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혐오하는 민주주의 - 팬덤 정치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박상훈 지음 / 후마니타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수명이 어떻게 정해질까?

정말 오래 남는 책이 있는가 하면, 짧게 수명이 끝나버린 책도 있다.

보통 수명이 긴 책들은 현상에 대해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고는 있으나 그것을 최대한 억압하면서 근본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반면 짧은 수명의 책은 당장의 현상에 주목하긴 하지만, 자신이 굳게 믿는 신념을 지나치게 노출해버린 나머지 급박하게 흘러가는 시대 상황에 따라 무의미한 책으로 변질되어버린다.

(시대 상황이 자신의 판단에 맞게 흘러간다면 살아남을 수 있지만, 빗나간다면 생명령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책이 그렇다.

사실 나는 후마니타스의 책을 좋아하고, 박상훈 대표를 필두로 그들이 내놓는 정당론 정치서들을 좋아했다. 특히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의 경우는 내 인생책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가 왜 특정 정당이 나의 가치관을 100% 반영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 정당을 지지해야 하는지 그 기준점을 제시해 준 책이기 때문이다.


사실 《혐오하는 민주주의》는 서론부터 저자의 지지성향을 숨기지 않고 있다.

딱 봐도 이 사람은 지금 누군가를 지지하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비판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 사람은 민주당 내부에서 내홍을 일으키고 밖으로 나와 새시대를 만들겠다고 당당하게 천명한 올드 보이였다. 

그리고 저자는 모든 정치인의 "팬덤" 문제에 대해서 언급한다. 여기에는 윤석열, 이재명, 이준석은 물론이며 이미 지나간 정치인인 박근혜, 문재인까지 포함된다. 그러면서 저자는 마치 이 인물에 대해서는 "팬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야말로 순수한 정치색을 띤 유일한 해답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것을 숨겨놓은 듯이 말하곤 하지만, 문장의 뉘앙스에서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중립적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순수 정의선의 예시처럼 등장하는 인물 역시 팬덤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고, 저자 자신도 "학문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 채 자꾸 편향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결과. 본인 스스로가 "팬덤 정치"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음을 방증하고 있다.


중반부터 꽤나 중립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분석을 시도했으나

계속해서 특정 지지성향이 군데군데 튀어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물론, 저자가 특정한 시각과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책들은 완벽한 중립을 지키기는 어려운 편이다.

그러나 "팬덤 민주주의"가 극단적 양분화로 정치를 분열시키는 현 시국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는 최소한 양극단 중 하나에 치우치지 않도록 중심을 지켜야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을 망각하고 본인 스스로의 시각은 마치 그 팬덤에서 제외된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   


게다가 그가 지지하는 인물은 결국 그 극단적 양분화의 중심 소용돌이에서 파장을 일으키는 존재 중 하나였다. 따라서 그 역시 분열의 정치판 속의 핵심 중 하나란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인물임에도, 저자는 마치 이 인물이 양극화된 정치의 중립을 잡아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이 책을 읽는 내내 따라다닌다. 때론 노골적으로, 때론 우회적으로..


총선이 끝나기 전에는

그래도 이러한 시각이 나름 유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저자가 중립적으로 분석해야 했을 책에서 조차 자신의 입장을 숨김없이 드러낼만큼 자신감을 보였다면, 그것이 현 시국에 하나의 해결점으로 도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선이 끝난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은 유효한가?

그 당은 국민들에게 완전히 외면당했고, 소나무당 같은 옥중 출마로 소란이 된 정당조차 보전받은 선거비를 보전받지 못한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심지어 저자가 신규 팬덤 당원들의 심리를 "정당의 오래된 지역 기반이나 하부 기반을 허물고 싶어하는 존재들"로 규정하였는데, 총선이 지난 후, 이 말은 그야말로 헛웃음이 나오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 지역 기반과 하부 기반의 민심조차 이미 돌아서버렸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여러모로 많이 실망스럽다.

특히 좋아하는 출판사, 좋아하는 저자가 이런 식으로 책을 썼다는 것이 참 실망스럽다.

조금 더 중립적으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본인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좀 숨겼으면 어땠을까.

실제로 "팬덤 정치"는 한국은 물론이며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자기 내부의 자리잡고 있는 숨겨진 팬심, 혹은 그러한 신념들을 솎아내고 썼어야 했다.

