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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플랜 - 생리 주기를 통해 원하는 삶 성취하기
미란다 그레이 지음, 강현주 옮김 / 몸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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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몸글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


마지막 생리 날짜가 언제였는지 찾아보려 다이어리를 뒤적거렸으나- 3월 6일을 끝으로 기록이 없더라. 28일을 기준으로 역산하여 현재 주기를 추정했다. 완경(나는 '폐경'이라는 말도 마음에 든다.) 전이라 책에서 얘기하는 생리주기에 맞춰 글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생리 주기가 규칙적이지 않아도, 갱년기라도, 심지어 피임약을 복용 중이라도 28일 플랜을 사용할 수 있다지만, 완경 뒤라면 어렵다고 본다. '생리 주기인 28일 동안 여성이 '최적의 시간'을 활용해 성취감과 의욕을 얻으며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28일 플랜 가이드'라는 글에서 낌새가 느껴진다. 여성만이 가진 생리 주기를 '라이프 코치'로 지칭한 발상은 꽤나 신선했지만, 그것을 목표 달성의 수단의 하나로 삼은 건 아닌지 의심과 우려 또한 숨길 수 없었다지. '비지니스 세계에서 여성의 방대한 능력을 활용하면 다른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나갈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호르몬에 의해 몸과 마음이 요동치는 생존기계에 다름 아닌 인간이지 않나. 여성만이 생리를 하니 그 주기에 따른 호르몬과 심신의 변화는 당연지사. 하지만 이렇게 납작하게 눌러버리기에는 이에 얽힌 이야기가 너무나 다채롭고 풍부해서 말이다. 간만에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도 꺼내 다시 읽었다.


월경주기를 여성적인 힘의 원천으로 찬양하면서 그 주기적인 속성과 조화를 맞추어 나간다면 월경주기에 담긴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월경주기의 여러 부분과 관계하면서 변하는 꿈, 창조성, 호르몬 등은 우리의 내면을 더욱 깊이있게 알 수 있도록 해준다. 서서히 이루어지는 이 과정은 개인적인 역사를 드러내고, 매일 다른 방식으로 월경주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월경주기에 맞추어 살아가도록 하는 과정인 것이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5장. 월경주기 중에서-


미뤄뒀던 그래서 계속해서 가책을 느꼈던 <28일 플랜> 관련 글을 써야지 마음 먹기 전, 이른 아침 12살 딸의 여름용 브라와 함께 위생팬티도 넉넉하게 함께 주문한 걸 기억하고 말았다. 위생팬티는 예상에 없던 거였는데, 희한도 하다. 아직 생리를 시작하진 않았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책에 따르면 나의 주기는 현재 '창의적 단계 21일차' 혹은 '창의적 단계 22일차'로 여겨진다. 참고로 창의적 단계는, 생리 전 : 생리 시작 후 21~27일이다.

창의적 단계가 진행될 수록 잠재의식이 강해지면서 내면세계의 영향력이 커집니다. 따라서 영감이 샘솟고 해결하지 못했거나 시급한 감정적 문제를 발견하게 되죠. 또한 행동을 취하고, 변화를 일으키고,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고,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강한 추진력을 느낍니다. 하지만 체력과 집중력이 약해지다보니 좌절감, 분노, 짜증이 늘어납니다. (60쪽)

저자는 생리 주기를 '역동적 단계-표현적 단계-창의적 단계-성찰적 단계'로 나뉘고 각 단계에서 나타나는 능력과 잘 작동하지 않는 것, 주의해야 할 점은 물론 그에 따른 신체적·감정적· 업무적 전략, 목표 달성을 위한 행동, 도전과제까지 망라하여 다루고 있다. 생리 주기에 따른 신체 증상, 감정, 정신 상태를 면밀하게 살피면서 28일 플랜 활용법에 대해 친절하게 안내한다.

생리 주기에 따라 살아가보세요. 모든 주기는 성장과 발전, 치유와 자기 발견, 재능 발휘와 목표 실현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주기에 맞춰 지내다 보면 삶을 펼쳐갈 새로운 능력과 선택권을 얻게 됩니다.

고백컨대, 마지막까지 <28일 플랜>이 여성만의 생리 주기를 활용한 여성만을 위한 자기 계발서로만 감각되어 불편했다. 굵직하고도 묵직한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라는 정도가 아닌 <28일 플랜>이라는 빠르고 쉬운 지름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지나칠까.


