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쓸쓸할 때 - 가네코 미스즈 시화집
가네코 미스즈 지음, 조안빈 그림, 오하나 옮김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원두를 탈탈탈 털어 갈아 커피 한 잔을 겨우 만들었다. 책 <내가 쓸쓸할 때>를 살며시 커피잔 곁에 두었는데, 갑자기 ‘내가 쓸쓸’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난 이럴 때 좋다. 괜히 뭔가 쓸쓸해지는 그 순간이, 참, 좋다. 눈물이 핑. 함께 쓸쓸해주는 주는 노래와 책이 있으니 눈물이 글썽. 주의! 주르륵 단계까지 가서는 안 된다. 쓸쓸함을 넘는 청승은 사양.

쓸쓸할 때

내가 쓸쓸할 때,
남들은 모르거든.

내가 쓸쓸할 때,
친구들은 웃거든.

내가 쓸쓸할 때,
엄마는 다정하거든.

내가 쓸쓸할 때,
부처님은 쓸쓸하거든.

<내가 쓸쓸할 때>는 일본의 대표적인 ‘동요시인’ 가네코 미스즈 시화집이다. 일본에서는 그의 동시를 동요라 부르며 시이자 노래로 여긴다니 ‘동요시인’이란 말이 낯설지 않다. 실제로 낭송해 보면 느껴진다. 그 속에 살아있는 율동감과 리듬감이. 실제로 일본에서는 여러 사람이 시인의 동시를 노래로 만들어 왔고, ‘가네코 미스즈, 생명의 노래 콘서트’ 가 열리고 있단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수 이효리, 루시드 폴이 그의 팬이라 밝혔고.
나는 ‘찐감자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만들고 있는 친구가 자꾸만 생각났다. 가네코 미스즈의 동시를 알려주고 싶다. 벌써 알고 있으려나? 그렇다면 노래를 어서 만들어 보라고. 가네코 미스즈의 동시를 느끼고 간직하는 방법 중 단연 으뜸일 듯.졸라봐야지.

가만가만 낭송해본다. 가슴과 머리가 맑아진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게 된다는 말도 그렇고.

별의 수

열 개 뿐인
손가락으로,
별의
수를,
세고
있어.
어제도
오늘도

열 개뿐인
손가락으로,
별의
수를,
세면서
가자.

언제 언제
까지나.


이상함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검은 구름에서 내리는 비가,
은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파란 뽕잎 먹는,
누에가 하얗게 되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아무도 손대지 않은 박꽃이.
혼자서 활짝 피어나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누구에도 물어봐도 웃으면서,
당연하지, 라고 말하는 것이.

그러다가 문득문득 쓸쓸해지고 슬퍼진다.

풍어

아침놀 붉은 놀
풍어다
참정어리
풍어다.

항구는 축제로
들떠 있지만
바닷속에서는
수만 마리
정어리의 장례식
열리고 있겠지.



우리집 달리아 핀 날에
주막집 검둥이는 죽었습니다.

집앞에서 노는 우리에게,
언제나, 화를 내던 아주머니가,
흑흑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날, 학교에서 그 일을
재밌는 듯, 이야기하곤,

문득 쓸쓸해졌습니다.

놓쳐버리기 일쑤인,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은 찰나의 순간을 기어이 붙잡아, 기어코 글로 지어낸 시인이, 고마웠다.

제비

휙, 제비가 날아든 바람에,
이끌려서 봤지요, 저녁 하늘을.

그리고 하늘에서 찾아냈어요,
입술연지만큼 고운, 저녁노을을.

그러고 나서야 생각했죠,
마을에 제비가 왔다는 걸.

돛단배

잠깐
물가의 조개껍질 보는 사이,
그 돛단배는 어딘가로
가 버렸다.

이렇게
가 버린,
누군가가 있었다 —
무언가가 있었다 —

마감 날짜가 지났음을 어제, 깊은 밤에 알아챘다. 그래서 ‘소원’을 소리내어 읽었다. 간절히 빌면서.

소원

밤이 깊어 가는구나,
졸리구나.

몰라, 몰라, 자 버리자.

한밤중에, 이 방에,
빨간 모자 쓰고 불쑥 나타나,
몰래 수학 숙제 해 놓는,
영리한 난쟁이 한 명쯤,
틀림없이 어딘가에 있을거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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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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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밖이었다. 나와는 다른 존재,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책 제목 그대로 ‘법률가들’ 말이다. 그랬던 내가 “쟤네들 도대체 뭐야?” 했다.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사건’으로 진짜, 진심 궁금해진 것. 저들의 정체가.

