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 - 진시황으로 알아보는 자신만의 인생을 세우는 지배의 법칙 ㅣ 동양철학전집 - 승자병법 시리즈 2
진시황 지음 / ORIGIN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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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으로 알아보는 자신만의

인생을 세우는 지배의 법칙

진시황제는 13세에 왕이 되었다. 그리고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설계자다. 진나라의 제 31대 군주이며 초대 황제이다. 화려한 이력은 그의 삶을 이미 금수저의 반열에 올리며 크나큰 어려움 없이 자란 인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적국 조나라에서 볼모의 아들로 태어나 멸시와 불안 속에서 유년을 보냈으며, 어머니의 추문, 자신을 암살하려는 끊임없이 자객들의 위협 속에서 매일 밤 칼자루를 쥔 채로 잠들수 밖에 없는 불안한 존재였다. 이러한 위태로움이 있는 그였지만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을 단단한 무기로 벼려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려움은 이미 오래전, 그가 열세 살이 되기도 전에 다 써버린 감정이었다고 한다. 열세 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어머니의 정부 노애의 반란을 가차 없이 진압하였고, 친자식처럼 길러주었다는 권신 여불위가 권력의 그늘아래 그를 길들이려 했지만 그 또한 제거하며 권력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핏줄이라는 이름, 은혜라는 이름, 모정이라는 이름, 보통의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흔들렸을 그 이름들 앞에서, 그는 한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인연이란 결국 자신의 영토를 갉아먹는 자와 지키는 자, 둘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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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눈에 띄는 명언을 보았다. 법륜 스님이 한 말이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 그대의 모든 불행은 진실 없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 벌이오." 진시황이 살아간 삶을 두고 지나치게 냉혹하다 비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선 그는 잔혹한 폭군으로 기록되었다. 그가 실용서를 제외한 옛 제후국들의 기록을 불태우고, 자신을 기만하던 방사(方士)와 일부 유생을 가차 없이 생매장했으며, 장성 축조를 위해 막대한 인력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흔들림 없는 확고한 규율이 없었다면 춘추전국의 500년 난세는 결코 종식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마음 깊이 새긴다. 세상의 무질서와 타인의 얄팍한 잣대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단단한 규칙 위에 서야 한다는 말 또한 흘려듣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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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명암(明暗)이 있다. 진시황이라고 좋은 점만 있겠는가? 나쁜 점만 있겠는가?

이 책은 진시황을 미화하거나 옹호하기 위한 책이 아닌 그가 자신을 다루었던 엄격하고도 철저한 방식, 자신의 삶을 하나의 제국처럼 설계하고 운영했던 그 방법론에서, 흔들리는 우리가 건져낼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건져내자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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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 말하듯이 세상은 친절해 보이지만 결코 친절하지 않다. 내가 흔들리면 누군가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나의 자리를 차지한다. 내가 결정을 미루면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 주게 된다. 내가 기준을 갖지 못하면 누군가의 기준이 나의 삶 전체를 도배하게 된다. 즉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당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잔인하지만, 잔인하기 때문에 진실에 가깝다. 요즘들어 그러한 세상을 체험하게 된다.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이 마음 깊이 이해가 된다. 그건 군주가 권력을 얻고 유지하려면 때로는 권모술수를 써야 하며, 사악한 행위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말이다. 한 마디로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인데, 이게 군중이 갖는 무지함 때문이다. 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조선 제3대 왕인 태종(太宗)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때론 정몽주도 제거해야 했고, 또한 함께 혁명을 꿈꾸며 고려의 반대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뜻을 함께했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동지였던 정도전도 결국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하여 피의 숙청 속에 태종 이방원은 500년 조선조 국가 운영의 밑그림을 완성한 군왕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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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은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사람이 좋은 마음을 먹어 좋은 일을 한다고 보지 않았다. 사람은 룰이 있을 때 룰대로 움직이고, 룰이 없으면 본능대로 무너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법을 세웠고, 그 법에 예외를 두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자신을 키워준 스승에게도, 자신과 함께 천하를 도모한 공신에게도 말이다. 이 단호함은 잔인함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세계를 단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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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섯 개의 키워드로 진시황을 다시 읽어준다.

1장 통일: 내 삶의 영토를 온전히 장악하라.

2장 도량형: 흩어진 잣대를 부수고 기준을 독점하라.

3장 만리장성: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성벽을 쌓아라.

4장 법가: 무자비한 규율이 가장 강력한 무기다.