월경의 지혜를 회복한다는 것은 월경의 경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보다 새롭고 긍정적인 방식을 우리 자신과 우리 딸들, 그리고 남자들의 마음속에 만들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5장. 월경주기 중에서-


이 글에서 크게 한 방 맞았다. 맞다. 말 그대로다. 책 <28일 플랜>은 월경의 지혜를 회복하고자 하는 '새롭고 긍정적인 방식'인 것이다. 우리가 피를 흘리는 시간, 우리가 힘을 가지는 시간, 지구상의 모든 여성과 연결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축복할 수 있을까.

28일 플랜으로 생리 주기가 잠재력이 되는 매력적인 한 달을 보내보자!

뱀발.

나처럼 자신의 현재 생리 주기에 맞는 부분만 골라 읽거나, 한 달동안 자신의 몸과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며 찬찬히 읽어보는 것도 물론 좋겠다만- 이왕이면 생리주기가 다양한 여성 여럿이 한데 모여 읽고 나눌 수 있다면 더욱 다채롭고 흥미로운 모임이 만들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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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목민심서 (다산의 지혜 에디션) 다산의 지혜 에디션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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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읽은 책을 새로운 책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읽어냈다. 어느 때보다 혼란한 지금, 정치 사회 행정적으로 역할하는 공인의 자세를 고민케 하는 '목민심서'라 할 수 있겠다.지방 수령인 목민관이 따라야 할 지침이라시만, 보통의 사람들을 일깨우는 글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실로 엄숙하고 공손하고 겸손하고 온순하여 감히 예를 잃지 않으며, 화평하고 통달하여 막히고 답답함이 없으니- 곁에 두고 오래도록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생활고전' 맞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크고 작은 공동체에서 사회적 역할을 맡은 '공인'으로서 기능하고 있지 않나. 그렇기에 지금의 목민심서는 우리 모두를 위한 지침이기도 하다. 우리는 매일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회에서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가-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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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농부 - 모두의 농업, 모두의 농부
정기석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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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농부 - 모두의 농업 - 모두의 농부

 

우연일까. 최근 만난 글과 사람들이 '독일'과 이어진다. 녹색평론읽기모임 [맑은하늘]에서 읽은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심지어 블로그 인기글) 글이 그렇고, 도서관에서 북토크를 진행하는 강사님이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오셨다고. 오래전 읽은 김누리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다시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던 중. 서평단으로 참여하게 된 책 사회적 농부를 읽게 된 거다.

 

독일에는 무엇보다 농업을 가업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 반드시 자식에게 농사를 물려준다. 맏아들이 못하면 둘째 아들이, 아들이 없으면 딸이 물려받는다. 자식들도 중학교부터 농업학교를 다니며 당연하다는 듯 농부가 될 준비를 한다. "농부가 농사를 게을리 하면 농촌 경관이 어떻게 망가지나 보라"며 당당히 대정부 시위를 벌인다. 죽어서는 '자랑스러운 농부'였다고 묘비에 새긴다.”

 

책은 시작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호기심이라 점잖게 썼다만, 믿을 수 없다며 꽤나 호들갑을 떨었다. 한국 농부들은 자식들이 도시 월급쟁이가 되더라도 도시로 자식들을 내몰고 어떻게든 농사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학벌·부동산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아닌가. 해서 '반드시 자식에게 농사를 물려준다.'는 문장에 상당한 의구심이 일었던 듯하다. 나또한 궁금하더라. 그들은 왜 그토록 당당한지. 그 자존감과 자부심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얼마 못가 알게 된다. 실체와 마주하니 탄식에 이어 감탄을 넘어 찬탄이 절로 나오더라.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농민들 스스로 남보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벌려는 욕심을 통제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는 사실. 자칫 나와 내 가족, 생활과 생계 앞에 먼저 자신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이 출혈 경쟁이나 과잉 독과점의 유혹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아예 법조항처럼 명시해 놓았다. 1954년에 제정한 독일 농정의 4대 기본 목표인 '녹색계획(Green Plan)'이 바로 그것. '경전처럼 경건하고 거룩하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첫째, 농민도 일반 국민과 동등한 소득과 풍요로운 삶의 질을 향유하며 국가 발전에 동참한다. 경쟁력 향상, 소득 증대만 추구하면 대다수 소농들의 토대는 무너지고 이농을 할 수밖에 없다. 둘째, 국민에게 질 좋고 건강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농산물을 과대 포장해 비싸게 파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다. 셋째, 국제 농업과 식량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자국의 먹을거리 문제 해결은 물론, 먹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이지 않는다. 넷째,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한다. 농촌의 자연, 문화경관은 모든 국민이 즐길 권리다. 국도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