읽기가 만만치 않았다. 프롤로그부터 헉헉거렸다. 그런데 이내 익숙해지더이다. 이 또한 ‘사람’ 이야기였던 것. 그래도 좀더 쉽고 재밌게 읽고 싶다면, 저자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4부부터 먼저 읽는 것도 방법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 행적이 궁금해질 때마다 앞부분을 찾아서 읽으면 된다. 단, 프롤로그 이야기 흐름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을 것. 그 인물이 ‘어느 부류’에 속했는지 혹은 ‘어느 부류’에 얽힌 사람인지에 대한 얄팍한 낌새 정도는 알아챌 수 있어야 덜 헤맨다. 가제본 도서라 색인 확인이 불가능해서 꽤나 번거로운 작업이었지만, 기어코 찾아내는 재미는 제법 쏠쏠했다.

헐?! 대박!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이다. 순간의 심경을 이보다 적확하게 표현하는 말을 지금껏 찾지 못하고 있다.
여튼, ‘최고의 엘리트’라 자부하는 우리나라 법률가들. 그러나 책은 그 뿌리가 상상 이상으로 빈약함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우리 법조계의 뿌리에는 식민지 잔재와 출세를 위해 시대를 등졌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해방 공간의 어수선함을 틈타 시험조차 치르지 않고 법관이 된 이도 적지 않다.’ 세상에나!

행정부와 입법부는 ‘선출된 권력’인 반면,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어서 그 정당성이 늘 문제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에 대한 시민 일반의 전통적인 존중이 사법부뿐만 아니라 법조계 전체의 정당성 확보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최소한 법조인들은 그렇게 믿어왔다. 그런데 우리 법조계의 출발점에 존재한 이법회라는 큰 구멍은 그런 믿음을 뿌리부터 흔들기에 충분하다. (29쪽)

저자가 새롭게 발굴해냈다는 ‘이법회’(또는 ‘의법회’) 실체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4부까지만 묶인 가제본 도서라 책에서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을 ‘최소한의 자격 심사 장치라 할 수 있는 시험조차 보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 정도로 이해했는데, 다행히도 저자 김두식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약간의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조선변호사시험이 치러지던 시간에 일제가 항복하는 바람에, 여기에 응시했던 200여명은 ‘이법회’를 만들어 시험도 없이 합격증을 받아냈다. 이 가운데 남쪽에 있던 106명은 즉시 임용되거나 다른 시험에서 필기시험을 면제받으며 법관이 됐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이법회의 실체다. 황당하고 어이없다. 이 사람들은 해방의 혼란을 틈타 응시 경력만으로 날름 법관이 된 것이다. 고백컨대, 다른 ‘부류’에 속한 이들에게는 아주 쪼끔 시헤의 마음도 없지 않았다. 말그대로 ‘벼락처럼’ 찾아온 해방이었다. “과연 그 시대에 훌륭한 판검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처럼, 굴곡진 시대 속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의 반경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을 테니. 책에서 드러나는 ‘해방 직후 시공간의 절대적 규정성’을 일정 부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법회의 실체는, 나로선 해독불가.

특히 만주사변 이후 국내에서 누구도 폭탄을 던지지 않았다. 이상은 어떠했든지 간에 사람들은 먹고살아야 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던 청년지식인들도 각자의 교육 정도에 따라 순사시험, 보통시험, 고등시험에 응시해 일제의 관료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천황과 일제에 대한 적극적인 충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판검사 임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특히 법률가 직역에서는 친일 여부 확인이 사실상 무의미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24쪽)

그들의 이야기를 쫓다보면, 조선 최고의 엘리트들 앞에 놓인 제한된 선택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선택은 모두 같지 않음을 또한 보여 준다. 같은 이법회 출신이지만 ‘전두환의 대법원장’이었던 유태홍, 인권운동의 대부로 활약한 홍남순 이야기가 단적인 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심신이 적잖이 고달픈거고.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돌이킨 사람들은 예상한 것 이상의 불행을 맛봤고, 끝까지 개인의 안위만을 추구한 사람들은 기대한 것 이사의 영광을 누렸다.”는 저자의 말을 굳이 옮겨본다.