5장: 천하제일: 세상의 꼭대기에서 나만의 역사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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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락, 단락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핵심은 단순하다. 내 삶의 영토를 하나로 묶고, 내 잣대를 하나로 세우며, 나를 지킬 성벽을 쌓고, 흔들리지 않을 규율을 만들어, 끝내 내 이름을 내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 새기는 일에 관한 것이다. 즉 진시황은 낡은 호칭인 '왕'이라는 호칭을 버리고 '황제'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나아가 도량형과 화폐, 문자, 수레의 규격까지 하나로 통일해 자신만의 질서를 구축했다. 따라서 이 책은 이러한 그의 결단력과 통치 철학을 통해,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원칙을 세우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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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삶에 결정자는 누구인가? 타인인가 아니면 나라는 주체자인가? 오늘자 뉴스에 ‘헬리콥터 부모’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기가 막혔다. 왜냐하면 최근 수도권 한 제조 중견기업의 신입사원 면접날. 한 지원자의 어머니가 회사로 찾아왔다. 그 여성은 면접장으로 들어가는 면접관들의 손을 잇따라 붙잡고는 “우리 아이가 낯을 가리니 압박 질문은 줄이고 부드럽게 해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는 무관하게 최종 합격하여 부서 배치를 마친 상황에 얼마 뒤 인사팀에 다시 그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아이 부서는 업무 강도가 너무 높아 보이니 다른 팀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었다. 또 다른 중견기업의 인사팀장은 얼마 전 ‘대리 퇴사 통보’를 받았다. 무단결근한 신입사원의 모친이 이튿날 전화해 “우리 애가 어제 퇴근하고 회사가 삭막해 다니기 싫다고 울었다”며 “오늘부터 출근 안 하니 사직 처리하고 우리 아이 자리에 둔 텀블러와 카디건은 착불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자녀들은 자신의 생각을 부모에게 언급하여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결코 이 자녀는 자신의 삶의 결정자로서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는 자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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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는 결국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가지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남이 만든 규칙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이 책을 읽고 대답해 보면 좋겠다. 세상의 평판에 혹 흔들려 무언가를 결정하지 못하는 자인가? 타인의 척도에 영토를 내어주는 나약함을 가진 자인가? 또는 낡은 관성에 묶여 결단을 유예하는 비겁함을 가졌는가? 이러한 상태라면 일단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겠다. 다만 자신을 정확하게 마주 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정확하게 보아야, 정확하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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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이 한 가지만을 얻게 된다면 아마도 그는 천하를 얻은 진시황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건 바로 「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를 분명히 하고, 이제 내가 삶의 자리를 주체적으로 가져 온전한 나로 살자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의 한 문장이 생각난다.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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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앞에 서성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강태공으로 알아보는 천하를 낚는 삶의 태도 ㅣ 동양철학전집 고전보감 시리즈 2
강태공 지음 / PHILO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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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을 말할 때 흔히 낚시로 세월을 낚는 ‘낚시꾼’으로 상기된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낙시꾼이 아닌 동양 최고의 전략가이자 책사이다. 자료를 찾아 보면 그는 전략가이자 제나라의 초대 군주이다. 쉽게 말해 주나라 재상으로 왕을 도와 상나라를 뒤집어엎고, 그 포상으로 제나라 땅을 맡아 본인이 국군(國君)이 되어 일종의 제후 국군이 된 인물이다. 언뜻 보기에는 유유자적하며 낚시를 즐기던 자였다. 그러나 그가 재상에 오른것이 대략 72세~80세 사이 쯤 되었으니, 그는 단순한 낚시꾼이 아니라 '기다림과 때를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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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중국 고대 주(周)나라가 세워지기 전, 세상은 은(殷)나라 말기의 혼란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한 상태였다. 그러나 훗날 나라를 바로 세울 큰 인물이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믿음이 사람들 입에서 전해졌다. 그 무렵 강태공은 뛰어난 학식과 정치적 식견을 지녔지만 세상에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조급하게 권세를 좇지 않고 스스로를 갈고닦으며 올바른 임금을 기다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벼슬길을 포기한 채 강가를 떠도는 늙은이로만 여겼다. 그러나 강태공은 자신의 재능을 아무에게나 바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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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는 기다렸고 인내했다. 책을 보면서 그의 숨겨진 일화를 보게 된다. 그가 강가에서 띄운 것은 곧은 낚싯바늘이었다고 한다. 미끼도 없었다. 물고기를 잡을 생각이 아예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잡으려고 했는가. 바로 그는 시대를 잡으려 했다. 자기를 알아볼 사람이 올 때까지, 자신을 헐값에 팔지 않겠다는 결의, 굽실거리며 유세객처럼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지 않겠다는 자존. 소모품이 되지 않겠다는 냉철한 통찰로서 그는 때를 기다렸다. 그래서 그가 기다린 것은 무기력이 아닌 전략이었다. 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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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의 병법서 『육도六韜』를 보면 명확히 그걸 알게 된다. "사나운 새가 사냥감을 칠 때는 낮게 날며 날개를 거두고, 맹수가 먹이를 덮치기 전에는 반드시 귀를 내리고 엎드린다." 즉 가장 사나운 공격은 조용한 자세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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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냥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날개부터 펼치며 허세를 부린다. 내실을 다지기 전에 제후들의 연회를 전전하며 알량한 지식을 뽐내고, 세상을 꿰뚫는 안목을 갖추기도 전에 유세객을 자처하며 입방아를 찧는다. 실력을 증명할 진짜 기회가 오기 전에 자신의 얄팍한 패부터 사방에 전시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나아 간다면 마지막 판에 가장 큰 것을 가져 올 수 없다. 실제 강태공이 위수(渭水)에서 낚시한 세월은 무려 십수년이라 전해진다. 누군가에게는 한 늙은이가 한가롭게 보내며 세월을 낚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특히 그의 아내에게는 사람 같지 않는 변변찮는 한심한 노인네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 동안 천하의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즉 상나라의 약점을, 주변 제후들의 마음을, 백성들의 굶주림과 원망을, 군대의 배치와 보급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엇도 발설치 않고,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저 곧은 낚시 바늘을 강물에 드리우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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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대단한 인물이며 범상치 않는 인물이다. 책을 읽으면서 연신 고개가 끄덕여지고, 숙여진다. 그에 관한 일화나 사고(思考)는 과히 내가 배워야 할 자세며, 마음 가짐이었다. 그는 이미 재상이 될 인물이었다. 시대가 요구했고, 그가 준비했다. 여기서 독자인 나는 얼마나 준비를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 묻게 된다. 아니 때를 기다리며 전략적으로 준비한다는 것이 힘겹다. 빨리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에 조급함도 생긴다. 그러나 강태공을 통해 명확히 배우게 된다. 전략적 대기를 하며, 무언가를 속에서 준비하는 것이다. 매가 하늘에 그냥 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매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듯이, 정확하게 바람의 방향을 읽고, 들판의 그림자를 측정하고, 토끼의 호흡까지도 가늠하는 자세를 가져보도록 할 것이다. 외부로 드러나는 행동의 부재가 내부의 무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듯 강태공처럼 낚시대를 드리운 채 가장 격렬하게 사고하듯 독자 또한 준비할 것이다. 문왕이 위수에 나타났을 때 강태공을 알아 본 것은 그가 단순히 늙어간 존재가 아니라 준비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기회란 준비된자에 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한 수 배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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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또 한 가지 이 책에서 배우는 대목은 "엎드러진 물 앞에서 등을 돌리는" 사건이다. 그는 위수 강가에서 문왕의 수레에 올라 타면서, 단 한 번도 강물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가난과 설움 속에서 지내던 그 위수의 자리를, 자신을 알아주지 않던 세상에 대한 원망도, 끝내 떠나간 아내에 대한 감정도, 백정으로 살았던 조가의 새벽도, 주막을 접고 떠나야 했던 맹진의 황혼도, 모두 강물위에 떠 내려 보내고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떠나는 순간 한 번쯤은 돌아본다. 그래서 과거를 반추하며 설움에 복받치거나,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미련을 가진다.


