 장별, 주제별 집필진이 모두 다르고, 그에 따른 역량이나 스타일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1~2부은 뭔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 쉬운 설명에도 불구하고 뭔가 읽을 맛이 안난다.


반면 3부부터는 좀 이야기가 다르다.

3부는 주로 '대니얼 록스턴'이란 과학자가 지분을 많이 차지하는데, 이 사람이 글을 상당히 흥미롭게 잘 쓴다.

물론, 적잖이 글을 잘 쓰는 '마이클 셔머'도 여기서 등장하긴 하지만, 록스턴의 글은 이 책을 완독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4부 '심령 사진' 파트도 갑자기 재밌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일단 록스턴의 글은 대부분 '지구평면설', '지구공동설', '지구중심설'과 같은 정말 현대사회에서 믿을 수 없는 엉터리 유사과학이지만, 놀랍게도 그 신봉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근데 진행방식이 상당히 흥미롭다. 뭔가를 단순히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논파하는 방식을 택하기 보다는 도리어 그 유사과학이 왜 생겨났는가에 대한 역사부터 차근차근 밟으면서, 마치 유사과학자들의 생각을 직접 파고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이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라는 점을 주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글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준다.

그리고 이게 독자 입장에선 상당히 재밌고 흥미로운 요소로 다가온다.


특히 '지구공동설'에 와서는 마치 한 편의 SF 스토리를 떠오르게 만들만큼 흥미로운 소재들을 던져주는데, 만약 당신이 웹소설 같은 것을 쓰는 사람이라면 '과학적 사실'을 떠나서 주워담을 이야깃거리들이 넘쳐나는 부분에 심장이 두근거릴 지도 모른다.


즉, 단순한 과학적 설명과 사실을 설명함으로써 이미 과학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 주요 독자층 입장에서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독자층조차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나는 이 책의 핵심이 3부라고 생각한다.

1~2부의 지루함을 좀 견뎌내면

3부부터는 거침없이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3부의 방식이 바로 이런 책을 읽는 주요 독자가 원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아 물론, 그 독자가 유사과학 신봉자라면 1~2부의 설명 방식도 나쁘지 않다. 물론 설득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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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이라는 이유 - 혐오와 차별의 정치학
정회옥 지음 / 후마니타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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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 인종주의의 역사에 관한 부분은 솔직히 말하자면, 나인호 교수가 쓴 《증오하는 인간의 탄생》이란 책이 더 세세하게 잘 파고든 측면이 많다.
실제로 이 책에서도 인종주의의 역사 부분은 해당 저서를 인용하기도 했다.

물론, 인종주의 역사에 관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 책의 초반부도 꽤나 흥미로울 수 있으나, 관련 서적을 조금이라도 섭렵한 사람이라면 초반부는 알고 있는 내용을 더 간단하게 답습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의 묘미는 후반부에 있다.
즉, 아시아인이 왜 비슷한 인종차별을 겪는 흑인, 히스패닉 계열에게 조차 희생양이 되는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
특히 요즘 늘어나고 있는 아시아인 폭력에 대해 점점 더 흑-백 갈등이 아닌 황-흑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짚었다는 점이다.

이 책 후반부에 등장하는 '모범 소수민족론'에 관한 주제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산업 권력 전체의 배분 문제에 있어 자본가라는 명확한 중심 권력층이 있음에도, 기득권 세력이 노동의 이중구조화를 이용해 갈등의 중심부를 정규직 - 비정규직 간의 싸움으로 옮겨놓은 것처럼.

백인 사회는 아시아인을 순종적인 '모범 소수민족'으로, 흑인을 게으르고 반항적인 '비모범 소수민족'으로 구분한다. 이 과정에서 흑인은 미국 문화에 더 동화된 토박이임에도, 나중에 유입된 아시아인이 본인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갖는 것에 불만을 가진다.
문제는 아시아인 입장에서도 정작 백인과 동등한 지위를 차지할 수 없는 단순 2등 시민에 불과한데, 백인 사회는 이 부분을 이용해 인종 갈등을 미묘하게 흑인과 황인의 싸움으로 번지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내용을 후반부에 꽤나 재밌게 풀어놓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이슈 때문에 국내에서도 백인보다 흑인을 향한 분노, 인권운동의 모순점에 대한 폭로가 커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은 미국과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 갈등의 잘못된 초점과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읽을 만한 서적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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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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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1.사실과 지식의 차이 구분. 2. 의도된 개소리의 목적과 효과. 3.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교육 및 사회적 해결책으로 구분되어 있다.

사실과 지식의 구분에서는 상당히 개념적인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지식은 인간의 '믿음'에 따라 결정되면서 인지적 왜곡이 나타나지만, 아무리 자신의 믿음에 따른 지식을 강조한다고 해도 세상의 존재하는 '객관적 사실'은 단 하나라는 점을 설파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즉, 우리는 진정한 사실을 보고도 자신의 믿음과 가치에 따라 그 사실을 왜곡하거나 아예 보지 않으려 들고, 내가 믿는 지식을 더욱 강화시키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어서 점점 더 진실에서 멀어지도록 만든다.