저자는 당시 법률가로 활동했던 이들을 네 부류로 나눴다. 앞에서 잠깐 얘기한 ‘어느 부류’가 그것인데, 이 책은 결국 네 부류 중 어딘가에 속했던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들의 바로 우리나라 법조계의 원조인 것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부끄러움을 넘어 수치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이든 ‘조선변호사시험’ 출신이든 일제시대 때 자격을 인정받은 법률가였으니 그들은 모두 친일파일 수밖에 없고, 미군정에 의해 판검사로 임용되었던 이들은 일제 때 서기, 통역생으로 활동했던 이들이니 결국 미자격자들, ‘이법회’를 만들어 시험도 없이 합격증을 받아낸 이들. 이처럼 이미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지고 말았으니, 작금의 사법농단은 빈약한 뿌리를 드러내는 사건이라는데 이견이 있을리 없다.

저자의 인터뷰 기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중요한 것은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다. 김 교수는 “출세의 개인성”이라는 말을 들어, “‘주인’이 누구로 바뀌든, 판검사나 변호사 업무가 갖는 공적인 성격과 관계없이 철저하게 개인적 출세를 추구했다는 것이 한국 법조계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1990년대 터져나온 법조비리가 ‘돈 안 받는’ 사법부를 만들었다면, 지금의 사법농단 사건 역시 ‘사법부의 독립’을 넘어 각 법관이 독립적 권한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사법농단 사건을 “긍정적인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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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명 서정시 창비시선 426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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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한다. 나의 단순 무식함을. ‘파일명 서정시’ 제목만으로 이 시집이 서정시의 집합체일 거라 생각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서정시는 주관적인 개성의 문학인 동시에 자신의 감정표현인 것’이라고 했으니. 문제는 내가 ‘서정=낭만’ 이라는 등식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 (등신이었다.)

그래서 너무 놀랐다. 시집의 여는 시 ‘눈과 얼음’(미투 폭로를 계기로 쓰인 시라고 한다)을 보고. 세상 편한 자세로 시집을 펼쳤던 나는, 시집의 첫 시를 읽자마자, 벌떡 일어나 앉았다. 머리를 매만지고 자세를 가다듬고 한 편 한 편 읽기 시작했다. 이 시집을 두고 서울신문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무슨 일’에 대해 쓰겠다는 시인의 다짐이자 결과’라 했는데, 과연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세월호 참사,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여성들이 겪는 폭력 등 사회적 아픔을 시인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시집은 ‘간신히 벌린 입술 사이로 빠져나온 말’들의 응축체에 다름 아니다. 읽게 되면, 앎을 넘어, 앓게 된다.

시인은 “현실의 고통이 문학적 언어로 전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는데, 시인의 시를 처음으로 접한 나는 그 어떤 문학 작품보다 그의 시에서 전해진 고통과 아픔으로 정신없이 온몸으로 앓고 있다. 지금까지.

손가락 사이로 힘없이 흘러내리는 말. 모래 한줌의 말. 혀끝에서 맴돌다 삼켜지는 말. 귓속에서 웅웅거리다 사라지는 말. 먹먹한 물속의 말. 해초와 물고기들의 말. 앞이 보이지 않는 말. 암초에 부딪치는 순간 산산조각 난 말. 깨진 유리창의 말. 찢긴 커튼의 말. 모음과 자음이 뒤엉켜버린 말. 발음하는 데 아주 오래 걸리는 말. 더듬거리는 혀의 말. 기억을 품은채 물의 창고에서 썩어가는 말. 고름이 흘러 내리는 말. 헬리콥터 소리 같은 말. 켜켜이 잘려나가는 말. 잘린 손과 발이 내지르는 말. 핏기가 가시지 않은 말. 시퍼렇게 멍든말. 눌린 가슴 위로 내리치는. 말. 땅. 땅. 땅. 땅. 망치의 말. 뼛속 깊이 얼음이 박힌 말.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말. 감전된 말. 화상 입은 발. 타다 남은 말. 재의 말.

세월호 참사를 말하는 시 ‘문턱 저편의 말들’의 일부다.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돌아오지 못한 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또한 시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임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우리의 상처를 위무하는 나희덕의 모든 것들이 <파일명 서정시>에 들어 있다. ‘물론 그의 서정시들과 함께’

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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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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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사전서평단에 선정되었다. 이는 특별히 제작된 가제본을 소장할 수 있게 된 행운을 누릴 수 있다는 말과 다름 아니니. 앗싸!

가제본에는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9편의 단편 중 1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옥상에서 만나요」 가 왔으면 좋겠다 바랐는데, 「이혼 세일」 이 도착했다. (두 작품 중 하나가 랜덤으로 발송된다.)

그림이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가 표지 일러스트를 맡았단다. 「옥상에서 만나요」 내용이 더욱더 궁금하다.

* 정세랑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중 「이혼 세일」 을 만나다.