그런데 강태공은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의 마음으로 살았다. 엎으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훗날 강태공이 제나라 제후가 된 후,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 아내가 자신을 찾아오자, 그 앞에서 물을 부으며 단호히 선을 그으면서 한 말이다. "이 물을 다시 동이에 담을 수 있다면 당신을 받아주겠소." 이는 단순한 매정함이 아니라, 끝난 인연과 헛된 미련을 베어내는 단호함이었다. 강태공은 아내가 떠난 뒤의 그 모습을 절대로 그리워하거나 그녀의 뒷모스을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즉 그녀를 그리워하지도, 미워하지도, 자책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일을 했다. 위수의 강물에 곧은 바늘을 드리우고, 책을 펴고, 천하의 판을 그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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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했던 정이 있었고, 미안함도 있었을 것인데 강태공은 너무나 차가울 정도로 금을 그었다. 이것은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재의 일에만 집중하며 앞만 보겠다는 것이다. 특히나 강태공은 엎어 버린 것이 물이 아니라 그가 칠십년을 견딘 시간, 새벽 도축장의 피비린내, 주막에서 외상값을 받지 못하고 돌아오던 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함께 견디지 못한 한 사람에 대한 정직한 평가로서 아내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라면 가장 어려울 때 등을 돌린 사람은 또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면 또 다시 등을 돌리는 법이다. 그래서 그는 길게 말하지 않고, 또한 따지거나 원망하지 않고 그저 물을 엎었다. 인연을 끝내는 일이란 단호해야 한다. 다시금 마음을 주게 되면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되고, 현재의 일도 그르치게 된다. 사람을 잃어 본 적이 있다. 그때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사람의 말을 더 귀담아 듣고 내 원칙을 접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혹은 "그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그 시험을 한 번 더 봤더라면,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해본다.