 

독일은 자국의 식량 문제 해결에만 매달리지 않는구나. 패전국이 되면서 먹거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일까. '먹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이지 않는다.'는 원칙도 눈에 띈다. 마지막 문장은 그야말로 압권. '국도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 저자 또한 백미로 꼽는다. 독일 국민들은 농부들을 '국민의 별장지기' , '국토의 정원사'로 부르며 고맙게 여긴다.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농사를 짓는 공익 행위를 통해 녹색 계획에 명시된 대로 독일의 모든 국민들이 즐길 수 있는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독일 농업의 열 가지 기능들도 옮겨본다. 독일 농정 당국이 누누이 강조하고 농부들은 금과옥조의 경전처럼 되된다는. 독일 농부들의 높은 자존감과 자부심의 이유가 그대로 설명돼 있다.

 

"하나, 농업은 우리의 식량을 보장한다. , 농업은 우리 국민산업의 기반이 된다. , 농업은 국민의 가계비 부담을 줄여준다. , 농업은 우리의 문화경관을 보존한다. 여섯, 농업은 환경을 책임감 있게 다룬다. 일곱, 농업은 국민의 휴양공간을 만들어준다. 여덟, 농업은 값비싼 공업원료 작물을 생산한다. 아홉, 농업은 에너지 문제 해결에 이바지한다. , 농업은 흥미로운 직종을 제공한다."

 

책을 사실상 이것들을 풀어 설명하고 예를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농업공동체 탐방기 형식을 빌러 현재 '농부의 나라'라 불리는 그들의 농정 정책 방향과 철학을 보여주는 '생생 정보통'이라 할 수 있겠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경제 재건과 나치 과거 극복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었던 독일.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로서 뼈아픈 자기반성을 통해 지금의 독일을 만들어낸 그들의 이야기를 '나일강의 기적' 여섯 글자로 납작하게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될 터. 무엇보다 이 책은 농업 강국 독일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농업 강국 독일이라, 낯설고 어색한 조합이지 않나. 아직까지 독일하면 강철이 떠오르는 건 주입식 교육이 폐해려나. 어찌됐든 짧은 지식일지언정 그간 듣고 읽어왔던 독일 교육 철학 등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독일 전체를 아우르며 관통하는 그 어떤 흐름이 농업을 비껴갈 일은 없었을 터.

 

읽는 내내 모든 면에서 철저하고 완벽하게 소외된 우리나라의 농업, 농부의 삶이 겹쳐졌다. ‘농포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 녹색평론에서 읽고 경악했던, 농지전수조사가 1950년 농지개혁 이후 70년 동안 단 한 번도 실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단적인 예다. 농업생산에서 가장 근간인 땅, 농지가 아닌가. 오로지 소유와 이용, 개발의 측면에서만 땅을 바라보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농업이 존중받고 농업만으로도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까. 다른 생각하지 않고 정해진 규범과 질서대로 살아도 부족하지 않는 삶을 고르게 누릴 수 있는 농부의 삶은 가능할까.

 

저자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가 탄탄한 농업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직불금이라는 실질 농업 지원 제도와 무상 교육인 농업학교라는 든든한 사회 안전망 덕분이라 재차 강조한다. 이 두 가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운영되고 존재하는 제도와 기관이다. 하지만 직불금의 경우 10여개에 달하는 제도는 각기 목적, 예산, 법률, 지침, 운영 기준이 다르고 체계도 복잡하다. 효율이 떨어지고 비합리적인 것은 당연지사. 직불금 예산이나 지원 규모 같은 양적 성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직불금을 지원하는 이유와 철학의 정립은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겠다.