‘읽다’라고 썼다가 ‘만나다’로 고쳤다. 분명 글을읽었는데, 친구들과 한데 어울려 놀다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 드는 느낌, 딱 그 느낌이다.
경윤, 이재, 아영, 민희, 지원, 성린 그리고 미영. 그 이름들 뒤에 내 이름을 슬쩍 적어 넣어본다. 전혀 어색하지 않다. 7명이 된 ‘우리’다.

‘이혼세일’ 이라니!
이재가 이혼을 한단다. 제가 썼던 물건들을 처분하기 위해 우리를 불렀다. 나는 이재가 좋다. 하지만 내 안의 이재를 향한 은근한 부러움과 묘한 질투의 감정도 있음을 숨기지 않으련다.

‘이재가 걸치면 평범한 카디건도 근사해 보였고, 남들 다 신는 생고무 밑창 스니커즈도 달라 보였다.’

‘이재는 함께 있으면 심장이 약간 느리게 뛰게 되는 감미로운 공간 장악 능력이 있다. 이재의 반경에선 모든 모서리와 테두리가 달라졌다. 둘러싼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준을 떨어뜨리는 희한한 아이였다.’

이재의 이혼. 이제는 그것까지 부러울 지경이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아이도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진심으로 안도하면서도 성린의 말마따나 ‘상큼한 이혼’을 감행할 수 있는 이재의 현실. 그런데 “나는 운이 좋았지만...” 이라고 이재는 말했다. 이혼을 말하면서 뜬금없이 운이라니, 운이 좋았다니...

이제가 미처 끝맺지 않은 말 속에 담겼을 그 무엇가를, 그 누군가를 가만히 떠올려본다. 그리고 몽글몽글 피어나는 의문들.
정말, 이재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었나. 그렇다면 이재 남편의 회사 동료였던 그이는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 우리는,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인가. 우리는, 왜, 이렇게, 그저, 운에 대한 말만 속삭일 수 밖에 없는 건가.

“야, 여자는 어디서나 위험해. 어떻게 살아도 항상 위험해.” 라던 성린의 말이 귓가에 쟁쟁거린다. 꽤 오랫동안..

길을 떠날 이재를 위한 그 고사는 ‘어디서나 위험한, 어떻게 살아도 위험한 여자’인 우리의,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제의가 아니었을까. 부디 무사히 살아 있으라는, 제발 기꺼이 살아 내라는 간절함이 만들어 낸. 하지만 이같은 염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절대로.

장아찌(뜬금없이 왠 장아찌? 책을 읽어보시길! 훗.) 맛을 결정지었던 것은 바로 누름돌이었다.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그 무엇이 분명히 존재했던 것. 그렇기에 이재의 무사귀환이 그리고 우리의 무사생존이 한낱 운에 점쳐지는 현실이 아니길 바란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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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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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헤어지는 하루>는 서유미 소설집이다. 나에겐 꽤나 익숙한 이름. 10년전 읽었던 소설 <쿨하게 한걸음> 작가다. 이 작품이 두 번째 작품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몇 편의 작품이 더 있었다. 십년을 전후로 작가의 단 두 작품만을 읽은 나는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가 <쿨하게 한걸음>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했다. 굳이 말하자면 ‘쿨하게 한걸음, 10년 후 이야기’랄까.

# 나를 불행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바로 ‘조급하고 기대에 찬 나’이다. 가혹할 것은 없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지 제대로 알지고 못하면서 기대만 잔뜩 하고 있었다. (<쿨하게 한걸음> ,186쪽)

다시 또 읽게될 줄이야. 밑줄이 그어져 있고 ‘바로 지금의 나’라고 적혀있다. 그땐 그랬지, 하며 잠깐 웃었다. 지금의 나는 기대 대신 양보, 포기, 인정 등으로 상황에 따라 그 이름을 바꿔가며 자기 합리화를 꾀하며 사는, 조금은 비겁한 현실 순응자가 되어있다. 하지만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를 읽은 뒤, 어쩌면 나도 ‘비로소 일어서는 사람’ 일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쿨하게 한걸음>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쉽게 읽혔고, 무엇보다 마치 내 일기장을 보는 듯 했다. 언젠가 쓴, 언제가 씌여질 나의 이야기라며 흥분하며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또한 그랬다. 등장 인물 면면들과 풍경들이 나는 물론 나를 위시한 모든 것과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내 생각과 말을 대신 해줘서, 가려운 곳을 벅벅 긁어주는 시원함을 느끼면서도 쓸쓸했고, 외로웠고, 아팠고, 슬펐다.