그런데 강태공은 한 번 금이 간 신뢰를 결코 되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벙은 상나라의 폭군 주왕 밑에서 관직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조직이 구제 불능임을 간파한 순간, 주저 없이 등을 돌렸다. 미련이라는 낡은 족쇄에 얽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쏟은 정성과 세월이 아까워 그 자리를 맴도는 심리, 어긋난 관계, 끝난 꿈에 매여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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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책을 통해 강태공이 살아간 삶의 흔적 속에서 삶의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참으로 그는 오랜 무명의 시간을 견뎠고, 스스로를 단련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문왕을 만나 천하의 흐름을 바꾸는 인물이 되었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만 붙들면 된다. 그건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것과, 이미 지나간 과거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결단이다. 요즘 광고에 새로운 인물이 자주 보인다. 드라마 김부장에서 박진철 역으로 배우 윤경호의 광고이다. 15년의 무명생활은 그에게 큰 산과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지겨움과 알아주지 못하는 그 시간, 생활고를 견녀냈다. 그리고 드디어 그를 알아봐 주는 드라마를 통해 확실히 대중에게 그의 얼굴을 알렸다. 그는 준비된 기회적 전략가였다. 독자 또한 현재의 괴로움과 성과가 없는 삶에 마음의 큰 짐이 있다. 그러나 강태공을 통해 내면을 다지고, 더욱더 준비된 자로서 오늘의 할 일을 하려고 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미래가 있음을 보며 마음의 희망을 품어 본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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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
정약용 지음, 정영훈 엮음, 김창준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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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실학자, 개혁가로 알려진 정약용이란 분의 책을 또 다시 읽게 되었다. 그가 써낸 글들을 읽을 때면 마음 깊이 존경하는 마음과 경외감마저든다. 탁월한 인재를 넘어 그는 시대를 넘어 서있는 사람이며, 삶의 통찰을 명확히 꿰뚫어본 인물이라 생각이 든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엘리트였지만, 마흔부터 시작된 정치적 격랑 속에서 18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을 놀랍게도 견뎌내고 승화시킨 존재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복수의 마음을 갈거나, 좌절 속에 삶을 놓고 살 수 있었으나 그는 절망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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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면서 교육하고 가르친 대목에선 집요함과 함께 유배자의 자녀가 아닌 한 나라의 백성이며, 한 가문의 자녀답게 반듯하게 살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랑을 보게 된다. 또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비롯한 수많은 저술을 통해 백성들의 삶과 사회를 다시 세우는 방법을 고민하는 그 모습은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은 250년 전에 쓰여진 글이지만 그 치열한 기록과 사유 속에서 현대인들이 정말 삶의 기준으로 붙잡아야 될 내용이 가득한 책이다. 단순히 위인의 일화를 소개하는 정도의 책이 아니라, 다산이 실제로 살아내고 실천했던 삶의 원칙을 문단마다 보게 될 것이다. 삶의 본질은 시대가 흘러도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 때문에 흔들리고, 사람 때문에 치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눈 앞의 이익 앞에 배신자가 되기도 하고, 배신을 당하기도 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 시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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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삶의 전 국면을 아우르는 실전 체계에 대한 기록으로서, 일곱 개의 틀 안에서 정리했다. 1장은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면서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살지 않은 것과 같다고 말한다. 2장은 가계(家計)를 통해 재물을 다루는 태도가 삶을 만들기에 그 재물의 사용 원칙들을 상세히 다룬다. 3장은 수양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며, 4장은 관계를 통해 사람을 얻고 지키는 원칙을 알려준다. 5장은 공부를 통해 학문이야 말로 자신을 지켜주는 울타리임을 알려주며, 6장은 세상을 사는 처세술에 대한 기록이다. 마지막 7장은 애민 정신을 통해 공동체와 타인을 대하는 책임감을 돌아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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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가문과 삶을 지키기 위해 세웠던 일곱 개의 기둥은 어쩜 이리도 우리 현실에도 유효한 삶의 기준이 될까하는 생각을 가진다. 책은 순서대로 읽어도 되지만 마음 가는대로 펴서 읽어도 된다. 삶의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이 책을 통해서 읽었던 것은 분명 우리 삶을 반듯하게 세우는 길잡이가 되리라 본다. 다산이 쓴 책을 읽을 때마다 느낀 것은 이런 분의 책은 학교 교육의 커리큘럼에 반드시 접목되어 가르쳐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지식은 지식 그 자체를 머리에 넣는 것으로 사람을 기계적 인간으로 살게끔 한다. 그러나 다산의 지식은 사회적 인간과 도덕적 인간으로서의 참 지식을 가르쳐준다. 인간성 상실 시대에 다산은 인간됨이 무엇인지 매우 섬세하게, 명확하게 가르쳐 준다. 연일 사회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 저러한 사건을 통해서 보면 모두 죄다 인간성 상실이 불러온 범죄임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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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산은 수양(修養) 부분에서 처음 언급하기를 "홀로 있을 때도 삼가는 것이 수양의 완성이라고" 알려준다. 또한 "남은 속일 수는 있어도 내 마음은 결코 속일 수 없음을" 알려주며,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도록 가르친다. 또한 "매일 밤 스스로를 살피며 하루를 차분히 돌아보라"고 한다.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보다는 작은 허물이라도 고치려는 습관을 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면 마음은 점점 넒어진다"고 한다.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남을 헤아리는 마음이 먼저라는 거다. 또한 "이익보다 옳은 길을 따라야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이익과 옳음 앞에 타협 아닌 옳음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러나 어려움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마음을 가질 때 참된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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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백미는 처음 기록에 대한 문장이다. "기억은 오래가지 않으니 깨달은 것을 곧장 적어라"는 문장과 "기록은 망각이라는 도둑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는 가르침이 다시금 기록의 대가인 다산에게 들으니 새삼 달리 들린다. 천재조차도 "기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기록의 산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말 영감은 어느 순간 찾아오는데 그때 문득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하고 나중에 그걸 다시 생각해 보면 기억이 명확치 않고 깨달음이 흐지부지하게 된 적이 많다. 그렇다. 이젠 다산처럼 밥상을 마주하다가도 깨달음이 머리에 머물 때 일다 적어볼 것이다. 그 집요함이 바로 2,400여 권 분량에 달하는 문서를 써 내려갔던 것이다.