만약 그것에 성공했다면, 이 책은 총선이 끝난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를 담은 책으로 남아 계속 읽혔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기 감정과 신념을 조절하지 못했고.

그 결과로, 이 책은 몇 번을 곱씹어봐도 이걸 계속 읽어야 하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남는 생명력이 짧은 책으로 남게 되었다.

선거 전에 읽었을 때는 그럴듯하게 읽혔는데, 선거 이후 결과를 보고 읽으니 모든 것이 무의미한 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저자가 이 책의 방향성을 완전히 잘못 잡았다고 본다.

정말 중요한 현상을 왜 이렇게 짧은 전망을 가지고 판단해버렸을까? 

너무나 아쉬운 책이다. 그리고 안타까운 책이다.


그리고 정당론 권위자라는 타이틀을 지닌 저자는

지금 시점에서 자신의 학구적, 지식적 오만에 대해서 되돌아보면서

반성을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저자를 더욱 성장시켜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 우리를 교묘하게 조종하는 경제학에 관한 진실
조너선 앨드리드 지음, 강주헌 옮김, 우석훈 해제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가 휘청였을 때, 유명한 일화가 존재한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앞에서, 왜 이런 세계적으로 경제가 휘청일 만한 사태가 일어났는지를 수많은 경제 석학들이 참여하여 설명을 해주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렇게 질문했다.


"왜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었으면서도 이 사태를 막지 못했던 것이죠?"


이 질문에 모든 경제학자들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사후약방문"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현대 경제학의 위치는 중세시대 의학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즉, 질병이 퍼지거나 사건이 지나간 후에 대한 대응은 가능하지만 이것을 예방하거나 사건이 눈 앞에 닥쳤을 때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수준이란 의미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대 경제학의 무능을 넘어서, 오만한 모습들을 매우 세세하게 잡아낸다. 특히 프리드먼, 하이에크 등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와 '정통 경제학'에 대한 날 선 비판을 보여준다.


이들 경제학은 수학을 통해, 인간 경제와 행동의 가치 패턴을 모두 계량화하고 계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들은 '사회과학'이 항상 걸려 넘어졌던 부분. 즉 물리학과 수학처럼 완전한 정답을 증명할 수 없다는 뼈아픈 약점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각종 수학적 접근을 경제학에 가지고 와서, 인간 경제와 사회, 행동 패턴 등 모든 것을 계산하려 했으며 이에 대한 확고한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경제학이 유일하게 '사회과학'이 아닌 '순수과학'이 될 수 있는 학문이라 자부했다.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심리학이 이러한 함정에 빠져 있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도덕학이지 자연 과학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경제학은 내적 성찰과 가치 판단을 사용한다." -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中




하지만,  작금의 세계 경제를 보면 알 수 있듯, 경제학은 자연의 단순 법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가치 판단이 끊임없이 개입하는 세계이다. 경제학은 가치 개입이 없이 순수한 영역인 척 포장했으나, 거기에는 경제학자들의 끊임없는 편견, 정치적 가치, 도덕적 관념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경제학의 아버지,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조차 본인은 《도덕 감정론》을 지은 도덕 철학자로 남기를 원했다. 그만큼, 경제학은 단 한순간도 인간의 윤리, 정치, 문화와 나누어져 생각할 수 없는 개인적인 가치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세계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최대한 회피하고 무시했다. 그들은 모든 것은 계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것으로 봤다. '불확실성'의 문제는 언제나 존재했고, 그들의 예상 범위를 벗어난 '블랙 스완'이 나타날리 없다고 확신했지만 어느 순간 블랙 스완은 그들 곁에서 그들의 행동을 비웃으며 나타나곤 했다.




"경제학자들이 자신의 주장에 내재한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견해에 침묵한다는 걸 보았다. 그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과학적으로 보이고 싶은 경제학자들의 욕심이다." -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中



주기적으로 그러한 문제들이 터질 때마다, 정통 경제학은 스스로의 이론을 수정하고 반성할 수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길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애써 부정하고 무시했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 사실 기존의 방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걷는 다는 것은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새로운 방식의 실패는 고스란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오는 반면, '정통 경제학'이란 아성은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경제학자 본인의 가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정통 이론을 포기한다는 것은 직접 판단하며, 사태가 악화되거나 경쟁자가 더 좋아지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을 떠안겠다는 뜻이 된다." -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中




유명한 금융 공학자, 나심 탈레브는 《스킨 인 더 게임》에서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금융업계와 그들을 비호하는 이론적 학파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의 무책임함에 대해 그들을 사기꾼이라 일컬으며 비판한 적이 있다. 


