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세랑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사전서평단에 선정되었다. 이는 특별히 제작된 가제본을 소장할 수 있게 된 행운을 누릴 수 있다는 말과 다름 아니니. 앗싸!

가제본에는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9편의 단편 중 1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옥상에서 만나요」 가 왔으면 좋겠다 바랐는데, 「이혼 세일」 이 도착했다. (두 작품 중 하나가 랜덤으로 발송된다.)

그림이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가 표지 일러스트를 맡았단다. 「옥상에서 만나요」 내용이 더욱더 궁금하다.

* 정세랑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중 「이혼 세일」 을 만나다.

‘읽다’라고 썼다가 ‘만나다’로 고쳤다. 분명 글을읽었는데, 친구들과 한데 어울려 놀다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 드는 느낌, 딱 그 느낌이다.
경윤, 이재, 아영, 민희, 지원, 성린 그리고 미영. 그 이름들 뒤에 내 이름을 슬쩍 적어 넣어본다. 전혀 어색하지 않다. 7명이 된 ‘우리’다.

‘이혼세일’ 이라니!
이재가 이혼을 한단다. 제가 썼던 물건들을 처분하기 위해 우리를 불렀다. 나는 이재가 좋다. 하지만 내 안의 이재를 향한 은근한 부러움과 묘한 질투의 감정도 있음을 숨기지 않으련다.

‘이재가 걸치면 평범한 카디건도 근사해 보였고, 남들 다 신는 생고무 밑창 스니커즈도 달라 보였다.’

‘이재는 함께 있으면 심장이 약간 느리게 뛰게 되는 감미로운 공간 장악 능력이 있다. 이재의 반경에선 모든 모서리와 테두리가 달라졌다. 둘러싼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준을 떨어뜨리는 희한한 아이였다.’

이재의 이혼. 이제는 그것까지 부러울 지경이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아이도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진심으로 안도하면서도 성린의 말마따나 ‘상큼한 이혼’을 감행할 수 있는 이재의 현실. 그런데 “나는 운이 좋았지만...” 이라고 이재는 말했다. 이혼을 말하면서 뜬금없이 운이라니, 운이 좋았다니...

이제가 미처 끝맺지 않은 말 속에 담겼을 그 무엇가를, 그 누군가를 가만히 떠올려본다. 그리고 몽글몽글 피어나는 의문들.
정말, 이재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었나. 그렇다면 이재 남편의 회사 동료였던 그이는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 우리는,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인가. 우리는, 왜, 이렇게, 그저, 운에 대한 말만 속삭일 수 밖에 없는 건가.

“야, 여자는 어디서나 위험해. 어떻게 살아도 항상 위험해.” 라던 성린의 말이 귓가에 쟁쟁거린다. 꽤 오랫동안..

길을 떠날 이재를 위한 그 고사는 ‘어디서나 위험한, 어떻게 살아도 위험한 여자’인 우리의,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제의가 아니었을까. 부디 무사히 살아 있으라는, 제발 기꺼이 살아 내라는 간절함이 만들어 낸. 하지만 이같은 염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절대로.

장아찌(뜬금없이 왠 장아찌? 책을 읽어보시길! 훗.) 맛을 결정지었던 것은 바로 누름돌이었다.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그 무엇이 분명히 존재했던 것. 그렇기에 이재의 무사귀환이 그리고 우리의 무사생존이 한낱 운에 점쳐지는 현실이 아니길 바란다. 간절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