눈으로만 읽는 독서는 물 위에 글자를 쓰는 것과 같아 금방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을 움직이는 대목이나 깨달음을 주는 문장을 만나면 반드시 붓을 들어 초서(抄書, 책의 핵심을 베껴 적음)하라. 초서란 단순히 글자를 옮기는 기계적인 노동이 아니라, 저자의 사유를 내 손끝으로 통과시켜 내면의 질서를 바로 잡는 수양이다. 이 과정에서 흩어진 정보의 파편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기록은 망각이라는 도둑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 네가 정성껏 베껴 적은 그 자료들이 쌓여 비로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너만의 독창적인 체계가 탄생한다.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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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장 기록(記錄) : 적지 않은 것은 살지 않은 것과 같다.

다산은 자녀 교육의 대가이다. 먼 유배지에서 끊임없이 자녀를 교육하는 모습은 어느 부모도 해내지 못할진대 위대하게 그는 자녀를 온전한 인간으로 키워냈다. 특히 그는 유산으로 자녀에게 물려준 것은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의 이 두 글자뿐라고 말하며 이를 가슴에 새겨라고 말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적어보면 "부지런함이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으며 아침에 할 일을 저녁으로 미루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아침에 비가 오면 오후의 일을 헤아리고, 밤에 잠자리에 들면 내일의 일을 미리 헤아리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검소함이란, 옷 한 벌을 마련할 때 훗날 해질 것을 생각해 아껴 쓰고, 음식 한 그릇을 대할 때 농부의 노고를 생각하여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재물은 한 번의 재앙으로 사라지고, 권세는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그러나 근검은 어떤 형편에서도 빼앗기지 않는다. 이 두 글자가 가문을 지키는 가장 단단한 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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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문장은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 읽음 속에 배우며, 무릎을 치며, 삶을 고치게 된다. 70만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국내 최고의 고전 연구가인 조윤제 작가가 말하기를 "나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다산을 읽고 또 읽었다."는 말이 정말 딱 들어 맞는 말이다. 본 책의 저자는 기존의 다산 기록이 주는 감성적 위로의 책을 벗어나 삶을 바로 세우는 날카로운 문장을 그대로 싣고 있다. 손에 들고 읽기에 가벼운 책이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는 이 책을 휴가 기간에 읽으면 좋겠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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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혁명 : 랄프 왈도 에머슨 - 인간은 내면의 목소리를 믿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ㅣ 내면혁명 1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 이너스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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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의 한 줄기 섬광에도 주목하라.

