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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관심 밖이었다. 나와는 다른 존재,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책 제목 그대로 ‘법률가들’ 말이다. 그랬던 내가 “쟤네들 도대체 뭐야?” 했다.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사건’으로 진짜, 진심 궁금해진 것. 저들의 정체가.
읽기가 만만치 않았다. 프롤로그부터 헉헉거렸다. 그런데 이내 익숙해지더이다. 이 또한 ‘사람’ 이야기였던 것. 그래도 좀더 쉽고 재밌게 읽고 싶다면, 저자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4부부터 먼저 읽는 것도 방법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 행적이 궁금해질 때마다 앞부분을 찾아서 읽으면 된다. 단, 프롤로그 이야기 흐름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을 것. 그 인물이 ‘어느 부류’에 속했는지 혹은 ‘어느 부류’에 얽힌 사람인지에 대한 얄팍한 낌새 정도는 알아챌 수 있어야 덜 헤맨다. 가제본 도서라 색인 확인이 불가능해서 꽤나 번거로운 작업이었지만, 기어코 찾아내는 재미는 제법 쏠쏠했다.
헐?! 대박!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이다. 순간의 심경을 이보다 적확하게 표현하는 말을 지금껏 찾지 못하고 있다.
여튼, ‘최고의 엘리트’라 자부하는 우리나라 법률가들. 그러나 책은 그 뿌리가 상상 이상으로 빈약함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우리 법조계의 뿌리에는 식민지 잔재와 출세를 위해 시대를 등졌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해방 공간의 어수선함을 틈타 시험조차 치르지 않고 법관이 된 이도 적지 않다.’ 세상에나!
행정부와 입법부는 ‘선출된 권력’인 반면,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어서 그 정당성이 늘 문제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에 대한 시민 일반의 전통적인 존중이 사법부뿐만 아니라 법조계 전체의 정당성 확보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최소한 법조인들은 그렇게 믿어왔다. 그런데 우리 법조계의 출발점에 존재한 이법회라는 큰 구멍은 그런 믿음을 뿌리부터 흔들기에 충분하다. (29쪽)
저자가 새롭게 발굴해냈다는 ‘이법회’(또는 ‘의법회’) 실체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4부까지만 묶인 가제본 도서라 책에서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을 ‘최소한의 자격 심사 장치라 할 수 있는 시험조차 보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 정도로 이해했는데, 다행히도 저자 김두식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약간의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조선변호사시험이 치러지던 시간에 일제가 항복하는 바람에, 여기에 응시했던 200여명은 ‘이법회’를 만들어 시험도 없이 합격증을 받아냈다. 이 가운데 남쪽에 있던 106명은 즉시 임용되거나 다른 시험에서 필기시험을 면제받으며 법관이 됐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이법회의 실체다. 황당하고 어이없다. 이 사람들은 해방의 혼란을 틈타 응시 경력만으로 날름 법관이 된 것이다. 고백컨대, 다른 ‘부류’에 속한 이들에게는 아주 쪼끔 시헤의 마음도 없지 않았다. 말그대로 ‘벼락처럼’ 찾아온 해방이었다. “과연 그 시대에 훌륭한 판검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처럼, 굴곡진 시대 속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의 반경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을 테니. 책에서 드러나는 ‘해방 직후 시공간의 절대적 규정성’을 일정 부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법회의 실체는, 나로선 해독불가.
특히 만주사변 이후 국내에서 누구도 폭탄을 던지지 않았다. 이상은 어떠했든지 간에 사람들은 먹고살아야 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던 청년지식인들도 각자의 교육 정도에 따라 순사시험, 보통시험, 고등시험에 응시해 일제의 관료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천황과 일제에 대한 적극적인 충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판검사 임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특히 법률가 직역에서는 친일 여부 확인이 사실상 무의미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24쪽)
그들의 이야기를 쫓다보면, 조선 최고의 엘리트들 앞에 놓인 제한된 선택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선택은 모두 같지 않음을 또한 보여 준다. 같은 이법회 출신이지만 ‘전두환의 대법원장’이었던 유태홍, 인권운동의 대부로 활약한 홍남순 이야기가 단적인 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심신이 적잖이 고달픈거고.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돌이킨 사람들은 예상한 것 이상의 불행을 맛봤고, 끝까지 개인의 안위만을 추구한 사람들은 기대한 것 이사의 영광을 누렸다.”는 저자의 말을 굳이 옮겨본다.
저자는 당시 법률가로 활동했던 이들을 네 부류로 나눴다. 앞에서 잠깐 얘기한 ‘어느 부류’가 그것인데, 이 책은 결국 네 부류 중 어딘가에 속했던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들의 바로 우리나라 법조계의 원조인 것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부끄러움을 넘어 수치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이든 ‘조선변호사시험’ 출신이든 일제시대 때 자격을 인정받은 법률가였으니 그들은 모두 친일파일 수밖에 없고, 미군정에 의해 판검사로 임용되었던 이들은 일제 때 서기, 통역생으로 활동했던 이들이니 결국 미자격자들, ‘이법회’를 만들어 시험도 없이 합격증을 받아낸 이들. 이처럼 이미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지고 말았으니, 작금의 사법농단은 빈약한 뿌리를 드러내는 사건이라는데 이견이 있을리 없다.
저자의 인터뷰 기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중요한 것은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다. 김 교수는 “출세의 개인성”이라는 말을 들어, “‘주인’이 누구로 바뀌든, 판검사나 변호사 업무가 갖는 공적인 성격과 관계없이 철저하게 개인적 출세를 추구했다는 것이 한국 법조계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1990년대 터져나온 법조비리가 ‘돈 안 받는’ 사법부를 만들었다면, 지금의 사법농단 사건 역시 ‘사법부의 독립’을 넘어 각 법관이 독립적 권한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사법농단 사건을 “긍정적인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