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왈도 에머슨은 "너 자신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모든 심장은 그 쇠줄 위에서 떨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더 많은 답을 찾으려 책을 뒤지고 사람을 찾아 간다. 하지만 에머슨은 언제나 답은 자기 안에 있다고 말한다. 외부의 구원자가 아닌 자기 내부에 있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그 어떤 영웅이나 철학자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평화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그냥 흘려들을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부모의 우려, 선생님의 가르침, 사회적 상식이라는 부드러운 얼굴을 한 '조언'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늘 마주한다. 그런데 에머슨은 이것을 과감히 차단하고 기꺼이 철저한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내면의 침묵과 정면으로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국가의 합법적 명령 앞에서도 "이 더러운 법에 나는 결코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으며 양심의 이단아가 된 에머슨이 걸어간 그 길을 독자들도 걷기를 바란다.
내 안의 깊은 본성을 신뢰하고 직관을 따라 살라는 것은 한 자아가 걸어가야 할 사명과 같다. 에머슨이 말하는 자기 신뢰의 핵심은 "내 안에서 울리는 보편적 진리의 떨림을 신뢰하겠다"는 것으로서 결코 "내 멋대로 살겠다"가 아니다. 그건 바로 내 자신이 삶의 입법자가 되라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저자가 다섯 가지라고 밝히는데 그래서 독자의 손에 망치 한 자루를 쥐여주면서 자신이 부술 내용을 인지하라고 한다. 무엇을 부수어야 할까? 첫째, 군중의 발소리를 이정표로 착각하는 습성. 둘째, 누군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 방식으로 따라하는 게으름. 셋째, 칭찬 한 마디에 들뜨고 비난 한 마디에 무너지는 자아. 넷째, 무해하고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어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위선. 다섯째, 세상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노예근성. 이 다섯 가지를 과감히 부수어 자기만의 길을 가라고 알려 준다.
에머슨은 자기 신뢰의 첫 머리에 첫 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당신의 마음 속에서 진실이라고 느낀 것을 말하라. 그것이 곧 모두에게 진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로 살아간다. 모두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을 받아 적은 뒤, 그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옮겨 적는다. 순서가 거꾸로 뒤집힌 삶. 이것은 바로 '순응'이다. 순응은 항상 남들과 맞추라고 한다. 다른 생각을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그래서 "유난 떨지 마".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돼", "다를 그렇게 살잖아" 라는 이 세 마디는 한국 사회가 한 사람의 영혼에 가하는 가장 부드러운 마취제다. 이것은 군중 속에서 자신을 잃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에머슨은 순응하는 동물이 되지 말고 거창한 반항을 하라고 한다. 대중의 견해에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떡이지 않는 일. 타인의 성취를 잣대로 삼아 자신의 위치를 의심하지 않는 일. 친구의 소식 앞에서 자동적으로 솟아오르던 비교의 감정을 한 박자 늦추는 일. 군중이 찬양하는 유행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것이 내게도 유효한지 묻는 일 등등을 해보라고 한다. 나만의 나침판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럴 때 그는 어디에 있든 길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사교계는 물론 모임에 나갈 때마다 자신이 사회적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면서 자기를 무장한다. 그런데 에머슨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일이다"고 단언하나. 영혼이라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이 자기 자신과 맺는 가장 내밀한 관계다. 그 관계가 외부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침범당하고 검열당하면, 영혼은 자신의 본래 형태를 잃는다.
흥미로운 사실을 책에서 언급하는데 그건 사람들이 실제적으로는 타인을 거의 보고 있지 않다는 거다. 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실수를 했을 떄 타인이 그것을 기억하는 비율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시선의 무게를 자기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다. 대부분 자신이 만들어 낸 환영이다. 세네카도 말했는데 "우리는 실제보다 상상 속에서 더 많이 고통 받는다"고 말했다. 즉 타인의 시선이 주는 고통의 9할은 한 사람 스스로가 머릿속에 증폭시킨 것이다. 외부에서는 한 점의 잉크였던 것이, 내면에 들어와 거대한 얼룩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얼룩을 닦아 내려고 평생을 허비한다.
따라서 에머슨은 "위인이란 군중 속에서도 완벽하게 다정한 태도로 고독의 독립성을 지키는 자다."고 말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내면의 방 하나를 만들어 굳건히 지켜나가는 것이야 말로 자기 신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