단지 그것이 너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Ralph Waldo Emerson

랄프 왈도 에머슨은 "너 자신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모든 심장은 그 쇠줄 위에서 떨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더 많은 답을 찾으려 책을 뒤지고 사람을 찾아 간다. 하지만 에머슨은 언제나 답은 자기 안에 있다고 말한다. 외부의 구원자가 아닌 자기 내부에 있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그 어떤 영웅이나 철학자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평화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그냥 흘려들을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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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모의 우려, 선생님의 가르침, 사회적 상식이라는 부드러운 얼굴을 한 '조언'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늘 마주한다. 그런데 에머슨은 이것을 과감히 차단하고 기꺼이 철저한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내면의 침묵과 정면으로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국가의 합법적 명령 앞에서도 "이 더러운 법에 나는 결코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으며 양심의 이단아가 된 에머슨이 걸어간 그 길을 독자들도 걷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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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깊은 본성을 신뢰하고 직관을 따라 살라는 것은 한 자아가 걸어가야 할 사명과 같다. 에머슨이 말하는 자기 신뢰의 핵심은 "내 안에서 울리는 보편적 진리의 떨림을 신뢰하겠다"는 것으로서 결코 "내 멋대로 살겠다"가 아니다. 그건 바로 내 자신이 삶의 입법자가 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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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적은 저자가 다섯 가지라고 밝히는데 그래서 독자의 손에 망치 한 자루를 쥐여주면서 자신이 부술 내용을 인지하라고 한다. 무엇을 부수어야 할까? 첫째, 군중의 발소리를 이정표로 착각하는 습성. 둘째, 누군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 방식으로 따라하는 게으름. 셋째, 칭찬 한 마디에 들뜨고 비난 한 마디에 무너지는 자아. 넷째, 무해하고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어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위선. 다섯째, 세상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노예근성. 이 다섯 가지를 과감히 부수어 자기만의 길을 가라고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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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머슨은 자기 신뢰의 첫 머리에 첫 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당신의 마음 속에서 진실이라고 느낀 것을 말하라. 그것이 곧 모두에게 진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로 살아간다. 모두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을 받아 적은 뒤, 그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옮겨 적는다. 순서가 거꾸로 뒤집힌 삶. 이것은 바로 '순응'이다. 순응은 항상 남들과 맞추라고 한다. 다른 생각을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그래서 "유난 떨지 마".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돼", "다를 그렇게 살잖아" 라는 이 세 마디는 한국 사회가 한 사람의 영혼에 가하는 가장 부드러운 마취제다. 이것은 군중 속에서 자신을 잃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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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에머슨은 순응하는 동물이 되지 말고 거창한 반항을 하라고 한다. 대중의 견해에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떡이지 않는 일. 타인의 성취를 잣대로 삼아 자신의 위치를 의심하지 않는 일. 친구의 소식 앞에서 자동적으로 솟아오르던 비교의 감정을 한 박자 늦추는 일. 군중이 찬양하는 유행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것이 내게도 유효한지 묻는 일 등등을 해보라고 한다. 나만의 나침판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럴 때 그는 어디에 있든 길을 잃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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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사교계는 물론 모임에 나갈 때마다 자신이 사회적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면서 자기를 무장한다. 그런데 에머슨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일이다"고 단언하나. 영혼이라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이 자기 자신과 맺는 가장 내밀한 관계다. 그 관계가 외부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침범당하고 검열당하면, 영혼은 자신의 본래 형태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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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을 책에서 언급하는데 그건 사람들이 실제적으로는 타인을 거의 보고 있지 않다는 거다. 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실수를 했을 떄 타인이 그것을 기억하는 비율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시선의 무게를 자기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다. 대부분 자신이 만들어 낸 환영이다. 세네카도 말했는데 "우리는 실제보다 상상 속에서 더 많이 고통 받는다"고 말했다. 즉 타인의 시선이 주는 고통의 9할은 한 사람 스스로가 머릿속에 증폭시킨 것이다. 외부에서는 한 점의 잉크였던 것이, 내면에 들어와 거대한 얼룩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얼룩을 닦아 내려고 평생을 허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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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에머슨은 "위인이란 군중 속에서도 완벽하게 다정한 태도로 고독의 독립성을 지키는 자다."고 말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내면의 방 하나를 만들어 굳건히 지켜나가는 것이야 말로 자기 신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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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남에게 채점받게 둬선 안 된다. 왜 우리의 인생을 남에게 채점받게 하는가? 왜 우리는 정답을 외부에서 구하는가? 자연을 보면 떡갈나무는 소나무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강은 바다가 되려 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바다에 닿는다. 별은 자신의 자리에서 빛나며, 다른 별이 더 밝다고 자신의 빛을 끄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이 되기를 거부하고,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자신을 학대한다. 자연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오직 각자의 본성에 따른 펼쳐짐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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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또 말하길 "스스로를 주장하라. 결코 모방하지 마라."고 한다. 모방이라도 나만의 것으로 독창적으로 생각하며 그것을 변혁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내 안의 직관을 유일한 법으로 삼고 살면 된다고 한다. 나의 생각은 사실 놀라운 발견이다. 그런데 에머슨이 말하길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내버린다. 그리고 며칠 뒤 어떤 낯선 천재의 작품 속에서, 우리가 버렸던 바로 그 생각이 위엄 있게 되돌아오는 것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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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의 자신의 본성을 의심하는가? 왜 가장 먼저 떠오른 직관을 가장 먼저 지우는가?

내게 준 내 안의 율법이야 말로 인간이 따라야 할 확실한 율법임을 에머슨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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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1838년 에머슨이 하버드 신학부에서 졸업 연설을 했을 때를 보면 그는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과 기적을 맹신하는 당시의 군중을 향해, 개개인의 영혼이 직접 신성과 대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때 군중은 분노했고 모교는 삼십 년 가까이 그를 강단에서 추방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의 나침반을 대중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자기 자신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너에게 평화를 줄 수 없다며 타협이라는 단어를 그는 외면한다. 물론 모든 타협이 독은 아니다. 우리는 타협할 가치가 있는 것을 조율해 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타협이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핵심 가치와 충돌하는 그 지점을 슬그머니 내려놓는다면 그는 잘못된 타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그 타협으로 얻은 평온은 좋을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 몸과 마음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기억해야 한다. 인간은 원치 않는 타협을 하면 몸과 마음이 기억하여 괴로움의 흔적을 남긴다. 따라서 나만의 제국, 스스로가 입법자가 되는 삶을 추구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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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바로 자기 자신을 충분하게 신뢰하고 따르라는 것을 설명한 책이다. 외부의 인정과 권위에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직관과 양심을 삶의 기준으로 삼을 때 비로소 내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둘러 읽기보다 한 쳅터나 두 쳅터씩 오래 곁에 두고 읽었으면 좋겠다. 문장 하나를 읽고 잠시 멈출 때, 잊고 있던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기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성공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선택이 옳은지 끊임없이 듣고 배우며 살아가고 있는데, 정작 자기 삶의 기준을 세우는 법은 배우지 못한 채,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대 속에서 자신을 맞춰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자기 목소리를 잃고, 흔들리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 책은 당당히 자기 안에서 튀어 나오는 생각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며, 자기만의 길을 걸으라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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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말한다. "너 자신을 믿으라 모든 심장은 그 쇠줄 위에서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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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 ㅣ 한국철학전집 1
이순신 지음 / 결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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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영웅으로 여기는 이순신에 관한 책이다. 읽어 가면서 역시나 이순신은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속에서 우리가 닮고 배워가야 할 위대한 인물임을 수긍하게 된다. 책 표지에 보면 "세상의 모든 해답은 이미 백 년도 전에 쓰여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그 전에는 이순신에 대해 막연하게 알았다면 이 책을 읽고는 저자의 평가가 확실히 근거 있는 말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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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이순신의 기개(氣槪)를 보았다. 아래의 문장이 이토록 가슴 한 켠을 묵직하게 하며 먹먹하게 하는지...