실제로 2008년 리먼 사태는 명확한 책임 소재가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에게 두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거대한 부와 편안한 노후를 보장해줬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는 이 사태에 대한 분노로 인해 일어났으며, '정통 경제학'이 말하는 시장 경제의 자유란, '기업과 부유한 자를 위한 사회주의'에 불과하다고 비판을 받았다.


정통 경제학은 인간 사회의 불확실성과 우연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싶어했지만, 그러한 행동은 언제나 실패를 불러왔다. 그들이 이것을 계산할 수 있다고 착각할 수록, 주기적으로 불확실성과 우연의 문제는 인간 경제에 불행을 몰고 왔다.




"우리는 오만하게 행동하고, 지나치게 자신 있게 행동하며 우연의 신에게 저항한다. 오만은 언제나 응징으로 이어진다." -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中




무엇보다 저자는 경제학자의 오만함이 경제 문제에 대해 대비하고 기존 경제학의 허점을 수정하는 데 큰 걸림돌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다른 학문과 달리 경제학자는 자신들만의 상아탑을 너무 높게 쌓아 올린 나머지, 타 학문의 접근을 거부하는 측면이 크다. 그래서 보통 일반적인 학문들이 여러 다른 학문의 자료와 논거들을 인용하는 반면에, 경제학은 순수하게 자신들의 세계 안에서 자신들만의 논문을 인용하며 쉽게 순환 논증의 오류에 빠져들었다.


예를 들자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모순된 부분과 마주쳤을 때, 그들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과거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이 부분은 논할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넘겨버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없음을 알고 있고, 그러한 인간의 본성 때문에 정부를 불신하며,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합리적이지 않은 인간성'이 경제학자 본인들한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하곤 한다. 


사실 이는 거의 대부분의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문제인데. 어떤 것을 논할 때, 인간의 본성적인 면의 문제를 타인을 통해 자주 지적하는 경우가 많지만, 꼭 본인은 그 문제에서 빗겨간 상태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전쟁을 주장하는 자들은 자신이 최전선에 서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듯 선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슷하다.)


"나는 완벽히 합리적인 인간이며, 그러하기에 시장의 원리를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간은 그러하지 못하다.", 이것이 정통 경제학자들이 지니는 오만의 문제 그 자체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겸손한 경제학자가 등장하기를 기원하며 책을 갈무리하고 있다.




"낡은 정통 이론을 뒤엎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때 우리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질적인 거부감과, 불확실성을 계량화하겠다는 집요한 고집이다." -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中



지금 경제학은 어느 위치에 있는가?


왜 그들의 수많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와 경제는 왜 그토록 우리가 예측한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가?  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변수들은 전혀 통제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가?


이 책을 경제학이 물리학이나 수학처럼 완전한 순수과학이라고 자처하는 자만심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며 커다란 경종을 울리고 있다.


현대 경제학은 진실로 자기 반성과 고찰을 필요로 한다. 그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눈 뜨고 코 베이듯, 또다시 크나큰 경제 위기의 조류 속에 휩쓸려 나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깜장 고양이 짜루 - 겁 많고 소심한 길냥이 짜루의 묘생역전 사계절
고돌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SNS 만화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져 본 적은 없다.

대부분 별 내용 없는 일상툰이나 공감툰이 대부분이었고, 귀여운 캐릭터로 이루어진 세계 정도로 인식됐다.

SNS 특성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스낵 컬쳐를 넘어서지 못했다.


사실 이러한 스낵 컬쳐의 문제점은 작가에게 침묵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작품은 기본적으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다고 본다.

그러나 웹소설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SNS 작품들은 짧은 시간의 '소비'가 주목적이기 때문에 작가가 말이 많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의 의도나 내용의 의미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그러한 것은 소비에 방해되는 요소일 뿐이다.