 

독일의 경우 문화경관직불금으로 불린다. 기후변화와 토양침식과 오염을 방지하고, 생태계 다양성을 유지하며, 문화경관을 보전하고, 윤리적 사육을 실천하는 농가를 지원한다.”는 취지이자 원칙이다. 생산 규모와 연계되지 않는 농업 경영주에게 예측 가능한 안정된 소득을 보장하는 데 최우선 목표를 두는가 하면, 청년 농업인가 소농을 상대적으로 우대하고 있다. 소농 지불은 경지규모에 무관하게 정액 지불한다.

 

"독일의 농가마다 지급되는 직불금은 연평균 4,000만원 수준이다. 농가 소득 가운데 60퍼센트가 넘는 수준이다. 알프스 산악 지대로 농사 조건이 불리한 스위스는 90퍼센트가 넘는다. 일단 경작하는 농지 규모에 따라 소농은 2,000여만원 정도, 대농은 3~4억원 넘게 책정된다. 여기에 관행농보다 조건이 더 불리한 친환경농업, 청년, 소농 여부에 따라 직불금이 추가로 지급된다. 특히 '청년 농업인'을 우대해 기본직불금에 25퍼센트를 추가 지급하고 공유지 임대, 농업 시설물 설비 보조금도 따로 지원한다."

 

"직불금 규모는 유럽연합 농정예산의 70퍼센트가 넘는다. 사실상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의 핵심 정책이라고 할 만하다. 농가에 직접 지급하니 예산이 중간에 낭비되거나 유용될 일이 없어 예산 집행의 효율성이 크다. 규모와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회원 국가, 모든 농민에게 지불되므로 사실상 농가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안전망 구실을 한다. 농민 기본소득제의 효과도 거두는 셈이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농부가 되려면 농업학교부터 다녀야 한다. 아무나 함부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11살부터 농업학교에 들어가 농업전문대학까지 졸업하고 농업 마이스터 과정을 수료하고 농부 자격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협동하고 연대하는 독일의 사회적 농부는 농업학교, 농부 자격고사, 농부 마이스터 같은 독일의 사람 존중을 바탕에 둔 체계 있는 교육이 빚어낸 성과물인 것이다."

 

독일 정부는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농이나 기업농만 챙기지 않고 가족농과 소농도 다 포용하는 정책을 편다. 농부를 육성하는 농업교육을 유난히 강조한다. 이른바 녹색 직업으로서 농부는 단순한 직업이 아닌 미래가 보장된 평생직장으로 대접받는다. 중학교 과정부터 수만 명 독일 청소년과 청년들이 농부가 되기 위해 농업학교에서 농사 공부를 시작한다,”

 

한국에서도 농업고등학교가 있을뿐더러 농식품부에서 농업마이스터대학을 운영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전혀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에서도 간략한 설명뿐인데다 한국식 정도로는 뭔가 부족하다라고 마무리되고 있어 의문의 열패감이 들었다. 이 같은 책의 형식을 빌려서라도 그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더 널리 보이고 들려야 하겠다. 한국 실정에 대해선 모르쇠로 방관하며 막연한 부러움과 동경을 보내는 건 아니 될 일.

 

독일의 농부는 혼자가 아니다. 독일 농부 곁에는 늘 농부의 삶을 챙기고 보살피는 국가와 정부, 농부들의 생활을 걱정하고 지켜주는 국민들이 있었다. 모두가 참여하는 국민농정을 주장하는 글이 기억에 특히 남는다. 농업이야말로 국가기간산업이다. 국민의 생존권과 국가의 식량 주권을 지키는 최후 보루다. 먹거리를 생산해 국민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농부의 존귀함, 농업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무엇보다 우선시 되고 한시바삐 이루어져야 할 것은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겠다. ’어떻게라는 실질적 방법에 대한 질문만이 남는다.

 

사회적 농부는 사회적 합의와 지지를 받으며 돈버는 농업이 아니라 사람 사는 농촌을 만들며 살아간다. 사회적 농민들이 모여 생태적 농촌을 일구고, 모두가 조금씩 농부인 농부의 나라를 함께 세운다. 사회적 농부는 모두의 농업을 일구는 모두의 농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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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춘기 사계절 동시집 19
박혜선 지음, 백두리 그림 / 사계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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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춘기' 16살 소년의 마음도 이럴까. 시집을 열면, 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녀석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런데 시가 되어 담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의 딴생각,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마음, 자꾸만 생각나는 풍경과 절대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또한 나의 것이기도 했다. 녀석으로 향했던 안테나를 나에게 돌렸다.