# 이사를 가고 싶은 것과 이사를 갈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라 보증금을 올리려면 대출을 받아야 하고 월세를 더 내려면 수입이 늘어가더나 지출을 줄여야 했다. 현실적으로는 대출이 불가능하고 더 벌 수도 없으니까 쓰는 걸 줄여야 했다. 그동안 잠도 줄이고 게으름 피우는 시간도 줄이고 말도 줄이고 꿈과 기대와 감정까지 줄이며 살았는데 여전히 뭔가를 더 줄여야만 했다. (에트르, 12쪽)

# 막상 10년차에 접어들자 두 사람은 결혼생활과 자신들의 30대가 이토록 빨리 흘러가버린 것에 각자의 방식대로 놀랐다. 둘 사이에 10년이라는 시간이 쌓였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고, 그 세월이 더께가 아니라 마른 낙엽처럼 부서지고 먼지처럼 흩어져버리는 것이라는 게 허무했다. 아이가 잘 크고 둘 다 건강하게 밥벌이를 해내고 있으며 남편과의 사이가 그만그만하다는 것에 의의를 뒀고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전세금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는거라고 자위했다. (뒷모습의 발견, 100쪽)

# 장례 절차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고인을 보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건데 돈만 지불하면 염습도 반함도 입관도 파견된 장례 전문가가 다 처리해준다. 생전에 고인이 원하던 죽음의 방식과는 상관없이, 상조 회사의 얼마짜리 상품에 가입했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가족들은 각자 시간을 내서 지인들에게 연락하고 자신의 슬픔은 알아서 추스르면 그만이다. 죽음은 변하지 않았고 죽음의 본질은 그대로인데 죽음의 처리나 절차, 의식은 점점 간소화되고 세련되게 포장되었다. 슬픔이나 애통함은 밖으로 흘러넘치지 않게 단속하고 죽음 자체도 전선처럼 피복에 싸여 땅 밑에 묻어버리거나 송전탑처럼 높이 띄워버렸다. (이후의 삶, 148쪽)

# 임신과 출산을 통과하는 동안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내가 바라던 삶과 방향이나 목적지, 경유지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마저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반대편으로 달려가는 열차에 올라탄 것이었다. 잘못됐음을 깨달았을 때는 돌이키기 힘든 상태였다. 승차권의 교환이나 환불 시기는 지나버렸고 되돌아갈 차편도 없었다. 출발지는 사라져버린 지명, 지역이 되어버렸다. (변해가네, 171쪽)

작품 속 20대 취준생 자매, 10대 가출 청소년, 결혼 10년차 부부, 이혼한 중년 남성, 60대 여성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다. ‘나름대로 자신의 생활 속 질곡을 타개하기 위해 열심이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들’인 것이다. 이 작품은 ‘소시민의 위기와 불안’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고 명확하게 밀고 나간다. 그래서 그들이 맞이할 내일이 희망적이리라 예상하긴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비관적이리라 단정하기도 어렵다. 작품 곳곳에서 그들이 ‘비로소 일어서는’ 모습이 언뜻언뜻 보이기 때문이다.

상자를 집어들면서 나는 그 안의 케이크가 얼마나 뭉개졌는지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는 케이크 상자를 품에 꼭 안았다. (에트르, 30쪽)

나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다. (개의 나날, 40쪽)

읽고 싶은 책을 샀고 눈치 보거나 방해받지 않고 아무 때나 펼쳐서 읽었다. 뜨거운 차를 마시며 책을 더듬더듬 읽다가 좋은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그었다. 그럴 때면 찰나지만 이 생활이 충분하고 완벽에 가깝다는 기분이 들었다. (변해가네, 175쪽)

찌그러진 케이크가 담긴 상자를 단단히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자신 안에 누군가와 함께 보낸 시절이 남아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순간, 여전히 팔목은 시큰거리지만 치매 걸린 엄마의 웃는 표정 하나로 기억되는 하루도 나쁘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에 그들은 비로소 내일을 기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고달프면 고달픈 대로 그것을 받아 들이는 결연한 수락의 자세가 있고 파국 앞에서의 체념과 무력감 대신 뭉개져버린 희망을 재건 가능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묘한 생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덕분에 ‘비로소 일어서서 쿨하게 한걸음’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현실의 나를 소리없이 다독’거리는 ‘여기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 책을 읽는 동안에만 잘못 살아왔고 잘못 살고 있다는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책 속의 인물만이 현실의 나를 소리없이 다독거렸다. 여기 너와 같은 사람이 있어. 이게 나의 실패고 진짜 얼굴이야.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게 내가 책을 읽는 이유였다. (변해가네,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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