그래서 스낵 컬쳐란 기본적으로 작가주의와 대척점에 있다. 아니 소비자 자체가 그러한 요소를 배척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SNS의 특성에 대해 분명한 타협지점을 만들면서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마지막 끈을 끝끝내 놓치 않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단순히 이 만화에서 공감이나 일상같은 평범함을 넘어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버려진 고양이와 자존감이 바닥인 주인공, 그리고 그 가족이 만든 하나의 드라마는 동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공감을 넘어선 의의를 찾게 되고, 그것이 이 책 속에 작가가 숨겨 놓은 하나의 보석처럼 다가올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단순한 SNS 만화가 아니다.

이는 성인을 위한 만화다. 아니다.

이는 관계 속에 지쳐간 우리에게 전달하는 하나의 에세이다.


에세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공감하고 힐링하고 일상적인 것을 늘어놓는 것인가?

아니다. 요즘은 그러한 책들이 대다수일지 몰라도, 적어도 원초적 의미에서 에세이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독자에게 조용히 건네는 메시지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 속에서 부유하고 있다. 귀여움과 말랑말랑함은 곁들여진 디저트와 같다.

하지만 진정한 매력은 겉모습을 파헤치고 나서야 드러나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그 동안의 편견을 깨고 이 책에서 SNS 만화로 대표되는 스낵 컬쳐의 새로운 방향성을 발견하게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쿠시마 - 일본 원자력 발전의 수상한 역사와 후쿠시마 대재앙
앤드류 레더바로우 지음, 안혜림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먼저 말해두자면, 이 책은 어떤 환경주의자가 '탈핵'을 외치는 책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저자는 원자력 발전과 관련한 전문가이고, 체르노빌 사건에 대해 깊게 연구하면서 원자력 사고의 경위 조사에 있어서는 유명한 권위자에 속한다.

그래서 책의 홍보 문구에 있다시피, 유명한 HBO 다큐 드라마인 《체르노빌》의 감수를 맡기도 할만큼, 이 부분에 있어서는 신뢰할 수 있는 권위자임에 분명하다.


이 책은 담담하다.

감정적인 부분이 하나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조사 보고서 그 자체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후쿠시마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는다.

먼저 일본 원자력 발전의 역사를 쭉 훑고 들어간다.

그리고 이렇게 기초적인 발전 과정을 훑으면서 왜 후쿠시마라는 커다란 사고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경위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특히 도쿄전력과 같은 민간 전력회사를 중심으로 일본의 조직과 행정, 이권 관계가 어떻게 이뤄져 왔는지를 전반부에 핵심적으로 서술한다.

처음 이 책을 든 독자는 곧바로 '후쿠시마' 이야기를 하지 않고, 복잡한 역사와 행정, 그리고 일본이 원자력 발전을 위해 어떤 전략을 써왔는가를 자세히 서술하는 내용에 당황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전반부 서술은 매우 핵심적이다.

여기에 후쿠시마가 사고가 터질 수 밖에 없는 그 '당위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자는 일본에서 이미 일어났던 몇 차례의 원자력 사고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특히 후쿠시마 이전에 일본 내에서 가장 유명했던 원자력 누출 사고인 '도카이 촌 방사능 누출사고'의 사건 경위는 인상 깊게 다가온다.

이미 일본은 후쿠시마 이전에 높은 수준의 방사능 오염을 겪었음에도 이에 대한 재발 대책에 대해서는 허술했음을 각인시켜준다.


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원전 그 자체에 대한 허술함도 보여준다.

저자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 이미 후쿠시마 원전 자체의 결함을 보여주는 보고서가 많았음을 수많은 자료를 통해 검토한다.

1. 원전의 건조기 자체에 큰 균열이 존재했다.

2. 이미 10년 전에 대형 쓰나미가 덮칠 수 있다는 보고서가 존재했다.

3. 감사원들의 내부 안전 조치에 대한 경고를 지속적으로 무시해왔다.

4. 무엇보다 가장 원자력 발전에 대해 잘 알아야할 현장 인력이  하청업체 직원으로 대체되었고 심지어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구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면모를 보다보면

정말이지 일본 전력 발전사는 그야말로 무사안일, 직무유기, 이권다툼의 현장 그 자체였고

그 허둥지둥한 행태는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정작 쓰나미가 덮쳤던 후쿠시마 사고 당시의 현장 직무자들은 최선을 다했으나, 이미 그전에 쌓아온 모래성과 같은 허술한 조직 행정과 이권을 위해 위험을 지속적으로 은폐, 무시해온 도쿄 전력 및 이와 관련한 행정 부처의 문제는 원자력 사고를 필연적인 결과로 만들어버린 셈이었다.