또다시 봄. 4월의 첫날. ‘봄’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은 날이렸다. 일하러 가는 길, 발걸음을 몇 번이나 멈췄는지 모른다. 여유롭게 나와서 다행이다 다행,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정말이지 '식물'은 '게으름을 모른다.'


식물


게으름을

모른다


수박씨랑 단박에 외운 시. '동물'이란 제목의 시를 금방 만들어보기도... 생각하는 바로 그것! 맞다.

‘동물, 게으름을 안다.’


길섶의 노란 민들레. 4월, 가방에 대롱 달린 노란 리본. 언젠가 ‘노란 리본을 보면 힘이 난다’는 유가족들의 말을 전해듣기도 했지만, 나뿐만 아니라 나방, 수박씨, 찬바람이 들고 다니는 모든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단 건 여기저기를 '함께’ 다녔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소소하고 소중한 일상을 ‘함께’ 나눴으면 하는. 그래서 이 시가 반가웠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존재의 발견. '공감'도 좋다만, '동감'이 주는 어떤 위로, 안도가 있으니까.


함께


그날부터 누나의 가방에 노란 리본이 달렸다

학교 갈 때도

편의점 갈 때도

영화 보러 갈 때도

친구 만날 때도 그 가방이었다

수능시험을 보러 갈 때도

대학생이 되어 엠티를 갈 때도

늦도록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때도

노란 리본이 달린 그 가방과 함께였다


오늘 누나는 교환학생이 되어 미국으로 떠난다

"누나, 또 그 가방이야?"

"얼마나 가고 싶겠니? 나랑 똑같은 나이였는데."


누나가 간다

팔랑팔랑 노란 리본이 함께 간다


전에도 잠깐 썼다만, 초롱초록한 표지는 물론 제목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민들레 홀씨 가득한 그곳에서 턱을 괴고 눈을 감고 입고리를 살짝 올린 채 발끝을 세워 든 이는 자신이 어디로 무엇이 되어 날아갈까 가만가만 그려보는 중일까. 그 곁에 살포시 앉아 나 또한 저 너머를 그려보고 싶다.


다시 마음이 녀석으로 기운다. 16살 소년, 바람의 사춘기. 바람이 잠잠하길 바람. 그렇다고 바람 한 점 없는 날은 밋밋해서 영 신바람이 일지 않을테니. 그저 바람 불어 좋은 날을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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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루하루 살다보면 세상도 바뀌겠지 - 2030 에코페미니스트 다이어리 이매진의 시선 8
안현진 외 지음, 여성환경연대 기획 / 이매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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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개학연기와 유치원 휴원으로 두 녀석들과 하루 24시간을 종일 집에 틀혀박혀 하루 세끼에 간식까지 챙겨 먹이며 돌봄·가사·감정 노동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여성노동을 둘러싼 사회 환경이 만들어낸 문제를 환기시킨' 용윤신님의 <자존감/일,여성,감정/나를 겨눈 화살을 바깥으로 돌리기> 글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사실 지금과 같은 코로나 시대가 아니었을 때도 나는 '엄마' 그리고 주부'라는, 내가 가진 수많은 정체성들 중 이 둘 앞에서는 영 맥을 추지 못했다. 나를 한없이 움츠러들게 하는, 힘이 쪽 빠지게 만드는 말이다. 엄마/주부로서 자신이 마땅한지, 자격과 자질을 자꾸만 의심하고 회의하게 되니 언젠가부터 가족과 함께 있는 집은 내게 가장 불편하고 힘든 공간이 되고 말았다. 어쩌다, 어쩌자고, 나의 자존감은 집에만 있으면 끝도 없이 추락하고 마는 것일까. 왜 '엄마/주부'라는 이름의 나는 한없이 쪼그라들까. 필자는 이 글에서 여성의 낮은 자존감이 여성이 하는 '일'에서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성별에 따라 자존감이 깎이는 경험을 하는 영역이 나뉘어 있다면 그 문제는 이미 사회 문제라 지적하며, 자존감 문제에서 성별에 따라 나타나는 차이에 집중하는 여성주의적 접근을 시도한다. 감정 노동, 꾸밈 노동, 가사 노동, 돌봄 노동, 소비 노동에 이르는 여성이 하는 일련의 노동을 하나씩 짚으며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감정노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여성의 자존감을 하락시키고 있다. 첫째, 자기의 실제 감정하고 다른 감정을 표현하면서 자기를 부정하는 데 익숙해진다. 둘째, 분명히 노동하고 있는데도 사회와 자기 자신에게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119쪽)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꾸밈 노동을 단순히 여성의 본성이나 개인적 만족의 문제로 몰아버리는 태도는 꾸밈 노동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개인의 책임으로 한정하고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데 기여한다. (123~124쪽)