개소리의 효과에 대한 부분은, 탈진실에 대한 유명한 명저인 프랭크퍼드의 《개소리에 대하여》를 토대로 하여 한 발자국 더 명료하게 걸어 간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개소리의 목적이 '사실에 대한 확신에 의구심을 심어 놓는 것'이라는 지점은 주목할만 하다. 음모론을 비롯한 각종 가짜뉴스의 범람은 사실에 대한 합리적 믿음을 흔들어놓는다. 이를 저자는 진실에 대한 '약화 효과'라고 본다. 그렇게 진실이 지속적으로 의심받으며 흔들리면, 인간 개인은 가치에 대한 방향성을 상실하고 방황하게 된다.
방황하는 개인은 끊임없이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피해자처럼, 자신의 행동에 확신을 할 수 없게 되고. 누군가가 자신을 이끌어주길 바라게 되는데, 그 결과 강력한 지도자, 권위있는 인물에게 의존하는 길을 선택한다. 이것이 현재 전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정치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해결책에서 드러나는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의 저자는 기본적으로 진보적 스탠스를 지닌 철학자임에도, 진보적 사상관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하는 부분이다.

특히 푸코, 데리다로 대표되는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이 정작, 철학계에서는 비주류에 속하고 비전문 분야에서만 인기가 많다는 지적은 놀랍기까지 하다.
탈진실을 유발하는 '포스트 모던'과 '구성주의 교육학'에 대한 비판은 매우 유용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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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중봉기 - 민중을 주인공으로 다시 쓴 남한의 사회운동사 1894 농민전쟁 ~ 2008 촛불시위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민중봉기 1
조지 카치아피카스 지음, 원영수 옮김 / 오월의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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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자는 미국인이지만 상당한 반미 제국주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점은 견지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따라서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불편한 부분이 나타나는데, 특히 신냉전체제가 다가온 현 시점에서 여전히 공산주의 이상향에 대한 저자의 지나친 집착은 시대에 많이 뒤쳐졌다는 느낌을 배제하기 힘들다.

저자의 태도는 확실히 레이몽 아롱이 주장했던 학자들이 쉽게 빠지기 쉬운 유토피아에 대한 집착, 즉 지식인의 아편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확연히 보여준다.

이런 점은 특히, 책 초반부에 등장하는 북한을 위한 변명, 북한에 대한 환상향적 면모에서 저자가 여전히 유토피아적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불편한 모습으로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저자의 이런 성향을 배제하고 본다면, 이 책은 상당히 잘 쓴 민중사적 성격을 보인다.

특히, 국내 저자조차 이렇게 체계적으로 한국의 민중 봉기사를 정리한 경우가 많지 않은데, 미국의 석학이 한국의 민중봉기사를 이렇게 자세히 풀어썼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심지어 한국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상당히 깊이 파고들었는데, 《오월의 사회과학》을 비롯하여, 국내 저작과 논문을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중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외국인 관점이 보여주는 어떤 한계점을 분명히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브루스 커밍스조차, 외국인 학자의 한계성을 넘지 못하고 다소간 자국의 이익에 대한 관점에서 한국 역사를 서술하는 모습이 많았는데.
이 책은 모든 면에서 한국의 민족지학적 특성과 감정을 고려하여 접근한다는 점이 놀랍다.

나아가 한국의 반미주의의 탄생, NL과 PD노선의 형성, 한국 계급투쟁의 심리 등의 매우 미시적인 부분의 감정선까지 파고드는 것은 저자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의 그 밀도가 매우 높음을 증명한다.

저자의 극좌적 성향을 배제한다 치더라도, 한국 민중사, 운동사에 관하여 이 정도로 체계적으로 풀어쓴 책은 보기 드물며, 연구 사료적 측면에서도 훌륭하다. 서술문장도 매끄러운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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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정치 - 반지성주의를 경계하며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청송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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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철학, 심리, 정신적 이동 과정을 아주 잘 보여주는 에세이다. 초반 에세이에서는 강성 민족주의자이자 낭만주의적 태도를 보이면서, 매우 보수적인 사상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가, 1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사상적 전향이 일어나더니 나치의 등장으로 완벽하게 사회민주주의자로 탈바꿈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흔히, 진보적 인사가 보수적으로 전환하는 경우는 많이 봤어도, 토마스 만처럼 보수주의자가 진보적 사상가로 전환하는 경우는 흔치 않아서 상당히 그의 고찰과 성찰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온
다.

무엇보다 에세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데.
그의 사색, 정치와 예술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그의 본연적 태도를 지키려는 예술관, 끊임없는 성찰을 통한 본인의 세계관 및 철학관의 토대적 생성을 확실히 보여준다.

아시다시피, 토마스 만의 문학세계는 예술가의 태도와 정신, 삶에 대한 성찰이 주를 이룰만큼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초점이 많이 드러난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그런 예술관을 유지하고자 하면서도 끊임없이 정치, 사회의 접근에 고민했던 그의 흔적이 그의 인품을 더욱 고상하게 만들어준다.

그야말로 한 인간의 정신적 탐색을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에세이의 진정한 묘미가 아닌가 싶다.

몽테뉴의 《수상록》이나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를 떠올릴 법한 성찰적 에세이의 진수. 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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