맑음. 옥문을 나왔다.

1597년 4월 1일, 이순신은 의금부의 옥문을 나왔다. 한 달이 넘는 고문으로 다리는 제대로 펴지지 않았고, 등에는 곤장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살이 헤졌다는 말이다. 한때 그는 정이품 삼도수군통제사였었다. 그 직함을 지닌 채, 죄인의 신분으로 그는 백의를 입고 남쪽으로 걸어가야 했다. 하늘은 무심할 만큼 맑았는데 그날의 일기는 단 한 줄로 시작한다. 바로 "맑음. 옥문을 나왔다." 그뿐이다. 억울함도, 한탄도, 분노도 원망도, 자기 연민도 없다. 한 나라의 바다를 지켰던 장수가, 자신을 파멸시킨 임금에 대해 단 한 줄의 변명이나 비난도 남기지 않다니 내 입장에서는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백의종군의 첫걸음을 내딛는 이 참담한 기록이, 칠 년간 이어진 『난중일기』에서 가정 처절한 전환점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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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옥문을 나서는 순간 한 가지를 분명히 했음을 본다. 그건 자신을 향한 동정을 거부하는 일이다. 그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안쓰러운 시선을 자기 연민의 자원으로 쓰지 않았다. 즉 자신이 부당하게 당했다는 감각,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감각, 나만 억울해 하는 감각 등은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는 그 늪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또한 한 때의 영광(직함)을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을 가장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과거의 영광이라고 한다.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은 쉽게 포기가 된다. 그러나 한때 손에 쥐었던 것을 놓는 일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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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과거의 직함도, 한때의 성취도, 현재의 처지도 생각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옥문을 나서며 걸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옮기면서 비장한 다짐이나 거창한 결심도 없이 통제사가 아닌 죄인의 신분으로 다만 걸어 갔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이러하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다르다. 자존심은 외부의 평가에 반응하는 감정이다. 누가 나를 무시했다. 누가 내 직함을 깎아내렸다. 누가 나를 함부로 대했다. 이런 감정은 외부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흔들린다. 그러나 자존감은 다르다. 외부와 무관하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외부의 작은 신호에도 쉽게 격해진다. 자존감이 단단한 사람은 외부가 흔들어도 쉽게 흔들이지 않는다. 옥문을 나선 이순신이 보여 준 것은 강한 자존심이 아니라 단단한 자존감이었다. 즉 자신이 통제사가 아니어도 자신임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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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옥문을 나선 그날, 이순신은 무엇 하나 손에 쥔 것이 없었지만 자신을 정확히 보는 눈. 그 눈 하나로 그는 다시 일어섰고, 결국 바다를 되찾았다. 참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던 사람이다. 직위도, 명예도, 건강도, 가족도(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고, 아들마저 잃었다), 그에게는 없었다. 철저한 몰락 속에서도 그는 그저 남은 배의 숫자를 세고, 남은 군사의 숫자를 세고,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가 통제사로 돌아 왔을 때는 남은 것은 배 열두 척과 흩어진 병사들과 굶주린 병사들만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자리에서 무너지거나, 누구를 탓하거나, 하늘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종이를 펴고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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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열두 척을 어떻게 운영을 할지, 어디에 배치를 할 수 있는지, 어떤 물길에서 싸워야 하는지를 가늠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절망의 그 자리에게 그가 꺼낸 말은 한탄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이 문장이 후대에 길이 남는 까닭은 비장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안에 있는 계산 때문이다. 그는 없는 것을 아수워하지 않고, 있는 것의 정확한 수치를 말했다. 열두 척. 더도 덜도 아닌 열두 척. 그 정확함이 모든 결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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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고 좌절을 겪을 때 한탄만 하고 원망 하고 안 좋은 상황만 보는 것은 자기 삶을 갉아 먹는 것이다. 이순신은 우리에게 무너진 자리가 막연한 위로로 채우길 원치 않는다. 무너진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바로 종이 한 장을 펴고,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을 적어 보는 일임을 배운다. 무엇이 남아 있는가. 어떤 기술이 남아 있는가. 어떤 관계가 남아 있고, 어떤 시간이 남아 있는가. 어떤 몸이 남아 있는가를 살피면서 직시를 할 때 내일의 하루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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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장계(狀啓)는 이것을 알려준다. 즉 감정을 처리하는 자리와 상황을 처리하는 자리를 분리하라는 것이다. 감정은 일기 안에서 처리하고, 상황은 장계 안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그는 썩지 않았다. 분노한 채로 장계를 쓰면 거기에는 사실이 사라지고, 사실만 쫓으며 일기를 쓰면 거기에는 사람이 사라진다. 그는 두 가지를 따로 두는 법을 알았다. 즉 밤에는 인간 이순신으로 울고, 낮에는 통제사 이순신으로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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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에게 거창한 위로를 주려고 쓴 책이 아니다. 그저 그 한 가지, 자신을 정확히 보는 눈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모든 시작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영웅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늘 '신(臣, 임금을 섬기어 벼슬하는 사람)'이라 칭했고, 자신의 모자람을 일기에 적었으며, 잠 못 이루는 밤마다 어머니와 자식과 죽은 부하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저자 왈 "그는 강철 같은 사람이 아니라, 강철처럼 살기로 매일 결심한 사람이었다." 그 결심의 흔적이 『난중일기』에 남아 있고, 그 결심의 결과가 명량과 한산의 바다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정직한 가르침은 《강한 사람은 태어나지 않는다. 매일 자신을 베어 낸 자리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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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위인전으로서 쓰여진 책이 아니다. 이순신이라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자기관리, 책임감, 리더십, 인생 경영, 준비의 힘을 배우게 하는 책이다. 삶이라는 파도가 세차게 우리를 혼돈케 하며 좌절을 불러 올 때에 자신만의 기준으로 무너지지 않을 시스템을 세우고 싶다면, 이순신이 남긴 가장 강력한 교훈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참으로 한반도 유사 이래 최고의 경영자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인생을 다잡아 주리라 본다.