가정부를 따로 둘 수 있는 형편이 안 되는 대부분의 중산층 여성은 스스로 가사 노동을 한다. 가사 노동은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가족에게 기여하는 바 없이 남편이 주는 돈으로 살아간다는 오명을 얻기도 한다... 실제로는 가사 노동이 하찮다는 평가가 여성의 자존감을 낮추고, 낮은 자존감 때문에 여성은 저임금과 혹독한 노동 환경에 자발적으로 순응한다. (126~127쪽)

돌봄 노동은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더욱 강하게 압박한다. 아이가 끊임없이 놀아달라고 할 때, 임노동과 가사노동을 하느라 피곤할 때, 아픈 가족을 오래 돌봐야 할 때, 여성은 돌봄 노동자라는 지위에서 도망치고 싶을 수 있다. 이때 모성애는 이런 생각을 하는 여성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며, 여성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엄마, 딸, 며느리라는 위치에 서서 스스로 반성한 뒤 미안한 마음을 안은 채 돌봄 노동으로 돌아오게 된다.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려는 여성을 이기적인 엄마나 딸로 만들어 죄책감을 자극한다... 돌봄 노동을 여성의 본능으로 몰아가는 태도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 충실하지 못한 순간을 공격한다. 24시간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여성에게 24시간 타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해 구조적으로 죄책감을 만들어낸다. 죄책감은 자존감의 구성 요소인 자기 존중을 낮춘다는 면에서 자존감에 악영향을 미친다. (127~129쪽)

합리적 소비는 늘 실패한다. 모든 상품의 기능과 성분을 비교하고 분석해 합리적 선택을 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 돈과 시간에 한계가 있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자본이 제시한 선택지 안에서 골라야 한다는 측면에서 여성에게 부여되는 윤리적이고 합리적인 소비는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죄책감과 그 결과인 낮은 자존감은 오롯이 여성들의 몫이다. (132쪽)

원인이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맞서서 여성인 나는 어떻게 자존감을 지킬 수 있을까?

필자는 일단 질문의 주어를 바꿔보라 한다.

'나는 왜 자존감이 낮을까?'라는 질문은 구조적 문제를 순전히 개인 탓으로 돌린다는 면에서 잘못됐다... '여성은 왜 자존감이 낮은가?' , '가난한 사람은 왜 자존감이 낮은가?' 이런 질문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게 하며, 생각만으로도 우리의 자존감을 올라갈 수 있다.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밝히지 못해도, 무지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여성과 사회 약자의 자존감을 짓누르는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133쪽)

그리고 글을 써볼 것을 제안한다.

개인적으로는 자존감이 낮아지는 순간의 상황과 감정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읽으면서 큰 힘을 얻는다. 먼저 글을 쓰면서 감정을 표출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고, 기록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자주 비슷한 불안에 빠지는지 알게 돼 좋다. 나아가 타인하고 관계를 맺을 때 큰 힘이 된다. 특히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은 순간의 기록, 갈등이 벌어진 순간의 기록이 도움이 됐다. 내가 쓴 글은 내 감정과 기억을 지켜주고, 나를 지지해준다. (135쪽)

그래서 지극히 사적인 생각과 감정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그야말로 진정한 독후감이 아닐런지.

둘째 녀석은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 까지 끊임없이 말한다. '나랑 놀아줘, 나랑 놀자, 누구랑 놀아?, 뭐하고 놀아?...' 아이들은 노는 게 지상 최대의 과제라지만, 요즘 나에게는 지상 최대의 난제다. 이 뿐이랴. 해도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이 있다. 얼마 전 이 둘을 해결해 보겠다고 친정에 갔다가, 부엌에서 종종거리는 엄마의 모습을 본 뒤 이것도 더는 못하겠구나 했다. 한 여성의 노동이 다른 여성에게 전가되고 말았다. 노동의 축소가 아닌 세대간 떠넘기가 된 것이다.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친정에서는 엄마에게 죄책감과 미안함이 드니 내 쉴 곳은 정녕 어디인가. 아, 정말이지 몸도 마음도 너무나 힘들다,

