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죽었다"는 니체의 외침은 니체의 사상은 잘 몰라도 어디선가 들어 알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이 니체의 이 외침을 잘못 정의되고 가르쳐진 하나님을 죽이고, 실제적 하나님은 살려낸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니체의 이 외침은 기독교가 자성해서 들어야 될 말이라고 한다. 물론 그가 외친 이면에는 서구 사회에서의 잘못된 기독교 하나님을 비판함으로 맹목적인 세계관에 사로잡힌 신자들을 구출하는데 도움은 주었다. 즉 우상화되고 굳어버린 생명력 없는 기독교를 비판한 점은 좋다. 그러나 그가 말한 신의 죽음은 성경 안에서 전해진 실제적 하나님을 죽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결코 오염된 신을 죽었다고 선포한 것이 아니다. 계몽주의와 과학의 부상과 더불어 인간 중심의 세계관은 이성을 통해 신을 충분히 밀어내기에 좋은 시기였다. 이런 문명사적 전환은 이제 더 이상 신을 믿을 수 없게 된 시대로 나아갔다. 여기에 니체가 크게 사상적 전화를 주어 인간은 신 없이도 스스로 법을 만들고 삶의 의미를 창조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말한다. 즉 "위버멘쉬(초인)"의 삶이 도래했음을 강력히 말한다. 그런 면에서 니체는 성경과 기독교 전통이 가르쳐온 모든 진리와 거기서 나오는 도덕과 복종과 희생은 "노예의 도덕"이니 결코 따를 필요가 없고, 이젠 더 진실되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기에 관해 "니체는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위선과 타락을 꿰뜷어 본 자이며, 오히려 더 진실한 신앙으로 나아가는 길목이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독자가 계속 말하는 거지만 잘못 전해진 성경의 진리와 하나님에 대한 비판은 좋지만 니체가 원한 것은 성경 자체 모두를 거부하고, 자기 존재 방식의 삶을 신 없이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 순결하게 전해진 진리나 실제적 하나님을 죽이고 삭제하는 방식으로 그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따라서 그를 옹호하는 발언은 니체가 얼마나 망언을 하는 수준까지 갔는지를 알고 그를 옹호해야 한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하였고, 그리스도 위에 있다고 하면서 자기를 추종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자신의 글은 글을 쓴 시대나 나중에도 아무도 이해를 못하는 글이라 하며 도덕과 선의 기준을 자신으로 삼는다.
그렇다. 니체가 파괴 시키려고 한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며, 기독교가 범한 죄를 속죄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말이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도 버렸다"는 말처럼 실제적인 하나님을 버리는데까지 간 것은 그의 큰 오만일 것이다.
저자는 계속 니체를 옹호하며 변호하는 쪽으로 책을 서술해 나간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언급하기를 "이 위대한 사상가이자 기독교 증오자인 니체가 기독교를 간질병에 걸린 종교라 말하고, 세계 문명의 독이라 말하고, 영원한 오점이라 말하고, 흠험한 사도라 말한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 신앙에 한 점, 한 티의 손산도 끼치도 않는다! 오히려, 기독교가 오염시킨 하나님을 미워함으로 참 하나님을 찾게 하는 '가치의 전도를 시도한 니체는 예수의 복음이 무엇인지, 기독교가 어떤 종교이어야 하는지, 교회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하며 니체를 앞서가는 자, 길을 밝히는 자, 오히려 예수 복음의 위대한 전도자인 예수의 열세 번째 제자라고 계속 끼어 넣기 하는데, 이런 저자의 외침은 상당히 불편한 점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기독교가 심하게 망치로 얻어 맞아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망치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멋진 가구가 되기도 하고, 폐물과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니체는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독과 해독제를 주었다. 독이라 한다면 무신론자들에게는 더 악랄하게 기독교를 넘어 성경을 혹독하게 비판하도록 하였으며, 해독제라 한다면 자성적 기독교인들에게는 니체를 통해 참된 기독교를 찾도록 도와 주었다. 그러나 어중간한 입장에 서 있는 자들이 있는데 즉 교회라는 곳을 오고 가지만 성경이 가르친 신에게서 해방을 원하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어서 그 신에게 의존하고 사는 것을 나약함이라 치부하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려는 자를 향해서는 그 자신이 도덕이며 윤리적 기준이라 하여 자기 존재적 신을 믿고 따르게 한다. 결국 성경을 믿는 자는 무지한 신화를 믿는 자이기에 니체는 기존의 안티적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버멘쉬의 길을 열어주었다. 즉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자아상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기존의 도덕과 사회적 관습, 종교적 가르침은 자신의 기준에서 선택 사항이 되었고, 그야말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시대를 가져 오게 하였다. 그래서 니체는 기존의 모든 가치를 전도한 자로 서 있다. 신에게서 해방을 원하는 자들에게 니체는 메시야가 되었고, 실제 니체는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자신이 진리임을 선언하였다.
따라서 저자 자신이 니체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아무리 말하더라도 그가 쓴 책(반 그리스도)에서는 사실 불교와 함께 두 종교 모두를 ‘퇴폐적’(데카당트) 종교로 규정하는 입장이다. 특히 기독교는 인간의 본능과 삶의 에너지를 억압하고, 약자와 고통받는 자를 미화하며,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저편 세계(천국, 이데아 등)만을 강조하는 도덕 체계로 보면서 ‘대지에서의 삶을 사랑할 것’을 주장하는데 이것은 결국 신 없는 삶의 세계를 열어주는 길목이 되었다.
그러므로 독자는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설득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며 읽었다. 더군다나 저자 자신은 이 책을 쓰면서 '생각 있는 극소수의 기독교인'을 위한 책이라고 하며, 아마 기독교인 중 대다수는 이 글을 이해할 수도 없고, 혹은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며 이해 못하는 기독교인들을 무지하다고 보는데 상당히 오만한 입장이지 않나 생각된다. 니체는 기존 사회나 종교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 자라는 것은 동의한다. 그는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면서 자정적 요소를 기독교와 사회에 안겨 주었다. 그러나 그 자정적 요소들이 지나치다 못해 절대 진리를 부정함으로 긍정적인 신 이해를 다 망가뜨렸다. 현대인들은 니체의 다원주의·상대주의가 오늘날 시대정신에 맞다고 떠받들고 있지만 백금산 목사의 말에 따르면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니체는 가장 호전적이고 가장 강력한 기독교의 적대적 원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니체의 기독교는 당시 독일에서 유행하던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 그의 말년의 모습과 그가 쓴 책들은 깊은 신앙적 이해에서 볼 때는 자연스럽게 거부가 된다. 따라서 저자의 논점은 이해가 가지만 니체의 기독교를 향한 그 관심과 증오는 결코 한때 예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가 증오였고, 진리에 대한 거부였다. 그러므로 니체는 예수의 열세 번째 제자가 아닌 끝까지 예수를 이해 못하고 목메달아 죽은 가롯유다가 아닌가 생각한다. 개인적 의견이니 저자는 너무 과민한 반응이나 욕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