이 책의 한 문장

그는 천재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의미에서는 아니다. 그는 감으로 싸우지 않았고, 영감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의 무기는 숫자였다. 적의 함선 수, 조류의 방향, 바람의 세기, 아군의 식량과 화약의 잔량.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세고, 기록하고, 다시 점검했다. 『임진장초』에 남은 장계들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영웅의 호언장담이 아니라, 철저한 보고서다. 숫자가 맞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고,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싸우지 않았다. 임금이 채근해도, 그는 자신이 계산해낸 승률 바깥으로는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p.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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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장 두려워 한 적은 왜군이 아니었다. 자신 안에서 자라나는 '괜찮을 것이다'라는 안일함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책의 출발점을 만난다.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 이 문장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이 책 내내 깔려있는 일종의 원리에 가깝다. 외부의 적을 베기 위해서는 먼저 내부의 적을 베어야 한다. 내부의 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알량한 자존심이고, 과거의 직급이며, 남이 알아 주지 않는다는 억울함이고, 누군가 내 인생을 구해줄 것이라는 거짓된 안전망이다. 또 이만하면 됐다는 만족이고, 결국엔 '나는 잘하고 있다'는 오만이다. 이 오만이 베어지지 않은 칼은, 아무리 날이 서 있어도 자기 자신을 향해 휘어진다. p.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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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당신은 묻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이순신을 다시 읽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가. 우리는 전쟁 중이 아니고, 칼을 쥘 일도 없으며, 모함당해 옥에 갇힐 일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가만히 들 여다보면, 현대인의 삶은 그와 닮은 구석이 많다. 매일 아침 우리는 작은 옥문을 나선다. 우리는 타인의 평가 에 갇히고, 얄팍한 자존심에 베이며, 끊임없이 밀려오는 세상의 소음에 떠밀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손쉬운 변명과 막연한 위로 속에서 우리는 점차 자신을 직시하는 눈을 잃어간다. p.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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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띄우는 일은 늘 계산에서 시작된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今臣戰船尙有十二

p.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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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거부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어떤 흥정도 하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도 일지를 썼고, 비가 와도 활을 쏘았으며, 몸이 아파도 회의를 열었다. 『난중일기』의 무서운 점은 영웅적인 자 면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영웅적인 장면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무섭다. 그는 매일 거의 비슷한 일을 반복 했고, 그 반복을 빠뜨리지 않고 기록했다. 그 기록의 단 조로움이야말로 그가 자기와 맺은 약속을 지켜 왔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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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안위에게 던진 말은 그래서 무겁다."도망간 다고 살 것 같으냐." 이 물음은 그 시대의 부하 장수에 게만 던져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회피의 끝자락에 선 모든 사람에게 던져진 물음이다. 비켜서면 정말 무사할 것 같은가. 미루면 정말 사라질 것 같은가. 모른 척하면 정말 없던 일이 될 것 같은가. 대개는 그렇지 않다. 비켜 선 자리에서 더 큰 파도가 다시 밀려온다. 그때는 피할 시간조차 남아 있지 않다.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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