삼시 세끼에 더해 간식까지. 녀석들 먹이는 것도 큰 일이다. 한 끼 정도는 간단하게 해결하고자 종종 배달음식이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죄책감에 시달린다. 플라스틱 용기에 뜨거운 음식을 담으면 유해 물질이 얼마나 나오는지, 배달 음식이 필요 없는 쓰레기를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다. 이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입 밖으로 나오면 바로 공격과 비난이 쏟아진다. 생협 조합원, 녹색당, 에코페미니즘, 채식 지향 등을 말하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나의 이중적 작태를 낱낱이 들춰내고 마니, 결국 모두 다 나의 잘못이 되고 만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다 내 탓이로다.

'내 일'도 전혀 안녕하지 못하다. 츨퇴근이 정해지지 않은 일을 한다. 보통은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등교·등원한 후의 시간을 잘 활용하면 왠만한 일들은 다 해결이 되었다. 불가피하게 그 시간을 벗어난 일정은 남편과 조율하면 큰 문제없이 굴러갔는데, 코로나19로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낮에는 엄두를 낼 수가 없다. 10분이면 끝낼 간단한 일도 1시간을 훌쩍 넘기기가 일쑤. 해서 급하게 처리할 일이 아니면 왠만하면 모두가 잠든 시간을 활용하는데... 악순환이다. 시간 부족과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일상. 내게 오롯이 전가된 가사·돌봄 노동에 분개하지만 이내 그것을 제대로 못해 내는 자신에게 짜증이 솟구침과 동시 미안함과 죄책감이 밀려오니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

반면 '바깥'일을 하는 남편은 코로나19로 회식, 야근 등이 없어지면서'저녁있는 삶'을 되찾아 한결 여유로워진 듯 하다. 더구나 일주일에 한 번은 재택근무를 하니, 자연스레 아이들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분명 좋은 일이다. 바람직한 방향 아닌가.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남편이 누리는 그 여유만큼의 정신적·육체적 짐들이 내게 더 얹어진 게 아닐까. 일만 하고 안 놀아주는 엄마와는 달리 제 기분에 맞춰 착착 놀아주는 아빠를 눈만 뜨면 찾는 둘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서운하고 아쉽고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그러면서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는 내가 너무 웃기다.

뭐야, 결국 다 내 탓이라니!
스스로를 '불량주부'라 소개하곤 한다. 엄마로서 자격도 함량도 미달인 존재라 말하기도 한다. 틀린 말도 아니니까 개의치 않았다. 자존심을 버리고 자존감을 애써 낮추면 오히려 주위 상황이나 분위기가 한결 나아지더라. 사람들은 자신보다 못하다 여기는 이들에게 한결 너그럽다. 참 희한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간 그 희한함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분명 '이용'했다 여겼는데, 아니었다. 그것은 결국 나의 자존감을 버리는 것과 다름 없었음을 아프게 깨닫고 말았다. 나를 향하던 화살을 세상으로 돌리라 했던 그 말이 이제야 가슴에 꽂힌다.

문제를 개인에게 두면 각자의 자존감은 더욱 낮아지고 세상의 차별은 더 공고해진다. 이제 나를 향하던 화살을 세상으로 돌리자. 우리가 나누는 공동의 경험에서 공통의 문제점을 찾아내자. 세상의 긍정적 변화를 만든 행동들은 문제의 화살을 외부로 돌리는 데서 시작한 사실을 기억하자. (136쪽)

시대불문 세대불문 대부분의 여성이 가사와 돌봄이 늪에서 고통받고 있는데, 도대체 왜 그 고통에 가족도 사회도 무감각하기만 할까.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보면 세상이 바뀌기나 할까. 나를 향하던 화살을 세상으로 돌리니 뭔가 삐딱해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나쁘지 않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적절한 크기의 삐딱함이 세상을 만들었음을. 책 제목에 쓰여진 '이렇게'는 '짝눈을 하고 짝다리를 짚고 선 삐딱함'을 품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아챘다.

이렇게 살다보면 세상도 바뀌겠지.

#여성환경연대 #에코페미니즘 #이렇게하루하루살다보면세상도바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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