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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열기
가르도시 피테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9년 6월
평점 :
시한부의 삶에서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한계를 두었던 무모한 도전들을 할 수도 있고, 이성에 의해 절제되었던 타락된 일들을 할 수도 있다. 주변 사람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삶을 정리할 수도 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과연 내가 시한부의 삶이라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이 책 <새벽의 열기>는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에서 생존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몸뚱이로 살아남은 이후의 이야기이다. 시작은 책의 주인공이자 미클로스가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겠네."
"자네가 살 수 있는 시간은 이제 6개월밖에 안 남았다네, 미클로스."
결핵균으로 망가진 폐의 엑스레이 사진을 이곳저곳 가리키며 의사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한다. 이 말을 듣고 미클로스는 117개의 편지를 쓴다. 발이 넓은 사람인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제 죽음을 알리는 것인지 의아하다. 편지의 모든 사람이 데브레센 쪽 출신이며 치료를 받는 여성들인 이 기이한 일에 의사가 이런저런 추측을 할 때 미클로스는 말한다.
"전 신붓감을 찾는 겁니다.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6개월의 시한부 선고, 길어야 7개월을 넘지 못하는 인생에서 결혼이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하다. 결혼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쉬운 일인가?
하지만 미클로스는 117개의 편지 봉투에 일일묻 침을 혀 우표를 붙여 보냈다. 그 117명의 수신인 중 한명은 스몰란스스테나르 재활센터에 있는 릴리였다. 둘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미 작가 부모님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소설이기 때문에 그 결말은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이 책의 재밌는 것은 둘이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 일어나는 썸이다. 편지를 주고받을 때의 두근거림, 설렘을 잘 보여준다. 그들의 편지에는 설렘과 행복, 열정과 슬픔, 웃음이 가득 담겨 있다. (특히 276페이지의 편지가 재밌다)
많은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작품들이 그 당시 잔혹한 삶을 보여주며 절망감과 우울함을 안겨준다. 마지막이 희망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끝난다고 해도 이미 어두운 감정에 휩쓸리고 난 뒤다. 하지만 이 책은 홀로코스트에도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절망적인 시한부를 주제로 다루었음에도 희망차다. 삶의 애착을 갖게 되고 더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불을 지펴주는 소설이었다.
열정의 기름 붓기 수준의 채찍질은 아니지만, 잔잔한 삶에 대한 열망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제까지 많은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의 억압과 절망을 보았다면, 이번에는 홀로코스트 이후의 삶과 피어나는 희망에 대한 이 책도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