즉, 후쿠시마는 자연재해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 그 동안 쌓여온 부실한 행정이 부른 '인재人災'인 것이다.


아마 이 책을 보면

그 간의 도쿄전력과 일본 행정 부처들의 행동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신뢰할 수 없는지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하고 있는 지금

과연 그들이 철썩같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보고서를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 갈 수 밖에 없다.

그간의 행적들이 그들 내부 보고서가 얼마나 허술했고, 틈만 나면 중요한 부분을 무시하거나 은폐해 왔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왜 원자력 발전이 위험한가?

원자력 발전이 100%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과학적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의 문제, 조직행정의 문제 때문이다. 즉, 기술은 완벽히 작동할 수 있어도 이를 관리하는 인간과 조직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사실 모든 이론과 사상, 과학은 그럴 듯하게 다가온다. 마치 완벽하게 작동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언제나 인간의 욕심, 실수, 무능한 판단은 그 모든 이론과 사상, 과학을 무위로 돌리곤 한다.

원자력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을 둘러싼 인간과 조직은 100% 관리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이 탈핵을 외치지 않고, 원자력의 위험성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왜 우리가 원자력과 방사능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만들어준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누출되고 있는 지금.

이 책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읽혀야 하고 주목 받아야 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3-10-01 0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자력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이 가장 큰 문제네요.
 
우울할 땐 뇌 과학 - 최신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은 우울증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앨릭스 코브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울증이란 단어는 사실 보기만 하더라도 무겁게 다가온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울증 관련 서적들은 실제로 내용을 무겁게 다룬다.

우울증에 관한 훌륭한 서적 중 하나인 앤드루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만 보더라도, 딱딱한 학문서 성격의 책은 아닐지라도, 다루는 내용 덕분에 페이지를 넘기는 것 자체가 꽤 진중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우울할 땐 뇌 과학》은 여태까지 봤던 우울증 관련 서적과는 확실히 궤를 달리하고 있다.

과학 입문서라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너무나 유쾌하다. 저자가 보여주는 사례부터 설명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가벼운 터치로 다가오기 때문에 독자도 꽤나 편안한 마음으로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우울증 환자조차 이 책을 읽는다면, 그 나름대로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것은 저자가 독자를 위해 고안한 전략이고, 그 전략은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세간에 돌아다니는 자기 잘난 맛과 남 가르치는 맛에 사는 '힐링 서적'물과 비교하면, 이 책은 진정한 의미로 누군가를 치유하기 위해 존재하는 '힐링 서적'일 것이다.

 

뇌과학과 관련한 용어에 대해 몇 번이나 언급하며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려는 저자의 세심한 배려 또한 돋보인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뇌과학 서적이기 보다는 일종의 우울증 클리닉도 겸하고 있다.

사실 철저히 우울증에 대한 분석 및 과학적 증거를 찾기 위해 책을 접한 사람들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책의 전반부는 확실히 우울증에 대한 신경과학적 이야기들이 많지만, 후반부로 갈 수록 우울증 치료기법에 대한 이야기가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자신이 '뇌 과학 입문서'라는 정체성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우울증 치료를 위한 다양한 기법들을 소개할 때조차, 이것이 신경학적으로, 뇌과학적으로 어떤 원리에 의해 그것을 가능케하는 지 상세히 설명해준다.

우리가 흔히 이 정도 수준이면 민간요법 아닌가?라고 떠올릴만한 대처법에 대해서조차 이 책은 과학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매우 단순한 치료법이지만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 자체는 단순하지 않음을 상세히 알려준다.

그 덕분에 이 책이 보다 더 과학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우울증과 뇌과학이란 무거운 소재를 이렇게 가볍고 쉽고 유쾌하게 설명하는 책은 찾기 쉽지 않다. 뇌과학에 입문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평소 '문학' 분야만 읽다가 '비문학' 분야를 접하려는 어떤 독자라도 이 책은 훌륭한 입문작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